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른스트 루드비히 키르히너
얕은 욕조 안의 두 소녀 Two Naked Girls in Shallow Tub ca. 1912-1913(20),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60.7x40.5cm
윌렘 데 쿠닝
무제 Untitled 1965, 종이에 목탄 Charcoal on paper, 60.2x47.2cm
프랑수아 모렐레
우연히 그은 10개의 선 10 Lines by Chance 1975, 캔버스에 아크릴릭 Acrylic on canvas, 60x60cm
알렉스 카츠
코카콜라 걸 Coca-Cola Girl 2019, 알루미늄에 프린트, 광택 알루미늄 지지대 Printed aluminium on polished aluminium base, 53.3(h)x48.3x7.6cm
알렉산더 칼더
별자리 Constellations 1971, 종이에 과슈, 잉크 Gouache and ink on paper, 109.5x74.3cm
로버트 라우센버그
반 블렉 시리즈 VI Van Vleck Series VI 1978, 나무 판넬에 콜라주한 천 위에 용액 전사, 아크릴릭 물감, 109.2x94cm
스털링 루비
설화 석고 SR11-48 Alabaster SR11-48 2011, 작가 제작 프레임에 아크릴릭 Acrylic on artist_s frame, 129.5x129.5cm
게르하르트 리히터
녹색 - 청색 - 적색 789-76 Green - Blue - Red 789-76 1993,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30x40cm
지그마르 폴케
무제 Untitled 1973, 종이에 아크릴릭, 수채, 잉크 Acrylic, watercolor and ink on paper, 69.5x99.5cm
나라 요시토모
무제 (먹구름) Untitled (Rain Cloud) 2002, 종이에 색연필 Colored pencil on paper, 30.3x22.3cm
데이비드 호크니
거의 스키 타듯이 Almost Like Skiing 1991,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91.4x121.9cm
앤디 워홀
햄버거 Hamburger 1986, 캔버스에 아크릴릭, 실크스크린 잉크 Acrylic and silkscreen ink on canvas, 25.4x30.5cm
학고재는 2019년 5월 24일(금)부터 7월 10일(수)까지 학고재 본관에서 《픽처 플레인: 수직, 수평의 화면과 움직이는 달》을 연다. 20세기 현대미술의 대표적 거장들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전시다. 에른스트 루드비히 키르히너, 윌렘 드 쿠닝, 알렉산더 칼더, 프랑수아 모를레, 알렉스 카츠, 로버트 라우센버그, 앤디 워홀, 게르하르트 리히터, 시그마 폴케, 데이비드 호크니, 나라 요시토모, 스털링 루비 등 12인의 작품 30여 점을 선보인다. 박미란 학고재 큐레이터와 로렌스 반 하겐이 전시를 공동 기획했고, 이주헌 미술평론가가 서문을 써 전시에 풍성함을 더했다.
전시 작품은 수잔 앤 로렌스 반 하겐 컬렉션을 통하여 선별했다. 수잔 반 하겐은 런던과 파리에서 활동하는 큐레이터이자 소장가다. 1999년부터 2004년까지 독일 쿤스트삼룬겐 켐니츠에서 전시를 기획했다. 2009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다니엘 퍼맨 작품 기획에 참여했으며, 팔레 드 도쿄(파리)의 후원자 모임인 도쿄 아트 클럽(파리)을 설립했다. 현재 아들인 로렌스 반 하겐과 함께 미술 자문 회사인 LVH(런던)을 운영하고 있다. 로렌스 반 하겐은 2016년 런던에서 《왓츠 업 What’s Up》을 기획해 유럽 미술계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 뉴욕, 홍콩 등에서 동명의 전시를 선보였다.
현대미술 거장 12인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선보이는 전시
전시에서는 현대미술사를 수놓은 대가들의 작품을 폭넓게 선보인다. 독일 표현주의 그룹 다리파의 창시자 에른스트 루드비히 키르히너와 추상표현주의의 대가 윌렘 드 쿠닝을 비롯하여, 키네틱 아트의 선구자 알렉산더 칼더, 파리 시각예술탐구 그룹의 창립자 프랑수아 모를레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서막을 연 로버트 라우센버그와 자본주의 사실주의를 주창하며 구상과 추상을 넘나드는 조형을 선보인 게르하르트 리히터, 시그마 폴케의 작품도 다양하게 살펴볼 수 있어 의미가 크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열고 있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1991년작 회화도 출품된다. 알렉스 카츠와 앤디 워홀, 스털링 루비, 나라 요시토모의 작품을 포함하여 전시 구성이 다채롭다.
20세기 미술사를 이끈 것은 ‘관점’의 변화 – 또다시, 낯선 예술을 향하여
세기를 관통하는 광범위한 시기의 작품들을 포괄하기 위해 ‘화면’이라는 주제를 화두로 삼았다. 작업 화면의 위치, 즉 예술가의 관점 변화를 단서로 하여 현대미술의 흐름을 짚어보려는 시도다. 작품의 화면은 예술가의 시각을 비추는 거울이며 시대를 반영하는 창이다. 지난 세기, 표현 방식과 매체가 변화함에 따라 예술가들은 다각도에서 화면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자연을 주제로 한 근대 회화가 전통적인 수직 방향의 화면을 고수한 것과 대조적으로 문명 시대의 예술가는 화면을 수평으로 가로 눕혔다.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콤바인 페인팅에서 드러나는 ‘평판 화면’이 대표적 예다. 화면의 위치변화는 회화의 주제 이행과 연관해 일어났다. 화면은 자연이 아닌 ‘문화’를 담아내기 시작했다. 수평적 작업 화면은 대다수의 팝아트로 계승되었다. 관점의 변화는 인지의 범위를 확장했다. 회화는 평면을 이탈했고, 조각은 중력에서 벗어나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난 세기의 거대한 서사가 막을 내렸다. 종말을 예견한 미술계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것은 결국 관점의 변화였다. 21세기, 새로운 미술사의 서론이 쓰이고 있다. 동시대 미술의 화면은 또 다른 가능성을 향해 나아간다. 문명은 발달하고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며, 예술가는 낯선 시각을 끊임없이 갈구한다. 오늘날 데이비드 호크니는 아이패드 등의 스마트 매체를 회화 도구로 쓴다.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고, 누구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대다. 지나온 역사를 자양분 삼아 새로운 예술에 대한 꾸준한 탐구를 지속해야 할 것이다.
현대미술로의 행복한 그림 산책
이주헌 (미술평론가)
학고재 갤러리에서 ‘픽처 플레인’이라는 타이틀 아래 오랜만에 구미 대가들의 작품을 선보인다. 물론 양념처럼 들어간 일본 화가 나라 요시토모는 구미 화가라 할 수 없지만, 게르하르트 리히터, 데이비드 호크니, 로버트 라우센버그 등 쟁쟁한 유럽과 미국의 대가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이채로운 것은, 우리나라 갤러리 전시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20세기 초의 거장 키르히너의 작품도 선보인다는 것이다. 그만큼 구성이 다채롭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이 형형색색의 풍경을 둘러본다면 매우 즐겁고 행복한 그림 산책이 될 것이다. 이에 도움이 될 만한 길잡이 멘트를 몇 마디 적어본다.
표현주의적인 에너지를 보여주는 그림들
에른스트 루드비히 키르히너는 20세기 초 독일에서 발원한 표현주의의 리더다. 표현주의는 객관적인 외부 세계의 묘사보다는 주관적인 감정과 내면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표현하는데 더 관심을 둔 미술이다. 왜곡되고 과장된 형태, 원시적이고 즉흥적인 표현,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색채 등이 그 형식상의 주요한 특징을 이룬다. 출품작 <얕은 욕조 안의 두 소녀>(ca. 1912/13-20)에 그 면모가 잘 드러나 있다.
독일 바이에른 주 아샤펜부르크에서 교육자의 아들로 태어난 키르히너는 애초에 드레스덴에서 건축을 공부한 건축학도였다. 그런데 당시 그가 다니던 학교(Technische Hochschule Dresden)는 건축학도들에게도 드로잉 등의 미술 실기를 가르쳤고 미술사 과목도 개설되어 있었다. 여기서 뜻이 맞는 친구들인 헤켈과 슈미트 로틀루프를 만난 키르히너는 이들과 함께 1905년 최초의 표현주의 그룹 다리파를 결성했다.
키르히너와 그의 동료들은 당시 매우 분방하게 생활했다. 누디즘(Nudism, 나체주의)으로도 불리는 네이처리즘(Naturism)에 몰입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키르히너는 자신의 친구들, 모델들과 어울려 드레스덴의 휴양림 속에서 벌거벗고 사는 자유를 만끽했다. 그들에게 이런 행위는 사회의 고리타분한 편견과 인습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되었고, 바로 그 도전에 기초해 나름의 근대적 자아를 획득하는 한 방법으로 여겨졌다. <얕은 욕조 안의 두 소녀>는 야외가 아니라 실내에서 목욕을 하고 있지만, 그 거친 필치와 선명한 원색으로부터 자유를 향한 키르히너의 분방한 에너지를 동일하게 느낄 수 있다.
이 그림의 뒷면에는 다른 그림이 하나 더 그려져 있는데, 넉넉하지 않던 당시 그의 경제사정을 반영하는 것이라 하겠다. 뒷면의 그림은 <드레스덴의 노란 집 앞 선박들>(ca. 1909)로, 단순한 구성과 색상, 과감한 필치가 돋보인다. 안타까운 것은 이처럼 자유로운 의식을 담은 그의 그림들이 나치 집권 이후 퇴폐 미술로 몰려 탄압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심신이 지친 키르히너는 결국 1938년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키르히너의 그림과 자연스레 이어보게 되는 이번 전시의 다른 출품작은 미국 추상표현주의 화가 윌렘 드 쿠닝의 드로잉 <무제>(1965)다. 표현주의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데서 알 수 있듯 추상표현주의도 내면의 정서를 분출하는데 앞장선 미술이다. 특히 드 쿠닝은 붓에 체중과 힘을 실어 화포에 물감을 격렬하게 처바름으로써 물리적인 충격과 폭력성이 강한 그림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물론 <무제>는 종이에 목탄으로 그린 작품이므로 그런 정도의 파괴성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거칠 것 없이 내달린 목탄 선에서 그 특유의 생동하는 에너지를 선명히 느낄 수 있다. 드 쿠닝은 이렇듯 힘이 넘치는 드로잉을 많이 그렸다. 흥미로운 것은, 추상표현주의라는 이름과는 다소 거리감이 느껴질 정도로 드 쿠닝의 작품에서는 구상적인 사람 이미지를 자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무제>에서 우리가 감지하게 되는 것도 사람의 형상이다. 그러나 종이 위를 내달리는 선들이 아주 거침이 없고 자유롭기에 그 구상적 특질은 어느새 조형의 하위 요소로 녹아들어 버리고 관객은 그의 조형 에너지가 자아내는 추상적 조화를 보다 큰 그림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추상의 광활한 세계를 펼쳐 보이는 그림들
숫자로 보면 추상화는 이번 전시에 가장 많이 출품된 장르의 작품이다. 알렉산더 칼더는 조각가이니만큼 평면작업뿐 아니라 추상조각도 함께 선보인다. 모빌 <빨간 초승달>(1969)과 스태빌 <더 클로브>(1936)가 그 작품들이다. 모빌은 현대 전위 조각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도 매우 친숙하게 다가온다. 갓난아기의 요람 위에 달아주는 모빌 장난감이 바로 칼더의 모빌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미술임에도 불구하고 칼더의 작품은 갓난아기의 장난감만큼이나 보기 편하고 친근하다는 인상을 준다.
칼더가 모빌에 착안하게 된 것과 관련해서는 이런 에피소드가 전해져온다. 1930년 10월, 칼더는 추상화 창시자의 한 사람인 피에트 몬드리안과 처음 만났다. 그의 아파트를 둘러본 칼더는 이런 말을 남겼다.
“매우 흥미로운 방이었다. 빛이 왼쪽, 오른쪽에서 다 들어오는데, 그 양쪽 창 사이의 견고한 벽에 채색한 사각 판지들을 덧댄 실험작들이 걸려 있었다. 심지어 진흙 빛이었을 축음기에도 빨간색을 칠해 놓은 게 눈에 띄었다. 나는 몬드리안에게 그 사각 판지들이 흔들리게 만들면 재미있겠다고 제안했다. 그러자 그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야, 그럴 필요 없지. 내 그림은 이미 매우 빠르거든.’ 이 방문은 나에게 충격이었다. […] 이 한 번의 방문이 준 충격으로 모든 게 시작되었다.”
칼더는 몬드리안의 작업 공간을 방문한 뒤 얻은 영감을 조각가답게 풀어냈다. 바로 색색의 면들이 삼차원 공간에서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었다. 마르셀 뒤샹이 이름 지어 준 ‘모빌’은 바로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번 전시의 출품작으로부터도 우리는 칼더의 그 창의적인 시선,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위트 있게 다가오는 그 발명가적인 시선을 흡족하게 즐길 수 있다. 미국 펜실베니아 태생인 칼더는 유명한 모빌들 외에 움직이지 않는 조각 스태빌도 다수 제작했으며, 와이어 선을 연상시키는 선묘 중심의 드로잉에서부터 이번 전시 출품작인 <별자리>(1971)나 <무제>(1971)같은 초현실주의적인 쾌활함이 돋보이는 컬러 드로잉까지 다양한 드로잉들을 남겼다. 그는 1952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대상을 받는 등 현대미술의 역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겼다.
비록 드로잉과 컬러 소품들이 중심이긴 하나 생존 미술가 중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거장으로 평가받는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추상화들이 여러 점 자리를 함께한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독일의 비즈니스 잡지 매니저 매거진은 2014년 세계 주요 미술가 1천 명의 랭킹을 매기면서 리히터를 1위로 꼽았다. 영국의 권위지 더 타임즈가 리히터의 테이트 전시를 소개하며 쓴 헤드라인도 ‘게르하르트 리히터: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화가’(Gerhard Richter: The world's most important artist)였다. BASI(Blouin Art Sales Index)에 따르면, 2017년 말 기준으로 리히터는 생존미술가 중 총 판매액이 세계 1위다. 이런 보도와 통계는 그가 전문가들과 시장 양쪽으로부터 치우침 없이 사랑받는 존재임을 드러낸다.
리히터가 이 같은 위치에 우뚝 선 것은, 그가 무엇보다 “회화는 죽었다”는 평가가 부동의 진실로 받아들여지던 시대에 그만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회화의 생존을 지켜낸 거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독일의 굴곡진 현대사부터 9.11 사태에 이르기까지 현실의 모순을 탁월한 리얼리티로 재현해낸 구상화가인 동시에, 그 구상으로부터 훌쩍 벗어나 순수 조형의 파노라마를 환상적으로 펼친 추상화가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극과 극을 오간 거장인데, 추상화가로서의 그 일단을 이번 전시를 통해 맛볼 수 있다.
리히터는 추상화도 서정적, 표현주의적인 형식과 그와 대비되는 기하학적인 형식을 두루 시도했다. 이번 전시 출품작 중 <25색>(2007)은 후자에 속한 것이고, 나머지는 전자에 속한 것이라 하겠다. 공업용 컬러 차트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수학적 공식에 따라, 혹은 우연의 효과를 도입해 그리드 형태로 색채를 배열한 그의 기하학적 추상화는 2007년 쾰른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설치작업으로 그 절정을 이뤘다. 제스처럴(gestural)한 그의 서정적 추상화는, 1960년대의 실험적인 시도에 이어 1970년대의 모든 것을 뭉개어 지워버리는 듯한 ‘덧칠(Vermalung)’ 연작, 지각한다는 것에 대한 집요한 탐구를 보여주는 색채 추상과 스퀴지로 물감을 긁어낸 1990년대 이후의 추상까지 끝없는 열정의 행로로 이어져왔다. 이번 전시 출품작 같은 작은 추상 소품들에도 조형 효과와 지각의 관계에 대해 탐구하는 리히터의 열정이 진하게 담겨 있다. 그 자취를 보는 것은 매우 즐겁고 흥분되는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의 추상화에 대해 리히터는 이렇게 말했다.
“내 추상화는 음악적이다. 구축하고 구조화하는 게 많은데, 그게 음악을 상기시킨다. 나한테는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걸 설명하기는 어렵다.”
프랑수아 모를레는 매우 지성적인 프랑스의 추상 화가다. 그의 초기작은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의 선행학습 같은 느낌을 준다. 그는 전통 회화와 조각이 종말에 이르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전통적인 미술 재료를 넘어 네온 튜브나 테이프 같은 새로운 재료, 낭만주의적인 예술 신화를 깨는 산업적인 재료를 즐겨 사용했다. 이런 재료야말로 전통 미술에 때 묻지 않고 오염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천재로서의 예술가’라는 전통적인 예술가 관념이나 신화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 예술가는 천재가 아니라 ‘촉진자’일뿐이었다. 자신의 창조 원리 또한 모호하고 신비한 그 어떤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는데, 사전에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나름의 분명한 규칙과 제한을 정해 놓고 이를 활용해 작품을 제작했다. 이 규칙과 제한에는 우연의 요소가 들어 있어 작품의 구성이 영향을 받도록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그의 작품은 단순한 기하학적 요소들이 자아내는 명료하고도 쿨한 아름다움을 만끽하게 한다. 나아가 그것이 반복되면 얼마나 복잡한 구조의 미학을 연출할 수 있는지, 우연의 변수가 개입했을 때는 또 얼마나 풍부한 뉘앙스를 자아낼 수 있는지도 잘 드러내 보인다. 보기에 따라서는 ‘썰렁 개그’ 같은 유머를 느끼게 하는데, 나는 출품작 중 <테이블이 중심에서 3° 회전되기 전 중앙값 90° 표시>(1980)에서 그런 느낌을 받는다. 흐르고 변하는 세상에서 끝내 변하지 않으려는 어느 고집스러운 영감님의 표정을 보는 것 같다고나 할까.
요즘 회고전으로 국내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추상화와 스털링 루비의 추상화도 이번 전시에 각각 한 점씩 출품되었다. 호크니는 구상적인 회화로 폭넓은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그는 추상화에도 일찍부터 깊은 관심을 보였다. 미술학도 시절 그린 추상화와 1990년대에 그린 ‘베리 뉴 페인팅(Very New Paintings)’ 연작들을 제외하더라도 그의 그림에는 다양한 추상적인 시도들이 있었다. 로스앤젤레스의 풀장을 그리며 갖가지 물의 표정을 양식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추상적인 이미지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전시 출품작 <거의 스키 타듯이>(1991)는 그가 무대미술의 경험을 토대로 제작한 추상화 연작 ‘베리 뉴 페인팅’에 속하는 그림이다. 호크니는 여러 오페라의 무대를 디자인했는데, 그 과정에서 그는 무대 디자인이 삼차원의 그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 까닭에 그의 ‘베리 뉴 페인팅’ 연작들은 삼차원 공간감이 매우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 시리즈의 그림들과 관련해 그는 이런 말을 했다.
“‘그림자 없는 여인’ 무대 디자인을 완성한 직후 ‘베리 뉴 페인팅’을 시작했다. 단순하게 시작해서 갈수록 복잡해졌다. 나는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내적 풍경을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곧 깨달았다. 공간을 창조하기 위해 서로 다른 마크와 텍스처를 사용해 관객들이 (마음속에서) 그 공간을 돌아다닐 수 있도록 했다.”
스털링 루비는 다채로운 장르와 형식의 작품을 제작해온 작가다. 도자기, 회화, 드로잉, 조각, 비디오 아트, 설치를 망라할 뿐 아니라, 그 창작의 소스도 도시의 갱들과 그라피티, 힙합문화, 세계화, 감옥, 소비문화, 조현병 등 매우 다양하다. 조형적인 측면에서 보면 한마디로 ‘미니멀리즘에 결핍된 모든 것’을 표현한다고 할 수 있다. <설화 석고 SR11-48>(2011) 또한 마찬가지다. 마치 최면술을 걸 듯 그 유동하는 그림의 표정으로부터 미니멀리즘의 엄격한 선과 굳은 형태에 대한 강력한 거부의 몸짓을 느낄 수 있다. 왠지 “만물은 유전(流轉)한다”고 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대중문화 시대의 리얼리티를 그린 그림들
대중문화가 현대사회에 끼친 영향은 매우 크다. 팝아트 형식으로, 혹은 그와는 결이 다소 달라도 나름대로 그 시대정신이나 감성을 반영하는 작품들이 이번 전시에 다수 출품되었다. 먼저 라우센버그의 예술을 들여다보자. 로버트 라우센버그는 이를테면 올림픽 국가대표팀의 맨 앞에 선 기수 같은 미술가라 할 수 있다. 그는 1964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39세의 나이로 대상을 받아 큰 화제를 불러 모았다. 이전까지 유럽의 대가들이 수상하던 베니스 비엔날레의 대상을 아직 30대의 젊은 미국인 화가가 받음으로써 세계는 서양미술의 추가 유럽에서 미국으로 넘어갔음을 확고히 인식하게 되었다.
라우센버그는 애초에 추상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았으나 1950년대 들어 오브제를 부착한 화면에 물감을 거칠게 칠하는 ‘콤바인 페인팅’으로 나가면서 추상표현주의로부터 떨어져 나왔다. 나뭇조각이나 콜라병, 우산, 자동차 타이어, 박제동물 등이 화포에 더해지고 그 위에 물감이 칠해진 그의 작품은 회화라 하기도 그렇고 조각이라 하기도 애매한 작품이었다. 라우센버그는 이런 독특한 특성을 고려해 자신의 그림을 조합된 그림, 곧 콤바인 페인팅이라고 불렀다. 베니스 비엔날레 대상 수상으로 콤바인 페인팅이 정점을 이룬 후 라우센버그는 다양한 시사와 일상의 이미지를 실크스크린으로 화면에 포치해 팝아트적인 성격이 보다 두드러진 회화를 제작했다. ‘발견된 오브제(found objects)’에서 ‘발견된 이미지(found images)’로 시선을 돌린 것이다.
앨범에서 사진들을 꺼내 책상에 한꺼번에 펼쳐 놓은 듯 화포에 다채롭게 프린트된 이 ‘발견된 이미지’는 미디어의 발달에 기초해 수많은 사건, 현상, 일상의 정보가 빠르고 복잡하게 오가는 현대사회의 표정을 생생히 드러내 보인다. 전시 출품작 <파란 부랑아 (서리 시리즈)>(1974)와 <반 블렉 시리즈 VI>(1978)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서리’ 시리즈는 고정하지 않은 천에 신문이나 잡지의 이미지를 솔벤트 용액으로 전사한 일련의 작품들이다. 라우센버그는 판화공방에서 석판화 판을 닦을 때 쓰던 ‘치즈클로스(cheesecloth, 치즈나 버터를 싸는 데 쓰는 얇은 면직물)’에 신문의 이미지가 그대로 전사되는 것을 보고는 이 시리즈의 착상을 얻었다. <파란 부랑아 (서리 시리즈)>를 보노라면, 매일 갖가지 상황과 사건을 접하는 우리의 내면을 치즈클로스로 닦아도 이런 흔적들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러시아계 유태인의 혈통을 지닌 미국 화가 알렉스 카츠는 매우 개성적인 초상화와 풍경화, 꽃 그림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팝아트와 친연성이 있는 조형세계를 펼쳤지만, 팝아트의 물결을 따라 흐르기보다는 독자적인 창조의 길을 걸었다. 이는 그가 당대의 사조나 트렌드 못지않게 미술사와 전통을 중시하고 이를 자신의 예술세계와 결합시키려 애쓴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그의 그림을 처음 보면 전통적인 형식의 구태의연한 구상화로 오해하고 폄하하기 쉽지만, 자세히 보면 나름의 감각과 감성으로 우리 시대의 표정을 생생히 포착한 것임을 느낄 수 있다.
카츠의 그림은 대체적으로 크고 평면적이다. 이는 영화관의 스크린이나 길가의 빌보드 광고판을 생각나게 한다. 게다가 영화의 클로즈업 장면을 보듯 사람들을 아주 크게 확대해 그린 경우가 많은데, 그 이미지가 단순하고 납작하기까지 하니 우리의 시선은 오래 고정되지 못하고 금세 미끄러지게 된다. 거리의 광고판을 볼 때처럼 말이다. 바로 이런 대형 사이즈, 평면성, 단순함, 매끄러움, 쿨 함이 우리 시대의 정서와 감각을 선명하게 대변한다. 현대 소비사회와 대중문화의 정서가 생생히 살아나는, 그만큼 뚜렷한 리얼리티가 돋보이는 예술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감각을 보다 ‘입체감’ 있게 표현한 것이 그의 ‘컷아웃’ 시리즈다. 알루미늄 판을 대상의 형태대로 잘라 앞뒤로 그림을 그린 ‘컷아웃’ 시리즈는 매우 평면적이지만 공간에 강렬한 표정을 부여하는 조각이다. 전시 출품작 <코카콜라 걸>(2019)이 바로 이 계열에 속하는데, 무거운 것이 아니라 가벼운 것, 두꺼운 것이 아니라 얇은 것, 묵은 것이 아니라 상큼한 것이 강력한 힘을 갖는 현대사회의 속성을 잘 전해주는 작품이라 하겠다.
이번 전시에 여러 점의 드로잉과 사진 작품을 내보이는 독일화가 시그마 폴케 역시 대중문화시대의 리얼리티를 잘 표현한 유럽의 대표적인 거장의 한 사람이다. 1941년생인 시그마 폴케는 1953년 가족과 함께 동독에서 서독으로 이주했다. 어린 시절이었지만 동독에서 경험한 사회주의 체제는 그에게 오래도록 영향을 미쳤다. 그는 그 체제의 미학인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대한 비틀기로 자본주의 리얼리즘을 추구했는데, 이 미학은 당시 꽃 피어나던 서독의 소비문화에 대한 비판 또한 담고 있었다.
폴케는 매우 다양한 형식 실험을 했다. 역사에서 일상까지 또 정치에서 예술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룬 만큼이나 매우 다채로운 방식으로 작품을 제작했다. 페인팅, 드로잉은 물론이요, 사진, 영상, 컴퓨터 아트까지 시도했고, 특이한 재료도 많이 활용해 운석 가루, 비소, 세제, 성냥개비, 초콜릿 바, 소시지, 비스킷 등을 동원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 드로잉 출품작들은 그의 자유롭고 분방한 기질을 잘 보여준다. 무엇보다 냉소와 유머를 두루 느낄 수 있다. 착시현상 테스트를 하는 듯한 사진 작품 <무제, 달마시안들>(1975)에서도 그의 냉철하면서도 위트 있는 시선이 이채롭다.
이 시대의 대중문화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미술가를 꼽자면 그는 당연히 앤디 워홀일 것이다. 우리나라 대중에게도 무척 친숙한 이 팝아트의 황제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작가다. 이번 전시에 나온 워홀의 작품은 <햄버거>(1986)다. 이 작품은 그의 ‘광고와 일러스트레이션’ 시리즈의 하나다. 오래된 광고를 계속 리프린트 해서 명암 대조가 심해지고 그만큼 단순해져버린 듯한 이 이미지는, 워홀이 1960년대 사용했던 것을 1980년대 들어 다시 활용한 것이다. 브랜드 이름조차 없는 광고 이미지이지만, 미국 문화의 아이콘으로 생생히 빛난다.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향수를 느낄 이 이미지로부터 워홀이 얼마나 ‘아메리카나’ 주제를 중시했는지 새삼 돌아보게 한다.
마지막으로 일본 네오팝의 간판스타 나라 요시토모의 작품에 대해 간략히 적고 글을 정리하겠다. 나라도 한국의 대중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 미술가다. 그의 그림에는 순수함과 그 순수함을 위협하는 그림자가 함께 있다. 주로 보호받아야 하지만 보호받지 못하는 어린 영혼의 상실감과 소외감에 대해 노래해온 그의 그림은 그 만화 같은 형식으로 더욱 호소력 짙게 다가온다.
어떤 면에서 보면 그의 그림 속 주인공들은 미켈란젤로의 조각 <다비드>(1501–1504)와 유사한 존재들이다. <다비드>를 보면 주인공의 눈초리가 매우 사납다. 돌을 쥐고 누군가를 위협하려 한다. 다비드가 성경에 나오는 다윗이고, 그가 지금 이런 표정을 짓는 것이 거인 골리앗에 대적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면, 이 남자가 원래 좀 못된 성격을 가진 사람이 아닌가 오해할 수 있다. 나라의 아이들도 그렇다. 그들이 사나워 보이는 눈초리를 하고 또 때로 무기가 될 만한 것을 쥐고 있다 하더라도 이는 그들이 고약한 말썽꾸러기이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지금 그들 주위에는 골리앗처럼 더 큰 힘과 무기로 그들을 위협하는 거대한 존재들이 있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저리도 분주하고 저리도 따가운 눈길을 보낼 따름이다. 세상에 악동은 없다. 악한 어른들이 있을 뿐이다.
나라의 그림이 말해주듯 사실 혹은 진실은 대체로 당장 눈에 보이는 것 너머에 있다. 그게 진정한 리얼리티다. 《픽처 플레인》전에 출품된 우리 시대 거장들 작품에서 그 리얼리티를 하나하나 확인해보는 것은 매우 행복한 경험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픽처 플레인
수직, 수평의 화면과 움직이는 달
박미란 (학고재 큐레이터)
태초의 그림은 땅에 그려졌을 것이다. 손가락으로 그은 선이 형상을 이루고, 의미의 언저리를 어렴풋이 맴돌다 이내 지워졌을 것이다. 그림이란 그리는 자가 인지하는 세상을 반영하는 거울인 법. 직립하여 걷기 시작한 인간은 자세와 시선의 변화에 따라 동굴의 벽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자연의 재현을 목적으로 하는 회화에서, 세상의 모습은 인간의 직립 자세와 결부하여 나타난다. 형상은 중력의 법칙에 따라 머리를 위로, 발을 아래로 향하는 수직의 화면 위에 놓인다. 올바른 방향의 수직 화면은 르네상스에서 모더니즘에 이르기까지 존속되었다. 작업 화면의 전환은 회화의 주제가 자연에서 문명으로 이행하며 일어났다. 미술이 지향하는 목적과 역할의 변화에 따라 화면을 대하는 관념적 시각도 달라진 것이다. 전시 《픽처 플레인 Picture Plane》은 작업 화면의 위치, 즉 예술가의 관점 변화를 단서로 하여 현대미술의 흐름을 짚어보고자 하는 시도다. 수잔 앤 로렌스 반 하겐 컬렉션을 통해 선별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1.
20세기 초, 화면은 가능성을 향하여 요동치고 있었다. 수직 화면 위에서 주제의 변화가 선행되었다. 표현주의자들은 회화의 목적을 ‘재현’에서 ‘표현’으로 전향하고자 했다. 전시는 독일 다리파의 창시자 에른스트 루드비히 키르히너(1880-1938)를 언급한다. <얕은 욕조 안의 두 소녀>(ca. 1912/13-20)에서 키르히너는 인물들의 형상을 더 이상 충실히 묘사하지 않는다. 화면은 대담하게 잘린 면과 색의 대비를 통해 감각과 감정을 표출한다. 자연의 재현을 거부하고 표현과 구성의 혁신을 도모한 시도는 다양한 유형의 미술 사조로 나타났다. 형상은 관념적으로 구축되었고, 화면은 사실주의적 전통에서 벗어났다. 우리는 추상표현주의 화가 윌렘 드 쿠닝(1904-1997)의 목탄 드로잉 <무제>(1965)에서 보다 격정적인 표현을 마주한다. 여인의 윤곽은 추상을 향해 부서지듯 어렴풋이 드러난다. 드 쿠닝은 주관을 분출하는 격렬한 필치로 미술 행위의 본질을 해명하고자 했다. 캔버스 화면은 행위의 장으로 인식되었다.
세기의 첫 세대를 보내며, 미술에 대한 관념은 유연하게 확장되었다. 사고의 방식을 바꾸면 인지의 방향도 달라진다. 화가들은 화면을 다각도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인공적 이미지와 텍스트가 범람하는 문명 시대의 예술가는 자료를 흐트러 놓은 작업대를 대하는 시점으로 화면을 가로 눕혔다. 레오 스타인버그(1920-2011)는 로버트 라우센버그(1925-2008)의 1950년대 콤바인 페인팅에서 특징적으로 드러나는 수평적 작업 화면을 ‘평판 화면’이라고 명명한 바 있다. 평판 화면 위의 이미지는 더 이상 자연에 대한 시각적 재현이 아니며, 정보와 자료의 화면이라는 설명이 뒤따른다. 화면을 바라보는 시점의 각도가 달라짐에 따라 회화의 주제는 ‘자연’에서 ‘문명’으로 급진적으로 이행하기 시작했다. 전시 작품 <반 블렉 시리즈 VI>(1978)는 인물을 암시하는 천 조각을 모아 퀼트처럼 짜깁기한 일종의 초상화다. 회화의 소재는 형상에 귀속되지 않으며 자체적 정보를 드러낸다. 스타인버그는 시대의 인공적 산물을 담은 라우센버그의 평판화면이 대부분의 팝아트에 계승된다고 보았다. 앤디 워홀(1928-1987)의 <햄버거>(1986)는 실제 대상의 재현이 아니라 상업적 의도로 만들어진 ‘대상의 이미지’에 대한 재현이다. 워홀의 화면에는 형상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화면이 드러내는 것은 자료와 정보의 복제다.
전시는 게르하르트 리히터(b. 1932), 시그마 폴케(1941-2010)의 이름을 차례로 호명한다. 1960년대 초 자본주의 사실주의를 주창한 리히터와 폴케의 화면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성을 확연히 드러낸다. 이들은 문명의 산물을 회화 장르에 용해하고, 원본과 모방에 대한 이분법적 구분을 무효화함으로써 근대적 미메시스의 강박에서 벗어났다. 리히터와 폴케는 광고와 출판물 등 대중매체 이미지를 자주 차용한다. 매 순간 갱신되는 순간적인 이미지들은 과거를 인용하고 미래를 언급하지만 현재에 대해서는 유독 함구한다. <얼음 (1973/1981)>(1981) 연작은 리히터가 그린란드에서 촬영한 사진을 엮은 아티스트 북의 표지를 소재로 하여 제작한 회화다. 리히터는 사진의 객관성에 대한 대중의 신념과 그림의 인위성을 결합해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사진에서 출발했지만, 흐리기 기법을 통해 사진의 지시 기능을 무력화하고 예술적 측면을 강조하여 회화에 편입시켰다. 폴케는 수집한 이미지들을 변형하거나 다양한 재료와 혼합하며 다층적 화면을 구성했다. 공업 재료와 상업적 인쇄 기술을 작업 과정에 끌어들이기도 했다. 폴케의 화면에서 원본은 망점으로 분해되고, 형상은 재료 위에 부서진다.
사진을 매개로 한 실험은 데이비드 호크니(b. 1937)의 화면에서 계속된다. 사진 이미지를 재료로 활용한 리히터와 대조적으로, 호크니의 경우 사진의 개념과 기술 자체를 조형에 수용했다. 호크니는 기존의 사진이 원근법에 기반한 르네상스 시각 구조에 속한다고 보았으며, 이를 입체주의적 표현을 통해 탈피하고자 했다. 여러 장의 사진을 하나의 화면에 구성함으로써 사진의 한계를 극복하고 회화적 시각 구조를 획득했다. 호크니의 1990년대 회화는 사진 콜라주 작업의 영향을 드러낸다. 전시 작품 <거의 스키 타듯이>(1991)의 화면에서 다각도의 시점을 입체적으로 담아낸 구성이 두드러진다.
2.
조각에서도 근대적 숙명을 탈피하려는 시도는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오랜 기간 동안 조각은 중력의 법칙에 따라 수직 방향으로 정지해 있었다. 일찍이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가 움직이는 조각에 대한 드로잉을 제작하여 사고의 확장을 암시했으며, 20세기에 이르자 조각에 대한 통념이 본격적으로 재고되었다. 1913년에는 마르셀 뒤샹(1887-1968)이 의자 위에 거꾸로 매단 자전거 바퀴를 선보임으로써 키네틱 아트의 선구 모델을 제시했다. 1930년대, 철사를 이용한 조각적 실험을 지속하던 알렉산더 칼더(1898-1976)가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키네틱 아트를 구현해냈다. 천장에 매달려 공기의 흐름을 타고 가볍게, 균형적으로 유동하는 조각이었다. 칼더의 움직이는 조각에 뒤샹이 ‘모빌’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칼더의 추상은 우주에 대한 관심에 기반한다. 1922년 과테말라 해변에서 “한 편에 불타듯 빨간 해가 떠오르고, 다른 한 편에는 은화 같은 달이 떠 있는” 신비로운 풍경을 목격한 경험이 시초가 됐다. 이후 1930년, 피에트 몬드리안(1872-1944)의 작업실을 방문한 경험을 계기로 본격적인 추상으로 전향했다. 전시는 칼더의 모빌 <빨간 초승달>(1969)을 선보인다. 모빌은 현실의 존재를 묘사하려 하지 않으며, 추상적 관념과 고유한 형상 자체로서의 잠재력을 드러낸다. 모빌은 조각으로서의 종속성과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주체성의 사이에서 유영한다. 전시는 칼더의 초기 스테빌 <더 클로브>(1936)와 70년대 과슈 드로잉들을 포함한다. “스테빌은 휴식하는 모빌이며, 모빌은 움직이는 스테빌” 이라고 한 조르주 살스(1889-1966)의 말처럼 칼더의 조형은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평면과 입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이미지는 특정 화면에의 귀속 자체를 거부하는 듯하다. 모빌의 형상은 떠다니다 사뿐히 내려앉고, 몸집을 확장하거나 축소하고, 때로는 종이라는 평면 위에 포착되는 것이다. 칼더의 모빌은 우주에 대한 시다. 시시각각 모습을 달리하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움직이는 달이다.
1960년대 파리에서 결성한 ‘시각예술탐구 그룹’의 작가들은 키네틱 아트의 새로운 계보를 형성했다. 이들은 인간의 시각적 한계와 불확실성을 통해 예술 현상을 표현하고자 했다. 착시, 움직임, 빛 등을 활용하여 보는 이의 관념을 움직이게끔 하는 조형을 추구했다. 전시는 그룹의 설립 멤버 프랑수아 모를레(1926-2016)를 불러낸다. 모를레는 네온, 건축 자재 등의 공업 재료를 소재로 하여 규칙과 질서에 따른 기하학적 추상 화면을 구성했다. <해체된 곡선>(ca. 1974)과 <테이블이 중심에서 3° 회전되기 전 중앙값 90° 표시>(1980)에서 화면에 그은 하나의 선은 시각적으로 전체 화면의 경계를 확장하거나, 뒤틀도록 유도한다. 모를레의 화면에서 시각 이미지는 관객의 동적 심리를 이끌어내기 위한 착시의 수단으로 활용된다.
우리는 아는 만큼, 그리고 믿는 만큼의 세상을 본다. 물리적 시야뿐만 아니라 관념적 시각에 대한 이야기다. 시각은 선택적이며, 특히 예술 작품의 화면에서는 더욱 그렇다. 예술가는 화면에 무엇을 기록할 것인가에 대하여 치열하게 고민해왔다. ‘무엇을'이라는 의문사는 ‘어떻게'로 치환되었고, 다시 ‘왜'라는 질문으로 전향했다. 현대미술은 화면의 위치를 효과적으로 전복했으며, 혼란의 시기도 극복해냈다. 미술은 평면을 이탈했고, 서사는 해체되었다. 우리의 세계에서 미술이 앞으로 탐구할 영역은 더 이상 없을 것만 같다. 그러나, 지난 세기 미술계는 이미 종말을 예견한 바 있다. 미술의 생명을 연장한 것은 결국 관점의 변화였다. 아서 단토(1924-2013)는 1997년의 저서에서 ‘미술의 종말’이라는 표현이 ‘거대 서사의 종말’을 의미함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단토의 고백은 결코 미술이 사라지거나 소진될 것이라는 비관이 아니다. 21세기에 뜬 해가 정오를 향해 간다. 아마도 예기치 못한 각도의 새로운 화면에서, 우리는 또다시 낯선 예술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에른스트 루드비히 키르히너(Ernst Ludwig Kirchner)
1880년 독일 아샤펜부르크출생
1904년 네덜란드 로테르담출생
1898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론튼출생
1926년 프랑스출생
로버트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
1925년 미국 텍사스 주 포트아서출생
1928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출생
1932년 독일 드레스덴출생
1941년 독일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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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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