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신과 최성숙이 함께한 40년 : 예술과 일상전

2018.10.26 ▶ 2019.03.20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문신길 147 (추산동, 문신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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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시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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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성숙

    브라운 슈바이크의 크리스마스 장날 1978년, 화선지, 먹, 51.5×39.5cm, 작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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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성숙

    추산동의 가을 1985, 황화선지, 동양화 채색, 52x149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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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성숙

    사랑 1987년, 헝겊에 먹, 동양화 채색, 94.2x78.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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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성숙

    강강수월래 1987년, 황화선지, 먹, 동양화채색, 74×145cm, 작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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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성숙

    지리산의 겨울밤 1998년, 캔버스, 먹, 동양화채색, 아크릴릭, 60×90.5cm, 작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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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성숙

    동양화식 호랑이 2008년, 캔버스, 아크릴릭, 46,7×55.3cm, 작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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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신

    어부 1946년, 나무, 151×41×4cm,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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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신

    무제 1959, 유화, 60.5x3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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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신

    무제 1980년, 프랑스모래 아크릴릭, 40x30cm,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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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신

    무제 1986, 흑단, 36x25x11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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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신

    비상 1987, 브론즈, 50x30x2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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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신

    개미 1989년, 브론즈, 127×23×15cm,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소장

  • Press Release

    문신과 최성숙이 함께한 40년 : 예술과 일상展
    문신과 최성숙의 만남 40년을 기념하여 문신미술관에서 회고전 개최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에서는 오는 10월 26일부터 2019년 3월 20일까지 문신·최성숙 부부의 회고전 「문신과 최성숙이 함께한 40년:예술과 일상」展을 개최한다.

    올해는 작가 최성숙과 문신이 만난 지 40년이 되는 해이다. 두 작가는 1978년 파리에서 처음 만났고 1979년 서울 반포의 한 아파트에서 티셔츠 차림으로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다. 이 만남은 서로의 예술에 대한 존중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으며 큰 업적을 남겼다. 문신 최성숙 부부는 1981년 문신의 고향 추산동 언덕에 정착하였으며 문신이 20대부터 염원해 오던 문신미술관 건립을 현실화 하였다. 14년에 걸친 세월을 통해 이루어진 문신미술관 개관은 문신이 최성숙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영원히 그의 꿈으로만 남아있었을 것이다.

    문신미술관에서는 이 두 작가가 이룩한 예술업적을 조명하기 위한 기획전을 마련했다. 이번 전시는 문신과 최성숙의 160여점의 작품을 통하여 두 작가가 평생을 이루어온 예술세계를 압축하여 보여준다. 전시작품은 최성숙의 1978년부터 2018년 까지 회화 80여점, 문신의 1946년부터 1990년대 초까지의 유화, 조각, 채화, 드로잉 80여점을 선보인다. 최성숙의 <브라운슈바이크의 크리스마스 장날>(1978년), <신의 요정 :녹턴&카프리치오>연작, <지리산의 겨울밤>(1998년), 문신의 <어부>(1946), <태평로에서>(1959년), <개미>(1989년), <비상>연작 등 두 작가의 대표작품을 비롯 문신의 미공개 채화, 드로잉 40여점이 전시된다.

    부부는 서로 닮아가기 마련인데 문신과 최성숙은 정신의 영역에서 서로 교감했으며 작품에서는 서로 뚜렷이 구별되는 독창적인 세계를 가졌다. 최성숙은 전통 한국화의 탄탄한 화법을 기반으로 한 전위적인 정신으로 1970년대 중반부터 작품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최성숙의 회화는 어떤 틀에도 얽매이지 않는 가장 자유롭고 창의적인 것이다. 작가는 한국과 외국의 아름다운 풍물, 주변의 소소한 일상, 십이지 신을 작품의 소재로 택했으며 예리한 자연관찰의 과정을 거친 뒤 최성숙만의 고유한 조형언어로 재구성하였다. 최성숙의 작품에는 자연에 대한 예찬과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사랑이 담겨있으며 생명의 리듬과 에너지가 넘친다. 최성숙의 자유로운 사고와 선과 점, 조형의 기본요소에서부터 비롯된 회화는 소박하고, 아름다우며 동화처럼 순수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또한 장르와 기법에 있어 경계가 없고, 표현에 있어 대담함과 섬세함을 고루 갖추고 있어 보는 이에게 즐거운 경험에 빠져들게 하여 행복감을 전해준다.

    문신은 조각과 회화 두 영역에서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이루었다. 1940~1950년대 문신은 아카데믹한 전통 구상미술에서 벗어나 회화 그 자체의 순수성을 지향하는 모더니즘 미술을 추구하였다. 이 시기 회화에서 일상적인 주제를 소박하고 담담하게 표현했지만, 파격적인 화면구성과 자유분방한 선과 터치로 감각적인 작품을 보여주었다. 문신은 회화에서 전통적인 색채를 부정하며 주관에 근거한 문신만의 새로운 화풍을 전개했다. 1961년 파리 체류 이후 그의 예술적 관심은 조각으로 옮겨갔다. 그가 1968년부터 일관되게 추구한 시메트리 구조의 추상 조각은 자연의 생성원리를 담고 있으며 문신만의 고유한 독창성을 드러내었다. 그는 견고한 재료로 긴 제작과정을 인내하며 하나하나의 조각을 한 생명을 잉태하듯 제작하였다. 그 결과 작품에서 강한 생명력이 표출되었다. 문신의 작품은 ‘생(生)’에 집중하고 있으며 이러한 미의식은 시대를 초월한 것이며 그 세계는 자연과 온 우주를 아우르는 폭넓은 것이다.

    문신에겐 일상이 곧 예술이었으며 최성숙은 일상을 예술로 탈바꿈시켰다. 그들의 작품 속엔 화합, 사랑, 생명의 리듬이 담겨있다. 두 작가는 순수하였으며 예술 외의 것에 목적을 두지 않는 삶을 살았다.

    최성숙은 1946년 경기도 부평에서 출생하여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및 동 대학 교육대학원 미술교육과를 졸업하였으며 서독 괴팅겐 대학과 아카데미 그랑 쇼미엘을 수학하였고 14회의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문신은 1923년 일본 규슈에서 출생하였으며 한국에서 유년기를 보낸 후 일본 동경미술학교 졸업 후 국내에서 10여회의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1961년 도불하여 파리체류 시절 150회의 전시회에 초대받았으며 1990~1992년 프랑스, 헝가리, 유고슬라비아에서 동·서유럽 회고전에 초대받았다.

    전시에 대한 자세한 문의는 문신미술관(☎ 225-7186)으로 하면 된다.



    문신 예술 50년의 역사
    박효진(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학예연구사)

    ‘작품 속에 생활이 있고 생활 속에 작업만이 있을 뿐’ 이라고 말한 문신은 오직 예술만을 위한 삶을 살아왔다.

    소년 문신은 마산의 바닷가에서 고독을 벗 삼았으며 십대시절 피카소의 작품을 화집으로 만나 화가의 꿈을 키웠다. 16세에 밀항선을 타고 동경으로 떠났던 동경유학시절(1938-1945), 한국 활동기(1945-1960), 조각가로 명성을 높였던 파리체류기(1961-1980)에 이어 영구귀국 후(1980-1995) 미술관 건립과 작품 활동에 매진하며 50년이 넘는 긴 시간을 보냈다. 이 시간 속에 겪은 역경의 삶을 예술을 위한 밑거름으로 만들 줄 아는 지혜가 있었으며 도전정신을 바탕으로 끈기와 열정으로 그가 이루고자 하는 예술을 지속하였기에 오늘의 문신이 있다.

    또 하나 지금의 문신을 있게 한 것은 화가이자 아내인 최성숙과의 만남이다. 1978년 파리에서 문신과 최성숙은 처음 만났고 1979년 5월 서울 반포의 한 아파트에서 티셔츠 차림으로 아주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다. 이후 문신은 귀국하여 72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최성숙과 함께 하였고 최성숙은 그의 예술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한 화가이자 동반자였다. 문신은 1981년 최성숙과 전망 좋은 고향 추산동 언덕에 정착하였으며 그곳에 문신이 평생을 염원해 오던 문신미술관 건립을 현실화하였다. 14년에 걸친 건립 끝에 이루어진 문신미술관 개관은 최성숙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영원히 문신의 꿈으로만 남아있었을 것이다.

    올해는 문신과 최성숙이 만난 지 40년이 되는 해이다. 이들 부부가 마산 합포구에 남긴 거대한 공동의 작품 문신미술관에서 두 작가가 평생에 걸쳐 이룬 예술의 업적을 살펴보기 위한 회고전 「문신과 최성숙이 함께한 40년 : 예술과 일상」전을 마련했다. 그리고 그 특별전을 기념하여 두 작가의 작품집을 각각 발간중에 있다.

    동경의 일본미술학교 졸업 후 해방과 함께 귀국한 문신은 1960년까지 마산, 서울, 부산 등지에서 10여 차례의 개인전을 개최하며 화가로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벌였다. 그는 아카데믹한 전통 구상미술에서 벗어나 회화 그 자체의 순수성을 지향하는 모더니즘 미술을 추구하였다. 회화에서 전통적인 색채 또는 고유색을 부정하며 대담한 구성과 주관에 근거한 문신만의 새로운 화풍을 대담하게 전개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표현주의, 인상주의, 입체주의 등의 유럽화파들을 실험하여 자기화 했으며 주변 가까이의 일상적인 주제를 소박하고 담담하게 표현했지만 파격적인 화면구성과 자유분방한 선과 터치로 감각적인 회화를 보여주었다. 1957년 그는 한묵, 유영국, 박고석 등과 기성미술에 도전하며 전위적인 정신으로 만든 모던아트협회에 참여하여 <암소>(1957년)등을 제작하며지적인 조형논리를 펼쳐보였다. 문신은 한국 1세대 모더니스트로서 왕성하게 활동하였으나 내면에 채워지지 않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열망으로 1961년 프랑스로 떠나게 된다.

    문신의 작품세계는 프랑스 체류부터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그는 프랑스 체류 직후부터 추상회화와 추상조각 창작을 시작했다. 문신은 구상회화에서 돋보였던 표면의 마띠에르와 자유분방한 선적 표현을 추상화에 적극적으로 도입하였으며 그가 고성 복구 일을 통해 몸소 체험으로 터득한 건축의 제작방식과 구조를 작품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입체작품을 시작하게 된다. 1961년부터 문신은 <인간이 살 수 있는 조각>이라 불린 입체작업을 시작하였으며 1967년 서울 신세계 화랑전시회에서 철선과 석고, 폴리에스테르로 만든 다양한 형태의 추상조각을 실험하여 내부에 색 전구를 달아 불을 밝힌 플라스틱 아트(Plastic art), 즉 종합예술 작품을 제작함으로서 조각의 개념을 확장하였다.

    이후 1967년 파리에 다시 정착하면서 조각, 드로잉, 채화 등 본격적으로 왕성한 창작을 하면서 원과 직선, 그리고 곡선을 브론즈, 폴리에스테르, 석고, 흑단, 참나무 등의 단단한 목재로 입체화 시키거나 평면 속에서 표현한다. 문신은 원과 선은 기하학적인 형태이지만 우리 주변과 전통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으며 온 우주를 이루는 기본형태가 된다고 생각했으며 작품속의 곡선은 완만한 한국의 산들이 그러내는 곡선이라고 말했다. 그는 좌우대칭(Symmetry), 즉 안정된 것을 좋아했으며 그것이 곧 자연이라고 생각했다. 1968년 시메트리 구조의 작품을 시작하게 된 후 1995년까지 일관성 있게 작품에서 이 구조를 추구하게 되었으며 문신만의 고유한 독창성을 드러내는 양식이 되었다. 문신의 시메트리 작품은 화합, 평화, 조화의 성격을 담고 있어 개성적이면서도 여러 경향의 작품과도 잘 어우러졌다. 그의 작품은 자연의 생성 원리를 담고 있으며 생명의 본질, 더 나아가 우주를 이야기 한다.

    파리에서 1970년부터 눈에 띄게 활발한 문신의 작품 활동이 시작된다. 그 배경엔 작품 <태양의 인간>이 있다. 문신은 남 프랑스 해안도시 바카레스(Port-Barcarès) 해안에 반구의 반복적 구축으로 이루어진 13m 토템조각 <태양의 인간>을 영구적으로 세웠다. 이 작품이 파리화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1972년부터 파리에서 개최되는 ‘살롱 드메’를 비롯한 주요 살롱전에 해마다 초대를 받게 된다. 문신은 파리체류 시절 150여 회의 초대전과 개인전에 초대받았으며 귀국하여 미술관 건립에 몰두하며 서울올림픽기념 예술올림피아드에 참여하여 25미터 대표작 <올림픽 1988>을 세웠다. 또한 1990~1992년 프랑스, 헝가리, 유고슬라비아의 동·서유럽회고전에 초대받아 문신의 예술을 세계 각국에 알렸다.

    문신이 50여년의 예술가의 삶에서 추구한 작품세계의 폭은 아주 넓다. 회화에서 시작하여 부조조각, 종합예술 플라스틱 아트, 조각, 드로잉, 채화, 드로잉, 건축에 이르기 까지 광범위 하다. 평론가 오광수는 문신을 어느 한 영역 속에 가두어 두는 것은 오히려 그의 조형적 세계의 폭을 좁히는 결과일 뿐, 그의 전체적 작업 내역과 과정을 이해하는데 방해가 될 뿐이라고 말했다. 화가가든지 조각가라든지 하는 종래의 관념에서 벗어나 폭넓은 조형영역을 다루는 조형 작가라는 명칭이 더욱 적절하다고 말했듯 문신의 조형예술의 폭은 아주 넓으며 국내외의 많은 평론가와 학자들이 연구에도 불구하고 아직 연구되지 않는 부분은 후학의 과제로 남아있다. 인간의 유한한 삶은 끝이 있지만 예술가가 남긴 업적은 영원하다. 문신은 문신미술관과 작품을 우리에게 남겼고 그의 예술을 영원히 우리 가슴에 새기고 있다.


    최성숙의 화업 40년 : 흥의 미학
    김영호 (미술평론가, 중앙대교수)

    “흥이 나와야 그리지!”

    화가 최성숙이 작품 제작 동기를 드러내는 말이다. 주지하듯 흥(興)이란 재미나 즐거움을 일어나게 하는 역동적 감정이다. 춤이나 노래 따위가 흥을 돋우는 매개로 알려져 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재미나 즐거움을 산출해 내는 흥은 인간의 잠재적 능력을 일깨워 예상 밖의 성과를 일궈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흥이 고조에 달했을 때 종교적 황홀감이라 할 수 있는 신명(神明)이 생기며 이 때 초월적 능력이 통하게 된다는 것이다. 흥의 미학은 우리민족이 누려온 문화적 자산이기도 하다. 고구려의 동맹(東盟), 동예의 무천(舞天)에서 보듯 우리민족은 추수감사제 기간 이면 밤낮으로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는 흥의 민족이었다. 고려시대의 기마격구(騎馬擊毬)나 장치기 그리고 줄다리기 같은 전래 놀이 역시 흥의 의식을 동반한 것이었다. 조선에 들어와 남존여비의 유교 풍조와 당쟁 그리고 수없는 외침과 국난으로 인해 한(恨)이 많은 민족으로 불리게 되었다. 하지만 역사의 경계를 넘나들며 작동해 온 집단적 흥의 기질은 근대 이후에 와서도 맥을 유지하고 있다. 2002 월드컵에서 보여준 붉은 악마들의 역동적인 에너지는 우리 민족의 유전자 속에 지속되어온 흥과 신명의 발흥이었다.

    화가 최성숙의 경우 창작의 원천으로 믿는 흥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작가는 여행과 자연의 관찰에서 직접적인 동인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나의 의견을 보태자면 작가의 자유분방한 성격과 타고난 상상력이 흥을 돋우는 기질적 바탕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유년시절 부터 좋아했다는 무용과 음악이 작가의 잠재의식 속에 자리 잡아 흥에 쉽게 감응하는 성격이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행복했던 시절, 그녀와 함께 했던 인물들과의 추억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원천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최성숙의 작품에 흥이 오르면 새가 노래하고 바람이 춤을 춘다. 낙엽과 눈발이 무지개를 재촉하며 허공을 나른다.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조충(鳥蟲)과 화초, 그리고 국내외 풍경과 의인화 된 십이지신(十二支神)의 동물들은 사랑과 추억의 파편들을 화폭 위로 토해내는 흥의 전령들이다. 그녀가 나섰던 여행의 기억은 흥을 일으키는 노래요 춤이자 흥의 결실인 그림으로 나타난다. 여행을 통해 지나온 삶의 추억에 상상력을 더해 그림의 씨앗을 잉태하고 그것을 신명의 형식으로 숙성시키면서 작품의 결실을 거두는 셈이다.

    관점을 달리해 보면 흥에 기반하는 최성숙의 그림은 마음을 수행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이른바 흥을 통해 현실의 비애와 괴로움을 풀어내는 것이다. 무녀(巫女)가 노래하고 춤을 추면서 흥을 돋우어 신명을 체험하고 마침내 일상계와 초월계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듯 작가는 그림을 통해 세상과 교류하고 애환(哀歡)을 추억하면서 다시 삶의 에너지로 전환하는 일을 업으로 삼아왔다. 이러한 작가의 태도는 흥취의 세계로 진입해 혼돈과 무질서의 상태로 스스로를 몰입시키고 신명의 차원에서 예술적 성취를 누리려 했던 낭만주의 예술가들의 태도와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 내력을 좀 더 살펴보기로 하자.

    흥의 개인사

    1978년 첫 개인전 이후 화력 40년을 맞은 노장 화백은 아직도 수줍게 말한다. “내 그림을 보면 가슴이 뛰어요. 웃기지 않아요? 난 그게 재미있어!” 그리고 말을 다시 잇는다. “50% 했나 싶어요. 지금까지 공부한 것 같아. 어제 본 풍경이 오늘 본 풍경과 다르니 할 일이 많아요. 얼마나 행복한 일이에요!” 작가의 수줍지만 거침없는 말에는 흥의 미학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신명의 길을 계속 걷겠다는 의지와 열정이 엿보인다. 이러한 고백의 구석 저편에는 자신이 만든 그림마다 추억과 상념이 자리 잡고 있으며, 그것이 오늘도 여전히 자신에서 울림의 공간으로 이어지고 작동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나는 그녀가 이러한 말을 거침없이 할 수 있는 이유를 두 가지로 떠올렸다. 조각가 문신의 아내로서 그녀가 실천했던 내조자로서의 역할을 완수한 후 그로부터 벗어나 비로소 자신의 세계를 온전히 찾으려는 자성(自省)이 그것이다. 또한 몇 년 전 자신을 괴롭혔던 병마를 마침내 극복하고 새롭게 펼쳐진 자신의 생을 찬미하려는 의지가 그것이다. 그렇다면 문신에 대한 의무로부터의 탈출 의지와, 고난 후 다시 찾은 새로운 삶에 대한 설래임이 내면에 잠들고 있던 예술창조의 흥과 결합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일까.

    최성숙은 금융업에 종사하던 부친과 서예가인 모친 사이에서 태어나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서울대 미대에 입학해 당대의 기라성 같은 화백들에게 배우며 화가로서의 꿈이 예견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운명은 남편과의 이른 사별로 특이하게 굴절되는 운명을 접하게 되었다. 이후 조각가 문신과의 인연은 그녀의 예술적 노정에 커다란 제동을 걸었다. 화가 최성숙은 노장 예술가의 아내가 된 것이다. “예술에 반해 결혼했지만 16년 동안 영감님 수발에다 성질부리는 걸 다 받아드렸지요. 이제 문신으로부터 탈출해도 좋아!” 이 말은 그동안 아내로서 충실했고 고인이 된 이후 문신예술 현양(顯揚) 사업에 몰입했던 자신에 대한 격려이자 이제 자신의 예술노정에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선언과도 같이 들린다. 하지만 그간의 시간을 돌아보면 자신이 일구어낸 예술적 성과도 적지 않았다. 문신의 커다란 그늘에 가려져 있었을 뿐이었다. 그녀가 일구어낸 예술적 성취를 보면 당대 최고의 선배 화가들로서 이성자, 박래현, 천경자의 뒤를 잇는 후배 세대의 한사람으로 자리매김하는데 손색이 없을 것이다. 대학에서 습득한 고래의 전통 화법에 머물지 않고 독자적인 표현기법과 예술의지로 자기세계를 세운 작가라는 측면에서 그러한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화가 최성숙이 화가의 길을 들어선지 어언 40년이 되었다. 1978년 서울 신문회관에서 열었던 제1회 개인전을 기점으로 삼아 헤아려 본 세월이다. 작가는 이 전시회의 제명을 <겨울여행전>으로 붙였다. 전 해에 교통사고로 남편을 떠나보낸 후 33세의 나이에 나선 여행이었다. 이후 여행은 하나의 습관이 되었고 자연과 미물의 관찰에다 작가의 상상력을 더한 작품들을 탄생시키는 동기가 되었다. 첫 개인전 이후 본격화 된 작가의 화업 노정 40년을 주제별로 간추려 분류해 보면 1. 산수풍경 2. 조충과 정물 3. 십이지신으로 대별될 수 있다. <산수풍경> 시리즈는 대학에서 착실히 습득한 전통기법을 바탕으로 자연이나 풍물을 추상적 양식으로 그려낸 것이다. 이 때 추상적 양식이란 여행을 통해 현장에서 받은 감흥을 작업실에서 표현해 내는 방식을 의미한다. 그것은 일종의 의사자연(疑似自然)으로서 전통 화도에서 착실히 연마한 점과 선을 활용해 자연 혹은 풍물을 화면위에 조형한 것이다. 이 때 대상은 국내 산천뿐만 아니라 외국풍경에 이른다. <조충과 정물> 시리즈는 역시 작가가 자연과 일상에서 관찰한 나비와 사마귀 그리고 잠자리 등이 주를 이룬다. 추산동 연못에 봄빛을 받으며 서식하는 개구리와 근처 마당에서 키워낸 닭과 병아리를 그린 그림은 작가의 관찰과 몰입의 흥이 어우러지면서 완성된 수작이다. <십이지신> 시리즈는 작가가 어릴적 부터 배우고 익혔던 무용과 음악의 즐거움에 십이지 상징동물 형상을 연계시켜 그려낸 것이다. 동물을 의인화하고 희화해 묘사한 이 시리즈는 민족의 상징동물을 음악적 흥의 감성에 대비시켜 표현한 것이었다.

    화가 최성숙의 예술 노정 40년을 정리한 이상의 세 주제별 시리즈는 표현기법의 측면에서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산수풍경> 시리즈에서는 단면 화선지나 다면의 장지에 먹과 채색이 주가 되고 있으며 필요에 따라 족자 형식의 화면을 도입하기도 한다. 이후 1990년대에 들어서면 전통적 재료를 넘어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을 사용함으로서 재료와 형식의 경계를 벗어버리고 있다. 두 번째 <조충과 정물> 시리즈에서는 화선지 대신에 면직물의 일종인 소창(小氅)을 도입하기도 하고 아크릴 물감과 색연필을 사용해 화면 위에 다양한 질감의 울림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 모든 시리즈에서 작가가 사용하는 화법은 다양한데 그 중 백묘법(白描法)이 작가가 즐겨 쓰는 것이라 한다. 세 번째 <십이지신> 시리즈에서는 캔버스에 아크릴릭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아울러 유화 액자를 도입함으로서 동양화와 서양화의 경계를 허물어 버리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강렬한 색채 대비에 단순한 화면구성 그리고 액자의 면으로 확장되는 선들이 화면에 입체적인 긴장을 불러일으키면서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이러한 시기별 표현기법의 차이를 넘어 화가 최성숙의 작품을 둘러싸고 나타나는 독자적인 조형세계가 있다. 화면 전체에 포진되어 있는 점들이 그것인데 이 화면을 채우는 점들은 작업과정에서 작가의 흥을 돋구는 요소로 작동한다. 풍경 위에 무수히 찍힌 점들은 흩날리는 눈송이거나 빗방울이 되기도 하고 낙엽이거나 여름의 햇살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른바 그녀가 화면 위에 찍어내는 점들은 춘하추동의 기운을 가시적으로 표상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화면에 투명 커튼처럼 드리워지면서 계절의 변화를 시각으로 체감하게 하는 요소인 것이다. 그 너머로 펼쳐진 산하나 숲 그리고 그 속을 뛰노는 사슴 무리들과 온갖 새들 그리고 인간들의 모습은 앞서 말한 백묘법 뿐만 아니라 구륵법(鉤勒法), 몰골법(沒骨法), 갈필법(渴筆法) 등 대학 졸업 후 동양화가로서 오랜 시간을 익혀온 조형방식들을 자유롭게 구사하고 있다. 그녀의 독자적인 작품에는 선의 강약이나 굵기 또는 거칠고 메마름 따위의 변화, 색채의 농담과 대비 등의 전통적 표현 기법이 여전히 남아 숨 쉬고 있다.

    에필로그
    1978년 첫 개인전 이후 최성숙의 화력 40년은 <산수풍경>, <조충과 정물>, <십이지신> 시리즈로 분류될 수 있다. 이러한 주제들은 특정 시기와 관계없이 일련의 시리즈를 이루며 자유로운 형식으로 작가의 독자적 조형세계를 구축해 왔다.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거기서 올라오는 흥과 신명이 작가의 예술충동과 연계되어 독자적인 영역을 세울 수 있었다. 평론가 이구열 선생이 일찍이 정리한 것처럼 최성숙의 예술은 ‘기법상의 세련과 표현감성의 예민함 그리고 주제 전개의 파격적 자유로움’으로 특징 지워진다. 이러한 분석에 첨언하자면 작가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자유로움의 원천이 우리의 전통적 미감인 흥과 연계되어 정리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최성숙의 작품에 나타나는 ‘다감하고 경쾌한 선묘와 먹붓 구사, 그리고 변화 있는 색채 부여가 형상시키는 아주 특이한 수법’이란 흥이 신명으로 전환되어 표상되는 과정에서 얻은 작가의 미학적 성취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전시제목문신과 최성숙이 함께한 40년 : 예술과 일상전

    전시기간2018.10.26(금) - 2019.03.20(수)

    참여작가 문신, 최성숙

    관람시간09:00am - 06:00pm

    휴관일매주 월요일, 1월1일, 설, 추석

    장르회화, 조각

    관람료어른 500원
    어린이 200원

    장소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문신길 147 (추산동, 문신미술관) )

    연락처055-225-7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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