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bivalence
2017.10.20 ▶ 2017.12.06
2017.10.20 ▶ 2017.12.06
하태범
Ambivalence mixedmedia_200x400x250cm_2017
하태범
ambivalence painting_s-1_190x276mm_acrylic on photo_2017
하태범
연극무대_scene-1 187x246x52mm_mixedmedia-2017
믿게 만드는 것, 신뢰하게 만드는 것에 대한 불신
하태범의 13번째 개인전으로 펼쳐지는《Ambivalence 앰비벌런스(대립의 공존)》은 그간 일련의 「화이트」 시리즈 작업을 통해 선 보였던 내용과 또 다른 입장을 취한다. 그간의 그가 중요테제로 삼았던 화두가 우리를 둘러싼 미디어에서 쏟아지는 비윤리적, 비도적적, 반 휴머니즘적인 이미지에 방관자적 태도를 적나리하게 비판했다면, 이번《Ambivalence(대립의 공존)》에서는 화이트로 탈색하면서 관객의 방관적 태도를 바라보게 하기 보다는, 미디어 세계 수용자가 느끼는 양가적 심리를 그대로 마주하게 하는 태도를 취한다. 이는 실재와 가상, 가짜와 진짜 정보, 수용자의 고착화된 고정관념에 의한 분석 등 관람자들의 단계적 수용이 뒤따른다. 실재와 가상의 이분법적 구분은 가상현실 이미지 분석에서나 가능했다. 또한 실재와는 다르게 실시간으로 변하는 이미지는 그 이미지 자체가 된다. 이때 시뮬라크르가 지배한다. (심혜련, 『20세기 매체철학』, 그린비, 2013, p. 193)
실재에 비해 언제나 이차적 자리를 점유했던 이미지들이 이제 실재를 감추거나 변질시키고 실재와 무관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면서 이러한 사실을 감추기도 한다. 또 때로는 실재보다 더 실재처럼 자신을 드러내기도 한다. (같은책, P. 193)
오늘날 가상과 실재를 구별하거나 병합시키는 가상현실의 논의를 넘어 증강현실에 이르고 있다. 증강현실 이미지에서 현실을 증강하게 하는 경험은 슬라보예 지젝이 예견한대로 '실재로의 귀환'에 대한 문제이다. 그는 가상과 실재의 변증법이 단순하게 풀릴 수 없음을 지적하며, 일상적 삶이 가상화되고 우리가 사는 세계가 점점 인공적으로 구성된 장소가 되어가는 것에 대한 경험에 직면할 때 우리는 '실재로의 귀환'이라는 억누를 수 없는 충동, 어떤 '실재 현실'에 대해 굳건히 뿌리를 내리고자 한다는 충동을 느낀다는 지적이다. (슬라보예 지젝,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현우, 김희진 옮김, 자음과 모음, 2002, p. 33)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에서 논의되는 이미지의 문제는 곧 우리에게 실재와 가상의 문제에 대한 이중적 시선을 어떠한 논의와 상황에 따라 구별될 수 있는지 식별하게 해주었다. 하지만 최근 미디어의 범람의 소비문화는 단지 정보로서 기능하는 양적 측면을 넘어서 있으며, 가상과 실재에 대한 논의를 변주시켜 내고 있다. 이는 결국 사실이 아닐 수도 있는 사실인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s)'과 가짜(페이크) 이지만 사실처럼 수용되는 '파라픽션(Para-fiction)'이 그 예이다. 그간 미디어를 두고 제작해 낸 화두는 실재를 전복하고 또 다시 실재보다 더 실재처럼 보이게 하려는 문제에 중점을 두었다면 대안적 사실과 파라픽션에서는 실재라는 기반 자체가 흔들린다. 애초부터 가짜였던 가상적 내용들이 어떻게 실재 혹은 사실이 되어가는 가에 집중한다. 하지만 여기는 생산자의 입장에서 활용된 가짜의 정보만이 입수되지 않는다. 가령, 가상의 내러티브가 짜여지지만 여기에 실재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적 정보들이 동시에 교차되어 교란되기도 한다.
가짜정보, 진짜 풍경, 왜곡된 선입견, 가짜 배우, 진짜 사람, 인터넷에 떠다니는 가상의 이미지, 범람된 이미지 속에서 편집된 시선 등의 사실과 가짜의 교란으로 완성된 최종 결과물을 소비하는 관객은 이 모든 것을 순차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고착화된 선입견으로 일차적으로 이미지를 해석하고 이후 순차적으로 사실에 접근해 나가는 과정에서 사실과 가짜의 정보를 분별하는 이미지 수용단계를 거친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하루」 설치 작은 작가가 그간 미디어 이미지를 수집하는 이유와 방식, 그리고 이를 소비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극대화 시켰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사회적 규범, 미디어의 프레임, 사회적 분위기, 국가성으로 구별 짓는 관점에서 벗어나 인간 본연의 본질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 줄 곧 다양한 매체의 사건을 통해 작가가 드러내고자 하는 지점일 것이다. 그리고 점진적으로 이러한 요소는 작가의 작업에 있어 주요 테제로 작동할 것이다.
그리고 관객은 파라픽션을 소비하는 과정과 같이 이미지와 사건을 둘러싼 진짜와 가짜 정보에 대한 선별적 분석과 동시에 여러 비판, 통합과정을 통해 작업 결과물을 소비하게 하는 것이 이번 전시 Ambivalence 앰비벌런스(대립의 공존)의 최종 목적이 될 것이다. ■ 이은주
지금까지 사진, 영상 그리고 설치 등의 작업을 통해 미디어의 범람과 소비에 대한 비판적인 작업을 탈색의 의미로 흰색의 이미지를 재생산하는 작업을 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지금까지 작업의 같은 선상에 있으나 탈색의 이미지가 아닌 상반된 이미지의 복합을 설치를 통해 보여줌으로 관객이 직접적으로 한 공간에서 중첩되어 버린 여러 상황을 바라보게 하고자 한다.
Ambivalence는 양면성에 대한 의미로 서로 대립되는 감정이 공존하는 심리적 상태를 말한다. 보통 상반된 감정이 동시에 발현되는 경우를 말하지만 하나의 대상을 반대되는 견해로 바라보는 것도 포함 시킬 수 있겠다. 이에 선입견 또한 작용의 원인 중 하나로 볼 수 있는데, 우리가 평소 가지고 있는 편견과 고정관념에 의해 대상은 해석되고 평가된다.
'아프리카'는 '빈곤의 아이콘'으로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으며 흑인아이는 구호단체나 난민기구의 홍보 매체의 대표 이미지로 사용된다. 근래 시리아 사태나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테러'로 인하여 아랍인은 테러의 상징으로 인식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일상의 모습과, 난민과 전쟁의 상반되지만 익숙한 이미지를 중첩과 교차된 레이어를 통해 우리의 시각에 혼란을 주거나 배경을 삭제하여 대상에 대한 관점의 변화를 주고자 했다. 또한 이런 현상의 원인을 미디어를 통해 필터링 되는 과정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연극무대 (혹은 영화 세트장)' 의 구조를 차용하는 일련의 'scene' 작업을 선보인다. ■ 하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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