조미영 개인전 : 깃羽 파란 실타래 (Feathers in Blue Spool)
2017.09.01 ▶ 2017.09.20
2017.09.01 ▶ 2017.09.20
조미영
깃羽 살아오름... Life soar 181x122cm 한지 위 먹, 염료, 은분 2015
조미영
깃羽 Feathers in Blue Spools 34x29cm 먹, 염료, 한지, 2017
이번 전시는 조미영 작가의 열 일곱 번 째 개인전으로 작가 스스로의 시간을 돌아보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실을 고르고 다시 풀어보는 과정에서의 정리와 활력의 개념이다.
작가는 깃을 자신의 안내자로 보고 있다. 깃엔 보이지 않는 온기, 감정들이 담겨 있다. 여행자가 되어 함께 비행하기도 한다. 깃을 통해 세상을 보고 만지며 소통하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조미영 작가는 자신의 작업의 본질이 회복에 관한 염원과 치유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말한다.
자신 스스로를 치유하는 과정으로 세상과의 연결통로를 찾아내 숨 쉴 수 있도록 하고, 숨통을 필요로 하는 타자에게 공간을 나누는 ‘통로 찾기’ 작업인 것이다. 알, 깃을 모티브로 계속 작업해 온 이유도 호흡을 위한 쉼 공간의 확보에 관한 시도였다고 보면 된다. 그림 안에서 구체적으로 보이는 형상에 가급적 매이지 않고 보다 더 자유로운 의지의 존재, 그대로의 자유로운 움직임을 구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작품은 현대적 화풍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가슴으로 모시는 스승은 의외로 옛 분이다. 겸재 정선, 김홍도, 신윤복, 심사정, 이인상 등은 그녀에게 큰 학습과 도전을 주고 있다.
“대개 누구에게 배웠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요. 저는 조선시대 때 활약한 화백에게 가르침을 받고 있습니다. 그분들의 작품을 통해서죠. 존경하고 있고요. 물론 대학 때 많은 교수님들과 선배들에게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사회에 나와서는 서예가 단구 장남혁 선생님께 글씨를 배우고 있습니다.”
–조미영 작가 인터뷰 中
가을 하늘을 닮은 조미영 작가의 “깃羽 파란 실타래”展을 감상하며 서촌을 산책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작가노트>
깃羽 이음[i:um]_ 소멸, 다시 살아남 그 순환에 관한...
장자莊子가 서술한 문장 가운데엔 또 『아래로는 생사를 초월하고 끝과 시작이 없는 것과 벗으로 삼는다. 而下與外死生無終始者爲友』는 구절이 있다. 생사를 초월한다는 것은 생사를 잊는다는 것이다.
장자가 말하고 있는 것은 ‘생사불이生死不異’ 또는 ‘사생일여死生一如’와 같은 뜻으로 삶과 죽음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되어 구분할 수 없고 세상의 모든 현상은 이치에 따라 생멸生滅, 이합집산離合集散하면서 따로 구분할 수 없는 연속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삶과 죽음의 반복적인 흐름 속에서는 모든 존재의 무상無常함을 직시하고 물질적 집착과 탐욕에서 벗어나 현재의 순간을 집중해 살라는 뜻을 일깨운다.
우주만물宇宙萬物의 시작始作과 끝에 관한 질문과 관계의 연속성, 헤어졌다가 모였다가 하는 일 등을 '깃羽'이라는 소재를 빌려 그렸다. 미묘한 압력의 차이 혹은 흐름에 의한 공기 사이를 자유롭게 날아가는 '깃羽'에서 생명의 본질을 찾으려 했고 깃(羽)의 유영하는 공간 즉, 여백餘白에 관한 의미를 재인식하고 연속적으로 기氣의 움직임을 관찰하면서 스스로 그런(自然) 변화에 관해 말하고자 한다.
빈… 空
에워싸인 사각의 틀을 벗어나 자유로운 사고와 자유로운 움직임을 위해 ‘여백餘白’을 만들었다. 무의식을 건드려 ‘사고의 공간’을 확보함과 동시에, ‘텅 빈 공간’을 만들어 의식의 실체인 깃(羽)을 날려보았다. 그것은 소멸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난 마치 엄마 품 같은 따스함이 그림 속에서 감도는 것을 느꼈다. 인생의 감동 혹은 울림을 줄 수 있는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 그렸다. 작업의 무수한 반복 속에 집착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숨어있는 틈 새 공간 혹은 비어있는 공간을 찾아 ‘사색의 공간’을 모색했다. 말하자면, ‘여백餘白’을 확보함으로써 감상자로 하여금 ‘사이(間)’의 관계에서 동시적인 공감을 갖고자 유도했다. 여기서 말하는 ‘사색의 공간(餘白)’이란 무중력 상태의 무궁무진한 에너지가 잠재된 비워진 공간을 의미한다.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깊이 빠지게끔 되어있는 감정의 몰입을 위한 소통의 출입구 역할로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넓고 깊은 빈 공간을 두어 상상의 여지를 남기게 된다. 빈 공간은 기氣가 들어가기를 대기하였다가 자연스럽게 깃(羽)을 받아들임으로써 여백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한다. 그리하여 공간을 벗어난 공간을 만들어낸다.
본인의 깃(羽) 작업에서는 ‘사색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최대한 그리지 않았다. 또한 최소로 필요한 것만 남기게 되었다. 깃(羽)은 자연과 인간의 매개(媒介) 역할을 한다. 그것은 희노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을 담고 있으며 무의식을 건드려 여백을 만들어낸다.
“『주역』에 ‘말言로는 뜻意을 지극하게 표현할 수 없어, 상象을 세워 뜻意을 지극하게 한다. (言不盡意, 立象以盡意)는 구절이 있다.”
“그 진실한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상의 바깥(象外)’을 취해야 한다.”
깃(羽)의 형태보다는 선묘線描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울림이 깃의 모습을 빌려 내면에 잠재하고 있는 묘처妙處의 미묘微妙함을 드러내려고 했다. 그림을 그리려 하는데 물체에 구속된다면 정수精髓를 보지 못하는 것이고, 만약에 상외象外에서 그것을 취하면 가히 그것을 ‘미묘처微妙處’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움직임動 고요함靜
만물의 끝없는 움직임은 과연 어디로 어디서부터 출발하는 것인가?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 인 기氣는 자연에 순응하기 위한 움직임이며, 그것은 자연의 이법에 따른 순환이며 변화다. 또한 존재를 위한 최소한의 에너지 보존을 위한 흐름(流)인 것이다.
“예술은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기 위해 고요해지고 움직이는 것, 이것이 정중동(靜中動)이다. 예술가는 한 번의 고요함이 다할 때 한 번의 움직임(표현)이 생긴다는 얘기는 그 움직임의 소이연과 소당연의 뿌리가 고요함(理)에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또 고요함은 움직임(표현) 후에 제자리로 돌아와 다시 기질을 이(理)로 고요 속에 가두고, 다스려 이지승(理之乘)하게 하는 것이다.”
깃(羽)의 움직임으로 자연의 이법에 따르는 순환의 흐름(流)을 그려본다. 깃(羽)은 보이지는 않지만 자연의 이법에 순응하여 움직이는 생명의 호흡과 기운을 보여주는 매개체로서 우리의 마음을 자연自然으로 이끌어준다. 깃(羽)은 현상적인 희노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이 드러날 수 있도록 고요한 가운데 움직이며, 멈추었다가 다시 움직인다. 중력에 의해 정지했다가 다시금 바람을 타고 공기 사이를 자유롭게 노닌다. 깃(羽)의 멈춤과 느릿하게 유영하는 모습으로 기氣의 움직임動을 표현하고, 스스로 그러한自然 변화에 관하여 탐색한다.
공기, 물... 등 간략하게 흔적만 나타낸 부수적 소재는 공간감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무한의 공간인 ‘여백餘白’에 ‘깃(羽)’을 살짝 내려놓음으로써 그 움직임은 우주적 스케일을 만든다. 허일虛一하면서도 안정된 그 ‘고요함靜’을 표현한 것이다.
자연自然과 닮아가기
본인의 깃(羽) 작업에서는 ‘사색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최대한 그리지 않았다고 했다. 그것은 얇은 선묘線描로 혹은 적은 색色만을 사용하여 최소한의 재료로서 묘사의 범위를 가장 단순하게끔 최소화 시킨 감필減筆의 운용이다. 사물事物의 본질을 간결簡潔한 필치筆致로 그려내는 동양화東洋畫 화법畫法의 하나인 감필減筆의 미학적인 측면을 극대화 한 것이다. 본인은 작업에 쓰이는 한지, 먹 등은 전통 재료의 물성 그대로를 이용하였다. 흡수되어 여러 겹 침투된 번짐과 필복筆腹의 물기를 줄여 건필의 섬세한 선묘를 이용한 표현으로 두 가지 상반된 물성을 대비시켜 음과 양의 조화를 한 화면의 여백 속에서 어울릴 수 있도록 하였다. 용필用筆을 하는데 있어 물기와 속도에 의한 습윤함과 메마름, 그리고 먹색의 짙음濃과 묽음淡이 화면 안에서 공존하며 자연과 닮고자 하였다. 또한 자연과 닮아가기 위해 세월의 흐름에 순응하는 재료인 한지와 먹을 사용하였다. 게다가 시간의 흐름을 그대로 보여주는 유한한 재료이기에 한지와 먹의 빛바랜, 다시 말하면 자연스럽게 소멸되는 전통재료가 주는 심적 안정감이 때로는 작업자에게 위로가 되기도 한다.
깃(羽) 조형에 있어서는 가늘고 얇은 선線의 교차에 의한 새로운 여백이 생성하기도 하고 헝클어졌다가 다시금 선을 그음으로써 풀려버리는 반복적인 행위 속에서 선과 선 사이의 미세하게 느껴지는 빈 공간들은 생성과 소멸을 거듭함으로써 스스로 무한의 공간으로 확대되어 간다. 깃(羽)의 선묘線描는 단순한 반복이 아닌 ‘우주의 유영遊泳’을 자연스럽게 감지하고 그 흐름을 쫓아 필적으로 표현하려 하였다.
물질적 추구로 황폐해진 현대의 미의식을 돌이켜보면서 본인은 형形으로서 존재하지는 않더라도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한 가치를 회복시키는데 작업의 의의를 둔다. 물질만능주의적인 가치관에서 벗어나 다시금 본연의 순수한 모습으로 되살리려는 노력이 절실한 때이기에 물욕物慾에서 벗어나 자연 그대로의 정신적 여백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깃(羽)”을 그려왔으며 이는 생명의 원천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필선에 ‘호흡’을 담아, ‘사색의 공간’을 여러 각도로 시도해봄으로써 스스로에 대한 자각과 순환적인 관계 속에서 자아를 재발견하고자 하였다.
미묘한 압력의 차이 혹은 흐름에 의한 공기 사이를 자유롭게 날아가는 '깃털'에서 생명의 본질을 찾으려 하였고, 깃(羽)의 유영하는 공간을 직시하고 기氣의 움직임을 통한 스스로 그러한 변화에 관해 말하였다.
본인의 작업은 본질 회복에 관한 염원과 치유를 목적으로 한다. 말하자면, 내 스스로를 숨 쉬게 하는 치유의 과정으로, 세상과의 연결통로를 찾아내어 숨 쉴 수 있도록 하고, 숨통을 필요로 하는 타자에게 공간을 나누는 ‘통로 찾기’ 작업이다. 알, 깃을 모티브로 계속 작업해 온 이유도 호흡을 위한 쉼 공간의 확보에 관한 시도였다고 본다. 그림 안에서 구체적으로 보이는 형상에 가급적 매이지 않고 보다 더 자유로운 의지의 존재, 그대로의 자유로운 움직임을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깃(羽)의 선묘작업은 내 스스로에게 질문해가는 방법으로써, 내 안으로 깊이 여행을 떠나게 한다. 긴 선을 그으며,,, 자신이 호흡에 집중하고 내 안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한다. 긋는 행위는 계속 반복적인 육체의 통증 속에 더욱 즐거운 자유를 느끼게 해준다. 때로는 긋는 선이 엉켜 흐트러짐을 갖게 되지만,,, 또 다시 그음으로써 풀리고 벗어나도록 돕는다. 인간사의 문제에의 직면도 마찬가지일터. 다른 방향의 사고처럼 또 다른 방향의 ‘그음’이 있다면 어떠한 문제에 당면했더라도 언제든 풀릴 거라는 희망을 갖는다.
1972년 서울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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