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중
비온후 옥상 마대천위에 오일, 145x224cm, 2010
김보중
풍경무심-개포동 마대천위에 오일, 462x200cm, 2010
김보중
풍경무심-분당야경 장지위에 아크릴, 180x74cm, 2008
김보중
비행-구름 재료장지위에 아크릴, 72.7x60.6cm, 2009
김보중
비행 종이위에 아크릴, 34.8x27.3cm, 2009
김보중
겨울신목-영월 장지위에 아크릴, 210x150cm, 2005
김보중
숲에서 질주 캔버스위에 오일, 145x112cm, 2007
無心風景-일상·기억·시공의 혼성이 빚은 기시旣視와 낯섦의 점착粘着
김진하 / 우리미술연구소 품 소장, 나무아티스트스페이스 대표
그 아파트는 낡았다. 서울하고도 개포동. 소위 강남이지만 닥지닥지 붙은 작은 평수, 베란다에 널어놓은 빨래와 이불, 삶의 때 등이 오랜 세월로 쇠락한 아파트임을 쉽게 감지할 수 있게 해준다. 김보중이 살고 있는 동네이자 그의 대작 <풍경무심-개포동>에 등장하는 현장이다. 따사로운 양광속에 궁핍한 건물과 승용차와 집집마다의 이불빨래 등이 번다한 도시이면의 속살을 한가하고 무심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이 아파트의 <비온 후 옥상>풍경, 즉 옥상에서 바라본 외부 풍경이 아니라, 옥상자체의 내부풍경에 이르면 회화가 보여줄 수 있는 소재의 범주와 그 표현의 한계 없음이 드러난다. 이런 것도 그림의 소재가 되어 멋있게 변주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오래전에 방수 페인트가 칠해진 을씨년스런 옥상바닥은 색바랜 콘크리트 표면과, 거기에 여기저기 부분적으로 덧칠한 녹색이 어우러져 한 폭의 추상회화 같다. 김보중은 작자미상의 이 무작위적인 ‘콘크리트 바닥화’를 그의 캔버스 안으로 이동시키며 그만의 회화로 번안했다. 놀랍도록 명료한 일상의 이면과, 쉽게 경험하지 못하는 추상적 시각성과, 새로운 회화적 경험이 여기에서 교직된다. 이 때 회화라는 장르는 비록 그 방법론이 고전적인 것이라도 우리들의 시각경험을 얼마나 새롭게 드러내 줄 수 있는 매체인가를 깨닫게 해 준다.
다시 옥상에서 바라본 푸른 하늘. 빈 공간에 파문을 내며 난데없이 등장하는 글라이더 비행기의 소리 없는 굉음의 적막한 장면. “비행기라… 난데없이…. 자유? 욕망? 적막을 깨는 소리이미지? 그저 빈 공간과 충돌시키기 위한 단순한 떼페이즈망? 아니면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실재에서 관념으로의 이행? 어쨌거나 먼 거리에서 조망한 아파트 한 동이 통째로 무심하게 묘사되고(자연주의적 시각), 일상적 건조함으로 비루한 옥상이나 놀이터의 밤풍경도 차갑게 클로즈업 되고(좀 더 디테일한 형상성), 거기에서 바라본 푸른 하늘과 난데없이 등장하는 비행기가 작가내면의 알레고리(마음의 행로)로 설정되었다.
이런 하늘과 비행기는 그의 고향인 영월의 숲과 산 풍경에서도 마찬가지로 출몰한다. 그러니까 하늘과 비행기란 소재는 작가의 현실공간인 개포동이나 분당뿐 아니라 기억 속 공간인 고향 영월에서도 동시에 나타난 것이다. 실제 공간도 되고 상상공간도 되고, 실제 공간과 상상공간을 연결해주는 매개체도 되면서 개포동과 영월은 이 푸른 하늘과 비행기로 인해 시간과 공간의 차이를 넘어 작가에게 같은 의미가 된 것이다. 즉 현실과 기억은 그의 내면에서 차이 없이 시간과 공간을 공유한 일상이 되었다.
과거/현재라는 시제, 큰 나무/아파트라는 소재, 영월/개포동이라는 장소성의 시공의 구분을 무화시키며 그렇게 영월·분당·개포동은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연결된다. 굳이 인과율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게 아니라, 작가에게 생생하게 현재화된 이미지의 카오스적 몽타쥬로, 일상의 흐름위에서 통합되었다. 물론 작가에게는 이런 복잡한 서술이나 서사가 별로 혼돈스럽지 않고 공고하게 질서정연한 상태일지 모르지만 말이다. 중첩된 시공과 기억과 현실의 흐름과, 그 흐름에 무심하게 몸과 마음을 맡긴 채 세상을 긴 시간 응시하는 방식인 관조는 결국 이 작가의 삶의 연륜과 태도일 텐데, 바로 그 태도가 김보중의 감성과 사유의 회화적 결이자 리듬이라 하겠다.
그의 기억 속 고향 영월은 결코 그리움이나 아쉬움의 대상으로 포장되지 않는다. 아파트 풍경과 마찬가지로 지극히 현실적이다. 면도날처럼 예리한 삭풍에 동천(冬天)을 머리에 이고 서 있는 <겨울신목-영월>에 이르면 고향과 추억에 대한 서정은 차라리 배부른 투정처럼 여겨진다. 그러니까 김보중의 그림에 등장하는 그의 과거 시제에 바탕을 둔 고향풍경(상징적으로는 작가의 태생과 관련된 태내(胎內)여행의 장이지만, 실재는 현재 영월풍경 의 사생)과, 현재 그가 발 딛고 서 있는 삶의 공간인 개포동이나 용인작업실 모두가 바로 지금의 실존을 반영하면서도 과거/현재를 무화시키는 분위기로 통일되어 버린다. 시간과 존재의 흐름, 그리고 작가의 의식/무의식의 흐름으로.
기억은 과거 시제에 기준한 의미와 정서를 바탕으로 한다. 그것은 빛이 있고 시간이 흐르는 한 늘 우리 마음에 붙어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편 기억은 명료하지만 실체가 없다. 꿈처럼 반응하는 감각적 유사작용일 뿐, 오온(五蘊-眼耳鼻舌身)을 모두 동원해도 그 물리적 실체는 인식할 수 없는 것이다. 신기루와 같은 이 기억을 이미지와 물질로 현재화하는 게 김보중에겐 회화다. 거기엔 지금 직접 대면하고 있는 색계(물질계)처럼 생생한 상대적 리얼리티가 있다. 먼 과거와 가까운 과거와 현재가 투명한 겹으로, 때로는 불투명한 중첩으로 그 이미지를 구성한다. 마찬가지로 여러 소재들의 의미들도 절대적인 고정성에서 탈피해서 다양한 해석학적 원천으로 작용한다. 그의 작가노트에서 기술되었듯이 기억을 포함한 일상은 “결정적인 비천함과, 비결정적인 경이로움”이고, 본질적으로는 눅눅하지만 외피는 딱딱하고 건조한 것이며, 그 “범접할 수 없는 위력”은 “모순의 극치”가 됨으로 이 상대적 양가성은 서정성의 달콤함을 제거해 버린다. 마치 아파트 옥상의 얼룩덜룩한 땜빵과 먼지의 축적처럼 리얼하고 건조한 상태로.
그러나 김보중은 그런 가운데서도 푸른 하늘과 비행기를 통해서, 일상적 리얼리티를 배반하는, 지금은 다소 진부해진 희망이란 ‘관념’으로 삶을 긍정한다. 그 결과 그의 언술처럼 “비천한 일상”은 “비범한 일상”으로 전이된다. 그러자 핍진한 일상에서도 살아있다는 자체가 고맙다는 너무도 뻔한 관념이 그의 그림에 들어오며 놀라운 패러독스로 보는 나의 마음을 시큰하게 만든다. 비록 일상에선 밥값 안되는 게 관념이지만, 그런 평범하고 뻔한 통속적 관념의 새로운 재발견과 구사야말로 삶을 바라보는 연륜의 또다른 반영에 다름 아닐 것이다. 우리가 삶을 긍정할 수 있는 힘의 위대한 근원, 그런 궁극적인 것 중의 하나로.
이렇듯 현재와 기억, 개포동과 영월이란 장소성을 캔버스에서 현실적 리얼리티로 통합하는 순간, 묘하게도 거기에선 현실을 넘어서는 또다른 비현실의 분위기가 감지된다. 현실도 아니고 초현실도 아닌, 뭐랄까, 기존의 시각정서와 기시감을 거부하는 낯선 분위기. 사실적으로 묘사한 명확한 소재인 아파트, 놀이터, 나무, 하늘 등의 개념이나 의미생산이 아니라, 그런 소재를 비끼어가며 전혀 다른 뉘앙스의 표현질이 주는 혼란의 충돌과 스밈이란 독특한 ‘기존 이미지에 대한 거역’의 화면. 이런 특징들은 묘할 정도로 견고한 일의(一意)적 다중성을 함유하며 김보중의 회화를 해석의 줄다리기로 끌어들인다. 일테면 그런 구체적 소재들이 사실적인 묘사로 극명하게 드러나지만 결과로서의 화면은 일정부분 현실에서 이탈한 것 같고, 초현실의 세계로 치부하자니 리얼한 현실성이 그 판타지를 방해한다. 또한 이미지의 구축과정과 내러티브가 일목요연한 계획적 프로세스에 느닷없이 개입되는 즉흥성으로 결코 간단하지 않는 결과를 만들어내기에 더욱 그렇다. 풍경, 인물, 기물들과 조우하는 작가의 ‘관념’과 ‘장소’와 ‘시제’의 교집합적인 섞임이 결과가 마치 염색체들의 난배열처럼 고전적이되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그 한 예다.
이는 회화라는 매체에 집중해 온 김보중이 갖는 덕목이다. 김보중이 회화를 고집하는 것도 그의 논리적 사유와 충동적인 감정에 의한 표현이 혼재된 불가해한 작업프로세스의 매력이 그 이유라 여겨진다. 따지고 보면 김보중의 그림들은 상당부분 이런 역설로 진행되어 온 듯이 보인다. 날 것의 질료들을 거칠고 생생하게 드러내던 80, 90년대의 작업에서, 그 격렬한 즉물적 몸짓과 물질감의 흔적 사이로 삐져나오는 절제된 사유의 묘한 중성적 분위기가 그렇다. - 이 부분은 김보중에 관심 있는 작가나 비평가들에게도 그동안 주목되지 않고 간과된 부분이기도 하다. - 근작에서도 마찬가지다. 일상/기억으로 대면하는 소재들과, 그에 대한 체험이 빚어내는 정서는 여전히 감정을 오버하지 않는 까칠한 경계에서 존재하고 있다. 넓은 표현의 바다에서 세계를 바라봄과 동시에 자기성찰의 균형감이 있고, 거기에 ‘기시(旣視)’와 ‘낯설음’이 점착(粘着)하면서 빚은 일상과, 그 일상에 대면하며 전통적인 회화방식을 유지하는 보수성의 유지, 그러면서도 내러티브의 구축구조를 혼란시키는 김보중의 어법이 동시에 반영된다.
이런 점이 ‘구상’과는 다른 ‘형상회화’의 특성일 것이다. 겉으로는 대상자체에 매여진 ‘구상’과 유사하지만 사유나 작업과정이 그 소재로부터 훨씬 넓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르고, 작가의 내면을 드러내는 표현성과도 일정정도 관계를 맺지만 좀 더 넓은 해석학적 모멘트를 제공하는 점도 다르고, 이런 점들을 아우르면서도 거기에 무언가 덧붙여진 카오스 같은 내러티브는 더욱 다르다. 그래서 김보중은 철학자나 비평가가 아닌 화가인 모양이다. 선지자와 같은 감感이 방향타가 되어 빚어내는 비논리성이 오히려 지식이나 앎을 넘어서는 형상성을 도출함으로 회화를 통한 일상의 폭 넓음과 반성을 유도하기에 더욱 그렇다.
1953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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