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포스터
박일용
From Nature1 Mixed Media, 178x198cm, 2019
박일용
From Nature10 Acrylic on canvas, 72x73cm, 2018
박일용
From Nature25 Acrylic on canvas, 130x162cm, 2012
박일용
From Nature3 Acrylic on canvas, 48x50cm, 2019
선화랑(원혜경 대표) 에서는 2019년 9월 18일부터 10월 12일까지 박일용(b.1960)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2014년 이후 5년 만의 개인전인 이번 전시에서는, 자연을 모티브로 해오던 일련의 사실적 구상회화의 경향에서 좀 더 자율성과 실험성을 띤 주관적인 관점으로 변모한 회화, 부조작품 30여점의 신작을 선보인다.
박일용 작가는 대학 재학중이던1984년 제3회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화단에 화려하게 등단하였다. 대학 졸업 이후 일찍이 전업작가의 길을 걸어왔으며 벌써 화업40여 년이 되었다. 작가는 일관되게 회화의 본질을 자연에서 찾아왔고, 자신만의 무드가 돋보이는 풍경화와 정물화를 그려오며 그 동안 구상화단의 많은 작가들 속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작가 박일용은 늘 새로움을 갈망하는 도전적인 기질로 더욱 자기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박일용 작가의 작품들은 시기별 도상의 변화를 갖는다. 초기 작업은 인간의 고독이나 낭만과 같은 감정이 곁들어진 ‘고적한 풍경’의 성격을 띠었다. 2000년대 와서는 자연의 현장체험을 바탕으로 작가만의 붓질과 색채감이 강조된 표현적인 풍경화를 그렸고 특히2000년 후반에는 ‘화양연화(和樣年華)’로 명명된 풍경화를 통해 들판에 흐드러진 양귀비의 아름답고 생명력 넘치는 자태에 주목하였다.
[새로운 환경과 작가철학] 작가는 ‘판에 박은 듯 그림을 그리는 것은 죽은 예술을 낳는다’는 예술관을 철칙으로 여겨왔다. 그래서 그의 그림을 보면 사진을 찍듯이 묘사한 기계적인 사경(寫境)은 별로 발견되지 않는다. 이것은 그가 그림을 ‘주관적 관찰과 회화적 감각, 심리적 체험’을 통해 체득된 바를 전달하는 표상체계로 여기기 때문이다.
-“점, 선, 면, 색채, 질감에서 오는 느낌이 미술의 기본적인 요소이다. 그걸 가지고 어떻게 화면을 만들어내느냐가 중요하다. 요즘 내 관심은 온통 그것에 쏠려 있다. 대상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작가 노트 中)-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 작가는 10여년전부터 충주소재의 전원에 작업환경을 만들고 그가 천착해온 자연을 직접 체험하면서 자연에 대한 새로운 조형언어를 찾아가고 있다. 이번 근작에서는 자연의 주제는 변함없이 이끌어 가면서도 확연히 다른 특징적인 변화를 볼 수 있다.
[새로운 환경과 작가철학] 그의 충주작업실 전원 가운데에는 모네가 평생 수련연작에 천착했던 지베르니 연못과 유사한 자연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모네와 그의 작품은 수많은 화가들의 동경 대상이었지만 작가 박일용은 동일한 소재인 수련을 그의 화폭에 끌어들여오면서도 현시대에 바라본 시각으로 재해석하고 전혀 다른 독창적인 표현과 이미지로 재창조했다. 이는 앞서 말했듯 해오던 것에 대한 익숙함에 안주하기 보다 늘 새로운 것에 대한 탐색, 실험, 자유로운 표현을 갈구하는 작가의 철학에서 연유한 것이다. 작가는 자연 속에서 전원생활을 시작하며 오히려 이러한 도전정신, 자율성이 극대화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작가의 삶에 관한 지향점의 변화이다. 현재의 주변환경과 그 환경에서 살아가는 작가의 삶은 작품과 유기적 관계에 놓인다. 박일용 작가의 근작에서 두드러지는 소재와 표현의 변화를 통해서도 강하게 느낄 수 있다. ‘수련’을 소재로 한 일련의 연작 탄생은 늘 자신의 가까이에서 함께 살아가는 수련의 모습이 작가가 추구하는 삶과 닮아 있는 것에 착안한 것이기도 하다. 속세를 벗어나 조용하고 평화로이 부유하고 있는 동그랗고 소박한 수련의 모습은 중진의 나이에 접어들며 점차 삶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고 단순화시키려 하는 작가의 바람이 작품에도 잘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젊은 시절의 화려한 테크닉보다는 이순의 나이로 접어들며 점차 단순 명료한 화법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 과도 연결된다. 이러한 점들은 자연을 대변하는 수 많은 존재가운데 작가가 수련이라는 소재를 선택한 동기가 되었다. 작가의 삶 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 속에도 그의 삶에 대한 철학은 동일하게 드러나고 있다.
[변모한 형식미와 작품세계] 페인팅에서도 점차적으로 묘사와 설명을 뺀 단순화 되어가는 과정으로 변모한 화풍을 엿볼 수 있지만, 작가는 근작에서 그것을 좀 더 새로운 조형언어로 풀어가고자 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캔버스에 아크릴물감으로 그려져 있는 연 잎의 평면적인 모습을 좀더 부조적이고 입체적으로 표현하며 작가만의 조형적 형태와 색감을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자연을 바라보게 하고자 하였다.
반복되는 동그라미의 집합은 수면 위에 부유하고 있는 수많은 연 잎의 중첩된 모습에서 착안한 것이지만, 형식적으로 가장 단순하고 간결함을 추구, 단순성과 반복성 등을 통해 미니멀리즘의 절제된 형태 미학과 맥을 같이하며 작가는 또 다른 조형 언어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새로이 보여주고자 한다.
작품 속에 집합체, 집약적으로 모인 형태와 녹색의 단색조는 연못 위 수많은 연 잎의 모습을 단순화시킨 형상이자 색감이지만 작가는 자연 자체를 대변하는 또 다른 풍경을 말하고 싶었다. 그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눈에 보이는 피상적인 이미지가 아닌 자연의 본질적인 의미와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하고, 또한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사고의 전환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해주고자 한다.
박일용, 자연속의 자적
서성록 (안동대 미술학과 교수)
박일용은 탄탄한 데생과 무르익은 필력으로 자연 경관을 묘출하는 풍경 화가이다. 그는 화가로서 누구보다 작업에 충실하며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서른다섯 차례의 개인전이 말해주듯이 이것은 작가의 꾸준함을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그는 화가라면 한번쯤 있을법한 ‘외도(外道)’도 발견되지 않는 그야말로 성실한 미술가이다. 1984년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 수상으로 미술계에 첫 발을 내딛은 이래 화가라는 사실, 그리고 그림에 대한 긍지를 잊어본 적이 없는 그다. 이것이 그가 험지(險地)인 화단에서 건재하고 있는 비결인지 모르겠다.
풍경화의 장점이라면 아무래도 자연의 자태를 통해 그것의 아름다움과 생생한 리얼리티를 느끼는 것이리라. 자연에 대한 애정과 친화, 그리고 대상체험에서 오는 공감이야말로 그림에 큰 활력소가 되기 때문이다. 마치 소설가가 현장체험을 바탕으로 스토리라인을 잡고 글을 쓰듯이, 박일용도 전국의 농촌과 어촌, 들과 산골, 바다풍경의 체험을 바탕으로 자연 풍광을 화폭에 담아왔다. 붓을 잡은 지 어언 40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그동안 그림세계에 몇 고비가 있었던 것이 이상하지 않다.
그의 작품들은 도상의 변화를 겪으며 현재에 이르렀다. 초기에는 인간의 고독이나 낭만과 같은 감정이 곁들어진 ‘고적한 풍경’의 성격을 띠다가 2천년대 와서는 붓질과 색채감이 강조된 표현적인 성격이 농후한 풍경화를, 그리고 2007년경에는 ‘화양연화(和樣年華)’로 명명된 풍경화를 통해 들판에 흐드러진 양귀비의 자태에 주목하였다.
작가는 ‘판에 박은 듯 그림을 그리는 것은 죽은 예술을 낳는다’는 예술관을 지니고 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작가는 이것을 철칙으로 여기며 지켜왔다. 그래서 그의 그림을 보면 사진을 찍듯이 묘사한 것, 다시 말한 기계적인 사경(寫境)은 별로 발견되지 않는데 이것은 그림이란 그가 ‘주관적 관찰과 회화적 감각, 심리적 체험’을 통해 체득된 바를 전달하는 표상체계로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점, 선, 면, 색채, 질감에서 오는 느낌이 미술의 기본적인 요소이다. 그걸 가지고 어떻게 화면을 만들어내느냐가 중요하다. 요즘 제 관심은 온통 그것에 쏠려 있다. 대상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작가 노트 중에서)
작품은 회화의 기본요소로 환원된다는 말과는 구별해서 보아야할 것이다. 그에게 회화의 기본 요소는 작가의 심리적 체험을 돕는 수단이지 그 자체가 독립적이지는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그의 조형관은 종래의 정형화된 사실주의를 좀더 모던하게 처리하고 그러면서 갱신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의 풍경실험은 그간의 풍경화(특히 1990년대 후반과 2천년대 초반)와 양귀비꽃이 즐비하게 핀 <화양연화>에서도 확인된다. 이들 작품들은 막힘없는 붓질과 정채(精彩)로운 색깔의 점철이 하모니를 이룬다.
익숙한 것이 좋으련만 이런 상식 자체를 꺼리는 작가는 또 새로운 작업에 도전한다. 이른바 ‘자연으로부터’ 연작이다. 이 연작은 충주댐 인근에 마련한 그의 작업실에서 받은 체험을 바탕으로 제작한 것이다. 작가는 2012년경 충주시 인근의 농토를 구입하여 그곳에 정원을 꾸몄다. 처음에는 허름한 농가 한 채와 농사를 짓는 밭뿐이었으나 작가는 이곳을 수목과 화초가 만발한 정원으로 일구었다. 그의 작업실 주위에는 살구와 매실 나무에 달린 과실들과 각종 채소는 보는 이의 마음마저 부유하게 해준다. 그는 한 점의 작품을 만들듯 그곳을 멋진 정원으로 꾸몄다. 그중에서도 특히 그가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은 사계절 수련을 감상할 수 있는 연못이다. 그러니까 <자연으로부터>는 자신의 연못에 핀 수련을 소재로 한 것이었다. 그가 평소 좋아하는 인상파의 화가 모네가 43년간 파리 인근의 지베르니(Giverny) 연못과 정원에 머물면서 <수련>(water Lilies)을 탄생시켰다는 사실은 박일용이 산골에 연못과 정원을 낀 작업실을 만드는데 자극제가 되었을 것이다.
그가 제작한 <자연으로부터>는 이제까지의 작업에 비추어보면 가장 파격적인 스타일을 취한다. 철판에 채색을 하여 쌓아올린 부조 작품을 비롯하여 판재를 이용한 것 등이 눈에 띈다. 물론 아크릴을 이용하여 연못의 이미지를 부감법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데 ‘색채화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그는 단색조의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철판이나 보드판을 사용한 것도 그렇고 붓 대신 열로 가열하거나 판재를 오려붙이는 수법 등은 그가 종래의 작업패턴에서 벗어나 분망한 실험을 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또 한가지는 <자연으로부터>의 모티브인 ‘수련’이 유발하는 이미지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수련’은 모네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다. 어지간히 수련에 대한 신선한 해석을 구사하지 않는 한 모네의 인장력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뜻이다. 작가로서는 누구를 떠올리게 한다는 것은 썩 내키지 않은 일이다. 이런 점이 부담스러웠던지 작가는 그리기를 탈피하고 자기만의 독창적인 수법, 즉 전혀 경험해보지 않은 것 속에서 작업의 실마리를 찾으려 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자연으로부터>는 잉여 부분을 완전히 뺀 나머지, 즉 중핵적인 예술을 선보인다. 전작(前作)을 보면 색과 붓을 이용하여 조형화 단계를 밟는 과정에서 대상을 서술하는 모습을 띄었지만 현재의 <자연으로부터>는 이런 인위성을 배제한 고요하면서도 자적(自適)의 느낌을 안겨준다. 부족함이 없는 수련이요, 그런 수련은 보는 이에게 아늑함마저 전달한다.
많은 사람들이 반복되는 일상생활에 허덕이고, 정신적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것을 보게 된다. 폴 비릴리오(Paul Virilio)는 현대사회를 ‘달리는 정지상태’란 말로 재치 있게 표현한 적이 있다. 겉으로는 빨리 속도를 내어 달리는 것같은데 실은 제자리걸음이라는 뜻이다. 문제는 속도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우리는 더 빨리 뛰어야만하고 한눈을 팔아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자아는 늘 자신의 가치와 실력을 입증해야하는 중압감에 시달린다. 이렇게 현대인들은 불안감에 시달린다.
박일용의 작품이 주는 함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그림에서는 ‘경쟁’이나 ‘효율성’, ‘속도’와 같은 것들과는 상관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시간을 앞질러갈 뜻이 별로 없어 보인다. 작가는 자연과 벗하며 지낼 수 있는 고요한 장소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하는 것같다. 군중의 소음처럼 번잡스러운 그림은 오로지 그 공허함의 무게로 우리를 실망에 빠뜨린다. 그것은 채워줄 수 없는 희망의 떠벌림으로 우리를 헷갈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더욱이 소음에 노출되어 있는 동안에는 ‘존재’가 ‘소유’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조차 없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자니 얼마 전에 읽은 알셀름 그륀(Anselm Grun)의 책 중의 인상적인 글귀가 생각났다. “고요는 귀를 열어 우리 영혼의 멋진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문이다.” 평화로운 자적 속에 놓여 있는 박일용의 그림은 이 사실을 묵묵히 말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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