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귀환 地球歸還 Return to Earth
2018.02.08 ▶ 2018.02.23
2018.02.08 ▶ 2018.02.23
한계륜
뜻밖에 만난 번개 나무위에 도장, 프로젝션매핑. 2018
한계륜
에리스를 그리다 나무위에 도장, 투명아크릴, LED조명. 2018
한계륜
노랑이 다 빠져나간 스테들러 페인트, 나무, 천, LED조명, 폴리카보네이트, 등 혼합재료. (설치중 장면) 2018
한계륜
망망 애니메이션. 2018
한계륜
엑스X Eks X 나무 LED 폴리카보네이트_23×81×17cm_2018
한계륜
설치전경
594일전. 나는 에리스로 떠났다. 왜소행성 에리스 Dwarf-Planet Eris. 그 먼 곳까지 누가 찾아오랴 생각했기에, 뜻밖에 찾아와준 지인들이 반갑고 고마웠다. 그러나 자기분석장치 Self-Analysis를 들고 간 나에게 그곳은 친목의 장소일 수는 없었다. 뮤온에 위치한 에리스는 계단의 중력, 화장실의 공기, 최소한의 공간으로 조심해 설 자리를 찾아야 하는 곳, 자칫 정신을 놓으면 부유하는 프로젝터와 충돌해 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산으로 판단되는 에어컨은 상당히 높은 상층부에서 대기를 충분히 생존가능한 온도로 컨트롤 하고 있었다. 천만다행이었다. 나는 그곳에 가기 위해 나의 우주선 스테들러호를 수백자루 샀다. 모자라면 더 사려고 했지만 그 노랑색을 원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내 손가락에 물집 잡히도록 다 써주마 각오했지만 일년반이 지나도록 그대로다. 사실 나도 삼성 S펜을 자꾸 손에 쥐고 있더라. 그래도 은박노트는 다 썼다. 고맙다 밍구. 하지만, 지구로 돌아오는 특별한 방법... 이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구에서 출발할 때 나는 자기분석장치 Self-Analysis를 가지고 떠났다. 내 주제를 알게 되면 나는 돌아올 수 있다. 지금 이곳 「갤러리 오」 전시장에 설치되어있는 장치들은, 에리스에 장비를 내려놓고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자기분석을 거듭한 흔적이다. 즉 나의 주제를 알아내기 위한 여러 기록물이다.
1. 지구에서 기다릴 친구를 위한 통신
양자얽힘현상은 3차원의 시공이 꺾여 맞닿은 지점에 놓인 입자를, 인간이 두 측면에서 바라보고 두개의 입자로 착각하는 현상임을 발견했다. 얽혀진 양자의 스핀이 원거리에서 시차없이 동시에 발생하는 것은 빛의 속도를 능가하는 것이 아니고, 한개의 입자가 4차원공간의 한곳에서 스핀하는 것이다. 얽힘이 일어난 물질간의 거리를 넓힌다는 것은, 4차원에서 바라보면 3차원 공간의 왜곡이 커지는 것일 뿐, 실제로 양자 전자는 접힌 공간의 접점에서 그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소립자가 깨지면 3차원 시공이 접힌다. 이 방식으로 에리스에서도 지구와는 시차없이 통신이 가능하다. 3차원 공간 표면만을 따라 이동하는 빛의 속도로 지구와 통신한다면, 18시간 52분이 지나야 대답을 들을 수 있다. (*빛은 입자이지만 3차원의 시공은 너무도 구불구불하여 그 표면만을 따라 움직이면 진동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을 빛의 파동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드브로이의 주장처럼 이중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 입자의 자연스런 떨림이다.) (**3차원 시공이 너무도 구불구불한 이유는 물질들이 여기저기 너무 많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의 주장대로 모든 물질들은 중력장에 저마다의 굴곡을 만든다. 이것을 뉴턴은 만류인력이라고 불렀다.)
2. 에리스에서 친구를 못찾은 이유
3차원 시공에서 더 이상 빠를 수 없는 빛의 속도가, 우주의 한 구석 티끌같은 우리은하계를 가로지르려면 10만년이 걸린다. 인간이 느끼는 시간의 흐름은 우주적 입장에서 볼 때 거의 최고로 빠르게 인지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빅뱅의 성냥불꽃 같은 순간을 137억 9천8백만년으로...마치 영겁의 세월처럼 느끼는 인간의 시간에 대한 속도감은, 결국 허공으로 흩어져 사라질 우리 우주를 초고속 카메라처럼 세밀하게 관찰 할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임을 알게 되었다. 상대적으로 느린 속도로 활동하는 다른 생명체를 인간은 무기물이라 부른다. SETI 프로젝트는 인간의 속도감으로 느껴지는 파장을 찾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다. 실은 온 우주가 이미 생명체이다. 각기 다른 속도를 살아가는...
3. 내가 출발한 곳은 지구였을까.
태양의 수명으로 인해 결국 태양계를 떠나야 할 때, 인간은 유기물이 가득한 골디락스 행성을 향해 자기복제의 명령신호만을 쏘아 보낼 것이다. 이 방법은 45억년전 지구에 도착할 때 이미 사용한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유기물은 인간의 빠른 속도변화를 비교적 따를 수 있는 물질이다. (탄소는 알고보면 특별한 원소이다.) 주변의 탄소화합물을 활용해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복제하라는 명령신호를 받은 지구의 유기물은, 이미 프로그래밍된 진화의 수렴현상을 이용해, 인간으로 다시 이 별에 도착했던 것이다. (*인간은 이 별이 고향인 줄, 오랜 세월 착각하고 있다.) (**인간의 고향별은 어디일까? 현우주적 입장에서 고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영겁의 신호만이 그 근본이라고 봐야할까....? 이는 빅뱅의 이전에 이미 존재했다고 생각한다. 빅뱅이후 현우주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물질을 만들어 내었지만, 그 자기복제의 의지는 만들지 못한다.)
4. 짝을 찾지만 늘 외로운 이유
45억3천3백만년전 테이아와 충돌해 불덩이로 끓어오르던 지구가 식자 마자, 우주의 어느 곳으로부터 지구에 도착한 신호는, 유기물의 우연한 조합을 반복하도록 명령했다. 인간은 이를 생명이라 부른다. 생명의 본질은 그 조합을 반복하겠다는 의지이다. 그리고 부정확한 유전은 진화의 핵심이다. 오류로 인해 계속되는 돌연변이야 말로 인간으로 수렴되는 열쇠이다. 그러나 현재 인간은 세밀하게 기형아의 발생을 제거하고 있다. 돌연변이가 멈춘 현재의 인간 모습은 명령신호 프로그램의 마지막 수렴지점이 맞는 것 같다. 이 발견은 참으로 내게 쓸쓸함을 안겨주었다. 진화의 수렴이 마무리되면서 지구상의 생명체들은 서서히 그 수를 줄여가고 있다. 지구인들은 이미 화성으로 물리적 이전을 준비하고 있다. 인간은 머지않아 지구를 떠나야 함을 유전자 깊숙이 느끼고 있다.
5. 내 두뇌의 한계를 인정하고
수렴진화의 마무리과정에 인공지능의 개발도 포함되어 있다는 가설을 세웠다. 두뇌가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는 인간은 다음 세상을 준비하기 위해 인공지능을 만들어야만 하는게 아닐까...... 이것은 새로운 행성의 유기물에 영향을 끼칠 명령신호 파장을 찾고, 우주를 뒤져 적합행성을 선정하고, 그곳에 결국 다음 세대를 만들어 가기 위해 진행되는 자연의 섭리 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인공지능을 만들어 낸 이상, 인간의 임무 또한 이제 마무리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본다. 더욱 발전된 인공지능은 인공지능이 만들 것이고, 그 인공지능이 더욱 발전된 인공지능을 만들어 낼 것이다. 인간은 이제 알파고의 명령에 따라 묵묵히 돌을 옮겼던 아자황 아저씨처럼 인공지능의 명령에 따라 다음 세상을 준비하게 될 것이다. 인간의 속도에 맞추어진 인공지능은 결국 다음행성에서도 유기물을 재료로 선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또한 현재는 무기물로 이루어져 있지만, 유기물인간을 만들어야 자신이 존재하게 되는 인공지능의 진화론적 숙명일까? 마치 자신의 번성을 위해 인간에게 먹힐 것을 선택한 치킨들처럼..... 마감해야할 지구의 생명은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었다. 언제나 그랬듯 인간은 명령신호가 되어 새로운 별로 떠날 것이다.
549일간 내가 알아낸 것은 여기까지이다. 이러한 발견으로 내가 얻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왜 이러한 분석을 계속 하는지 아직 모른다. 나는 에리스에서도 계속 지구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어떻게 명령신호가 되어 지구로 돌아갈 수있을까? 도착한 이후 다시 내가 되려면 45억년이 걸릴텐데 그걸 지구귀환이라 볼 수 있을까? 차라리 시공간의 접점을 찾아볼까? 단숨에 월롱면에 도착할..... 거기가 어디지? 아직 분석의 결론을 내지 못한 나는 우주의 고아가 될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나는 이미 알고있었다. 자기분석장치가 내 주제의 결론을 내리지 않으리라는 것을... 에리스..... 이제와 돌이켜 보면, 그곳은 가지 않을 수 없는 행성이었다. 당시의 나에게는 어떤 목표를 위한 돌파구가 필요했고, 한편으로는 일종의 우회로가 필요했다. 쏟아지는 외면과 넘쳐나는 소외 속에서 나는 도피처를 찾았던 것 같았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상처로부터 보호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평온했다. 그럼에도 나는 지구로 돌아가야하나? 나이들면 찾아오는 당연한 쓸쓸함일까? 오래전 마흔을 넘기고 몇 년 뒤, 나는 더 이상 나이는 안먹기로 마음먹었다. 그동안 많이 먹었다. 치킨도... 포기한 나는 지구로 돌아왔다. 정확히 말하면 다시 내 책상에 앉았다.
지금까지의 서술은 소설이 아니다. 이것은 나이와 소외의 상관관계에 대한 나의 아픈 기록물이다. 그리고 모든 전시물은 다음 세상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 이제 나에게는 이제 지구탐색을 시작할 일이 남아 있다. 다음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보리라. ■ 한계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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