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아: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 2.0
2019.09.27 ▶ 2019.10.27
2019.09.27 ▶ 2019.10.27
전시 포스터
함양아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 2.0, 2019
함양아
주림, 2019
함양아
넌센스 팩토리 - 미래의 팩토리를 위한 도면을 그리는 방, 2013-17
함양아
넌센스 팩토리 - 쿠폰룸, 2013-2017
함양아
당신의 춤, 22’, 2019
2014년 즈음 함양아는 아티스트로서 벽을 느끼기 시작했다. 20년 간의 예술 활동 후 비평이 체제에 흡수되어 운동성을 잃어버리는 것을 목도하는 절망감도 있었다. ‘어디부터 잘못되었던 걸까?’ ‘무엇을 해야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 질문은 자연스럽게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사회에 닿았고, 함양아는 정치 시스템에 대한 구체적 질문을 시작했다.
2018년 3월 그것을 스케치로 그려냈다. 스케치는 현재 정치 시스템이 갖는 2차원적 정부 조직도와 이를 위시하는 넘을 수 없는 장벽을 바탕으로 했다. 조직도 안의 인물들과 조직도 밖의 인물들, 성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과 성 밖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연필 드로잉으로 그려갔다. 드로잉 속 인물들의 행위를 주변 친구들에게 하나씩 부탁하여 그린스크린에서 영상에 담았다. 개괄적으로 그렸던 연필 드로잉 위에 실재 인물들이 행위하는 영상물로 덮여갔다.
이를 하나의 화면에 담은 것이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 연작이다. 고정된 카메라 안에서 인물들이 순차적으로 화면 곳곳에서 행위한다. 행위의 순서들을 기반으로 관객은 각자의 관점을 갖는 내러티브를 만들어 본다. 이를 통해 현재 세계의 좌표 안에 관객 자신이 서있는 지점을 살펴보는 것이다. 함양아가 지금까지 실천해 온 사회비평적 방법으로의 예술과 연장선에서, 개인과 사회시스템의 문제를 본격화하는 시작점이 된다.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의 대형 프로젝션은 지금 현대 인류에 관한 풍속화로, 히로니뮈스 보스Hieronymus Bosch의 ‹건초 마차›를 떠올리게 한다. 화폐 경제로 이행하는 13세기 이후 탐욕이 악의 근원으로 부상하는 세계를 그린, 세속의 재화인 건초를 차지하려는 탐욕이라는 죄를 다룬 중세적 종교화이다. 이 삼면화에서 보스는 타락 천사의 추방, 폭식하는 성직자, 폭행하거나 살인하는 사람, 사기 의술을 저지르는 돌팔이 의사 등의 모습을 통해 인류가 걸어온 죄악의 역사를 조망한다.
함양아의 작업은 현재 시스템이라는 무대 안에서 각각의 역할을 하는 일종의 인형극을 보여준다.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 2.0›의 주제는 금융의 역사를 통해 조망한 신자유주의 제도가 고착화되는 과정이다. 한 인물이 걸어 들어와 정부조직도의 검은 푯말 하나를 건드리면, Treasury(재무부)라고 적힌 단어에 불이 들어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1970년대 말 대처리즘과 레이건 시대 이후 투자은행(실은 투기은행)이 본격 등장하고, 1986년 빅뱅이라 불리는 컴퓨터를 사용한 증권 거래가 시작되면서 신자유주의 경제라는 역사상 전례 없는 부의 집중이 발생한 기원을 다룬다. 니콜라스 네그로폰테가 설파한 ‘사용자 모두를 온라인으로 연결하는 공동체’라는 기술유토피아적 찬양은 결국 슈퍼 리치와 테크노크라트의 등장을 가능케 했을 뿐이다.
마치 15세기 보스의 회화처럼 함양아는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가져온 이러한 아이러니의 상황을 인간의 탐욕과 물신화의 현장으로 그려낸다. 동시에 함양아는 신자유주의 체계가 역사를 걸쳐 인간에게 늘 있었던 일반적인 상황인 양 무감각하게 받아들이는 지금을 비판한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시대를 해석해 보고자 하는 예술가의 욕구와 시스템을 통찰해 보고자 하는 지식인의 욕망마저 무력화시키며 체제 내로 끌어들인다. 예술의 사회적 역할은 행동주의 운동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세계를 통찰하는 관점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함양아는 많은 개별 리서치를 진행한다. 리서치 없이는, 관념화되고 공허한 이상주의적 구호 만을 외치게 될 뿐이기 때문이다.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는 정규 교과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배제된 사실들을 작가 자신의 주체적 리서치를 통해 발견하고 재해석하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
함양아는 공산주의 혁명과 국가 사회주의 개혁의 실패가 증명하듯, 제도에 의존하는 변화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오히려 개인의 혁명만이 현재 시스템을 극복할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제도적으로 삭제되었던 정보들, 사실들을 연구하고 재조립하는 교육과 이를 공유하는 실천이 동시에 필요하다.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는 향후 몇년간 버전을 달리하며 진행될 계획이다. 작업이 진행되는 과정을 관객과 나누고, 관객의 피드백에 대응하는 다음 버전이 만들어진다. 이런 민주적인 작업 제작 방법은 등장인물이 작가의 친구들, 친구들의 친구들이라는 사실과도 관계가 깊다. 이 사회 시스템이 갈수록 견고하게 소수만을 옹호한다면, 남은 방법은 제도 밖에 있는 사람들 간의 주체적인 연대와 지지일 것이기 때문이다.
글: 양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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