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남: 벗들의 초상을 그리다
2019.11.07 ▶ 2019.12.21
2019.11.07 ▶ 2019.12.21
전시 포스터
윤석남
김영옥 2019_한지에 채색_140x64 cm
윤석남
김혜순 2019_한지에 채색_140x64 cm
윤석남
박영숙 2019_한지에 채색_140x64 cm
윤석남
한영애 2019_한지에 채색_140x64 cm
OCI미술관(관장 이지현)은 한국 여성 미술의 ‘큰 언니’ 윤석남의 초대개인전을 11월7일부터 12월 21일까지 개최한다. ‘벗들의 초상을 그리다’라는 부제의 이번 전시는 오늘날 작가 윤석남이 존재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이끌어준 벗들을 그린 초상화와 작가의 자화상, 그리고 3점의 신작 설치로 이루어진다.
윤석남이 초상화를 그리고자 한 것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전시에서 보았던 윤두서의 자화상에서 큰 인상을 받은 작가는 왜 옛 초상화에는 주로 남성 인물만 등장하는 것인가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그러다 옛 그림 속 위인들처럼 본인 주변에서 보아온 멋진 여성들, 즉, 늘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벗들을 그려서 기록하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전통 채색화 기법을 배우고 또 본인의 스타일로 소화하기까지 인고의 시간을 걸쳐 오늘에 이르렀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22명의 벗의 초상을 선보이는데, 이들은 모두 윤석남이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다독이며 지금까지 ‘같이 또 달리’ 자신의 길을 개척한 친구이자 동료이다. 직업은 다를지라도 하나 같이 본인의 일에 충실하고, 그러하기에 당당한 여성들이다. 동시에 이 초상화는 어느덧 저마다 얼굴에는 주름이 패고 흰 머리가 날 정도로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껏 있어 준 벗들 덕분에 오늘날의 윤석남이 있다는 지극히 사적인 고백이기도 하다. ‘고맙다’라는 말 대신 화가 윤석남은 이렇게 그림을 그려 그간의 마음을 전한다. 이 전시에서는 지금껏 그린 스물 두 명의 벗들의 얼굴이 등장하지만, 이 초상화 연작은 앞으로도 지속하여 더욱더 많은 여성을 그려낼 작가의 야심 찬 ‘현재진형형 프로젝트on-going project’이기도 하다.
더불어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허난설헌>, <신가족(新家族)>, <소리> 3점의 신작 설치 작품을 선보인다. 연꽃 사이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허난설헌은 작가의 오랜 모티브이기도 한데, 이번에는 OCI미술관의 공간에 맞추어 전반적인 작품 톤을 흰색으로 더욱 차분하게 절제하여 그 옛날 시인의 외로움과 고아함, 섬세한 감성을 집중도 있게 표현하였다.
또한 목조각과 채색화가 어우러진 <신가족(新家族)>에서는 성인남녀를 주축으로 하는 전통적인 가정상 대신 반려동물과 함께 꾸려나가는 새로운 삶의 형태를 제시하는가 하면, 가장 최근작인 <소리>에서는 광장에서의 경험이 투영되어 있다. 이처럼 각각의 작업은 윤석남의 기존 작업과 맥락을 같이하면서도, 시공간을 초월한 정서적 교감과 연대의 가능성을 가늠해보게 한다.
마지막, 전시의 후반부인 3층 전시장에서는 채색화 기법으로 그린 작가의 자화상으로 가득 차 있다.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보고 또 보고 종이 위에 옮겨낼 때, 그 오랜 시간 동안 작가가 느꼈을 고독과 삶에 대한 회고가 엿보이는 작업이다. 작가의 스물다섯 번째 개인전이기도 한 이번 전시는 산수(傘壽)의 나이에도 여전히 창작열로 불타오르는 작가의 에너지와 동시에 공인이 아닌 개인으로서 윤석남, 그녀의 사적인 인연과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 김소라 수석큐레이터
나의 친구들, 믿고 의지하는 후배들, 그들의 초상을 그리면서
정확한 날짜는 잊어버렸지만 약 10여 년 전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접하게 된 한국 초상화전은 작업을 하고 있는 나에게는 거의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다른 초상화는 거의 잊은 상태에서도 그날 나를 거의 울게 만든 초상화가 하나 있었다. 윤두서의 자화상이었다.
나는 이 자화상에 관해서 무슨 이러하고 저러한 얘기는 하고 싶지도 않고 할 수 있는 지식도 내게는 없다. 나는 그 초상화를 접한 순간 그냥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고나 할까? 형형한 눈빛, 휘날리는 기인 수염들 그리고 그이가 입고 있는 담백한 한복의 선들, 무엇보다도 살아서 나에게 무슨 말인가를 전하고 있는 듯한 그 눈빛에서 난 왜 그렇게 놀랐을까? 지금도 이유를 잘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이고 나는 이제부터라도 붓을 들고 먹을 갈고 초상화를 그려야지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먹을 갈기 시작하고 붓을 들고 선을 긋고 하는 것이지만 초상화로 바로 이어지기에는 거리가 있었다. 거의 40년 가까이 서양화의 테두리에서 헤매인 주제에 별안간 붓을 든다는 것은 누가 봐도 어불성설이었다. 그래서 명지대학에 계시던 이태호 선생님께 갑자기 청을 드렸다.
“한국화를 배우고 싶다. 선생님을 소개해 주시라”
부탁했더니 바로 그 자리에 좋은 분이 있다고, 도야 김현자(경기무형문화재 제28호 이수자)라고 소개해 주셨다. 그래서 곧바로 김현자 선생님 작업실을 찾아가서 선생님 밑에서 한국화 기법을 약 4년 동안 배웠다. 내가 이렇게 한국화에 빠질 줄이야 하고 스스로 자신한테 놀라면서 말이다…
그렇게 한국화 중 “민화”라고 불리는 길로 무단히 들어섰다. 그리고 지금까지 왔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이 한국화인지 민화인지 그 어떤 장르인지 잘 모른다 라고 얘기하는 것이 정직한 말이 될 것이다.
그러면서 한국의 옛 초상화에 관한 서적들을 열심히 사서 읽어 보았다. 작품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내 마음을 어둡게 했다. 그 많은 이조 시대 초상화 중에 여성을 그린 그림은 딱 2개밖에 발견할 수 없었다. 그것도 초상화의 대상인 여성의 이름은 없고 그저 이름 없는 여인상이었다. 나의 좁은 견문일수는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 슬펐다. 이조 5백년의 역사를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마음이 슬프다가 점점 화가 일어났다. 물론 고등학교 시절의 국전 관람시 한국 부인들의 초상화를 보지 못한 바는 아니면서도, 그것은 그저 대상화였다 할까 어쩐지 삶 자체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져서 별 감흥이 없었다. 즉, 내 마음을 움직일 수 없었다라는 기억이 있다. 그래서 나는 초상화를 그려보자고 마음먹었다. 우선 친구들부터 기록하자. 그리고 시간이 허락하는 한 비록 내가 만나보지는 못한 과거의, 혹은 역사 속의 작은 기록이라도 남아 있는 여성들의 초상화를 그려보자 마음 먹었다. 아마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되겠지. 어쩌면 비난과 비판을 받을 수도 있겠지 하는 두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결과는 작품을 만든 후의 일이다. 후의 두려움 때문에 현재의 뜻을 버릴 수는 없지 하는 마음으로 작품을 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다만 한 가지 믿는 것은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고 그리면서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 작업들이 현대 미술에 하나의 득이 될지 해가 될지 하는 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열심히 추구해오던 설치 작업들은 포기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에 부닥쳤지만 아마도 이 문제도 서서히 풀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아직도 어떤 장소의 그 장소적인 매력에 빠지면 곧바로 설치로 표현해보고 싶은 충동을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얼마나 큰 욕심이 있는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욕심은 끝이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몸이 허락하는 때까지 초상화를 그리고 있겠지 할 뿐이다.
끝으로 내 초상화의 대상으로 기꺼이 응낙해준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 진정 감사합니다.
■ 2019. 10. 1 윤석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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