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선희: The Medium : Layered, Lined
2019.10.16 ▶ 2019.11.23
2019.10.16 ▶ 2019.11.23
임선희
Blue, Red, and White Parrots 2019, Oil on Canvas, 112x162cm
임선희
Lined Blue Ring Angelfish II 2019, Oil on Canvas, 162x112cm
임선희
Pink Cake and Blue Guitar II 2019, Oil on Canvas, 162x227cm
임선희
King Charles Spaniels 2019, Oil on Canvas, 112x145.5cm
임선희
Bambi 2019, Oil on Canvas, 100x84.5cm
임선희
African Cheetah 2019, Oil on Canvas, 97x130cm
회화의 본질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된 임선희의 작품 세계는 색, 선, 면과 같은 조형의 기본 요소들이 대상의 사실적 묘사를 드러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써 가지는 심미적 가치를 탐구하는 것이다. 색채와 선을 분리시켜 모더니즘의 세계를 이끈 세잔, 마티스 등에 영향을 받은 임선희 작가는 현대회화를 전통 회화와 구분 짓는 결정적인 요소인 평면성에 주목하고 있다.
3차원적 현실에서 벗어난 2차원적 성질의 평면성은 회화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주며, 평면성의 추구는 현대 회화가 추구해온 핵심이자 다른 예술적 장르와 차별화되는 회화의 독자성을 나타내주고 있다. 이번 개인전을 통해서 임선희는 회화가 가지는 독특한 특성에 대해 고찰하는 동시에 한국 현대회화가 나아갈 다양한 방향성을 제시해주고 있다.
헨리 마티스 (1869~1954)가 바라본 회화는 색채와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면의 분할을 표현하고있다. 이러한 예술적 관념에 영향을 받은 임선희 작가는 'Pink Cake and Blue Guitar I, II (2019)'시리즈 작품을 통해 색채, 면, 그리고 대상과 대상 사이에 공간적 관계로 발전시켰다. 윤곽선이나 명암으로 대상의 형상을 반영하기 보다는 차분하면서 정교한 색채의 단계적 변화로 형상화한다. 화면 위에 그려진 대상의 색은 실제 물질의 고유한 색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형태와 색 그리고 이것들을 이루고 있는 여러 겹의 레이어들이 연합하여 가지는 에너지가 평면적 화면 위에 조화롭게 울리는 파장을 전달하고 있다.
섬세하게 여러 겹 쌓아 올린 레이어들은 화면 전체의 평면적 측면을 강조하며 회화의 기본적인 구조, 즉 순수한 미학적인 구조를 이끌어내는 의도를 담고 있다. 배경 전체를 뒤덮고 있는 핑크색 레이어는 그 위에 핑크색으로 표현된 대상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각각의 물체들은 상대적으로 평면화되어 있으며, 오직 서로 다른 굵기의 붓터치와 색채의 농도만이 캔버스 위에 위치한 사물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고 있다. 각 오브제들은 레이어들로 그 형태가 나누어져 있지만 각 대상의 형태와 칼라는 서로 구속되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에 반해 'Blue Ring Angelfish (2019)'시리즈 작품은 굵고 얇은 선들로 이루어진 물고기들이 형형색색의 보색으로 화면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다. 각 대상들간의 깊이감과 공간감을 느끼게 하기 보다는 복잡하지 않고, 제한된 형태 안에서 여러 가지의 색채와 붓질로 구도를 선택하여 구획된 대상들은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평면적인 구조를 완성하였다.
동일한 크기와 색으로 그려진 해초들은 납작한 느낌을 부각시켜주고 있으며, 화려한 색상과 두터운 붓터치로 빛을 뽐내고 있는 제각기 다른 물고기들은 명암법으로 실제적인 모습이 구현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로 살아 숨쉬는 생명력을 담아내고 있다. 재현적 기능의 색채와 구성적 역할에서 벗어난 대상들은 자극적인 색채가 회화에서 가지는 독립적인 입지를 강화시켜 주고 있으며, 회화의 조형적 요소들이 가지는 힘에 집중하고 있다.
이와 같이 단순함과 대담함을 살리면서 평면성을 강조한 작품으로 'King Charles Spaniels (2019)'을 예로 들 수 있다. 평면적으로 바탕을 색칠한 짙은 초록색 면 위에 두꺼운 윤곽선과 붓놀림으로 이루어진 강아지들은 모두 시선을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거리와 공간에 상관없이 각 대상들의 크기는 일정하게 표현되어 있다. 즉, 강아지 형상을 구성하고 있는 레이어들은 대상과 대상과의 관계만 관여할 뿐 강아지들이 위치한 구도는 원근감에 영향을 주지 않고 공감적 개념은 생략되어 있기 때문에 2차원의 전체 화면을 바라보았을 때 각각의 대상의 크기는 동일하게 보인다. 자유로운 구도와 거리감을 적용함으로써 명암으로부터 자유로운 평평한 강아지들은 인위적인 느낌이 강렬하게 전해진다.
강렬한 색채와 붓질로 전통적인 원근감과 명암법에서 벗어난 'Scarlet Macaw with Brush Strokes (2019)작품은 대상과 배경이 동일한 파란색과 하늘색으로 이루어져 있어 그 둘 사이는 확실하게 구별이 가지 않고, 색상의 단계적 차이만으로 경계를 이루고 있다. 깃털들이 난 방향으로 빨강, 초록, 파란색들을 활용하여 칠해진 두꺼운 붓터치들만이 앵무생의 형태를 인식시켜 주고 있다. 색채와 붓터치로 평면성이 강조된 앵무새는 대상이 실제로 가지고 있는 자체적인 색을 부정하고 색채의 자율성과 장식성을 추구하는 작가의 회화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다.
회화의 조형요소들을 통해 작가의 감수성을 표현한 'African Cheetah (2019)'는 여러 각도에서 살펴본 대상들을 왜곡된 형태로 화면을 재구성하고 있다. 소파 앞에 위치한 치타는 실제 모습보다 앞발들이 길게 묘사되어 있으며, 그 옆에 회색의 벽은 소파 뒤 벽과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고 어색하게 앞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임선희 작가는 평범한 장면을 인위적으로 해체한 다음 과장된 구도와 색채들을 이용하여 꾸며진 느낌을 돋보이게 한다.
임선희 작가가 바라본 회화의 '평면성'에 대한 고찰은 현대 미술의 근본을 이루는 회화의 다양한 가능성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모더니즘의 새로운 미학을 개척한 세잔, 마티스 등의 영향을 받아 배타적인 회화 기법을 발전시킨 작가는 색, 선, 구도와 면이라는 회화의 기본적인 요소들을 통해 대상의 시각적 재현을 뛰어넘는 그 이상의 복합적인 미학의 개념을 전달하고 있다. ■ 유아트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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