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재형 개인전: 십만 개의 머리카락
2017.12.14 ▶ 2018.01.28
2017.12.14 ▶ 2018.01.28
황재형
드러난 얼굴 2017년 1월, 캔버스에 머리카락, 162.2x130.3cm
황재형
볕바라기 2016, 캔버스에 머리카락, 130.3x162.2cm
황재형
하모니카 나고야(ハーモニカ なごや) 2017년 3월, 캔버스에 머리카락, 100x240cm
황재형
둔덕고개 2017년 9월, 캔버스에 머리카락, 128x259cm
황재형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 2017년 10월, 캔버스에 머리카락, 259x169.5cm
황재형
기다리는 사람들 II 2016, 캔버스에 머리카락, 97x162.2cm
황재형
원이 엄마 편지 2016년 6월, 캔버스에 머리카락, 짚신, 162.2x97cm
황재형
새벽에 홀로 깨어 II (세월호 어머니) 2017년 9월, 캔버스에 머리카락, 162.2x130.3cm
황재형
강주룡, 을밀대에 오르다 2017, 캔버스에 머리카락, 50x60.6cm
황재형
변매화 2017년 7월, 캔버스에 머리카락, 60.6x50cm
황재형
아직도 가야할 땅이 남아있는지 2013, 캔버스에 유채, 170x259.1cm
황재형
아직도 가야할 땅이 남아있는지 2016년 12월, 캔버스에 머리카락, 191.3x175.4cm
황재형
아직도 가야할 땅이 남아있는지 2016년 1월, 캔버스에 머리카락, 162.2x130.3cm
황재형
알혼섬(Ойхон) 2016, 캔버스에 흑연, 112.1x162.2cm
황재형
진여(眞如) 2017년 9월, 캔버스에 흑연, 162.1x227.3cm
황재형의 탐험
‘십만 개의 머리카락’
윤범모 (동국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
수묵화 전시장 같다. 그러나 뭔가 분위기가 다르다. 사실적인 표현 속의 인물과 자연, 예사스럽지 않다. 뭔가 빨려들게 하는 마력, 그게 뭘까. 작품 앞으로 가까이 가 본다. 경악! 한마디로 경악, 그 자체이다. 캔버스 위에 펼쳐진 그림은 수묵화도 아니고, 그렇다고 유화도 아니다. 머리카락! 머리카락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니, 이는 정말 놀라운 일이지 않을 수 없다. <십만 개의 머리카락>, 바로 황재형 신작 개인전의 이름이다. 십만 개의 머리카락이라니, 이 또한 놀라움의 현장이다. 화가는 기왕의 유화물감을 내려놓고 새로운 표현재료와 씨름했다. 표현재료의 확장이다. 가느다란 머리카락을 캔버스 위에 부착시키면서 형상을 일구어낸 역량과 의욕은 상찬의 대상이다. 현대미술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표현매체의 무한 확대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래도 그렇지, 물감 대신 머리카락을 선택했다! 세계 미술사에서 이런 선례가 있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황재형의 탐험, 놀라움의 현장이다.
황재형은 자신의 거주지인 태백의 미용실을 순례하면서 머리카락을 모았다. 그리고 커다란 캔버스 위에 머리카락을 펼쳐놓고 형상을 만들고 접착제로 고착시켰다. 이 과정에서 손은 망가졌고, 또 눈의 실핏줄이 터져 고통을 주었다. 신체를 희생하는 형식의 작업이다. 집요할 정도의 집중력 아래 섬세하고도 노동 강도가 높은 작업이다. 한마디로 유화작업보다 최소 3배 이상 힘든 작업이다. 달리 표현한다면, 유화 3점을 완성할 시간에 머리카락 그림 1점을 완성할 수 있다. 붓질 대신 머리카락을 선택한 멍에이다. 표현재료의 확장. 황재형은 이미 탄광촌에서 흙이라는 재료로 그림을 그린 바 있다. 물감이 없어 흙을 채취하여 ‘흙 그림’을 그렸다. 뒤에 흙을 이용한 그림이 유행하기도 했다. 황재형은 광산촌에서 살면서, 그러니까 가난한 마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작업을 하기도 했다. 싸구려 재료에 담긴 ‘현실’은 그만큼 생동감 있게 울림을 전달했다.
그래도 그렇지, 머리카락은 무엇인가. 일화 하나를 먼저 떠올려보자. 임산부가 첫 아이를 분만했다. 시어머니가 산모에게 미역국을 주었다. 그런데, 미역국 안에서 한 움큼의 머리카락이 나왔다. 시어머니의 폭력, 그렇다, 아무리 고부지간의 갈등이라 할지라도, 미역국 속의 머리카락은 상징성이 강하다. 외아들을 뺏긴(?) 어머니의 질투심은 머리카락으로 표출되었다. 한 줌의 머리카락은 지배와 예속의 상징이면서, 갈등의 징표였다. 황재형은 이런 이야기를 가슴에 새기면서, 머리카락이라는 재료를 주목했다. 머리카락은 바로 머리를 감싸고 있는 것, 즉 인체 가운데 가장 높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머리는 희로애락의 모든 과정을 관장하는 곳, 즉 영혼이 들어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 머리는 인간 이상의 현존체이다. 인간의 꿈은 머리를 통하여 구현되었다. 그래서 머리카락은 힘의 상징이기도 했다. 삼손과 데릴라의 이야기가 전하듯 머리카락은 힘의 상징이었다. 거기다 머리카락은 하나의 분신 역할을 하고, 또 사랑의 징표로 활용되기도 했다. 연인에게 자신의 머리카락을 보내는 행위의 의미를 염두에 둘 수 있다.
황재형은 ‘광부 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대학 졸업 이후 광산촌에서 살면서, 자신이 직접 광부노릇을 경험했고, 또 폐광이후에도 광산촌의 자연과 인물을 계속 그려 왔기 때문이다. 황재형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광부들의 모습을 캔버스에 담으면서 그들에 대해 미안한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노동자들과 함께 하면서, 저항도 하고, 또 그들을 작품에 담았지만, 양심의 가책은 버릴 수 없었단다. 이는 주체와 객체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번에 머리카락 작업으로 노동자의 머리카락으로 노동자의 모습을 작품에 담으니 어느 정도 위로가 되었단다. 즉 노동자의 꿈이 담겨 있는 머리카락으로 그들의 꿈을 작품에 담으니 힘이 더 생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머리카락으로 광부를 그리니 힘이 더 강력해졌다는 것. 작품 주제 이외 머리카락이라는 재료 자체가 힘을 이끄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머리카락은 죽은 것이지만 죽지 않고 살아있는 존재라는 것. 즉 세포가 살아 있고, 변치 않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황재형은 머리카락 자체의 힘을 믿고, 색채를 버리면서, 새로운 시도를 했다. 붓보다 머리카락은 그 자체가 자율적인 표현과 힘을 주었다.
일반적으로 머리카락은 강력한 상징성을 갖고 있다. 고대사회에서 머리카락은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다. 머리카락은 현대사회로 오면서 비중이 낮아졌고, 사실 대머리의 숫자도 늘고 있는 추세이다. 신체의 털은 사회 진화와 비례하면서 약화되기 시작했다. 사회발달의 역사는 털 제거의 역사와 같다. 이제 털이 많은 사람은 미개한 사람처럼 볼 정도로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되고 있다. 미래인간은 털이 없는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음이 이 점을 입증한다. 영화에 나오는 외계인 ET를 보면 몸에 털이 없다. 수족은 가늘면서 머리부분만 커져 있다. 털의 문화사는 그만큼 상징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리카락은 오늘도 사람의 머리 위에서 계속 자라고 있다. 두피의 머리카락은 평균 10만개 정도이고, 하루에 100개 정도가 빠지고 또 그만큼 새로 생긴다. 머리카락은 하루에 0.35mm 자라면서, 어깨에 도달하는데 약 2년이 걸리고, 허리까지(약80-90cm) 도달하려면 약 7년 정도 걸린다.
황재형의 머리카락 개인전 출품작을 살펴보자. 우선 <원이 엄마 편지>(2016)는 캔버스 위에 머리카락 뭉텅이와 짚신을 표현했다. 바탕에 한글편지가 있다. 원이 엄마는 누구인가. 1998년 경북 안동에서 이응태(1556-1586) 무덤이 발견된 바, 무덤 주인공의 부인이다. 발굴 당시의 무덤은 16세기 매장 당시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미라와 함께 나온 숱한 유품들, 그 곳에 미망인의 애절한 한글 간찰도 있었다. 물론 편지와 함께 부인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미투리도 시신의 머리맡에 놓여 있었다. 요절한 남편에게 보낸 사랑의 징표였다. 부인의 친필편지는 450년 뒤에 세계인의 가슴을 흔든 사랑이야기였다. 편지 내용은 이렇다.
“원이 아버지에게.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신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었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 수 없어요.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 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 주세요. 꿈속에서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써서 넣어 드립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해 주세요.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 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는 거지요?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겠습니까? 이런 슬픈 일이 하늘 아래 또 있겠습니까? 당신은 한갓 그곳에 가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한들 내 마음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 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 주시고 또 말해 주세요. 나는 꿈에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 주세요.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병술년 유월 초하룻날 아내가.”
황재형의 <원이 엄마 편지>는 애절한 사랑 편지와 더불어 머리카락이라는 재료를 주목하게 한다. 30살에 요절한 남편을 위해 편지와 더불어 무덤에 넣어준 머리카락 신발. 미망인은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신발을 만들었고, 이를 사랑의 징표로 무덤에 넣어준 것이다. 황재형의 작품은 편지 배경에 머리카락 뭉텅이로 집약 상징화했다. 머리카락의 의미를 새롭게 재인식하게 한다. <하모니카 나고야>는 일제의 자본수탈로 지은 사택 풍경이다. 마치 하모니카처럼 생긴 집이라고 그런 이름이 붙었다. 예전에 어떤 대통령은 이를 보고 ‘돼지우리’가 많다고 말하기도 했다. 황재형의 작품은 아무런 과장도 없고, 장식도 없다. 평범한 사택을 색깔도 없고 강조할 점도 없이 표현했다. 하지만 이 작품의 경우, 조형적 승리를 읽어낼 수 있을 만큼 시선을 압도하는 힘을 준다. 머리카락으로 흑백의 명암을 실감나게 표현하면서, 하모니카 같은 집들의 지붕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머리카락의 힘이 묻어나게 하는 작품이 아닌가 한다.
황재형의 첫 번째 머리카락 작품은 <볕바라기>(2016)였다. 내용은 갱도 앞에서 쉬고 있는 광부들의 모습을 담은 것이다. 사실 광부의 삶은 ‘막장 인생’이라는 말처럼 처절하다. 예측할 수 없는 사고를 안고 살기 때문이다. 갱 안에서 휘파람소리가 들릴 때가 있다. 이는 갱목이 뒤틀릴 때 나는 소리이다. 갱이 무너지기 때문에 빨리 피신해야 살아난다. 그런 갱 안에서 광부는 일 하고, 쉬고, 낮잠도 잔다. 그들은 말한다. 갱 안이 마치 엄마의 자궁 안처럼 편하다고. 광부라는 존재가 헝클어진 머리카락처럼 느껴지게도 한다. 노사관계 역시 그렇다. 허파가 돌처럼 굳어 죽는 규폐증을 안고 일해야 하는 광부들, 이들의 모습을 머리카락 작업에 담았다. 황재형의 머리카락 첫 번째 시도이다. 황재형은 자신의 유화작업처럼 머리카락으로 광산촌의 사람들을 화면에 담았다. 검은 동네의 풍경을 역시 검은 색 머리카락으로 표현하니 그 울림이 남달랐다. 기왕에 유화 대작으로 표현했던 광산촌의 인물을 머리카락으로 다시 시도하기도 했다. 광부초상인 <드러난 얼굴>의 경우, 유화와 머리카락의 표현상 특이점을 헤아리게 한다. 한마디로 머리카락으로 어떻게 한 인물의 외형적 특징과 내면세계까지 핍진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드러난 얼굴>의 광부는 시대적 억압, 그리고 자본과 조직에 예속된 삶의 얼굴을 머리카락으로 그 정서를 전달하려 시도한 작품이다. 이런 작품은 선탄부를 그린 <세 겹 하늘> 등 몇몇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인물의 경우, <강주룡, 을밀대에 오르다>는 평양 을밀대의 지붕 위에 올라가 시위하고 있는 모습을 담은 것이다. 일제치하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고발하면서 ‘인간 선언’을 하고 있는 장면이다. 작품은 지붕 위의 인물을 사실적으로 표현했고, 인물 옆에 검은 머리타래를 넣어 생동감을 주었다. <변매화>는 기생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독립운동에 앞장 선 여성의 모습을 담은 것이다. 머리카락으로 사회 정치적 에너지와 한을 표현하고자 했다. <새벽에 홀로 깨어>는 세월호 어머니를 그린 작품이다. 처절한 모습을 머리카락으로 대신하고자 했다.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는 조선 인조가 청나라 황제에게 항복하면서 치룬 의식의 주제 그림이다. 1636년 인조는 삼전도(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인근)에서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치욕적 의식을 치뤘다. 이런 굴욕의 역사를 황재형은 역사기록화처럼 표현하지 않고 부감법으로 깊은 산 능선으로 대신했다. 산맥의 굽어지고, 깎아내려지고, 거칠은 형상, 단절할 수 없는 우리 민족의 저력을 머리카락으로 표현했다. 흥미로운 점은 380년이라는 숫자이다. 고려 고종이 강화도에서 삼배구고하고 380년 뒤에 조선 인조가 다시 재연했다. 그로부터 380년이 흘러 오늘날이 되었다. 분단국가의 현실은 중국의 시진핑과 미국의 트럼프에 의해 굴욕적 외교상황이 재연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민족 현실을 황재형은 <삼배구고두>에 빗대 역사를 재조명했다.
흑연작품 <알혼섬>은 바이칼 호수의 섬을 그린 작품이다. 검은 색의 울림이 예사스럽지 않은 작품이다. 바이칼 호수는 2천5백만년 전 대륙이 나누어지기 전의 호수로 알려져 있다. 원시생명체의 보고로 알려졌듯 그곳 지층은 원시성을 지니고 있다. 시베리아의 진주라고 불릴 만하다. 바이칼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되었고, 깨끗하고, 깊고, 찬 물의 호수이다. 이런 바이칼과 우리 민족의 시원과 연결된다는 사실이 주목하게 한다. 황재형은 바이칼호수의 침묵을 물감으로 해결할 수 없어 흑연을 사용했다. 색은 인간의 감정을 드러내는 만큼 인위적인 특성이 있다. 바이칼의 침묵을 그리고자 화가 자신의 기질을 주저앉혀야 했다. 그래서 흑연을 사용하여 다시 반사시키는 효과를 살리고자 했다. 캔버스 바탕을 까맣게 하고 흑연을 칠하면 빛이 반사되고, 거기에 침묵이 스민다. <진여(眞如)>는 2-3시경의 새벽 물결을 그린 것이다. 그 시간의 새벽 물이 가장 맑으면서 생명수가 된다고 했다. 있는 그대로 그리기. 화가는 화가의 분별심을 삭제하고, 그러니까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리려 했다. 까망 속에 담긴 물의 침묵이 재조명되고 있다. 있는 그대로, 즉 참다운 진여를 표현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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