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are Where We are Not
2017.09.07 ▶ 2017.11.04
2017.09.07 ▶ 2017.11.04
이종건
We Are Where We Are Not 합판, 각목, 소나무, 화이트 오크_308×528×548cm_2017
이종건
We are Where We are Not (설치계획스케치) 2017
이종건
We are Where We are Not (detail cut) 2017
이종건
We are Where We are Not (detail cut) 2017
이종건
We are Where We are Not (detail cut) 2017
이종건은 사람과 공간이 맺는 관계에 관심을 갖고 이에 대해 관찰하고 해석을 투영한다. 작가에게 공간은 고정불변의 속성이 아니라 공간을 점유하는 사람에 따라 주관적으로 규정되고 변화무쌍하게 바뀔 수 있는 열린 영역이자 공백의 상태이다. 첫 개인전 ”Extraction”(2007)은 안과 밖이 들여다보이는 투명 아크릴로 교회 및 여러 건축 모형을 만든
이후 미국 체류 시절 뉴잉글랜드 지역의 여러 목조 주택에 거주하게 된 이종건은 영국계 이주민들이 본토의 주거 양식을 미국 현지에 옮겨와 주택을 지으면서 건물 곳곳에 고전주의 건축양식이 결합된 콜로니얼(colonial) 양식에 주목하게 되었다. 토착지의 지리적, 문화적 배경과 상관없이 타 문화권의 건축 양식을 취향에 맞춰 주택에 적용한 양상은 작가에게 해외 낯선 곳에 거주하는 것과는 또 다른 공간의 생경함을 느끼는 체험이었다. 이종건은 개인전 “Almost Home”(2012), “Home After Home”(2013)에서 당시 자신이 관찰한 주택의 계단, 테이블, 벽난로 선반 등 이질적인 고전주의 양식의 가구 및 건축요소의 부분들을 나무로 재현해 오브제로 제시했다. 오를 수 없는 계단, 앉을 수 없을 만큼 납작한 의자, 막힌 창문과 같이 기능이 상실되어 공간의 흔적처럼 전시된 작품들은 주택 곳곳에서 볼 수 있던 그리스 신전과 같은 계단 난간과 몰딩이 당시 주변 환경뿐 아니라 거주민들과도 조화롭지 못해 서로 분리되어 느껴졌던 작가의 기억이 투사되어 있다. 과감하게 생략된 외형과 무대 세트장처럼 구조의 형식만 갖춘 작품들은 각자가 인상 깊었던 부분만을 떠올리며 기억으로 이미지를 재현하는 모습과 닮아 있다. 또한 오래된 마룻바닥을 뜯어서 표면에 정원 모티브의 페르시안 카펫 문양을 새긴
건축양식과 지리 문화적 배경간 격차에서 비롯되는 충돌과 공간의 맥락을 고찰해 온 이종건은 이번 전시에서 남현동에 위치한 구(舊) 벨기에 영사관 건물이자 현재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으로 쓰이는 건축물을 소재로 한 신작을 선보인다. 1905년에 지어진 본 건축물은 1977년 사적 254호로 지정된 것으로, 본래 회현동에 위치했으나 일대가 재개발 사업지구로 지정됨에 따라 1982년 남현동으로 이전되어 설계도면에 따라 복원된 것이다.1) 신고전주의 양식을 띄는 구(舊) 벨기에 영사관은 식민 지배기에 요코하마 생명보험 지점과 사택, 기생조합인 본권번(本券番), 일본 해군무관부, 해방 후 공군본부 등을 거쳐 1970년 구(舊)상업은행(현 우리은행)으로 소유권이 옮겨져 용도 또한 많은 변화를 거쳐온 건물이다. 작가는 역사와 지리적 위치에 따른 본 건물의 공간 변화와 ‘미술관’으로 쓰이는 용도에 주목한다. 다양한 시간과 장소성을 갖는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아 보여주는 미술관은 공간의 물리적 제약을 뛰어넘어 다양한 맥락을 포용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오래된 공간에 설치된 현대 미술 작품들 그리고 번화한 도심 한가운데에 세워진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축물 전반에서 오는 이질감과 몽환적인 체험은 이전에 작가가 미국의 목조주택에서 경험한 공간의 기억과 맥을 같이 한다.
전시장에 들어선 관람객은 갤러리 흰 벽과 마주하게 되는데, 벽면을 따라 코너를 돌면 하나의 구조물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목조 골격으로 이루어진 내부 공간은 하나의 방을 연상케 하며 무대의 백 스테이지와 같이 개방되어 있다. 본 구조물의 또 다른 바깥 면은 영사관 외관 일부를 단순화시켜 재현한 것으로, 모두 나무로 제작되어 실내 장식을 보는 듯한 시각 경험을 유도한다. 이러한 건물의 외관은 전시장 가장 안쪽까지 들어와야 볼 수 있기에 관람객은 이동하면서, 본 공간의 정체성을 시간의 역순으로 경험하게 된다. 즉, 전시장 초입에는 미술관 용도로 쓰이는 건물의 현재 시점을 보여주는 ‘전시장의 벽’, 영사관 이후 보험회사에서부터 은행에 이르기까지 과거 여러 용도로 사용된 업무 공간 형태의 ‘방’, 그리고 ‘영사관’으로 지어졌던 본래 공간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건물 외관’이 서로 구분되어 가시화됨으로써 공간의 전이를(轉移)를 극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구(舊) 벨기에 영사관 건물의 양식과 구조의 간략한 형식만을 전시장에 가져온 이종건은 함축된 시(詩)와 같이 공간을 표현한다. 이번 설치 작업은 공간의 공백이 작품에서 상당부분을 차지하는데, 작가는 이를 통해 필요에 따라 건물의 외부와 내부, 시간과 장소, 실재(實在)와 이미지간의 경계가 가변하는 공간의 속성을 조명한다. 그리고 이번 전시의 주제이자 작품으로 작가가 지속적으로 고찰하고 의문점을 가져 온 바를 다음과 같이 관람객에게 시사한다.
우리는 우리가 인지하거나 기억하는 곳에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1) 구(舊)벨기에 영사관 역사는 “남서울미술관 건축아카이브 상설전시” 책자 신성란, 「백년의 베일을 벗고, 지금 여기로」,『미술관이 된 구(舊)벨기에 영사관』 (서울시립미술관, 2017)와 자료전반을 참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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