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영: 리-앨리어싱(Re-aliasing)
2019.05.31 ▶ 2019.06.29
2019.05.31 ▶ 2019.06.29
전시 포스터
김인영
수전사용 제작필름_hydrographic film 100x100cm, 2019
김인영
매끄러운 막 smooth membrane 아크릴에 수전사, 가변설치, 2019
김인영
복제/붙여넣기 copy/paste 페트(pet)에 UV프린팅, 가변설치, 2019
김인영
리사이징 resizing 나무, 알루미늄, 각 81x81cm, 50x50cm, 2019
김인영
수평이동 horizontal transfer 페트(pet)에 UV프린팅, 70x70cm, 2019
《리-앨리어싱(Re-aliasing)》은 디지털 환경에서 보여지는 이미지의 물성에 대한 고찰을 설치, 평면 등의 다양한 시각적 표현으로 다룬 김인영의 개인전이다. 어떤 대상을 디지털화 한다는 것은 현실세계의 존재가 가지는 다양한 차이를 이진수의 기술방식, 즉 계산 가능한 상태로 변환하는 것이다. 이 변환을 거쳐 우리는 평면의 액정 화면을 통해 디지털화 된 이미지를 보게 되는데, 이 때 현실세계의 마티에르, 무게감, 크기 등은 사라지고 얇은 막과 같은 표피적 상(像)만 남게 된다. 회화를 주된 매체로 삼던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디지털화 시키는 과정에서 실제 작품의 물성이 왜곡되거나 사라지는 것을 경험한다. 디지털 매체(media)를 통해 매개(mediation)되는 상(像)은 픽셀로 재현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대각선, 곡선, 둥글고 세모난 것들은 제한된 해상도 환경에서 그 한계를 드러내며 계단 모양의 울퉁불퉁한 외곽선을 갖게 되는데, 이러한 현상을 ‘앨리어싱(aliasing)’이라 부른다. 이 앨리어싱 현상을 육안 상으로 완화하고자 울퉁불퉁한 경계선 주변의 색을 혼합하여 중간 영역을 만듦으로써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기법을 안티-앨리어싱(anti-aliasing)이라 한다. 작가가 디지털 매체를 거쳐 자신에게 도달하는 이미지에 대해 느끼는 가장 큰 특징인 ‘균질한 매끄러움’은 이 안티-앨리어싱 처리로부터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원재료의 물질성을 제거하고 안티-앨리어싱 된 매끄러운 막을 덧입은 디지털 이미지들은 그것 자체로 기능하는 새로운 물성을 갖게 되지만 우리는 디지털 매체가 가지고 있는 물질로서의 실재를 간과하고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디지털 매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이미지들은 계속해서 또 다른 실재로 거듭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작가는 이 부분에 대한 각성을 시도하고자, 안티-앨리어싱이 되어 우리에게 도달하는 이미지를 중간에 가로채 그 특징만을 추출한 ‘재물질화’를 실행한다. 이것은 디지털 매체 상에서 보이는 이미지들을 위화감 없이 자연스럽게 만들기 위한 것을 거꾸로 되돌려 다시금 위화감을 드러내고 제거된 물질성을 되살리는 작업이라 볼 수 있다. 작가는 이 과정을 리-앨리어싱이라 칭하고 울퉁불퉁한 위화감에 대한 복원이라 설명한다. 다만 작가가 말하는 리-앨리어싱은 안티-앨리어싱 되기 이전의 상태로 복원하는 것이라기보다 앨리어싱과 같은 디지털 이미지가 가지는 고유의 특성을 다른 방식으로 현실세계에 꺼내어 새로운 물질로 구현하려는 것이다. 작가는 리-앨리어싱을 위한 한 가지 방법으로 ‘스캐노그라피(scanography)’라는 기법을 사용해왔다. 스캐노그라피는 스캔하는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움직임을 가해 변형과 왜곡을 일으키는 작업방식이다. 작가는 디지털 매체의 정밀한 기계적 공정체계에 예측 불가능한 속성을 개입시킴으로써 디지털매체로 생성되는 자연스러움에 결절을 만들고자 하였다. 이 결절들은 대상에 대한 몰입을 깨고 매체에 대해 의식하도록 작동한다. 그리하여 이번 전시에서는 스캐노그라피를 포함한 다양한 리-앨리어싱의 방안들이 등장한다.
우선 전시장 입구로 들어와 제일 먼저 마주하게 되는 1층은 ‘매끄러운 막’의 공간이다. 작가는 액정의 매끈한 화면을 디지털 세계와 현실 세계를 구분하는 경계로 인식한다. ‘매끄러운 막’은 작가가 디지털 세계를 들여다보는 창인 동시에 그 창을 통해 보는 이미지의 물질적 특성이다. 이 ‘매끄러운’ 특성을 현실세계로 끄집어내어 시각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작가는 수전사(水轉寫) 기법을 사용한다.
수전사는 디지털 방식으로 제작된 필름을 물과 특수 용액의 화학작용으로 활성화시켜 물체에 입히는 전사 기술이다. 공정상에 위화감을 일으킬 변수를 개입하려는 작가의 의도는 이 기법에서도 지속된다. 물체를 물속으로 담구며 필름을 입히는 마지막 공정은 수(手)작업으로 이루어지는 만큼 전사되는 상에 즉흥적 우연성의 요소가 개입될 수 있다. 이에 작가는 전사되는 아크릴 판의 안쪽으로 필름의 경계를 보이게 하거나 물 위에 띄워진 필름을 휘저어 형태를 흐트러뜨리는 방법으로 필름 이미지에 조작을 가한다. 반면 표면은 균질하게 매끄러운 질감으로 표현되는데, 이것이 작가가 수전사를 택한 핵심적 이유이다. 여러 겹의 이미지조차도 한 겹의 얇은 막으로 압착된 것 같은 감각을 재현하기 위해서이다. 작가는 이 ‘매끄러운 막’에 물질적 실재감을 부여하기 위해 수전사 된 판을 휘게 놓아두거나 접거나 우그러뜨리는 방식으로 볼륨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제작된 입체물들은 얇고 편평한 디지털 이미지에 대한 감각을 흔드는 리-앨리어싱의 또 다른 방안이다. 지하층과 2층의 전시에서는 작가가 컴퓨터 그래픽 작업에서 느낀 속성들을 실제의 공간으로 치환하는 작업들이 이어진다. 작가는 분리와 복제가 가능한 디지털 이미지의 레이어를 물리적 공간의 층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작가는 3개의 방, 8개의 문으로 구성되어 있는 인사미술공간의 2층 구조 속에서 8개의 비어있는 경계에 주목하였다. 실재하지 않지만 인식할 수 있는 경계에는 뒤로 보이는 공간의 상이 맺히게 되고, 그 경계의 상들은 복제되어 지하 1층의 동일한 위치에 블라인드로 설치된다. 엽서의 단면도에서도 볼 수 있듯 2층에서의 빈 곳, 즉 보이지 않는 경계가 지하층에 구현되어 물질화 되는 것이다. 2층의 공간구조와 퍼즐처럼 맞물리며 지하층과의 연결성을 유추할 수 있도록 한 <3개의 방, 8개의 경계>작업은 마치 공간의 복제와 전이가 일어난 것 같은 감각을 일으킨다.
2층 공간 곳곳에 위치해 있는
더불어 작가는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경로에 디지털 환경에서의 리사이징 문제를 다룬 작업을 선보인다. 1층 계단으로 진입하는 모퉁이 벽에는 1080x1080pixels, 9.14x9.14cm의 정사각 출력물이 전시되어 있다. 이는 ‘인스타그램’에 올려지는 이미지가 출력환경에 맞추어 현실세계로 나온 결과물이다. 그리고 2층으로 올라가면 이 이미지의 원본이 되는 오브제 작업을 발견하게 된다. 인스타그램에서 요구하는 조건인 1:1의 정사각 비례는 나무와 알루미늄 등의 재료를 가공하되 잘라서 없애버리는 것이 아닌, 접거나 구겨 넣는 방식으로 비례를 맞춘 오브제들이다. 이는 디지털상의 이미지를 가공, 편집하는 과정에서 재단되어 사라지는 것들을 양적으로 시각화하고, 손실에 대한 물질적 체감을 되살리기 위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작가가 일관되게 시도하는 리-앨리어싱은 자연적 세계에 존재하는 차이를 디지털화 과정에서 소거하는 것과는 반대로 다시금 그 차이를 생산해 내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이는 디지털 매체를 매개로 한 균질화된 세계에서 차이를 찾고자 하는 욕망이며, 디지털과 현실 세계의 경계가 모호하게 섞여 그 구분이 흐려지는 매체 환경에 우리가 너무 쉽게 몰입하게 되는 데에 대한 불안감의 다른 표현이다. 우리가 보는 것이 실체를 결여할 수 있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를 가시적으로 만들지 못할 이유 역시 없다. 새로운 매체 환경에 반응하는 김인영의 즉물적 작업이 디지털 이미지의 한계 너머에 있을지도 모를 촉지적 감각을 일깨우고 나아가 ‘보이는 것 이상’의 비가시적 영역에 대한 사유로 이어질 수 있길 바란다.
■ 김주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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