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기억공작소Ⅲ 권정호 – 뉴욕 1985
2019.07.12 ▶ 2019.09.29
2019.07.12 ▶ 2019.09.29
권정호
해골 87-1(skeleton 87-1) 133.5x179.3cm, acrylic on canvas, 1987
권정호
소리 85(sound 85) 144.2x156.5cm, acrylic and paper on canvas, 1985
권정호
소리(The sound) Mix Media(ruler, speaker, wood…), 1984 _ 20x11.5x122cm, 2019 재제작
권정호
해골 85(skeleton 85) 90.6x90.6cm, acrylic on canvas, 1985
권정호
전시전경
기억공작소Ⅲ『권정호』展
‘기억공작소記憶工作所 A spot of recollections’는 예술을 통하여 무수한 ‘생’의 사건이 축적된 현재, 이곳의 가치를 기억하고 공작하려는 실천의 자리이며, 상상과 그 재생을 통하여 예술의 미래 정서를 주목하려는 미술가의 시도이다. 예술이 한 인간의 삶과 동화되어 생명의 생생한 가치를 노래하는 것이라면, 예술은 또한 그 기억의 보고寶庫이며, 지속적으로 그 기억을 새롭게 공작하는 실천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들로 인하여 예술은 자신이 탄생한 환경의 오래된 가치를 근원적으로 기억하게 되고 그 재생과 공작의 실천을 통하여 환경으로서 다시 기억하게 한다. 예술은 생의 사건을 가치 있게 살려 내려는 기억공작소이다.
그러니 멈추어 돌이켜보고 기억하라! 둘러앉아 함께 생각을 모아라. 우리가 인간으로서 지금껏 우리 자신들에 대해 가졌던 전망 중에서 가장 거창한 전망의 가장 위대한 해석과 그 또 다른 가능성의 기억을 공작하라!
그러고 나서, 그런 전망을 단단하게 붙잡아 줄 가치와 개념들을 잡아서 그것들을 미래의 기억을 위해 제시할 것이다. 기억공작소는 창조와 환경적 특수성의 발견, 그리고 그것의 소통, 미래가 곧 현재로 바뀌고 다시 기억으로 남을 다른 역사를 공작한다.
「스피커, 뉴욕 1985」
1984년 어느 날, 동시대미술을 제대로 공부하려고 머물던 뉴욕의 학교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길가에 버려진 작은 스피커 세 개를 우연히 발견하고, 대도시의 소음 공해에 시달리던 자신의 처지에 견주어 회화의 새로운 구조를 착안했던 그 순간의 기억, ‘뉴욕 1985’는 이 기억을 호출한다. 권정호는 증폭된 전기신호를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음향에너지로 변환하는 ‘스피커’와 우연히 마주하면서, 평소에 고민하던 ‘그림에서 정신과 육체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의 실마리를 풀기 시작했다. 소리를 전달하는 ‘스피커’가 가시적인 외형의 매체로서 ‘육체’이며, 생각이나 감성을 음성기호로 구성한 ‘소리’가 비가시적인 내용으로서 ‘정신’에 대체될 수 있겠다는 착상着想이다. 말하자면, 스피커는 소리를 상징하는 그릇인 셈이다. 스피커를 재발견한 이 사건은 ‘개념과 의미’가 대중에게 잘 전달되는 미술을 원했던 작가에게 좋은 계기가 되었다. 작가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 “나는 곧장 그것을 개인 작업장으로 들고 왔다. 그리고 화판 한복판에 스피커를 붙이고,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가로질러 붓질을 이어갔다. 그 순간 나는 이 행위가 소리의 개념을 전달할 수 있는 어떤 작품의 형식임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런가 하면 화판 위의 붓 자국은 바람을 연상하고 감정을 느낄 수 있는 행위, 즉 소리를 연상할 수 있는 행위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인간은 이성과 감성이 공존하는 존재다. 작품도 음陰과 양陽으로 구성되기 마련이다. 나는 스피커와 행위의 관계도 마찬가지라고 보았다. 이것은 전달이라는 개념 자체를 작품으로 본 마샬 맥루한의 관점, 그리고 무엇보다 당시 내가 관심을 가졌던 동양의 이기이원론과도 무관하지 않은 방식이었다. 스피커와 행위의 개념적인 결합을 통해 소리를 작품으로 시각화한 나의 ‘소리’ 시리즈는 이렇게 탄생하였다. 이 같은 방식은 자연히 추상과 구상의 결합, 나아가 현대미술에서 형상으로의 복귀를 의미하기도 했으며, 이로 인해 ‘신표현주의’로 명명되기도 했다.”
이번 ‘뉴욕 1985’전에서는 1984년 당시의 스피커 작업 2점과 이후에 제작한 대표작 1점을 소개한다. 전시장 정면의 천장 높은 벽에 걸린 1985년 작 ‘소리 85’는 스피커를 오브제가 아닌 이미지로 차용한 대표작이다. 인간이 이룬 과학기술적 성취를 대변하는 ‘이성’과 ‘양’의 요소로서 스피커 이미지를 그려 넣고 그 주변에 종이를 붙여서 다시 찢고 거친 붓질을 가미해서 ‘음’의 요소로서 비가시적인 소리의 영역을 정서적 감성과 함께 전달하고 있다. 뒤돌아서 보이는 반대편 벽면에 설치한 입체작업 ‘소리’는 그 당시에 발견한 스피커와 철자, 악보, 나무박스 등으로 구성한 1984년 작을 올해 새로 제작한 것이다. 소리의 수치를 재려는 듯이 쇠로 만든 자를 붙인 이 작업은 자신을 억누르던 소음으로 고생스럽던 뉴욕 생활의 현실이 스며있다. 그 우측 아래 벽면에 걸린 ‘소리’는 1984년에 시작해서 1985년 완성한 회화 작업이다. 화면에 스피커와 깨진 유리조각을 붙이고 그 표면에 붓질을 한 이 작업은 인간을 억압하는 소리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려는 실험과 작가 자신이 찾던 뭔가를 발견한 충만함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이 작업들은 비가시성과 시각형상, 내용과 형식, 비실체성과 실체성, 음과 양 등을 인지하게 하는 구조構造로서 작가가 뉴욕에서 접한 동시대미술의 언어와 현실세계에 대한 반응으로서 리얼리즘적 단면이라 할 수 있다.
「소리와 해골」
전시실에는 ‘소리’ 작업에 이어, 세 개의 캔버스를 연결하여 그린 1985년 작 ‘해골 85’와 악다문 이를 드러내어 현실의 모순과 억압에 대한 저항을 상징하는 1987년 작 ‘해골 87-1’, 그리고 석고로 본떠서 만든 해골을 마치 하얀 바닥 속에서 발굴해낸 듯이 설치하여 전시실 바닥 전체를 세계의 상상 덩어리처럼 작품화한 최근작 ‘해골’을 볼 수 있다. 권정호는 ‘해골’ 시리즈로 잘 알려진 작가이다. 평면 회화와 입체 혹은 설치미술 형식으로 소개하는 그의 해골骸骨skeleton은 ‘소리’를 상징하는 ‘스피커’처럼 세계에 반응하는 인간의 소리로서 얼과 마음, 감성을 담는 그릇이자 전달매체이며, 실존적 인간의 삶과 죽음, 사회적 사건과 모순, 억압에 대하여 반응하고 소통하려는 한국적인 리얼리티와 사유들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외형이다.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두개골은 삶과 죽음, 시간을 나타내는 소통의 대상이자, 인간이 기피하는 충격적 대상이기도 했다. 나는 그런 충격을 통해 절대적인 파국을 초시간적인 방법으로 구현하고자 노력했다. 나아가 이를 명상에 이르도록 하여 파국이 아니라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한국적인 리얼리티를 연상시키는 동시에 우리의 삶을 치유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번 전시 ‘뉴욕 1985’는 뉴욕 한국문화원 개인전에서 발표하기도 했던 ‘소리’와 ‘해골’ 시리즈의 일부를 살펴보면서 추상미술, 미니멀리즘, 하이퍼 리얼리즘 등 서양미술의 영향이 지배적이었던 1970~80년대 초반 한국 미술의 정체성에 대한 반성과 뉴욕행이라는 새로운 도전에서 자신의 미술을 성장시키려했던 미술가 권정호의 태도를 보여준다. 그의 미술행위는 ‘소리와 얼’처럼 시각예술로 드러내기 어려운 비가시적인 사유의 흐름들과 ‘스피커와 해골’ 등 상징적인 외형을 통합하여 구축하고 그 균형과 공존의 필요성을 깨닫게 하는 장치이다. 또한 작가 자신이 바라본 인간 억압과 실존 세계의 구조로서 ‘음과 양’의 사유를 떠올리고 그 시각화에 의해 자신의 공감을 확장하는 미술의 구축에 관한 것이며, ‘정신과 육체’, ‘음과 양’, ‘생성과 소멸’, ‘생과 사’의 불확실한 경계를 인식하고 그 분리와 통합을 실험 조형의 행위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권정호의 미술은 형상으로 구체화된 ‘양’의 구조에 기대어 비가시적인 ‘음’의 구조를 구현하려는 색, 드로잉, 붓질 등 감성적 신체 행위의 응집력을 통하여 세계의 시대성 속에서 인간 실존을 드러내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작가는 인간의 ‘육체’와 ‘정신’을 통합하는 일체를 통한 자연인간 그대로의 진실들을 우리에게 전달하려고 한다.
■ 봉산문화회관큐레이터 정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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