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의 경계 속 시간의 존재
2017.11.28 ▶ 2017.12.15
2017.11.28 ▶ 2017.12.15
유중희
환영의 창-1 (window-1 of illusion) 30x30cm, Pencil Acrylic on Canvas, 2017
유중희
환영의 창 (window of illusion) 30x30cm, Pencil Acrylic on Canvas, 2017
유중희
환영의 창 (window of illusion) 116.5x80cm, Pencil Acrylic on Canvas, 2017
유중희
환영의 경계 (boundaries of illusion) 72.5x50cm, Pencil, Acrylic on Canvas, 2017
유중희
환영의 경계 (boundaries of illusion) 160x174cm, Pencil, Acrylic on Canvas, 2017
유중희
환영의 경계 (boundaries of illusion) 162x336cm, Pencil, Acrylic on Canvas, 2017
유중희
환영의 경계 (boundaries of illusion) 117.5x180cm, Pencil, Acrylic on Canvas, 2017
유중희
환영의 경계 (boundaries of illusion) 117.5x180cm, Pencil, Acrylic on Canvas, 2017
유중희-오래된 돌의 표면과 이면
오래 살아남은 것들은 유한한 존재에게 막막한 감동과 무한한 영감을 던져주기 마련이다. 모든 골동에 대한 기호와 옛것에 대한 애착은 그런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의 절임으로 인해 형성된, 형언하기 어려운 '땟물'이 안기는 먹먹함에서 기인한다. 그 시간의 흔적은 사물의 피부에 얹혀있다. 그러니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현존하는 피부는 세월과 시간의 거친 마찰을 견뎌낸 최후의 잔해들이다. 그 사연을 우리가 낱낱이 표현하기는 불가능하다. 그것은 모든 글과 이미지를 무력하게 한다. 오로지 그 시간을 견뎌낸 피부만이, 표면만이 생생한 얼굴로 '그것'을 방증할 수 있을 뿐이다. 보는 이들은 침묵 속에서, 상상력을 통해 사라진 것들을 경이롭게 재연하고자 한다.
유중희는 오래된 것들에 대한 개인적인 기호를 표명해왔다. 그것은 망실된 시간과 사라진 계절, 무수한 생의 이력을 지닌 것들만이 보여줄 수밖에 없는 놀라운 얼굴이자 피부들이다. 작가는 그런 얼굴과 피부를 찾았고 이를 재현하고자 했다. 시간의 압력에 의해 눌린 주름들과 격렬한 속도에 의해 마모된 상처들이 이룬 기이한 살들이 처연하게 더러는 기이하고 매혹적으로 부감되는 그런 풍경을 찾는다. 작가는 그 흔적을 돌의 피부에서 찾았다. 분명 오래된 물건들도 그와 한 쌍을 이루지만 돌 만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우선 '적당한' 돌이 소재로 선택되어야 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수많은 돌 중 어느 하나가 작가의 의해 임의적으로 선정되었는데 이는 전적으로 작가 개인의 감성과 직관에 의한 선택일 것이다. 당연히 이는 오래되었으며 돌다운 돌의 느낌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고 여겨지는 형태와 피부를 지닌 특정한 돌 일 것이다. 작가는 수석을 수집하고 완상하는 체험을 확장해 이를 다시 그림으로 재현하고 있다. 수석이란 산이 쪼개진 돌들이자 오랜 시간 비와 눈과 바람에 의해, 혹은 물에 의해 씻기고 깎이고 비벼진 자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매혹적인, 불가사의한 표정을 지닌 돌을 지칭할 것이다. 그런 멋진 돌을 애써 찾은 후에 이를 커다한 화면에 확대해 놓았다. 캔버스 표면의 틈을 막고 그 바탕처리를 견고하게 만드는 젯소 처리를 수십 번 반복한 후에 연필을 주재료로 해서 돌의 피부를 재현했다. 매끈한 질감으로 반짝이는 백색의 화면 그 어느 부위에 커다란 돌이 수평으로, 수직으로 자리하고 있다. 오로지 하나의 돌만이 단독으로 존재하는, 상당히 강력한 장면이다. 더구나 검은 돌이 지닌 견고한 물성과 피부위의 무수한 상처들, 주름과 굴곡들 역시 상당히 핍진해서 현실감이 무척 강하다. 동시에 이 사실적인 돌의 묘사는 다시 돌의 존재성과 물성, 질량감, 그리고 그 돌이 뿜어내는 미감을 보는 통찰의 가시화란 과제 속에서 좀더 깊이 있는 모종의 자리를 요구한다.
사실적인 재현술에 입각한 이 그림은 돌의 피부, 주름, 시간의 흔적을 기록한 문장을 따라 적는 일이다. 돌은 인간의 문자를 대신해서 자신의 피부에 자글자글한 상처를 새겨 자기 생의 이력을 빼곡히 채워 넣었다. 이 무형의 문자, 일종의 상형문자로 기록된 행간을 따라서 작가는 다시 그 돌이 살아온 내력을 복기하는 것이다. 따라서 유중희가 그린 돌은 돌의 사실적 묘사나 재현, 극사실적인 돌 그림인 동시에 사실은 그로부터 미끄러지면서 돌에 대한 자신의 성찰이랄까, 생각의 갈래를 이미지화하고자 한다. 세밀하게 그린 돌의 중간 부분을 느닷없이 과감하게 지우고 뭉개나간 흔적이 길게 자리한 부위가 바로 그런 장치다. 돌의 물질성의 일부를 순간 박탈하고 화면을 정지시킨 자취나 혹은 마치 컴퓨터영상이 렉에 걸려 돌연 멈춰지고 길게 늘어져 생긴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것이다. 그로인해 사실적인 돌과 흑연으로만 문질러져 이룬 추상적인 부위(돌을 지우고 탈각시킨 부분)가 공존하고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이 충돌한다. 그것은 구체적인 돌의 육체를 보면서 동시에 그 이면에 가려진 보이지 않던 돌의 내력을 상상하게 해주는 장치이자 통로가 된다. 이런 장치가 얼마나 효과적인지는 쉽게 가늠하기 어렵지만 작가는 돌을 통해 보고 느낀 여러 감정을 시각화하려는 시도를 재현과 그 재현을 지우고 삭제하는 작업을 통해 구현하고 있다. 여기서 연필/흑연의 색과 물성은 돌의 물성과 색감을 효과적으로 제시하는 도구로 작동하고 있고 그 재료의 속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아득한 시간의 궤적과 세월의 겹, 따라서 보이지만 결코 보여 지지 않는 부분을 어떻게 감지시킬 수 있는가의 시각적 효과 아래 조율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에 따라 즉물적으로 자리한 돌에 대한 객관적인 관찰자 중심의 관점보다는 보이는 것 안에 숨겨진, 이면에 가려진 것들의 추출이랄까 혹은 존재하는 사물의 근원에 가닿는 시선을 추구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는 다분히 돌을 보는 동양의 전통적 시선에 맞닿아 있다고도 보여 진다. 옛사람들은 수석을 완상하면서 우주자연의 이치를 헤아리는가 하면 돌이 지닌 미덕을 인간 삶의 궁극적인 덕목으로 끌어안으며 살고자 했다. 돌 자체를 축소된 자연으로 상정했다. 그리고 돌이 지닌 진중함과 침묵, 장수와 부동의 자리에서 그 무엇인가를 살피고자 욕망했다는 얘기다. 돌에 투사된 인간의 인문적 해석이다. 그래서 괴석도 그리고 수석을 수집하고 이를 극진히 완상하면서 자신의 삶의 자리에 가까이 두었을 것이다. 유중희의 작업실에도 잘 생긴 몇 개의 돌들이 놓여있다. 그 검고 납작한 평원석들을 바라보다가 다시 그림 속의 돌들을 바라보았다. 축소된 자연이 내재되어 있고 사라진 시간을 힘껏 껴안은 돌의 메마르면서도 더없이 풍성한 육체를 보다가 그림 속의 돌이 현실 공간 안에 실재하고 저 실재하는 돌들이 그림 안으로 들어가 사라지기를 거듭하고 있음을 문득 깨닫고 있다. ■ 박영택
환영의 경계 속 시간의 존재 '환영의 경계' - 시간의 존재성을 드러내는 돌은 수천년 시간적 흐름의 감성을 우리에게 안겨준다. 이 돌은 나에게 진정한 사유를 촉발하게 만든다. 돌의 구성성분은 다 똑같고 그 생김새도 비슷하게 보일지 모르나 돌을 바라보는 시점(perspective)은 각기 다르기에 절대로 동일함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의 돌 안에서도 똑 같은 이미지를 보여주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사유하는 방식이 각기 다름과 같이 작업에 있어서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은 순수 차이 자체인 강도(intensite)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기억을 회상하고 현실을 만드는 일련의 사유가 돌의 표현에 있어서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이며 하나의 돌덩이가 둘 혹은 셋으로 나눠 차이를 드러내려 한 것과 창과 틈을 만들어내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 유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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