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포스터
박정용
나 이꽃 좋아! 90.9x90.9cm, Oil on Canvas, 2018
박정용
달려가다 227.3x181.8cm, Oil on Canvas, 2017
박정용
동행 162.2x130.3cm, Oil on Canvas, 2017
박정용
인기많은 여인 193.9x97cm, Oil on Canvas, 2014
박정용
인상적풍경-프로포즈 193.9x97cm, Oil on Canvas, 2015
박정용
키스 116.8x91cm, Oil on Canvas, 2016
박정용
키스 72.7x60.6cm, Oil on Canvas, 2017
박정용
몸짓 130.3x97cm, Oil on Canvas, 2015
박정용
끌어안다 259.1x181.8cm, Oil on Canvas, 2017
박정용의 ‘스톤 피플’
중세 이태리 작가 주세페 아르침볼도(약 1527~1593)가 다양한 사물과 인물의 특징을 결부시켜 그 형상이 정적인 초상화의 형태에서 인문학적인 소견 즉 인물의 다양한 면모를 해석하고 드러낸다면 박정용의 회화에서 인물의 형상을 닮은 대자연의 형상들이 신화적인 혹은 초현실적인 분위기 속에 인물들의 역동성을 강조하여 보여주는 것으로 차별화된다.
연인에 대한 사랑이라는 주제로 그려지는 그의 ‘스톤 피플’은 작가의 투영이자 삶이요 고백들이다.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하는 현실 속에서 꿈과 같은 초현실적인 상상을 하며 연인에 대한 애정을 인간 누구나 가질 수 있고 공감하는 영원한 가치처럼 여기며 대자연과 비유하여 회화적으로 표현한다.
투박한 돌덩이에 인간을 비유한 것은 자연으로 회귀하는 인간의 본질과 언어 이전의 몸짓과 자연의 감수성을 통해 인간성을 회복시켜 보고자 하는 작가의 정신이 내재되어 있음을 증명한다.
자연을 닮은 인간의 속성을 잘 담아 표현하는 박정용의 ‘스톤 피플’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평론
로망스, 스톤 피플의 세레나데
허나영(미술평론)
넓은 평원을 스톤 피플이 뛴다. 얼굴에 눈코입이 없어 표정이 보이진 않지만, 분명 스톤 피플은 즐거워하고 있다. 돌의 감정을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몸짓 언어 때문이다.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에는 말과 글 뿐 아니라, 표정과 몸짓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호학에서 논리적 질서를 가진 랑그(langue)와 함께 파롤(parole) 역시 의미 발생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듯, 우리가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이해할 수 있는 의미체계 외에도 비언어적인 체계 역시 중요하다. “좋다”라는 말 만해도 정말 신나서 인지 혹은 비꼬는 말인 지 그 뉘앙스에 따라 달라지는 것처럼, 같은 말을 해도 눈썹의 움직임이나 얼굴의 근육으로 그 말이 거짓인지 참인 지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박정용의 스톤 피플은 몸짓이라는 비언어적인 의사소통 방식을 갖는다.
그렇다면 작품 속 스톤 피플은 무슨 말을 하고 있을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대중가요나 드라마, 소설 등에서 숱하게 다뤄진 주제지만, 박정용 작가가 보여주는 스톤 피플의 사랑이야기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남녀가 서로 만나 사랑을 싹 틔우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과정이지만, 그 속의 세세한 내용은 다르다. 마치 ‘나의 사랑이야기’가 소설 속 이야기보다 더 강렬하게 느껴지듯 말이다. 그렇다면 박정용 작가가 표현한 스톤 피플의 사랑은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그리고 어떤 감정을 전달할까.
사랑의 낭만적 표현
박정용 작가는 근 몇 년 간 스톤 피플이 만들어가는 사랑이야기를 주요 주제로 삼아 작업을 해왔다. 지난 개인전의 제목에도 삼았던 ‘로망스(Romance)’의 사랑이다. 로망스는 노래나 문학이 있듯 사랑을 뜻한다. 그 중에서도 이성적이거나 이타적인 사랑이라기보다는 남녀 간의 애정에 가깝다. 실상 남녀 간의 로망스에 대한 향수는 중세 문학에서 공주와 기사 간의 이야기에서 유행하기 시작해서, 프랑스 혁명 시기 낭만주의(Romanticism)에 절정을 이룬다. 이 시기 많은 회화와 소설, 음악 작품에서 인간의 감성에 대한 주제와 함께 빠질 수 없는 소재로 사랑이야기가 다뤄졌다. 그리고 지금, 현대적 낭만주의가 형성되고 있다.
이는 디지털 매체를 통하여 점차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의 구현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영화나 애니메이션과 같은 대중매체 뿐 아니라 가상현실은 각종 첨단 기기를 통하여 일상에도 깊숙이 들어와 있다. 그렇기에 현대인들은 이전에 기술적 한계로 구현하지 못하고 상상만 했던 여러 낭만적 이야기들을 실제화시킬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회화는 여전히 가상현실을 시각화하는 우리에게 친숙하면서도 효과적인 도구이다. 그래서 박정용은 디지털 매체적 감각과 개념에 익숙한 세대로서 회화라는 전통적인 매체로 상상의 세상 속에서 특히 사랑이라는 인류 보편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돌로 만들어진 사람이라는 비현실적 매개체를 통하여 말이다. 그래서 디지털 매체를 통하지 않고도 초현실적인 세상을 화폭에 구현한다. 이는 세밀하게 그려진 돌과 그 사이에서 자라는 풀과 꽃의 표현으로 더욱 극대화된다. 마치 사진과도 같은 사실적 묘사는 돌로 만들어진 사람이 실존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스톤 피플들의 낭만적 상황을 받아들이게 한다.
그렇기에 초현실적 세상에서 구현된 현대적 낭만주의의 사랑, 박정용이 그린 스톤 피플의 사랑에 대한 표현은 이렇게 한 마디로 묘사할 수 있을 것이다. 뭔가 거창한 듯도 하지만 실상 작품 속에서 스톤 피플이 나누고 이야기하는 사랑은 그리 거대하지 않다.
사랑의 성취
박정용이 스톤 피플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3-4년 전부터이다. 작업을 시작할 때에는 인체 형상을 한 산이나 섬을 그리다가 점차 돌이라는 특정한 자연물을 의인화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돌로 만들어진 사람이라는 주요 소재에 작가는 ‘스톤 피플’이라는 캐릭터의 이름을 붙였다. 작가에게 있어서 작품의 주요 소재를 결정하는 것은 예술인생의 새로운 문을 여는 중요한 지점이다. 더불어 박정용에게 개인적으로도 사랑하는 이를 만나게 된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스톤 피플은 작가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야기에 따라 표현되었다. 그 첫 만남은 <인기 많은 여인>에서 드러나듯, 여러 남성들과 함께 구애를 하면서 부터이다. 구애라는 표현이 진부하긴 하지만, 그림 속에서 여러 스톤 피플들이 꽃을 들고 꽃밭의 한 여인을 향해 날아가듯 뛰고 있는 모습이니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다행히 사랑은 이루어졌지만, 그 행복감은 마치 당장이라도 구름처럼 흩어질 듯한 느낌이었다. 너무나 행복했기에 그런 걸까? 그 만큼 서로 더 끌어안고 있는 모습은 이들의 로맨틱한 사랑의 달콤함을 관객에게도 충분히 전달한다. 이후 두 사람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더 없이 행복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구애를 위한 경쟁과 만남 그리고 사랑을 성취한 과정은 작가와 그가 사랑하는 여인과의 개인적인 이야기인 동시에, 작품 속 스톤 피플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작가와 작품 속 캐릭터가 같이 살아가기에 작가의 감정이 고스란히 스톤 피플의 움직임을 통해 표현되고 있다. 그래서 많은 관객들이 박정용의 작품에 공감한다. 자신이 사랑하는 이에게 스톤 피플의 사랑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어 하고, 사랑의 결실인 아이들과 함께 한 따듯한 집에 스톤 피플이 만들어내는 낭만적인 세계를 걸어두고 싶어 하는 이유일 것이다. 거대하고 원대한 이념이라기보다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어봤거나 혹은 느끼고 싶어 하는 그러한 사랑이라는 감정을 박정용이 표현한 스톤 피플을 통해 경험하게 된다.
사랑, 그 영원한 가치를 위하여...
박정용의 작품을 보면서, ‘사랑’이라는 뻔하고도 극적인 감정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감정이지만, 막상 사랑에 빠지면 불가항력적인 시간까지도 이전과 다르게 흘러가고 더 없이 건강해지거나 혹은 병이 오기도 하는 신체적 반응까지도 일으키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그렇기에 숱한 예술작품의 오랜 주제이기도 하다. 박정용은 그러한 사랑을 만들어 내거나 극화시킨 것이 아니라, 실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스톤 피플을 통하여 풀어내었다. 사실적인 묘사를 통한 초현실적 화면을 통해 말이다. 그러면서도 박정용은 점차 더 회화적인 맛을 화면에 나타내고 있다.
뛰어가는 스톤 피플이 향하는 무지개 너머의 세상이나 돌 사이로 흐르는 폭포, 구름 등 행복이 가득할 것 같은 미지의 세계를 회화적 붓질로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표현적 변화들은 박정용의 스톤 피플 그림이 조금씩 변화하는 시점에 왔다는 것을 예시하는 징후이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박정용이 말하듯, 그동안의 이루어졌던 작업들을 총정리하는 기회이다. 그리고 그간의 작업을 넘어 새로운 작업으로 도약하게 되는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다. 그러니 이후 박정용의 스톤 피플이 또 어떠한 모습으로 변할지 상상해보며, 사랑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성실한 회화적 표현과 위트있는 움직임을 통해 그려낸 박정용의 작품을 공감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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