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잔치 The Feast of Childhood 童年的派对
2010.03.27 ▶ 2010.05.04
2010.03.27 ▶ 2010.05.04
최경선
Go_home Oil on canvas, 115x115cm, 2009
최경선
38_years_old Oil on canvas, 115x115cm, 2009
최경선
Arrive soon oil on canvas, 160x140cm, 2009
최경선
Arrive_soon(6) oil on canvas, 110x260cm, 2009
최경선
Arrive_soon(7) oil on canvas, 110x260cm, 2009
최경선
전시전경 oil on canvas, 2009
기억의 집적과 사적 역사
독일 서부 울름(Ulm) 시의 유명한 수도원 비블링겐(Wiblingen)에는 아주 이채로운 조각상이 있다. 역사의 본질에 관한 명찰이 잘 드러나는 바로크 시대의 조각상이다. 이 조각상에 대해 미학자 폴 리쾨르(Paul Ricoeur)는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그 수도원의 도서관의 아주 특별한 장소에 최고의 바로크 조각상이 있다. 그것은 역사가 두 개로 병치된 형상이다. 전면에 있는 형상은 날개를 달고 있는 신 크로노스(Kronos)인데, 이마에 화관을 두른 노인의 형상이다. 그리고 그의 왼손은 커다란 책을 들고 있으며 오른손은 한 페이지를 찢어버리려고 한다. 그 뒤 편에는 역사 그 자체의 인물상이 크로노스의 위에서 근엄하고 날카롭게 전면을 응시하고 있다. 한발은 풍요의 뿔(horn of plenty)을 넘어뜨리려 하며 넘어진 그 뿔로 금은보화가 폭포처럼 쏟아진다. 이는 요동(搖動)의 상징이겠다. 또 그의 왼손은 신의 섭리(the act of god)를 진단한다. 반면에 오른손은 책과 잉크 병, 그리고 첨필과 같은 역사의 도구를 진열시킨다.” 리쾨르가 묘사한대로, 인간의 역사는 풍요를 얻기 위해 야기될 수밖에 없었던 요동과 신의 행동, 즉 오묘한 우주의 질서를 헤아리며 얻으려 했던 마음의 평정이 서로 자웅을 겨루는 결투의 기록이다. 한 개인의 역사 역시 외부적 풍요를 향한 욕구와 내면에서 솟는 마음의 평정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기나긴 변증법이라고 할 수 있다.
최경선은 지난날로부터 기억을 집적시키고 총체적 채색을 부여함으로써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재의 의미를 찾는다. 과거의 나는 현재의 나와 다르다. 과거의 모든 경험 과정과 현재의 갖가지 사정, 그리고 다가올 미래의 잠재적 운명이 함께 통일되어 움직인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가 무엇인지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무엇인지 알아가기 위한 여정의 발단으로서 과거의 기억을 현재 시간 속으로 끌어내는 방법은 매우 적절해 보인다. 최경선이 이러한 주제에 천착하는 이유에 대해서 살펴보자.
최경선의 2010년 전시의 타이틀은 ‘유년의 기억’이다. 유년은 세계에 방치되는 순간이다. 가장 여리고 부드러운 순이 흙에서 나오듯 찬란하고 경이롭다. 동시에 찬란한 대신 위태롭다. 유년은 나머지 반백 년의 삶을 결정짓는, 짧고도 위태로운 희열의 시절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움만 있을 수 없다. 공포와 슬픔도 같은 크기일 것이다. 욕망이 없는 것도 아니다. 더 없이 순수한 것만도 아니다. 다만 어느 재단도 없는 열린 감각으로 세계를 맞이할 뿐이다. 이 열린 감각은 ‘외부적 자극’과 ‘내면의 반응’의 집적에 의해 서서히 닫힌 꼴이 된다. 화가주체 최경선의 시야에 포착되거나 기억을 더듬어 끌어낸 현상들이 어떠한 유형을 갖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대략적으로 살피자면 사탕 연작, 인형의 연작, 축적된 가방, 워터링으로 최경선의 작품 발전사를대별시킬 수 있는데, 여기에서 지니는 이 상징들은 매우 다층적 의미를 포괄하면서 네러티브를 구축한다. 화려하게 채색된 막대사탕 혹은 무채색의 막대사탕은 세상에서 처음 받은 강렬한 외부의 자극이었을 것이다. 이는 나의 감각과 외부세계가 만났다는 사실에 대한 최초의 인식이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어머니의 체취나 젖의 촉감은 외부세계라고 할 수 없다. 이 시기의 어머니는 바로 자기의 동일화이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이 막대사탕은 시각적 자극보다 앞서서 혀끝과 코에 남는 원시성에 가깝다. 바로 외부세계에 대한 발단적 과정이다. 둘째, 인형은 맛을 넘어 내가 외부세계의 대상에 인격과 개성을 부여하는 최초의 판단과정을 의미한다. 외부세계를 판단하고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하는 유년기이다. 셋째, 축적된 가방은 위 둘과 다르게 내가 외부세계로부터 최초로 부여 받았던 의무에 해당한다. 이와 더불어 과도한 노동의 축적이나 물신에 대한 욕망, 세상의 짊과 같은 다의적 의미 읽기가 가능한 대목이다. 이에 대해서는 2009년에 완성되었던 단독 이미지의 가방 형상 시리즈가 잘 대변해준다.
‘38살’이라는 작품과 ‘곧 도착한다(Arrive Soon)’, ‘귀가’, ‘그의 모든 것(His Everything)’은 각각 단독의 가방 이미지이다. 그런데 이 각각의 가방 이미지에는 상징적 장치가 내재되어있다. “깨질 수 있음(fragile)”이라는 주의 표식이 붙고 그릇이 가득 쌓인 투명 가방(38살), 흘러내리는 용액이나 가방이 바닥에 내던져지는 찰나의 충격(각각 ‘곧 도착한다’와 ‘귀가’), 가득 찬 그릇 때문에 터질 듯이 팽창한 가방(‘그의 모든 것’)은 단순히 보고 지나치기 안타까울 정도의 수사적 매력을 발산한다. 인생의 무게, 책임 있는 현실을 영위하려는 강박이라는 무거운 주제는 하나의 단독상(單獨像)으로 수렴되어 시각주체의 화사한 이미지로 태어난다. 더욱이 가방의 이미지와 가방에 비추어진 그림자 이미지의 대조, 피와 눈물과 같은 고통을 연상시키는 액체 등 최경선의 모든 그림에는 쉽게 간과할 수 없는 해석의 의무성을 관객에게 부여한다. 이 해석의 의무성은 작가가 ‘워터링(Watering)’이라고 명명하는 일련의 작품군에 나타난다. “물”이라는 매체는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주제이다. 우리는 물에서 태어나고 물로 섭생하면서 성장하다 물이 기화되면서 퇴색해버린다. 물은 삶을 유지시키면서 정화시킨다. 어느 종교의 세례의식이나 도교에서 말하는 “상선약수(上善若水)”와 같은 오래된 옛 문구는 물의 중요성을 상기시키는 인간의 주제이다. 2007년에서 2008년 사이에 진행되었던 이 시리즈는 베이징에서의 7년이라는 삶, 최경선이 대륙에 와서 느끼고 얻으려 했던 삶의 다이너미즘(dynamism)에 대한 스스로의 찬가이며 중간적 점검이다. 정리하자면 최경선이 선택했던 모든 주제들은 현대 자본주의적 속성의 대상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 대상들에게 자기 삶, 개인의 사적 스토리와 기억을 적극적으로 체현시킨 극화된 양식(dramatized style)이라는 점이다.
이렇듯 최경선의 일관된 주제는 개인의 사적 기억과 스토리의 체현이지만 앞서 이야기한 풍요를 위한 요동과 신의 섭리의 체념이라는 양극 사이에서 진동하는 인간 삶의 보편성을 각인시킨다. 끝으로 최경선의 회화세계는 독일의 철학자 게오르그 짐멜이 말한 “인간의 이미지” 그 네 가지는 정확히 부합한다. 첫째 창조성(creativity), 둘째 파편성(fragmentation), 셋째 충돌(conflict), 넷째 인격(individuality)이다. 첫째, 인간은 각자 자기가 지닌 고유한 내부적 감관으로 외부세계를 내면에 적응시키면서 새로운 기준과 바라보는 방법을 개발하려 한다. 둘째, 그가 경험하는 세계는 통합적 전체가 아니라 파편화된 일부분일 뿐이다. 셋째, 모든 삶의 양식은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대상과의 모든 관계로부터 발생하지만, 그 본질에 언제나 충돌이 내재하게 된다. 넷째, 이렇듯 불완전한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를 재단하는 파편화된 존재이기 때문에 저마다 고유한 내면의 특질, 즉 인격이 발생한다. 최경선이 39년 동안 살아오면서 목도하고 작업했던 것은 어김 없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보편적인 주제였다. 최경선의 세계는 자신의 사적 역사라는 파편화된 단편이지만, 이 단편의 인격으로 세계와 충돌하면서 얻으려는 보편적 언어에 다름 아니다. 인간에 대한 애정, 자신에 대한 연민, 그리고 세계의 정화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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