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히 걷는 낮과 밤 Parallel Paths
2018.02.23 ▶ 2018.03.25
2018.02.23 ▶ 2018.03.25
전시 포스터
전현선
나란히 걷는 낮과 밤(6) watercolor on canvas, 112x145.5cm, 2017
전현선
나란히 걷는 낮과 밤(11) watercolor on canvas, 112x145.5cm, 2017
전현선
나란히 걷는 낮과 밤(12) watercolor on canvas, 112x145.5cm, 2017
전현선
나란히 걷는 낮과 밤(14) watercolor on canvas, 112x145.5cm, 2017
전현선
나란히 걷는 낮과 밤(15) watercolor on canvas, 112x145.5cm, 2017
전현선
복숭아 두 개 watercolor on canvas, 45.5×45.5cm, 2017
전현선
시야를 멀리 던지고 싶던 날 watercolor on canvas, 45.5×45.5cm, 2017
전현선
랍스터 대화 watercolor on canvas, 45.5×45.5cm, 2018
전현선
기억을 삼키는 벽 watercolor on canvas, 41x31.8cm, 2018
전현선의 그림에는 다양한 형상들이 등장한다. 그것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형상이지만, 그것들이 모인 전체는 무언가를 알 수 없는 모호한 상태이다. 즉 부분은 부분일 뿐, 그 부분(형상)들이 모여서 전체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형상은 형상이고, 전체는 그냥 전체이다. 그의 그림에서 하나의 형상은 다른 형상을 위해 봉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형상이 홀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하나의 형상은 다른 형상과 유동적으로 연결되지만, 곧바로 또 다른 형상과 만날 수 있다. 형상은 멈추지 않는다.
그는 캔버스에 수채로 그림을 그린다. 오일이 자신의 성향과 그다지 맞지 않았다는 작가는 캔버스에서 수채를 사용하는 법을 스스로 알아갔다고 한다. 수채는, 오일과 아크릴릭에 비해, 드로잉처럼 얇고 가벼운 느낌의 표현이 가능하며, 동시에 이미 칠해진 색 위에 색을 또 올리더라도 밑의 색이 완전히 가려지지 않는다. 위의 색과 아래의 색이 만나면서, 평평하지만 입체적인 묘한 색채의 레이어가 생성된다.
<뿔과 빛나는 돌>(2016): 화면 가운데 뿔이 2개 있다. 원뿔은 이야기를 풀어가는 화두이자 실마리이지만, 그것이 어떤 특별한 역할을 하거나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작가는 이것을 파악하기 위해 주변에 무언가를 하나씩 배치한다. 예컨대 원뿔이 놓일만한 탁자가 있고, 탁자 양 옆에는 서로에게 무관심한 두 사람이 있으며, 그 뒤로는 그가 서양 종교화에서 봤던 산이 자리한다. 그리고 산과 산 사이에는 빛나는 것이 위치한다. 원뿔 아래 왼쪽에는 미러볼이 있고, 오른쪽에는 빛을 받은 돌이 있다. 이처럼 원뿔에서 시작하여 여러 형상들이 그 주변에 배치되었는데, 사실 필연적 인과관계는 없으며, 구체적 내러티브도, 주제도, 주인공도 없다. 나아가 형상 사이에는 주종관계도 없으며, 화면에는 무게 중심도 없다. 결국 어떤 것도 앞으로 튀어나오거나 뒤로 들어가지 않기에 모든 형상은, 동등(同等)한 형상으로서, 모두 평평해지게 된다.
전현선의 그림은 크게 세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 시기는 2014년 말부터 2015년 초까지 그려진 그림이다. 이때의 작품은 주로 개인전 “뿔과 대화들”(플레이스 막, 2015.2.6~2.25)과 단체전 “두렵지만 황홀한”(하이트컬렉션, 2015.2.27~6.5)에서 공개되었다. 두 번째 시기는 2016년 후반에 제작된 그림으로 개인전 “이름 없는 산”(이화익갤러리, 2016.9.7~9.27)에 출품되었다. 세 번째 시기는 2017년 후반부터 최근까지의 작업으로 개인전 “모든 것과 아무것도”(위켄드, 2017.8.25~9.24)와 이번 개인전에서 전시되었다.
뿔이 본격적으로 그의 작품에 등장한 것은 첫 번째 시기이다. 더불어 인물이 가장 현저하게 나타난 것도 이때의 그림이다. 뿔과 인물 옆에는 숲속이나 동굴 같은 풍경이 이어지는데, 이 풍경은 작가가 어렸을 때 보았던 동화책의 이미지에서 온 것이다. 물론 인물과 사물이 배경과 함께 있다고 해서 어떤 명시적인 사건이나 내러티브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어린 작가의 눈에 우선적으로 들어왔던 것은 동화책의 텍스트가 아니라 (시각적인)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시기의 가장 큰 특징은 화면이 ‘구획’된다는 점이다. 2016년 초 노은주 작가와의 협업을 계기로, 화면 구성에 대한 관심이 꽤 높아졌다고 그는 이야기한다. 화면이 분할되다보니 앞 시기보다는 다소 정돈된 분위기를 자아낸다. 한편 인물은 이전보다 출연 빈도가 줄어들지만, 뿔은 이 시기에도 여전히 애용된다. 또한 원뿔을 닮은 ‘이름 없는 산’이 등장하며, 빛나는 것이 화면에 종종 나타난다.
세 번째 시기에서는 ‘인물’이 사라진다. 화면은 파노라마처럼 옆으로 길게 펼쳐지고, 그 안(숲속)에는 나무, 사물, 도형 등의 이미지가 올오버(all-over)의 형식으로 병치된다. 그리고 이전 작업에 비해 색채가 한층 경쾌하고 밝아진 것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이는 채도의 차이인데 실은 인물의 유무와 관계가 있다. 보통 우리가 그림을 볼 때 인물을 먼저 인식하듯이, 인물이라는 형상은 그 자체만으로도 보는 이의 시선을 잡아끄는 독특한 형상이다. 그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생기는 형상들의 주종관계를 완화시키기 위해 작가는 전체적으로 채도를 낮춰 인물과 사물의 구분을 옅게 하였다. 하지만 인물이 사라진 최근작에서는 일부러 채도를 낮출 필요가 없었다. 도리어 채도의 높고 낮음을 활용함으로써 화면에서 미묘한 강약을 주는 쪽으로 방향을 틀게 된다.
지난 3년 동안 전현선의 작업은 제법 달라졌지만 대체로 얇고 납작한 느낌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새로운 시각 환경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동년배 작가의 그림과 유사해 보이기도 한다. 디지털·인터넷 시대에 맞춰 그가 의식적으로 평평한 그림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그 역시 어렸을 때부터 디지털 환경에 노출되었기 때문에 저절로 평평한 것이 그에게 체화되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의 회화는 다른 작가와 좀 다르다. 그의 그림에서 하나의 형상은 다른 형상을 지배하지 않는다. 모두 평등하게 존재한다. 그래서 그의 그림이 평평해진 것이다. 평평해졌다고 해서 그림에 내재하는 에너지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아마도 에너지의 분포가 골고루 퍼져있다고 보는 게 좋을 것이다. 즉 그의 그림은 단순한 평면이 아니라 잠재성(virtualité)을 가진 평면이다. 그것은 들뢰즈와 가타리가 말하는 ‘내재성의 평면(plan d’immanence)’이자 ‘일관성의 구도(plan de consistance)’에 가까운 상태이다.
“각각의 화면(캔버스)들이 하나로 모여서 하나의 풍경(장면)을 만든 것이 이번 작업이에요. 저는 이 작업을 하면서 단어와 문장의 관계를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제가 다루는 이미지의 조각(요소)이 단어인 것 같아요. 그리고 이것들이 가리키는 것은 비교적 분명해요. 이것은 복숭아, 저것은 물고기 등 지칭하는 대상은 명확해요. 그런데 이것에 살이 붙으면서, 즉 조사가 붙으면서 만들어지는 문장들은, 뭔가 더 구체적인 것이 되어야 할 것 같지만, 오히려 부정확해지고 불명확해지는 상황인 것이에요.” – 작가 코멘트, 2018년 1월
<나란히 걷는 낮과 밤>(2018): 80호 크기의 캔버스를 15개나 이어 붙인 대작이다. 과거 전현선이 선택한 사물은 그의 경험(감정)과는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았지만(그래서 인터넷에서 찾은 사물이 많았음), 이번에는 작가가 일상에서 마주하거나 어떤 관계 속에서 중요했던 사물이라고 한다. 그는 그와 밀접하게 연결된 사물을 반추하기 위해 그 사물을 여러 상황에 대입시켜 보았다. 단일한 시각으로 그것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다른 각도에서 그 사물을 바라보는 것을 그림으로 제시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이미지(사물)는 고정된 의미를 거부한다. 여러 사물과 유연한 관계를 맺으면서, 비록 다소 불명확할지라도, 다의적 의미를 띠게 된다. 더불어 그의 캔버스도 마찬가지이다. 처음부터 캔버스를 이어붙이겠다는 의도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전체적인 구도를 미리 상정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는 각각의 캔버스를 개별적으로 작업한 후, 포토샵에서 캔버스를 이리저리 배치하는 방식으로 캔버스를 하나씩 맞춰나갔다. 형상들은 분절된 캔버스를 넘나든다. 서로 연결되면서 자연스럽게 어떤 영역이 만들어지지만, 또 다른 흐름에 의해 새로운 영역이 만들어진다. 경계는 생겼다가 곧 허물어진다.
■ 류한승 /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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