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이 피었다
2018.10.16 ▶ 2018.10.28
2018.10.16 ▶ 2018.10.28
한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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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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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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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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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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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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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공간이 품고 있는 시간의 기억
- 한금선 다섯 번째 개인전 <백합이 피었다>, 10월 16일부터 류가헌
이 공간을 찍으면서, 저 너머의 시간을 찍는 일은 가능한가? 지금 여기의 공간에서, 공간이 품고 있는 어느 특정한 시간을 사진으로 찍는 일. 한금선 사진전 <백합이 피었다>는 그 질문에 대한 사진의 답이다.
한금선의 5번째 개인전 <백합이 피었다>는 일본 오키나와를 찍은 사진들이다. 길, 바다, 나무, 비행기가 긋고 지난 창공의 흰 빗금, 해안선을 따라 늘어선 미군기지의 장벽, 놀이기구와 해변에서 헤엄치는 아이들... 이처럼 현재의 장소에서 맞바라보이는 풍경과 대상을 찍었으나, 그녀가 찍은 것은 오키나와의 현재가 아니라 과거의 어느 시간이다. 세 차례에 걸쳐 방문한 오키나와에서, 오키나와가 품고 있는 어느 ‘기억’을 찍은 것이다.
한금선이 2015년에 처음 오키나와를 방문했을 때는 오키나와에 대해 모르고 갔다. 사진을 찍기 위한 목적으로 간 것도 아니다. 다만, 일본의 제주도라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관광지로 알려진 해변 곳곳에 미군기지들의 높은 장벽이 둘러쳐진 풍경을 보면서 “시각적으로 또 다른 세계 하나가 더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진가라면 누구나 반응할 수밖에 없는 시각적 코드였기에 절로 사진기가 들려졌다. 그리고는, 보이는 풍경 이면이 궁금해졌다.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 한결같이 ‘발언이 필요한 곳’을 대상화 해 온 그녀다. 결국 미군기지가 세워진 현재를 중심으로, 오키나와학살을 비롯한 참혹한 과거사로 들어가게 되었다. 군사기지가 늘비한 풍경 안에 감춰진 전쟁과 학살의 깊은 상처 속으로.
“살아남은 오키나와 주민들의 증언을 통해 변방의 섬인 오키나와의 역사를, 가족이 가족을 죽여야 했던 대학살의 이야기를 들었다. 학살터를 비롯한 현장들을 다녔고, 오키나와 학살도를 보았다. 지역 사진가들이 남겨놓은 당시의 기록들을 보면서 사진이 들려주는 증언을 들었다. 그러자 아름다운 관광섬으로서 눈앞에 펼쳐진 오키나와의 ‘지금’ 풍경이 전혀 다른 느낌으로 굴절되었다.”
실재로는 바닷물 속에서 헤엄을 치며 노는 중인 아이를 프레임에 담아 셔터를 누른 것인데, 정서적으로는 그 바다로 사라졌을지 모를 누군가를 찍고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평이한 풍경들이 분절되거나 구부러지면서 그 풍경 안에 내재되어있던 불안이 함께 찍혔다.
한금선의 지난 전시는 우즈벡의 고려인들에 관한 사진 <째르빼니>였다. 당시 그녀는, 근현대사의 아픈 기억들을 지닌 채 살아가는 고려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온 몸으로 들어서 온 몸이 아팠다”고 했다. 그때의 통증이 고려인들의 집과 생활도구 등의 사물에 투영되었다면, 이번에는 사진가 한금선의 통각이 풍경에 개입해 ‘한금선의 오키나와’인 <백합이 피었다>를 이루었다. 빛과 색감, 구도 등 물리적으로 아름다우면서, 그러나 ‘발언’하는. 그리하여 보는 이를 동조케 하는 바로 그 ‘한금선’의 사진이다.
5년 만에 열리는 이번 개인전은 10월 16일부터 사진위주 류가헌에서다. ■ 류가헌
INTERVIEW _ 사진가 한금선의 <백합이 피었다>
사진의 제목 <백합이 피었다>는 어떻게 연유한 것인가?
작업을 정리할 때면, 그 장소나 주제와 관련된 음악을 많이 듣는다. 그 정서 속에서 어떤 단서나 키워드를 얻기 위해서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오키나와 민속음악들을 듣는데, 그 중 한 곡에 유달리 울림이 있었다. 찾아보니 이런 가사였다.
“붉은 데이고꽃가 피면 슬픈 일이 생긴다. 그 슬픔이 지나간 자리에 흰 백합이 핀다.”
마침, 오키나와를 다니던 중에 ‘저 꽃이 저기 왜 있지?’ 하는 느낌 때문에 백합꽃을 찍은 사진이 있었다. 공간과 어울리지 않는 생경감이 시선을 끌었던 것인데, 일반에게는 관광지로만 알려진 오키나와라는 공간의 이미지를 낯설게 흔든다는 점에서 백합이라는 상징이 이 사진들과 맞다는 생각을 했다. 과거시제이면서 현재성을 지녔기에 <백합이 피었다>라는 문장을 썼다.
많은 곳을 가지만 그곳들을 다 하나의 사진 작업으로 묶진 않는다. 왜 오키나와인가?
오키나와는 모두 세 번 방문했다. 세 번의 방문에서 점층법처럼 오키나와에 대한 이해와 친밀도가 생겼다. 왜 오키나와인가를 말하기 위해서는, 그 세 개의 층을 먼저 설명해야 한다.
2015년 오키나와 사키마미술관(SAKIMA MUSEUM)의 기획전시 <기억의 초상>에 초대받아서 오키나와를 처음 방문했다. 2차 대전 이후에 전쟁의 상흔이나 기억에 관한 주제전이었고 내가 작업한 <째르빼니_고려인>으로 참여케 되었다. 갈 때만 해도 그저 일본의 한 현으로만 생각했을 뿐, 오키나와의 역사를 모르고 갔다. 전시 참여차 간 것이라 작은 카메라 하나만 들고 갔다. 그런데 오키나와의 풍경이 낯설고 기괴했다. 일정 내내 비가 많이 내렸고, 주로 차로 이동했는데 일본의 제주도라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관광지로 알려진 해변 풍경 곳곳에 미군기지들의 높은 장벽이 해안선처럼 이어졌다. 시각적으로 또 다른 세계 하나가 더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진가라면 누구나 그 시각적 코드에 반응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현재의 미군기지들을 통해 오키나와학살을 비롯한 참혹한 과거사를 알게 되었다.
같은 해 연말 오키나와 사진가의 전시를 보기 위해 방문했다. 이때는 촬영을 위한 카메라를 가지고 갔다. 마침 전시가 열리는 곳이 오키나와의 근대사에서 가장 강렬한 평화투쟁으로 꼽히는 ‘코자폭동(KOZA)’이 있었던 현장이었다. 70대 노인들이 기록이자 증거로서 사진을 통해 오키나와의 아픈 과거사를 보여주었다. 그런 노장 사진가들의 모습에서 오키나와의 현재를 보았고, ‘사진이 여기서는 말을 하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비록 단면이지만, 오늘의 오키나와라는 구체적인 단면 속으로 가까이 갈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오키나와는 그냥 슬프기만 한 섬이 아니었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상처에 머물지 않았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평화를 찾아서’ 행동하고 있었다.
두 번의 방문을 통해 과거의 역사에서 현재로 오키나와라는 시공간을 만났다면, 세 번째는 그 공간적 배경에 사진가로서 개입하는 시간이었다. 11명의 후배들과 워크숍을 갔고, 학살터를 비롯한 상징적인 공간들을 함께 다녔다. 동시에, 사진가로서 ‘오키나와를 찍었다’.
사진가 한금선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여성 다큐멘터리사진가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런데 ‘오키나와를 찍었다’고 하지만, 사진 속에 ‘다큐멘터리의 방식으로’ 평화를 찾아서 행동하는 오키나와 사람들의 ‘현장사진’과 같은 사진은 없다.
다큐멘터리사진가로 분류되지만, 나는 처음부터 즉자적인 것을 찍지 않았다. 초기작인 집시(집시, 바람새, 바람꽃)나 요양원(꽃무늬 몸뻬, 막막한 평화) 사진들을 봐도, 그 안에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구체적인 사건은 담겨있지 않다. 대상에 대해 사회가 바라보는 편견의 반대 모습을 포착하는데 주력했던 것이 초기 사진이라면, 일본에서의 ‘쓰나미’ 사진 작업을 전후로 내 사진은 변화를 맞는다. 쓰나미가 다 훑고 지나간 거대한 폐허를 마주 하고는, 한동안은 아무 것도 찍지 못했다. 여러 날을 배회만 하다가, 어느 순간 해변 풀숲에서 안방의 흔적을 보았다. 그때 이 공간을 찍지만, 저 너머의 시간을 찍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지 않은 무엇을 찍어야 하는 것이다. 찍을 수만 있다면, 그것이 ‘현장사진’보다 더 큰 웅변력을 지닐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장소는 거긴데, 그 장소가 품고 있는 어느 시점의 시간을 찍는 일이 가능한가?
오키나와 사진 속의 아이는 사실 바닷물 속에서 헤엄을 치며 노는 중이다. 그것이 그 장소의 공간성이자 현재성이다. 바라다 보이는 대상의 현실의 이미지를 찍고 있었지만, 정서적으로는 다른 시간대에 집중했다. 아이를 찍으면서, 저 바다로 사라졌을지 모를 누군가를 찍고 있었다. 그러자 파랑은 더 무섭게 짙푸른 파랑이 되었고, 분홍은 어리어리하게 흐려졌다.
구체적인 피사체를 찍었음에도 모호하고, 그 대상이 실제로는 지니고 있지 않은 불안이 사진 속에 가득하다. 관광지로서의 이미지만이 넘쳐나는 오키나와의 이미지를 뒤흔든다.
빗방울을 필터처럼 사이에 두고 찍거나 상체를 자르는 등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내 멋대로’ 찍었다. 그것은 오키나와가 나를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흔들리자, 견고하던 현실의 공간이 모호하게 비틀리면서 그 공간에 내재된 불안이 함께 찍혔다. 그것이 내가 찍고 싶었던 ‘오키나와’다.
오키나와에 대한 사진가 한금선의 통각이 현재의 풍경에 개입함으로써, 그 사건과 장소의 기억을 사진 속에 되살려낸 것이라고 정의하면 되나?
<째르뻬니_고려인> 작업 때의 일이다. 고려인들을 만나 그들이 살아 온 이야기를 듣는데, 그 사연들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이야기를 온 몸으로 들어서, 온 몸이 아팠다. 어쩌면 사진가이기 이전에, 내가 그냥 한 사람으로서 그런 통각이 유난히 발달해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아프고 나자, 사물과 풍경이 달리 보였다. 맞다. 사건과 장소의 기억을 찍는 것이다.
<째르뻬니 고려인>, <백합이 피었다> 모두 서술이나 서사, 사건의 팩트 보다는 일종의 ‘시적 환기’를 이루는 느낌이다.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감성’이다. 서술이나 서사, 뉴스와 팩트 등은 사람의 인식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다. 그러나 인식은 그다지 실천적이거나 행동적이지 못하다. 감성을 움직이게 하면 결국 그 사람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내 사진을 통해 ‘째르빼니(괜찮아)’란 단어를, 그렇게 말하지 않고는 살아낼 수 없었던 사람들을 기억하게 된다면, 그것으로 사진의 오랜 역할에 복무했다는 작은 자긍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은 <째르빼니_고려인> 때 했던 말이다. <백합이 피었다> 전시의도도 이와 같은지.
그 말 끝에 했던 말이 ‘그것으로 족하다’였다. 이제는 바람이 조금 더 생겼다. 사진을 본 사람들이 <백합이 피었다>를 통해 오키나와에 대한 시각적 눈이 떠진다면, 제주에서도 그러한 시각적 눈이 떠질 것이다. 오키나와는 먼 남의 나라의 먼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우리의 이야기기도 하다. 저 곳의 백합이 오늘 이곳에도 피어나기를 바란다.
- 사진가 한금선의 구기동 작업실에서 <백합이 피었다> 사진을 앞에 두고, 작가와 류가헌 박미경이 마주 앉아 묻고 답했다. 2018.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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