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태진
산뜻한 결투 (A neat duel) acrylic on canvas 45.5 X 45.5cm 2018
성태진
몸풀기2(warm-up2) acrylic on canvas, 53 X 40.9cm, 2018
성태진
로켓트펀치 acrylic on paper, 42 X 60cm, 2018
성태진
nuclear bomb acrylic on canvas, 72.7 X 60.6cm, 2018
10여 년 넘게 '로보트 태권V'를 모티브로 작품을 펼쳐 나가고 있는 성태진 작가의 개인전이 플레이스막에서 열린다. 기존 작업들의 특징은 만화영화 속 캐릭터를 이용해 그만의 다양한 이야기로 변주시키는 동시에 목판에 양각(emboss)의 방식을 사용하여 고된 노동집약적인 창작방법과 캐릭터를 활용한 서사의 대비가 두드러졌다. 이번 전시에서는 조각칼로 하나하나 새겨 완성하는 거대한 화면의 치밀하고 신중한 작업방식을 잠시 내려놓고,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 오일크레용 등의 리듬감 있고 편안한 재료들을 통해 더 경쾌하고 다양한 방식의 스핀오프 시리즈가 펼쳐진다.
얼마 전 뉴스에서 '태권브이'와 '마징가'의 저작권 논란이 뜨거운 감자로 올라온 적이 있었다. 벌써 40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자신의 운명을 오리지널 캐릭터 뒤에 숨은 서자의 슬픈 운명 속에서 약 40여 년을 보내온 '태권브이'에게 법원은 '태권브이, 너는 독립적 저작물로 존재한다.' 라는 판정이 내려졌지만, 이 기사를 접한 많은 대중들은 순진하게 환호성을 지를 수만은 없다. 아직도 마음속에 '마징가'와 '태권브이' 사이의 유사성 간극은 아주 가까운 듯도 하고 멀어 보이기도 하는 복잡한 기분 때문이다. 하지만 두 개의 만화캐릭터가 4년이라는 시간의 간격을 두고 탄생했던 사회적 정치적인 비화를 조금 더 살펴본다면 다르게 닮은, 닮은 듯 다른 두 로봇의 경계짓기가 웃픈 기분이랄까?
성태진 작가의 세계관 속에서 '태권브이'의 존재적 슬픔은 조금 다르다. 수많은 악당을 물리쳤으나 제공해야할 유희, 단물이 다 빨린 덩그라니 남은 신체는 헐렁한 츄리닝을 입고, 어슬렁거린다. 경제위기 속에서는 싸워야할 악당, 이념, 체제는 흐물거리며 녹아버린다. 광자력 빔을 쏘는 가슴팍의 V는 츄리닝 속에 가리워져 자신의 소명을 망각하게 될 것이다.
더 배틀
2018년이 된 지금 어찌된 일인지 그림들 속의 '마징가'와 '태권브이', 그리고 괴수들은 다시 싸우고 있다. 그런데 이 싸움은 조금 수상하다. 40년 전의 만화 속에서 이렇게 싸웠다간 잘려나갔을 터이다. 소위 '명분'을 망각한 진정성 없는 공격들의 연장이다. 성태진 작가의 그림화면 속에서 실직자로 방황하던 캐릭터는 우여곡절 끝에 다시 싸울 수 있는 역할을 부여 받았지만, 이는 모종의 영화 세트장처럼 보인다. 광화문, 백두산 천지, 푸른 공터 등 스펙터클을 빛나게 해줄 공간으로 소환되어 서로를 공격한다. 하지만 정작 위협의 핵심과 이유는 누락된 채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배우와도 같다. 적이라고 상정된 상대를 보면 공격을 하는 공허한 행위는 일종의 '파블로프의 개'실험의 조건반응 현상과 유사해 보인다. 그래서 화면은 싸움의 치열함, 전쟁의 참혹한 상황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며, 배경은 축제에서 터질 법한 알록달록한 폭죽의 색상들이 빠르게 지나간다. 더 나아가 몇몇 작품에서는 정적인 화면 중앙에서 태권도의 합을 맞춘다던지, 핵폭탄이 터지는 찰나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의 주인공들은 핵폭탄이 터지는 절대위기의 순간에 일상적인 위치에서 전혀 준비되지 못한 채, 파괴를 맞이하리라.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 로봇들
성태진 작가의 대리인 이자, 대리 기계로서 계속 메세지를 실어 나르는 불혹을 넘은 기존의 '태권V'에 대해 잘 아는 사람도 있을 터이고, 모르는 사람도 있을 터이다. 성태진 작가의 세계관 안에서의 '태권V'는 브라운관과 반대로 소시민에 가깝다. 단단한 주물로 구성된 무쇠로봇이라면 응당 해야 할 것 같은 행위에 닿아 있지 않다. 지구를 구하고 악당을 멋있게 처치하여 폼을 잡기는커녕 똥을 싸기도 하고 절규하거나 공허한 공격을(상대가 다치지 않게) 반복한다. 어떻게 잡은 일자리(역할)인데, 태권 동작으로 멋지게 발차기를 하고 주먹을 잘 날려서, 이 텅 빈 싸움은 계속 되어야만 한다.
[원래, 로써, 이기에, 하므로] 라고 수식되고 의미부여 받는 개인(나)이자, 집단(우리)으로서 그에 수반되는 행위의 주체이지만 삶은 주체적이지 못할 경우가 많다. 개인에게 부과된 역할과 살아내기 위한 작은 행동들의 집합을 풍경으로 그려낸다면 내가 있는 상황은 어떨까 생각해본다. 삶이라는 풍경 속에서 나,당신은 지금 어떤 역할로 무엇을 하고 있을까?
■ 플레이스막
1974년 출생
송영규: I am nowhere
갤러리 그림손
2024.10.30 ~ 2024.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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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0 ~ 2024.11.26
Rolling Eyes: Proposals for Media Façade 눈 홉뜨기: 미디어 파사드를 위한 제안들
대안공간 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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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색의 시선 Perspective of Lines and Colors
필갤러리
2024.10.10 ~ 2024.11.27
제15회 畵歌 《플롯: 풀과 벌의 이야기 Plot: The Story of Wild Grasses and Bees》
한원미술관
2024.08.29 ~ 2024.11.29
오종 개인전 《wh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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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1 ~ 2024.11.30
여세동보 與世同寶: 세상 함께 보배 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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