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뒤샹: The Essential Duchamp
2018.12.22 ▶ 2019.04.07
2018.12.22 ▶ 2019.04.07
마르셀 뒤샹
샘 1950(1917년 원본의 복제품) 자기(磁器) 소변기 30.5x38.1x45.7cm Philadelphia Museum of Art 125th Anniversary Acquisition. Gift (by exchange) of Mrs. Herbert Cameron Morris 1998
마르셀 뒤샹
마르셀 뒤샹으로부터 혹은 마르셀 뒤샹에 의한 또는 에로즈 셀라비로부터 혹은 에로즈 셀라비에 의한(여행가방 속 상자) 1936-41 1964-65(내용물); 1966년 에디션 빨간색 가죽 여행가방 속 상자에 담긴 콜로타이프 릴리프 망판화 스크린프린트 오프셋 석판화 표면 코팅된 사진 종이에 인쇄 채색 및 직접 채색 마분지 투명 에세테이트 비닐 유리 도자 최소 12
마르셀 뒤샹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No. 2) 1912 캔버스 유채 147x89.2cm Philadelphia Museum of Art The Louise and Walter Arensberg Collection 1950
마르셀 뒤샹
마르셀 뒤샹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마르셀 뒤샹
마르셀 뒤샹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마르셀 뒤샹
마르셀 뒤샹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마르셀 뒤샹
마르셀 뒤샹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마르셀 뒤샹
마르셀 뒤샹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마르셀 뒤샹
마르셀 뒤샹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마르셀 뒤샹
마르셀 뒤샹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마르셀 뒤샹
마르셀 뒤샹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마르셀 뒤샹
마르셀 뒤샹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마르셀 뒤샹
마르셀 뒤샹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직무대리 박위진)은 미국 필라델피아미술관과 공동 주최로 마르셀 뒤샹의 삶과 예술을 집중 조명하는 전시를 12월 22일(토)부터 2019년 4월 7일(일)까지 MMCA 서울 1, 2 전시실에서 개최한다.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은 미술의 역사에 있어서 ‘창조’와 ‘해석’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바꾸며 새로운 예술의 정의를 만든 현대미술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뒤샹은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파리의 입체파 그룹에서 활동하며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No.2)>로 유명세를 치렀다. 25세에 회화와 결별하겠다는 결정을 내리고 <그녀의 독신자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 조차도>, 일명 <큰 유리>를 1912년부터 8년에 걸쳐 제작한다. 동시에 평범한 기성품을 예술적 맥락에 배치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레디메이드’개념을 만들어 예술의 정의를 뒤집었다. 1920~30년대는‘에로즈 셀라비(Rrose Sélavy)’라는 여성의 자아로 자신을 위장하며 고정된 성적 정체성을 허물었다. 뒤샹은 수많은 레디메이드의 작가로서 에로즈 셀라비를 유머러스하고 성적 함의가 가득한 언어 유희 작가로 활용했다.
뒤샹은 자신의 작품이 한 기관에 소장되기를 원해 작품의 복제, 전시, 소장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했고, 핵심 후원자였던 루이즈와 월터 아렌스버스 부부의 도움으로 필라델피아미술관에 다수를 기증했다. 이번 전시는 전 세계에서 뒤샹 작품을 가장 많이 보유중인 필라델피아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의 협업으로 회화, 레디메이드, 드로잉 등 150여점과 아카이브를 선보이며, 이 중 다수의 작품이 한국에서 처음 공개된다.
전시는 작가의 삶 여정에 따른 작품 변화를 총 4부로 나누어 소개한다. 1부에서는 작가가 청소년 시절부터 인상주의, 상징주의, 야수파 등 당시 프랑스의 화풍을 공부하며 제작했던 그림과 드로잉을 선보인다. 특히 뉴욕 아모리 쇼에 전시되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1912년 작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No.2)>가 포함된다.
2부에서는 작가가 미술작품은 눈으로 본 것, 즉 ‘망막적’인 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여겼던 뒤샹의 대표작 <큰 유리> 제작에 영향을 준 <초콜릿 분쇄기>, <통풍 피스톤> 등 관련 작업과 <자전거 바퀴>, <샘> 등 레디메이드 작품을 소개한다.
3부에서는 체스에 몰두하던 작가의 모습, ‘에로즈 셀라비’로 둔갑해 정체성에 질문을 던지는 작업, 그리고 미술과 공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광학적 실험을 했던 <로토릴리프(광학 원반)> 등을 선보인다. 특별히 뒤샹의 작품을 총망라한 미니어처 이동식 미술관 <여행가방속 상자>는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의 1941년 에디션과 필라델피아미술관 1966년 에디션을 함께 비교 감상할 수 있다.
마지막 4부는 세계 여러 곳에서 전시를 하던 뒤샹의 아카이브를 보여준다. 또한 마지막 작업으로 알려진 <에탕 도네>를 제작하며 남긴 스터디 작품도 공개된다. 필라델피아미술관에 영구 설치된 조각-건축물 <에탕 도네>와 소재의 특성상 이동이 어려운 <큰 유리>는 이번 전시에서 디지털 방식으로 구현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뒤샹의 삶과 작품에 영향을 준 사진작가 만 레이, 건축가 프레데릭 키슬러, 초현실주의 작가 앙드레 브르통,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을 갖은 영국 팝아트의 거장 리처드 해밀턴 등 다양한 예술가들과 생전 협업 모습도 만날 수 있다.
전시 도록에는 필라델피아미술관 큐레이터 매슈 애프런(Matthew Affron), 뒤샹 연구자 알렉산더 카우프만(Alexander Kauffman)이 참여해 뒤샹이 작품에 사용했던 개념 레디메이드, 정밀광학, 인프라씬 등을 다룬다. 제임스 존슨 스위니와 뒤샹과의 인터뷰(1946, 1955) 및‘창조적 행위’(1957) 등 뒤샹이 직접 쓴 글도 포함된다.
또한 전시실 앞 열린 공간에서 한 달 간 전시와 연계한 다양한 교육․문화프로그램이 이루어진다. 미술관이 마련한 기성품을 활용해 레디메이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레디메이드 워크숍>, 작품 카드로 자신만의 이야기가 담긴 갤러리를 구성하는 <마르셀 뒤샹 작품카드> 등 참여형 워크숍이 운영될 예정이다. 또한 예술적 정체성을 의상과 소품으로 표현하는 문화 프로그램 <마르셀 뒤샹 그리고/혹은 에로즈 셀라비> 상시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겨울방학 기간인 1~2월은 큐레이터 토크와 뒤샹 연구자들을 초청해 학술 대담회도 개최한다.
한편 배우 이서진이 《마르셀 뒤샹》전 특별 홍보대사를 맡았다. 직접 가이드 투어를 하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마르셀 뒤샹의 삶과 작품 설명을 들려준다. 관람객에게 깊은 감동을 전할 가이드 투어는 국립현대미술관 모바일 앱(App)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자세한 정보는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http://www.mmca.go.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부. 화가의 삶
제1부에서는 1902년 여름 청소년 시절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던 어린 뒤샹의 작품들이 소개된다. 당시 프랑스에서 일어나고 있던 혁신적인 미술 양식들 사이를 오가며 8년 동안 작품을 생산했고, 파리의 입체파 그룹과 독창적인 교류를 했다. 이때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No. 2>를 포함한 많은 핵심 작품들이 생산된다. 이 그림은 아모리 쇼에 전시되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913년 미국 관객에게 현대미술을 각인시킨 이 기념비적인 전시로, 뒤샹은 이미 뉴욕에서 유명인사가 되었다.
2부. “‘예술적’이지 않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제2부에서는 뒤샹이 회화 기법과 화가라는 직업을 포기하고, 예술가로서 작업하는 새로운 방식을 창안했던 1912년 가을 이후의 시기를 조명한다. 작가는 기념비적인 구조물 <그녀의 독신남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 조차도>(큰 유리)의 개념을 그리기 시작했다. 1913년에는 <자전거 바퀴>를 만들었는데, 이는 평범한 기성품으로 만든 예술품, 즉 레디메이드의 첫 번째 작품에 해당한다. 레디메이드는 그 무렵 뒤샹이 자신의 노트에 쓴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예술적’이지 않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1915년 여름, 뒤샹은 전쟁에 휩싸인 파리를 떠나 뉴욕으로 향했고, 수집가 루이스와 월터 아렌스버그 부부 주변에 모인 재능 있는 예술가, 작가, 지식인 무리에 합류했다. 아렌스버그 부부는 이후 뒤샹의 주요한 후원자가 되었다. 1917년, 뒤샹이 <샘>이라는 제목을 붙인 논쟁적인 오브제가 전시회에 출품되면서 레디메이드라는 개념과 그것의 의미에 대한 대중적 논의가 촉발했다.
“나에게는 항상 나를 벗어나야 할 필요가 있었다.”- 마르셀 뒤샹, 1967년 삐에르 까반느와의 대화 중에서
3부. 에로즈 셀라비
제3부에서는 1920년대와 1930년대 뒤샹이 파리로 다시 돌아와 작업하던 시기를 살펴본다. 이때 뒤샹은 미술에서 체스로 직업을 바꾸겠다는 생각을 했고, 이후 근 20년간 직업정신을 갖고 체스 활동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동시에 에로즈 셀라비라는 여성 자아를 만들어 새로운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회전하는 광학기계로 아이디어를 표현하면서, 그 영역이 미술에서 공학 및 기구 쪽으로 한층 더 옮겨가기도 했다. 또한, 작품의 미니어처 복제판을 담은 이동식 미술관을 선보여 예술에 대한 급진적 문제 제기를 이어나갔다. 그가 만든 이동식 미술관은 <여행가방 속 상자>라는 제목으로 1941년 여름 이번에는 2차 세계대전을 피해 파리를 떠나 다시 뉴욕으로 갔을 때 뒤샹의 망명자 처지를 상징하게 되었다.
“에로즈 셀라비는 1920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유태인 이름일까? 성전환을 한 것이다. 내 개인적 취향에는 로즈는 가장 ‘추한(醜漢)’이고 셀라비는 ‘세라비(C’est la vie, 그것은 인생)’의 단순 말장난이다.” - 마르셀 뒤샹, 장 크로티와 쉬잔 뒤샹에게 보낸 1920년 10월 20일 자 편지 중에서
4부. 우리 욕망의 여인
제4부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아방가르드 예술의 원로로 널리 알려져 세계 곳곳을 다니며 작품을 선보이던 시기를 조명한다. 여러 미술관의 그의 작품을 소장했고, 특히 필라델피아 미술관은 1950년 루이즈와 월터 아렌스버그 부부가 기증한 현대 미술 컬렉션의 일부로 뒤샹의 전작 중 다수를 입수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뒤샹이 기본적으로는 은퇴한 상태이며 그의 예술에 대한 이야기도 끝났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런 유명한 예술가로서 공인의 이미지가 널리 퍼지는 동안 뒤샹은 20년에 걸쳐 아무도 모르게 최후의 예술적 선언에 힘을 쏟았다. 1968년 그가 사망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의 방 만한 크기의 디오라마 작품 <에탕 도네>가 공개되자, 그가 말년에 남긴 작업의 통일성이 확연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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