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비디오 아트 7090: 시간 이미지 장치
2019.11.28 ▶ 2020.05.31
2019.11.28 ▶ 2020.05.31
전시 포스터
문주
시간의 바다 1999(2019년 재제작), 키네틱 및 비디오 영상 설치, 350x50x240cm, 작가 소장
박화영
블러디 모나 2000, 5채널 비디오, 10채널 오디오, 각 12분 16초, 2분 22초, 1분 25초, 2분 3초, 4분 4초(반복재생), 작가 소장
박현기
무제 1979, 돌(14개), 모니터(1대), 120x260x260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유비호
검은 질주 2000, 3채널 비디오, 4분 3초, 작가 소장
한국 비디오 아트 7090: 시간 이미지 장치
전시 전경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한국 비디오 아트 7090: 시간 이미지 장치
전시 전경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함양아
치즈 1996-1997, 단채널 비디오, 147시간의 녹화, 작가 소장
백남준
굿모닝 미스터 오웰 1984, 비디오, 38분, 미국 영상자료원 소장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윤범모)은 ⟪한국 비디오 아트 7090: 시간 이미지 장치⟫를 2019년 11월 28일부터 2020년 5월 31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개최한다.
《한국 비디오 아트 7090: 시간 이미지 장치》전은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 비디오 아트 30여 년을 조망하는 기획전이다. ‘시간 이미지 장치’를 부제로 하는 이번 전시는 시간성, 행위, 과정의 개념을 실험한 1970년대 비디오 아트에서 시작하여 1980~1990년대 장치적인 비디오 조각, 그리고 영상 이미지와 서사에 주목한 1990년대 후반 싱글채널 비디오에 이르기까지 한국 비디오 아트의 세대별 특성과 변화를 조명한다. 국내 비디오 작가 60여 명의 작품 130여 점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한국 비디오 아트 30년의 맥락을 재구성하고 한국 비디오 아트의 독자성을 탐색한다.
비디오 아트는 실험과 새로움, 대안의 의미를 가지며 1970년대에 한국미술계에 등장하였다. 이후 비디오 아트는 당대 현대미술의 지형 변화 뿐 아니라 TV, VCR, 비디오 카메라, 컴퓨터 등 미디어 기술의 발달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변모해 왔다. 이번 전시는 미술 내·외부의 환경 및 매체의 변화 속에서 한국 비디오 아트의 전개 양상을 입체적으로 살핀다.
전시는 ‘한국 초기 비디오 아트와 실험미술’‘탈 장르 실험과 테크놀로지’‘비디오 조각/비디오 키네틱’‘신체/퍼포먼스/비디오’‘사회, 서사, 비디오’‘대중 소비문화와 비디오 아트’‘싱글채널 비디오, 멀티채널 비디오’ 등 7개 주제로 구성된다. 기술과 영상문화, 과학과 예술, 장치와 서사, 이미지와 개념의 문맥을 오가며 변모, 진화했던 한국 비디오 아트의 역사를 ‘시대’와 ‘동시대 한국 현대미술’을 씨줄 날줄 삼아 다각도로 해석한다.
첫 번째로‘한국 초기 비디오 아트와 실험미술’에서는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가 한국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전인 1970년대 한국 비디오 아트의 태동기를 살펴본다. 국내에서 비디오 아트는 김구림, 박현기, 김영진, 이강소 등 일군의 작가들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대구현대미술제》(1974~1979)는 퍼포먼스, 비디오 등 다양한 매체의 작품을 실험하는 장이었다. 특히 박현기는 돌과 (모니터 속) 돌을 쌓은 ‘비디오 돌탑’시리즈로 독자적인 작업 세계를 구축하며 한국 비디오 아트를 이끌었다. 이번 전시에는 모니터를 활용한 박현기의 초기작 <무제>(1979)를 비롯해, 실험미술의 선구자 김구림의 <걸레>(1974/2001)와 초기 필름 작품 <1/24초의 의미>(1969), 그리고 곽덕준, 김순기 등의 초기 비디오 작품들을 선보인다.
두 번째‘탈 장르 실험과 테크놀로지’에서는 기술과 뉴미디어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탈 평면, 탈 장르, 탈 모더니즘이 한국 현대미술계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였던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중반 비디오 아트의 새로운 경향을 살펴본다. 이 시기에는 조각이나 설치에 영상이 개입되는 ‘장치적’ 성격의 비디오 조각, 비디오 설치가 주류를 이루었다. 이는 탈 평면을 표방하며 혼합매체와 설치, 오브제 등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당시 소그룹 미술운동의 작품 경향과도 연계성을 가진다. 소그룹 미술운동 가운데‘타라’(1981~1990)의 육근병,‘로고스와 파토스’(1986~1999)의 이원곤, 김덕년 등은 1980년대 말부터 비디오 매체를 통해 가상과 실재의 관계를 실험했다. 또한 1990년대 초에는 미술과 과학의 결합을 표방한 예술가 그룹이 결성되었고 이에 관한 다수의 전시가 개최되었다. 소통 매체로서 비디오 아트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백남준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1984)과 이번 전시를 위해 재제작된 육근병의 <풍경의 소리+터를 위한 눈>(1988), 송주한·최은경의 <매직 비주얼 터널>(1993) 등을 만날 수 있다.
‘비디오 조각’은 영상 편집 기술이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이전인 1990년대 중·후반까지 이어졌다. 또한 이 시기에는 조각의 물리적 움직임과 영상을 결합한 비디오 키네틱 조각도 등장한다. 세 번째‘비디오 조각/비디오 키네틱’에서는 영상을 독립적으로 다루거나 영상 내러티브가 강조되는 싱글채널 비디오보다는 조각 및 설치와 함께 영상의 매체적 특성을 활용한 비디오 조각/비디오 설치에 주목한다. 영상의 내용을 다층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장치로서 조각의‘움직임’에 주목한 문주, 안수진, 김형기, 올리버 그림, 나준기 등의 비디오 조각을 비롯하여 기억, 문명에 대한 비판, 인간의 숙명 등 보다 관념적이고 실존적인 주제를 다루었던 육태진, 김해민, 김영진, 조승호, 나경자 등의 작품을 살펴볼 수 있다.
네 번째 ‘신체/퍼포먼스/비디오’에서는 1990년대 중․후반 성, 정체성, 여성주의 담론의 등장과 함께 신체 미술과 퍼포먼스에 기반을 두고 전개된 비디오 퍼포먼스를 살펴본다. 오상길, 이윰, 장지희, 장지아, 구자영, 김승영 등의 신체/퍼포먼스 기반 영상 작품은 비디오 매체의 자기 반영적 특성을 이용하여 예술가의 몸을 행위의 주체이자 대상으로 다룬다.
다섯 번째 ‘사회, 서사, 비디오’에서는 1990년대 중·후반 세계화 신자유주의 흐름 속에서 국내 및 국제적 쟁점과 역사적 현실을 다룬 비디오 작품을 살펴본다. 이주, 유목을 작가의 경험, 기억과 연동한 퍼포먼스 비디오를 선보인 김수자, IMF 외환위기를 다룬 이용백, 아시아를 여행하며 노란색을 착장한 사람을 인터뷰한 다큐멘터리 영상의 함경아, 한국 근현대사를 다룬 오경화, 육근병, 심철웅, 노재운, 서동화, 김범 등의 작품을 선보인다.
여섯 번째 ‘대중소비문화와 비디오 아트’에서는 1990년대 정보통신매체와 영상매체의 확산 속에서 대중문화와 기술이 결합된 작품들을 선보인다. 노래방을 제작·설치한 이불과 광고, 애니메이션, 홈쇼핑 등 소비와 문화적 쟁점을 다룬 김태은, 김지현, 이이남, 심철웅 등의 비디오 작품을 볼 수 있다.
일곱 번째 ‘싱글채널 비디오, 멀티채널 비디오’에서는 시간의 왜곡과 변형, 파편적이고 분절적 영상 편집, 소리와 영상의 교차충돌 등 비디오 매체가 가진 장치적 특성을 온전히 활용한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 싱글채널 비디오 작품을 살펴본다. 영상매체 특유의 기법에 충실하며 제작된 싱글채널 비디오는, 시선의 파편적 전개, 시간의 비연속적 흐름, 시공간의 중첩과 교차 등을 구현하는 멀티채널 비디오로 전개되었다. 이번 전시에는 김세진, 박화영, 함양아, 서현석, 박혜성, 유비호, 한계륜, 문경원, 전준호 등의 초기 싱글채널 비디오 작품을 볼 수 있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는 한국 비디오 아트의 태동과 전개 양상을 입체적으로 살펴보고 향후 그 독자성을 해외에 소개하기 위한 초석”이라며, “국내 비디오 아트 담론과 비평, 창작에 유의미한 논의의 장을 마련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각 주제별 주요 출품작 설명
1. 한국 초기 비디오 아트와 실험미술
한국의 비디오 아트는 1970년대 김구림, 박현기, 김영진, 이강소 등 일군의 작가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가 한국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전으로, 당시 실험미술가들은 비디오의 반영성, 시간성, 비물질성과 같은 매체적 특성을 활용해 개념, 언어, 시간성, 행위, 과정 등을 탐구했다. 비디오 카메라가 대중적이지 않았던 1970년대, 대구를 중심으로 형성된 《대구현대미술제》(1974~1979)는 당시 예술가들이 퍼포먼스, 비디오, 필름, 설치, 프로세스 아트 등을 자유롭게 실험할 수 있었던 장으로서 한국 비디오 아트의 역사에서 주요한 사건으로 기록된다. 특히 1978년 제4회 《대구현대미술제》의 ‘VIDEO & FILM’ 부문에 참가한 이강소, 김영진, 이현재, 최병소, 박현기 등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물의 모습과 신체의 반복적인 행위를 영상으로 기록하며 ‘시간성’과 ‘신체’를 중심으로 비디오의 새로운 예술적 가능성을 탐구하였다. 1977년 이후 김덕년과 장화진 역시 ‘영상’이라는 매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고, 그보다 이른 시기 해외에서 활동한 곽덕준, 김순기의 영상 작업도 주목할만하다. 한편 한국에서 비디오 아트의 본격적인 전개는 박현기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돌과 모니터를 중첩시키는 등, 자연물을 촬영한 비디오 영상과 실제 자연물을 결합하는 방식을 통해 실재와 환영, 실재와 재현의 문제에 주목하며 한국 비디오 아트를 이끌었다.
2. 탈 장르 실험과 테크놀로지
장르의 혼성, 새로운 매체의 도입, 테크놀로지와 뉴 미디어에 대한 관심은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중반 한국 현대미술계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였고, 이러한 지형 변화 속에서 한국의 비디오 아트가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이 시기 비디오 아트는 영상 이미지가 강조되는 싱글채널 비디오보다는 조각과 설치에 영상이 개입된 ‘장치적’ 성격의 비디오 조각, 비디오 설치가 주류를 이루었다. 이러한 현상은 당시 탈 평면, 탈 장르를 표방한 소그룹 미술운동의 작품 경향과도 연결된다. 타라(1981~1990), 메타복스(1985~1989), 난지도(1985~1988), 로고스와 파토스(1986~1999) 등을 비롯하여 뮤지엄(1987~1988), 황금사과(1989~1990) 등이 주도한 소그룹 미술운동은 혼합 매체와 설치, 오브제, 테크놀로지를 통해 신화, 역사, 문화적 의미를 드러내며 한국 현대미술의 지형도를 역동적으로 변화시켰다. 이러한 탈 평면과 탈 모더니즘의 논리 속에서 ‘타라’의 육근병, ‘로고스 파토스’의 이원곤, 김덕년 등은 1980년대 말부터 비디오 매체를 통해 가상과 실재의 관계를 실험하였고, 김해민은 비디오와 퍼포먼스를 넘나드는 장르 혼성의 문맥에서 무용과 영상을 결합한 초기적 비디오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특히 1984년 한국에 소개된 백남준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소통 매체로서 비디오 아트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주었다.
한편, 1990년대 초 한국 비디오 아트는 컴퓨터 아트, 인터랙티브 아트 등과 함께 테크놀로지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미학적 장르로 부상하였다. 1987년 이후 한국사회의 민주화,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과학 기술에 대한 관심 증가 및 과학기술진흥정책 등과 맞물려 비디오 아트는 새로운 시대의 자유로운 감수성을 표현하는 매체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비디오 아트는 테크놀로지의 문맥에서 논의되는 것에서 나아가 인간과 기술의 관계에 대한 철학적 질문 속에서 한층 더 담론을 확장 시켜 나갔다. 이러한 배경하에 1991년 미술과 과학의 결합을 표방한 예술가 그룹인 ‘아트 테크’ 그룹이 결성되었고, <미술과 테크놀로지>(1991), <과학+예술>(1992), <인간과 기계: 테크놀로지 아트>(1995) 등 테크놀로지와 예술의 관계에 주목하는 다수의 전시가 개최되었다.
3. 비디오 조각/비디오 키네틱
탈 평면, 탈 장르, 혼합매체, 테크놀로지에 대한 관심 속에서 1980년대 후반 이후 본격적으로 전개된 비디오 조각은 1990년대 중·후반까지 이어진다. 여러 개의 텔레비전 수상기를 오브제처럼 쌓거나 중첩시키는 비디오 조각은 영상 편집 기술이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이전인 1990년대 중·후반에도 여전히 유효한 경향이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비디오 조각의 새로운 경향이 나타나는데, 조각의 물리적 움직임과 영상의 무빙 이미지를 결합 한 키네틱 비디오 조각이 바로 그것이다. 비디오 조각의 움직임은 단지 테크놀로지 효과로서가 아닌 비디오의 내용을 중층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의미 있는 장치’로서 작동하였는데, 문주, 안수진, 김형기, 올리버 그림, 나준기 등의 영상 설치 작품에서 그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한편 1990년대를 지나며 한국의 비디오 조각/비디오 설치는 김영진, 육태진, 김해민, 김창겸, 조승호, 나경자 등의 작품에서처럼 새로운 감각의 테크놀로지 실험을 넘어 기억, 고고학적 탐구, 문질문명에 대한 비판, 인간의 숙명, 정신병리학적 의미 등 인간 삶의 보다 근본적이고 실존적인 주제를 다루기 시작하였다.
4. 신체/퍼포먼스/비디오
신체 담론은 성, 정체성, 여성주의 담론과 함께 1990년대 중·후반 한국미술계의 주요한 화두로 등장하였다. 이 시기 신체 미술과 퍼포먼스에 기반을 둔 비디오 퍼포먼스가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는데, 거울과도 같은 비디오 매체의 자기 반영적 특성을 이용하여 예술가의 몸이 행위의 주체이자 대상이 되는 비디오 영상이 대표적이다. 이때 신체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촬영하거나 느리게 편집하여 보여주는 비디오 퍼포먼스는 비디오의 시간성과 몸의 물질성을 부각시켰다. 또한 교차되고 편집된 비디오적 시간 속에서 익숙한 신체 이미지는 낯설게 변형되었고, 비디오 영상으로 재구성된 신체 이미지는 시간과 공간의 논리성에 도전하면서 새로운 지각 경험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한편 절단된 신체, 고통받는 신체, 그로테스크 바디 등 이질적인 몸을 보여주는 비디오 영상은 불안정한 인간 주체를 드러내면서 신체와 인간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게 하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오상길, 이윰, 김두진, 공성훈, 장지희, 장지아, 구자영, 김승영, 윤애영의 신체/퍼포먼스 기반의 비디오 영상작품을 통해 한국 비디오 퍼포먼스의 일면을 감상할 수 있다.
5. 사회, 서사, 비디오
1990년대 우리나라는 대내외적 시대변동의 계기들로 인해 사회적으로 전환적 분위기가 고조된 시기였다. 대외적으로 베를린 장벽의 붕괴, 구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 동구권 사회주의 체제 붕괴 등에 의한 냉전 종식은 남북문제를 국가적 미결과제로 갖고 있는 우리 사회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대내적으로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성숙, 경제 호황과 위기의 반복, 정보통신 매체의 확산 등으로 급격한 변화가 추동되었다. 그런가 하면 정보통신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한 정보와 자원의 전 지구적 유동, 공유는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의 확산과 맞물리며 우리 또한 글로벌리즘의 자장 속으로 유입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의한 세계 질서는 경제 논리를 통해 재편되고 있었다. 글로벌리즘은 다원적 관계망, 전 지구적 상호 교류를 가능케 했지만 그에 따른 또 다른 차원의 동질화라는 심각한 폐해를 남겼고, 이는 지속적으로 문제해결을 모색하게 했다. 세계성과 지역성이 강하게 교차 충돌한 우리 사회는 새로움과 변화만큼이나 자체 내 특수한 지정학적, 역사적 현실을 환기해야 했다.
당시 비디오 작가들은 장치로서의 비디오 매체가 가진 시간성, 이미지를 적극 활용하여 시대의 쟁점들을 소재로 삼았다. 이주, 유목을 개인의 경험, 기억과 연동하여 작업한 퍼포먼스 비디오를 선보였던 김수자, 1990년대 후반 IMF 외환위기를 다룬 이용백, 아시아 지역을 여행하며 노란색을 착장한 사람을 쫓아다니며 인터뷰한 다큐멘터리 비디오 작업의 함경아, 그리고 한국 근현대사 속 서사를 각기 독자적인 시선과 감각으로 풀어낸 오경화, 육근병, 심철웅, 노재운, 서동화, 김범 등의 비디오 작업을 선보인다.
6. 대중소비문화와 비디오 아트
1990년대 대중문화, 소비문화는 우리 사회와의 상관관계 뿐 아니라 소위 순수문화예술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양과 질 모든 측면에서 성장한 대중문화예술은 광범위한 문화산업에서 매니악한 취향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으로 전개되었으며 순수미술과 대중예술 사이의 혼종, 협업 등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었다. 1990년대 정보통신매체의 혁신과 그 확산은 당시 대중소비문화 확산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소비문화는 정보통신매체와 함께 “영상매체의 확산과 결합된” 문화라 할 수 있다. 다채널 시대를 연 케이블 TV는 음악, 영화, 미디어 채널 등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를 선보였다. 개인용 컴퓨터(PC)와 윈도우 운영 체제가 보편화되고 1998년 초고속 인터넷 네트워크 서비스가 상용화 되면서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영상 매체와 영상 환경은 젊은 세대에게 새로운 자극이 되었다. 상업광고, 뮤직비디오, 애니메이션, 상업영화 등은 당시 비디오 작가들에게 영감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대중문화의 감수성은 무엇인지 파악하도록 견인하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테크놀로지와 엔터테인먼트의 절묘한 조합인 노래방을 제작, 설치한 작가 이불, 광고, 애니메이션, 홈쇼핑 등을 끌어들여 제작한 김태은, 김지현, 이이남, 심철웅 등의 비디오 작품을 볼 수 있다.
7. 싱글채널 비디오, 멀티채널 비디오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에 이르러 비로소 진정한 의미에서의 싱글채널 비디오 작품이 국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비디오 작업은 이전 세대의 특징이기도 한 오브제로서의 비디오 설치 또는 장치로서의 비디오 실험과는 달리, 비디오 매체가 가진 장치적 특성을 온전히 활용했다. 비선형적 내러티브, 시간의 왜곡과 변형, 파편적이고 분절적 영상 편집, 소리와 영상의 교차충돌, 이미지와 텍스트의 비논리적 결합 등 비디오 매체 고유의 어법을 구현했다. 싱글채널 비디오는 시선의 파편적 전개, 시간의 비연속적 흐름, 다층적 내러티브, 그리고 시공간의 중첩과 교차를 보다 적극적으로 구현하는 차원에서 멀티채널 비디오로 전개되어 나갔다.
한국 싱글채널 비디오가 수용되고 정착하는 과정을 보면, 국내·외 대학과 전문기관에서 영상, 영화, 미디어를 학문적으로 전공하고 이를 충분히 학습, 이해한 작가들이 이 시기 대거 등장하고 작품 활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와 더불어 당시 우리 사회문화적 환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우선 텔레비전과 같은 대중영상매체의 영향력을 빼놓을 수 없다. 미국에서의 TV 상업영상에 대한 대항적 차원과는 달리, 우리는 상업영상, 대중영상매체 등을 한국 싱글채널 비디오의 주요 발화 지대로 볼 수 있다. 한국 현대미술 현장을 보면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 대규모 비디오/영상 전시들이 다수 개최되었고, 영상과 뉴미디어 전용기관들이 개관하면서 본격적으로 영상과 뉴미디어를 대중에게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대표적인 작가로 김세진, 박화영, 함양아, 서현석, 박혜성, 유비호, 한계륜 등이 있으며, 이번 전시에서 이들의 초기 싱글채널 비디오 작업을 볼 수 있다. 이들은 해외 유학을 통해 영상을 전공했거나 우리 영상문화를 토대로 비디오 아트를 체득하여 싱글채널 비디오, 멀티채널 비디오 1세대로서 현재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1936년 경상북도 상주출생
1946년 대구출생
1957년 출생
1937년 일본 교토출생
1969년 서울출생
1942년 출생
1968년 출생
1932년 서울출생
1957년 전라북도 전주출생
1969년 부산광역시출생
1970년 전라북도 군산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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