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포스터
김라연
희 망 상 회 2019, oil on canvas, 53x40.9cm (ea.)
김라연
어느 산을 기억하다 2019, oil on canvas, 130x176.5cm
김라연
모든 것이 끝나버린 날 2019, oil on canvas, 53x40.9cm
김라연
사물은 빛을 피하지 않는다 2019, oil on canvas, 53x40.9cm
김라연
건땅 2019, oil on canvas, 116.8x273cm
김라연
빈 땅 oil on canvas, 210x395cm
김라연
저곳을 바라보다 2019, oil on canvas, 31.6×40.9cm
해마다 여름의 열기가 무르익을 때쯤이면 계절보다도 더 뜨거운 열정을 쏟아내는 젊은작가들이 있다. 바로 OCI미술관(관장: 이지현)의 2019 OCI YOUNG CREATIVES 선정 작가들로, 올해도 어김없이 여섯 명의 작가가 릴레이 전시를 선보이며 그간의 재량을 뽐낸다. 그중 두 번째 파트인 6월 20일부터 7월 13일까지, OCI미술관의 2층 전시장에서는 김라연의 개인전 <희망 상회>가 펼쳐진다.
전시의 타이틀이자 작품명이기도 한 ‘희망상회’는 작가가 어느 날 거리에서 만난 낡은 상점의 간판이다. 살던 사람은 이미 떠나버린 빈집에 미래를 꿈꾸는 단어 ‘희망’과 이제는 구식이 되어버린 용어 ‘상점’이란 두 단어가 나란히 적힌 것이 무상한 세월의 흐름이 담겨 있는 것만 같아 작가의 뇌리에 남아있다가 탄생하게 된 작업이다.
섬세한 필치로 도시 표면의 변화를 그려온 김라연은 이번 전시에서도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사라져가는 도시의 면면을 관찰하고 화폭으로 옮긴다. 재개발 공사로 건물이 허물어진 자리에서 비로소 얼굴을 내민 빈 땅, 드러난 맨땅을 훑으며 어느샌가 무성하게 자라나 숲을 이루는 식물, 쓰던 사람은 사라져도 여전히 제 자리에 남아 의연하게 빛을 받는 사물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묵묵하게 삶을 이어 가는 것들이다.
김라연은 한때 존재하였으나 곧 사라져버릴 헐벗은 사물과 장소를 화폭으로 옮기며 우리 시대를, 그 일상의 잔잔한 소요를 침착하게 마주한다. 세상이 바뀌어가는 것을 막을 수야 없겠지만 마음을 다해 그릴 수는 있으니, 작가는 붓을 들어 그림으로 옮김으로써 나지막이 이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보듬는다.
현실을 바탕으로 하되, 김라연의 작업은 현실을 그대로 화폭으로 옮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작가의 시선으로 풍경이 걸러지고 머릿속의 상상이 더해져 어디에도 없는 미지의 세계를 꿈꾼다. 시끄러운 세상의 소음이 지워진 고즈넉한 풍경은 아련한 여운을 남긴다.
희망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급변하는 사회에 대하여 성급한 분노를 쏟아내는 대신 김라연은 자신의 자리에서 오늘을 기록한다. 차분하게 호흡을 고르며 저 먼 곳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관객에게도 전해지기를 기대한다.
■ OC I미술관
거리의 표정을 살피고 다니던 작가에게 어느 날 간판만 덩그러니 걸려있는 낡은 상점이 눈에 들어왔다.
희 망 상 회
살던 사람은 이미 떠나버린 빈집에, 앞날을 꿈꾸는 말 ‘희망’과 이제는 구식이 되어버린 용어 ‘상회’가 나란히 적혀있다니 생각할수록 아이러니한 조합이었다. 닳을 대로 닳아 글씨가 떨어져 나간 간판의 겉면에는 그만큼 무상한 세월이 담겨있었다. 한때는 누군가 일상을 일구던 곳이었을 텐데, 그런 곳이 주변에서 자꾸 사라져갔다. 말릴 새도 없이, 아쉬워할 새도 없이.
그럼에도 삶은 이어졌다. 쓰던 사람은 없어져도 사물은 남아 묵묵히 빛을 받으며 자신의 존재를 수긍하고 있었다. 사람이 떠난 빈 땅에는 식물이 자라나 저마다의 생(生)을 이루었다. 그러니 작가는 그릴 수밖에 없었다. 세상이 바뀌는 것을 막을 수야 없지만, 이 도시가 바뀌어가는 것을 똑똑히 보고 그릴 수는 있으니까 땅 위에 쌓인 건물이 걷어지고, 맨땅이 드러나고, 다시 풀이 땅을 뒤엎는 과정을 보고 상상하며 캔버스에 옮겼다. 헐벗은 사물과 장소가 보내는 시선과 마주하며, 나지막이 이름을 불러주고 기억하며, 바뀌어가는 도시의 표면을 붓질로 보듬었다. 그렇게 이번 전시는 만들어졌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지 않고,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아직도 희망을 말할 수 있을까. 변해가는 세상을 향해 성급한 대안과 분노에 찬 악다구니를 쏟아내는 대신 김라연은 차분히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음을 다해 오늘을 기록한다. 그의 희망을 듣기라도 하는지, 저 먼 곳으로 보낸 작가의 시선에 풍경은 다만 나지막한 침묵으로 답을 보낸다.
■ 김소라 (OCI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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