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열
무제 Untitled 1977, 혼합매체 Mixed media, 130x130cm
오세열
무제 Untitled 1984, 혼합매체 Mixed media, 100x100cm
오세열
무제 Untitled 1991, 혼합매체 Mixed media, 73x91cm
오세열
무제 Untitled 1998, 혼합매체 Mixed media, 121x45cm
오세열
무제 Untitled 2008, 혼합매체 Mixed media, 27.2x81cm
오세열
무제 Untitled 1992, 혼합매체 Mixed media, 74x56cm
오세열
무제 Untitled 2017, 혼합매체 Mixed media, 130x97cm
오세열
무제 Untitled 1992, 혼합매체 Mixed media, 38x45.5cm
오세열
무제 Untitled 1990, 혼합매체 Mixed media, 68x48cm
오세열
무제 Untitled 2017, 혼합매체 Mixed media, 116x91cm
오세열
무제 Untitled 2017, 혼합매체 Mixed media, 80x130cm
오세열
무제 Untitled 1996, 혼합매체 Mixed media, 18x18cm
오세열
무제 Untitled 2013, 혼합매체 Mixed media, 14x12cm
오세열
무제 Untitled 2017, 혼합매체 Mixed media, 89x102cm
오세열
무제 Untitled 2017, 혼합매체 Mixed media, 130x162cm
오세열
전시전경
오세열
전시전경
기호, 오브제, 인물의 반(半)추상 – 오세열의 독특한 작품세계
70~80년대 역동적인 사회의 변화를 겪으며 작가들은 저마다 그에 대응하는 방법을 탐구했다. 오세열의 경우,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세계에 오롯이 집중하는 길을 택했다. 추상도 구상도 아닌 반추상적 화면을 고수하며 자신만의 조형을 구사했다. 오세열 그림의 대표적인 소재로 기호, 오브제, 인물을 꼽을 수 있다. 그의 화면 위에는 숫자나 도형 등의 기호적 형상과 단추, 장난감 같은 일상적인 오브제, 그리고 인물의 형상들이 주로 등장한다. 오세열은 구상적 요소와 추상적 요소가 적당한 비율로 균형을 이루도록 조율하며 독창적인 화면을 구성해 나간다. 인물 형상이 뚜렷해질수록 배경은 단순화되어 뒤로 밀려나며, 기호와 오브제들이 주인공이 된 화면 위에는 인물이 등장하지 않기도 한다.
학고재는 지난 2월 개최한 오세열의 대규모 개인전에 이어 그의 인물 그림들만을 집중적으로 선보이는 자리를 마련했다. 상하이 전시까지 고려하면 이번이 오세열이 학고재에서 가지는 세 번째 개인전이다. 오세열은 최근 아트바젤 홍콩, 키아프 등 국제적인 아트페어 및 크리스티 홍콩, K옥션 등 미술 경매 시장에서 컬렉터들의 큰 관심을 받으며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해외 시장에서 한국 현대미술의 인기가 단색화에 편향되어 있는 작금의 상황을 고려할 때, 오세열의 작품이 누리고 있는 국제적인 인기는 주목할 만한 일이다. 한국 미술에 대한 국제 사회의 관심을 장기적인 것으로 끌고 가기 위해서는 국내 작가들에 대한 꾸준한 탐색과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 고유의 미술사적, 문화적 맥락을 고려해 의미 있는 작가들을 재조명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상의 본질적 순수를 바라보는 ‘무구한 눈’
오세열은 대학 시절 가장 존경한 예술가로 파울 클레(Paul Klee, 1879~1940)를 꼽는다. 지난 2월 학고재에서 연 개인전에 출품한 유화 작품 <무제>(1967~8)에 클레의 화집을 그려 넣기도 했다. 파울 클레를 포함해 피카소, 뒤뷔페 등 20세기 미술사의 거장들은 ‘아동화로 돌아가라’는 표어를 유행시키며 유년으로의 회귀를 주장했던 바 있다. 선입견을 떨치고 순수한 시선으로 대상의 본질을 파악하자는 의도였다.
오세열의 인물 그림은 아동화를 연상케 한다. 틀에 얽매이지 않은 의외성과 신선미가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는 유년기의 어렴풋한 기억에 기반하여 직관적으로 화면을 구성한다. 화면 위에 어린아이 같은 낙서와 이미지들을 새겨내거나 의도적으로 서툴게 그린 인물들을 배치한다. 오세열의 화폭 위에서 숫자와 형태들은 본래의 의미를 떠나 이미지 그 자체가 된다. 오세열은 어린아이와 같은 ‘무구한 눈’을 획득하는 일을 통해 스스로의 의식 속에 잠재해 있는 본능과 무의식을 찾고자 한다. 대상의 본질적 순수를 바라보고 탐구하려는 노력이다.
현실의 불행과 아픔을 치유하는 예술
오세열은 예술을 매개로 현실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문명의 급속한 발달로 인한 인간의 불행한 모습을 표현해보려 했다. 너무 물질적인 것에만 매달리다 보니 정신적인 것이 소멸해가는 현실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오세열은 한국전쟁 이후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후기 산업사회를 살아낸 세대의 사람이다. 그는 성장을 위해 치열한 경쟁 속에 살며 욕심에 물든 사람들에게 안타까움을 느꼈다. 불행한 인간의 모습을 화폭으로 끌어와 표현하는 일을 통해 역설적으로 치유의 메시지를 던지고자 했다.
오세열은 자신이 그리는 불완전한 모습의 인물을 ‘백치와 같은 사람’이라 일컫는다. 정신적인 것이 소멸해버린 상태의 불행한 인물들이다. 이들은 팔이나 다리가 하나씩 없는 불완전한 모습을 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화면 위에 뻣뻣하게 누워 있다. 오세열은 이 인물들에 정신적으로 빈곤하고 불행한 현대인을 투영해 본다. 물질적 풍요가 정신적 풍요로 연결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의 반영이다. 오세열은 인물들 주위로 단추, 장난감 따위의 천진한 오브제를 늘어놓거나 숫자나 드로잉 따위의 낙서 같은 기호들을 새긴다. 작업 과정을 통해 상처 입은 인물들을 따뜻하게 포용하고 감싸 안고자 하는 마음을 표현하려는 의도다.
‘무구’한 눈
김복기(아트인컬처 대표. 경기대 교수)
1.
오세열이 인물 그림만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개인전을 연다. 이번 전시는 1970년대 초반부터 최근까지 시대별 대표작을 망라한다. 일종의 ‘인물화 회고전’이라는 의미를 부여해도 좋을 것이다. 그는 인물 이외에도 여러 부류의 모티프를 다루고 있다. 첫째는 꽃, 풀, 나무, 과일, 채소 같은 자연 소재다. 둘째는 자동차, 배, 자전거, 선풍기 같은 문명의 이기(利器)나 모자, 넥타이, 안경, 단추, 장난감, 우산 같은 소소한 생활소품이나 액세서리다. 셋째는 아라비아 숫자, 원이나 사각, 소용돌이 같은 추상적인 형상이다.
오세열은 이 다채로운 세상사의 모티프를 거의 무작위로 낙서하듯 화면에 펼쳐놓는다. 여기에다 작가가 화면 바탕(지지체)에 치밀하게 일구어놓은 물감층에서 미묘한 마티에르의 잔치가 펼쳐진다. 사물의 본래 크기는 서로 어긋나 있으며, 따라서 원근 같은 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어린아이 같은 ‘무구(無垢, innocent)의 시선’이 화면을 지배하고 있다. 그리하여 자연과 인공과 추상적 형상의 모티프가 각각 독자적인 등가(等價)의 기호처럼 화면에 자리를 틀고 있다. 결국, 모티프 제 각각이 화면의 주인공이어서, 이 주인공들끼리 동시다발로 연쇄적인 이야기를 촘촘히 엮어낸다. 바로 이 이야기 저장고로의 여행 혹은 ‘기억의 자적(自適)’이 오세열 그림의 핵심이다.
2.
오세열의 인물 그림은 다른 모티프를 그릴 때와는 조형 문법이 좀 다르다. 대체로 인물을 화면에 가득 채워 단독 주인공으로 부각시키는 수법을 쓰고 있다. 나이나 성별마저 모호한 그 인물상은 다른 어떤 모티프보다 크게 그린다. 상대적으로 인물의 배경은 단순화되고, 다른 모티프의 노출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인물을 모티프로 삼는 이상,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문제나 심리적 노림수 같은 알레고리에 더 치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오세열이 걸어온 인물 그림의 이력을 돌이켜보면, 그 안에서도 지속과 변혁의 조형 의지를 읽어낼 수 있다.
오세열의 1970년대는 구상전(具象展) 공모전의 금상 수상으로 대변되는 시대였다. 이 시기에는 재현적(representative) 구상에서 벗어나 ‘반(半)추상’에 가까운 작품에 몰두했다. 화면은 만고(萬古)를 거쳐 퇴색된 벽화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형상을 왜곡, 해체, 재구성해 그 내용을 대단히 암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럼에도 저 시간의 지층에서 아련히 피어오르는 설화적 목가적(牧歌的) 풍경에는 인물 형상들이 어른거린다. 말이나 소와 함께 산야를 뒹구는 인물상은 소박하고 평화로운 시골 분위기를 한껏 자아내고 있다. 이러한 목가적 서정성이야말로 오세열 작품의 저변에 꾸준히 흐르고 있는 시적 정감에 다름 아니다.
이후 1980년대에 이르면, 칠판에 백묵으로 낙서하듯이, 벽면을 긁어내듯이 거친 인물상을 그려냈다.(조야한 표현의 기괴한 인물상은 뒤뷔페(Jean Dubuffet)의 ‘아르 브뤼(Art Brut)’와 같은 과격한 작품에 버금간다.) 오세열의 이력 중에서 가장 표현적인 감성이 두드러졌던 시기다. 가공되지 않은 야생 혹은 본원으로의 육박! 화면과 마주하고 있는 화가의 몸의 흔적, 거친 호흡과 체온이 생생하게 전해지는 작품이다. 무거운 회색이나 차가운 푸른색 배경에 유령처럼 우뚝 서 있는 절규의 인간상은 1980년대라는 암울했던 이 땅의 시대상과도 자연스럽게 겹친다.
1990년대부터 오세열의 인물상은 한결 부드러워진다. 형태가 훨씬 더 간결해지고, 다른 모티프와 달리 화려한 색채를 도입한다. 화면에는 인물상이 주인공으로 오롯이 부각된다. 그럼에도 주인공인 인물상은 결코 온전한 자태가 아니다. 팔과 다리는 대체로 몸통에 달싹 붙어 있다. 얼굴과 사지(四肢)는 상식적인 조망에서 벗어나 있다. 입체파 화가들의 시선처럼 신체 부위마다 전망이 따로따로다. 얼굴은 왼쪽, 팔은 정면, 다리는 오른쪽으로 향해 있다. 얼굴 또한 최소한의 조형만으로 표현되어 있다. 고작 정면을 바라보는 눈 하나 덩그러니 그려놓았는데, 버젓이 사람 구실을 하고 있다. 최근작은 인물이 가로누워 있는가 하면, 허공을 날아가듯 혹은 물고기처럼 유영하듯 변화된 동세를 보이고 있고, 군상이 등장하는 등 보다 다양한 복선을 깔고 있다.
멍한 듯 표정 없는 얼굴, 큰 동작 없이 움츠린 신체! 오세열의 인물 그림은 기술적으로 미숙한 듯 보이지만, 틀에 얽매이지 않는 의외성과 신선미로 우리들 마음을 붙잡는다. 가공하지 않은, 날 것의, 자연 그대로의 조형에서 독창적인 매력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하여 오세열의 인물 그림은 지식, 문화, 교양, 취미에 길들어 있는 우리의 눈을 본능과 무의식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인간의 본능과 무의식의 세계는 유년시절에 누릴 수 있는 특권이기도 하다. 유년기란 개인의 역사에 있어서 원점이요 시원(arche)이다. 돌이켜보면, 20세기 미술사에서도 유년으로의 회귀, 이른바 ‘아동화로 돌아가라!’라는 표어가 예술가들 사이에서 일대 유행했던 시절이 있다. 이 계열로 피카소, 클레, 뒤뷔페 같은 거장들을 호명할 수 있다. 오세열의 예술도 아동화 같은 무구의 세계와 맞닿아 있다. 선입견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직접 사물의 실상을 포착하는 일. 무구한 눈은 ‘마음 그대로의 예술’을 낳는다.
3.
그러나, ‘무구한 눈’의 해석이 여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곰브리치(Ernst Gombrich)가 “무구한 눈은 신화에 불과하다”고 말했듯이, 모든 지각은 많든 적든 이미 코드(code)화되어 있다. 무구한 눈은 단순히 유년시절로의 회귀로 ‘회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선으로 ‘획득’해야 하는 것이다. 예술가란 과거와 시원으로 ‘퇴행’하는 재능보다 미래와 종말로 ‘전진’하는 재능을 가진 존재다. 따라서, 현대예술에서 ‘무구한 눈’은 마땅히 어린이의 눈이라는 좁은 틀을 뛰어넘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타니가와 아츠시(谷川渥) 같은 미학자는 ‘무구한 눈’을 베르그송(Henri Bergson)의 ‘순수지각’, 후설(Edmund Husserl)의 ‘판단정지’, 쉬클로프스키(Viktor Shklovsky)의 ‘낯설게 하기’, 브레히트(Bertolt Brecht)의 ‘거리 두기’ 등과 같은 개념의 흐름으로 파악하는 흥미로운 논점을 제시하고 있다. 경험을 제쳐두고 순수지각만으로 인식하기, 선(先)판단을 중시시키고 보이는 그대로 표현하기, 일상의 것을 다른 결합의 규칙으로 드러내기, 친숙한 현실의 주변을 생소하게 하기. 바로 이 지점에서, 오세열의 예술은 아동화나 기억의 층위를 뛰어넘는 새로운 해석의 길이 활짝 열린다. ‘무구한 눈’은 결국 상투화된 인식의 코드를 파괴함으로써 정당한 힘을 얻는 것이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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