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 사진전: 감자꽃
2017.12.05 ▶ 2017.12.17
2017.12.05 ▶ 2017.12.17
김지연
감자꽃, 전북진안 2012
김지연
근대화상회 연작 중. 전북 진안 2009
김지연
나는 이발소에 간다 연작 중. 전북 김제 2004
김지연
낡은방 연작 중. 전북 진안 2010
김지연
놓다보다 연작, 창포. 전주 2014
김지연
묏동 연작 중. 제주도 2005
김지연
삼천원의 식사 연작, 백양국수1단 5,000원 2014
김지연
정미소 연작 중에서 전북 진안 2002
정미소 앞에서 걸음을 멈춘 사진가
김영춘 시인
그가 나이 오십이 되어서 시작한 첫번째 사진작업은 이 땅의 정미소를 찍어 가는 일이었다. 서로 크게 다를 것도, 두드러지게 아름다울 것도 없는 정미소를 찾아 저무는 시간을 보낸 그의 삶은, 그냥 살아가는 사람의 눈으로는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일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도 그는 사진을 찍는 것만으로는 모자랐던지 진안 계남마을의 정미소를 사들여 한 작가의 활동 공간으로 삼고, 쌀을 찧는 방앗간 시설을 그대로 살려 놓은, 그야말로 쌀겨 냄새가 풍풍 풍기는 전시공간을 열게 된다.
「계남마을 사람들」 「마이산으로 가다」 「작촌 조병희 선생님을 기리며」 「진안골 졸업사진첩」 「시어머니 보따리를 펼치며」 「잃어버린 장날의 축제」 「용담댐, 그리고 10년의 세월」 「전라북도 근대학교 100년사」 「계남 마을 사람들의 삶과 흔적」 「할아버지는 베테랑」 등이 바로 이곳 계남정미소에서 기획·전시된 작품들이다. 굳이 그때의 전시 제목을 기억하여 길게 늘어놓는 이유는 몰락하는 정미소와 천신만고의 사랑에 빠져 살아가게 될 한 사진가의 꿈과 고집이 이들 제목 안에 오롯이 담겨 있어서이다. 곧 사라지게 될 지역과 마을의 공동체가 이루어낸 삶의 정수를 문화니 예술이니 하는 말에 기대지 않고서 사람들에게 다가가 전하고 싶었던 늦깎이 사진가.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만날 때 ‘정미소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싶어 하는 것이리라.
내가 전주 서학동사진관에 들러서 헐벗은 들판에 홀로 서있는 정미소 사진과 처음 만나던 날, 세상에는 이렇게 ‘꾸밈없이 쓰러져 가는 사진’도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난 가슴이 떨려 왔다. 좋은 시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차원 높은 은유와 상징이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는 듯이 내 앞에 서 있었기 때문 이다.
그의 글 「비봉정미소」에서 그는 ‘나락을 거침없이 삼키고 흰 폭포처럼 위용있게 쌀을 뿜어내는 정미소는 어린 나에게 정말 대단한 존재로 다가왔다’고 정미소와 처음 대면하던 순간을 고백하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 그러했듯이 정미소는 어린 시절 그에게도 행복을 결정하는 풍요의 공간으로 다가왔음이 확실하다. 풍요와 소망의 상징이던 쌀이 수탈과 착취의 아픔이었던 쌀로. 노동과 공동체의 기쁨이었던 쌀이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끊어진 늙은이들만의 쌀로 무너져 왔다. ‘꾸밈없이 쓰러져 가는 정미소’의 사진 한 장 한 장은 우리들에게 다가와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보여 주고 간다. 그러나 농경시대의 풍요를 배경으로 한 소멸의 쓸쓸함이나 옛것에 대한 그리움만을 읽고서 그의 사진을 덮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꼭 남기고 싶다. 그가 이루어낸 천신만고의 정미소 사랑에는 ‘근대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아프고 소중한 역사적 시간’이 동시대 우리의 삶과 함께 웅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시간의 아픔과 그 아픔의 소중함을 함께 읽어낼 때, 비로소 우리는 그가 찍어낸 정미소 사진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행운을 얻을 수 있으리라.
「정미소」 작업 이후에도 그는 여전히 사람의 가슴 같은 곳에나 넣어 둘 만한 좋은 사진을 숨 가쁘게 생산해 내는데, 「나는 이발소에 간다」 「묏동」 「이장님은 출근 중」 「근대화상회」 「낡은 방」 「삼천 원의 식사」 「빈방에 서다」 등이 바로 그것이 다. 만약에 내가 그의 사진을 재료로 해서 집 한 채를 지어야 하는 목수였다면 ‘낡은 방’에서 ‘빈방’으로 이어지는 시간의 마당 안에 ‘근대화상회’와 ‘이발소’로 기둥을 세우고 ‘정미소’로 큰방을 만들고 ‘묏동’과 ‘이장님’과 ‘삼천 원의 식사’로 바람이 드나들 수 있도록 창문을 내는 그런 집을 지었을 것이다.
그의 작품의 뿌리이자 철학의 기둥이었을 정미소야 큰방에 들어앉혔으니 더 말할 것도 없지만 나는 이 중에서도 특히 마당으로 쓸 ‘낡은 방’과 ‘빈방에 서다’를 주목하고 사랑한다. 늙은 부모만 농촌에 홀로 남겨지는 ‘낡은 방’의 근대라고 하는 시간이 도시 변두리를 전전하다가 결국은 쫓겨나고 마는 ‘빈방’ 즉 오늘날의 시간에 이를 때 정미소를 포함한 그의 모든 작품이 응시한 세계는 ‘근대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아프고 또 아프고 심지어는 소중하기까지 한 우리들의 시간’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식들이 떠나간 방에 걸려 있는 가족사진 아래 바람벽처럼 휘어진 허리로 앉아 등을 보이고 있는 늙은 어머니. 전화기가 벽에 긴 줄을 매달고 누군가의 목소리를 기다리는 동안 열린 뒷문으로 비치는 장독대의 풀빛은 눈물겹게 새롭고 평화롭기 조차 하다. 이 사진이 바로 ‘낡은 방’이다. 우리가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나가 근대를 넘어 현대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바로그 시간의 고향 집 모습이다. 도시 외곽에서 가난한 이로 살아 가다가 도시정화나 아파트개발의 대상이 되어 쫓기다시피 흩어진 사람들의 집은 지금 비어 있으므로 ‘빈방’이고, 그는 카메라를 들고 그 방에 서 있으므로 ‘빈방에 서다’이다. 황해도에서 피난 내려와 그 세월을 떠돌고도 모자라 또 떠나가야 할 것이므로 빈집의 간판은 ‘황해 디젤’이며 대책 없이 쫓겨나고 밀려 나면서도 벽에 ‘꽃무늬 양산’을 단정히 걸어 둔 그 시간은 우리가 현대라고 부르는 문명의 시간이다. 이런 점에서 ‘낡은 방’과 ‘빈방’을 나란히 배치하여 한 장씩 넘겨 읽게 하는 사진집 『빈 방에 서다』는 그동안 그가 쏟아낸 모든 작품을 한 곳으로 아우르는 시간적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다.
올봄에 서학동사진관에서는 ‘꽃시절’이라는 그의 기획전이 있었는데 피어나는 봄을 배경으로 허옇게 늙어 가는 할머니들의 처녀 시절 모습을 사진과 인터뷰 동영상으로 접할 수 있었다. 그건 떠나간 청춘을 다시 살려낸 것이다. 사람들은 꽃다운 젊음이나 진정한 인생 같은 관념을 갑자기 받아들이느라 울렁울렁하는 눈치였다. 그날 나 또한 눈빛이 촉촉해진 사람들로 부산해진 사진관의 앞마당을 서성대며 ‘아름다운 소멸’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소멸의 길로 나아갈 것이므로 그것은 필연적으로 쓸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그의 카메라는 소멸의 길로 나아가는 대상을 골라 끊임없이 뒤쫓아 왔다.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그를 이 쓸쓸한 길에 스며들어 소멸의 시간을 사랑하게 하고 걸어가게 했을까.
그의 글 ‘비봉정미소’에서 그 대답을 찾아본다.
‘생활 방식과 함께 식단과 먹거리까지 바뀌어 버린 시대에 정미소가 몰락하는 이유를 굳이 찾아가야 하는 늙은 세대의 궁색함이 젊은이들에게는 어쩌면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정미소 따위가 없어진들 무슨 대수라고! 하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미소는 쌀의 역사이며 쌀은 대지를 의미 했고 이 땅의 대지는 곧 질곡의 우리 근대 역사를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근대와 현대의 얼굴로 우리에게 다가온 정미소의 쇠락은 모든 존재하는 것들이 거쳐 가야 하는 생성과 소멸, 흥망성쇠의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라져 간 공동체문화의 몰락을 의미한다. 그 공동체는 생명을 심고 아우르는 일에 지극함을 다했으며, 개인 자본주의적 이기주의가 도저히 넘볼 수 없는 덕목이기도 하다.’ 그렇다. 그의 사진은 우리의 욕망을 구체화하는 근대로부터 시작하여 그것이 정점으로 치닫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루 어진 공동체의 쇠락과 소멸을 기록해 온 작업이었다고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들의 오늘은 이루어낸 것이 아니라 해치워 버린 산업화의 시간이었으므로, 자본으로 가장한 문명의 이름 아래 공동체는 어디서든 쫓겨나고 부서져 나갔다. 생명을 귀하게 알고 기르는 일에 지극함을 다하는 일이 공동체의 알맹이라고 한다면 결국 우리는 생명에 대한 지극한 경지가 소멸하는 순간을 그의 사진을 통해 만나고 있다 하겠다.
그가 이번에 펴내는 사진 에세이는, 생명에 대한 지극한 경지가 소멸하는 사진을 찍는 일생을 살아왔으나 사진만으로는 미처 전달할 수 없었던 한 사진가의 고뇌와 성찰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일생 동안 해 온 작업 중에서 작가가 직접 선별한 사진을 골라 산문과 결합하는 그런 구조를 취한다. 사진의 이면에 숨어 있던 사연과 작가의 생각은 산문의 형식을 빌려 표현되고 있지만, 그의 인생에 대한 자유로운 사유는 통념의 경계를 뛰어넘어 오가며 읽는 이로 하여금 시적 흥취마저 뿜어내게 한다. 발문을 쓰기 위해 원고를 읽어 가는 동안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젊은 날에 만났다면 ‘이제 사진 그만하고 글이나 쓰자’고 말하는 결례를 저지를 뻔했다는 생각을 하며 혼자 웃어 보기도 했다.
정말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대상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느끼며 살아온 일생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을 숨기지 않고 있는 대로 드러내는 환한 글이기도 했다. 문장 마다 넘쳐나는 한 사진가의 예술적 열정은, ‘아하 이 정도의 뜨거움이라서 우리 시대 공동체의 쇠락과 소멸을 기록하는 역할을 감당할 수 있었겠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감자 꽃’에 등장하는 한 분 한 분의 주인공은 쇠락의 시간을 배경으로 살아온 사람들이기에 민중이라고 불러도 괜찮을 것 같다.
독자들에게, 글을 읽어 가는 동안 작가가 그들의 삶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며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를 눈여겨보기를 권하고 싶다. 그에게 있어서 민중이란 계급을 넘어서서 존재 하는 독특한 미적 대상이자 자신의 세계관을 전달하는 대리인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올해 들어서 일흔을 맞았다고 한다. 삶에 대한 태도나 사진에 대한 열정이나 심지어는 어쭙잖은 인간의 일을 조금치도 용서하지 않고 쏘아붙이는 목소리를 생각해 보면 정말 인정해 주고 싶지 않은 나이가 분명하다. 그래도 어찌하랴. 일흔에 사진집이 아닌 책을 처음 묶었다 하니 나도 모르게 숙연한 마음이 들고 만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가을이 한 사진가의인생을 따라다니며 영원처럼 빛나길 바란다.
■ 2017. 09
오십에 사진을 시작했고 일흔에 이 책을 묶는다.
늙어서 무엇을 힘겹게 한다는 것이 억지 같기도 하다.
젊은 시절에는 산다는 것이 고통인 적이 있었다.
내 존재 자체가 불만이었고 세상이 모순투성이라고 생각했다.
사십을 넘으면서 ‘아, 이제는 돌이킬 수 없이 실패한 인생이 구나!’ 하고 절망했다.
오십에 사진을 시작하면서 부끄러웠다. 쓸데없는 일 같아서.
그래도 이십여 년간 해 온 사진은 내가 한일 중 잘한 일이었음을 고백한다.
세상에 대해서 던지고 싶은 질문과 답변을 내 방식으로 조금이나마 풀어 갈 수 있었다.
그러면서 생긴 여백을 글로 적어 보았다.
그것은 사진으로다 표현할 수 없었던 이야기가 아니라
젊은 날부터 내 길로 삼고 싶었던 글에 대한 미련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느새 다가온 일흔의 삶에 몇 줄의 글을 더하는 일이
조금 쑥스러운 마음이 든다.
■ 2017년 10월 김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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