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노아
addicton 캔버스에 유채, 112x145.5cm, 2009
류노아
envy 장지에 채색, 101x81cm, 2008
류노아
greed 장지에 채색, 73x60.5cm, 2008
류노아
lust 장지에 채색, 101x81cm, 2009
류노아
pride 캔버스에 유채, 180x260cm, 2010
류노아
Self-portrait 캔버스에 유채, 50 x 72cm, 2010
류노아
wrath 장지에 채색, 117x91cm, 2009
욕망에 대한 인간심리극: 류노아가 그린 상상 속의 디스토피아
오숙진(브레인 팩토리 디렉터)
페인팅의 매력은 뭐니뭐니해도 청명한 진리의 숨결을 즉각적으로 흡입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이것은 페인팅의 긴 역사만큼이나 다양했던 예술사조를 너머 오늘날에도 이어지는 페인팅만의 특성이 아닌가 싶다. ‘그리기의 유희’는 예나 지금이나 인간이 본능적으로 즐기는 활동 중 하나임이 틀림없다. 그리기를 통해 진리에 도달하려는 예술가들의 전통은 다양한 매체를 실험하는 현대미술 속에서도 페인팅만이 가질 수 있는 신비한 마력 때문에 그 어떤 매체로도 대체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21세기를 살고 있는 화가로 심도 있는 고민을 해온 류노아의 작업은 여러 층위에서의 해석이 가능하다.
우선, 출품작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죄(sin)’이다. 여기서 말하는’죄’는 사회 안에서 타인에게 해를 까치는 ‘범죄(crime)’와 구분되는 개체의 본성에 근거한 부정적 단면을 얘기한다. 모태신앙으로 일찍이 기독교를 접한 작가의 철학은 작품 안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26살 앳된 외모의 작가가 십대부터 줄곧 그려왔던 그림의 주제는 전쟁이나 폭력, 환경파괴, 위선 등 현대사회의 부정적인 측면들이 극단화되어 초래되는 우리사회의 불편한 측면들이었다. 이런 암울한 현상의 근원들을 좆아 나가던 작가가 2008년도에 접한 존 포트만의 저서 <죄의 역사>는 그가 이번 전시의 주제인 ‘죄’ 시리즈를 그리게 된 직접적인 동기가 된다. 저서의 내용은 종교적으로 분류되었던 일곱 가지 대죄(색욕, 탐식, 탐욕, 게으름, 교만, 시기, 화)가 동시대의 윤리에 맞게 변화되는 과정과 새롭게 등장한 ‘죄’의 종으로 중독과 인종차별 등을 제시한다. 그리하여 류노아는 2008년도 작 ‘탐욕(Greed)’을 시작으로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청년이 납득할 수 있는 범위내의 ‘죄’의 종류를 선택하여 한 화면에 하나의 ‘죄’를 주제로 하여 순차적으로 총 7점의 그림을 완성하였다. 출품작은 순서대로 ‘탐욕(Greed)’,’시기(Envy)’,’색욕(Lust)’,’화(Wrath)’,’중독(Addiction)’,’교만(Pride)’,’자화상(Self-portrait)’이다, 작업의 특징은 다양한 도상들의 복잡하고 짜임새 있는 구도로 내러티브하며, 제목이 주제를 명확하게 드러내놓고 있다.
그 예로 시리즈의 초기작인 ‘탐욕(Greed)’을 살펴보자. 이 작품은 입과 머리에 ‘눈알’을 가득히 구겨 넣은 피부가 벗겨진 남자의 초상화다. 요란하고 우스꽝스러운 옷을 걸친 주인공은, 알록달록한 ‘눈알’들이 맛깔스럽게 정열 된 쇼 케이스를 앞에 두고 침을 질질 흘리며 또 하나의 ‘눈알’을 탐하고 있다. 등 뒤에는 음침한 녹색자루들이 둘려 있고 그 위로 욕심의 상징인 금관이 오색의 빛을 뿜고 있다. 그렇다면 ‘탐욕’의 대상인 ‘눈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작가의 말에 따르면 여기서 ‘눈알’은 ‘폭력적이며 선정적인 시각이미지’라 정의한다. 작품의 주인공인 피부가 벗겨진 인간은 이러한 이미지만을 탐하는 ‘시각예술자’ 즉 작가 본인이라는 결론이다. 어두운 현실과 지옥의 도상들을 그려내는 숙련된 손이 주는 쾌감은 아이러니하게도 끔찍한 폭력을 생각하고 그것을 이미지화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작가에게 죄책감을 준다. 몸과 머리가 따로 움직여 괴롭다는 작가의 심리적 태도는 다분히 흥미롭다. 인간의 욕망이 정도를 넘어 ‘죄’로 변환되는 시점은 어디부터인가’하는 윤리적 질문이 다시금 고개를 든다.
한편 테크닉적 관점에서 보자면, 이번 전시작들은 특이하게 장지에 채색한 동양화 테크닉을 사용한 작품 4점과 캔버스에 유화를 칠한 서양화로 분류되는 작품 3점이 섞여 구성되었다. 하지만 모니터 상 각 작품의 재질구별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동양화 전공인 작가가 화면 안에 군상들을 배치하고 그려나가는 과정, 하나의 색과 그 옆의 색을 선택하는 방식과 순서, 구도상 조미료처럼 빈 공간에 끼워 그리는 도상들(소나무, 대나무, 새, 팝아이콘 등)을 반복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오랫동안 손에 익은 그리기 습관이 재료와는 상관없이 작업 전체에서 보여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리즈 중간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유화물감의 물리적 특성에 기인한 실제 페인팅이 주는 느낌은 분명 차이가 크다. 작업의 주제와 여러 가지 이야기가 공존하는 복잡한 구도를 생각하였을 때, 동서양을 구분 짓는 재료의 과감한 선택은 필연적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시리즈는 각 작품마다 해석의 주체와 대상이 각기 다르다. 하지만 공통되는 점은 화면마다 절묘하게 뒤섞인 동서양의 도상과 기표들, 양식이 혼합된 건축물들, 인종의 구별이 애매한 군상들, 주제의 근엄함과는 별도의 의미를 가지는 팝 적인 기표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더욱더 초현실적이게 만드는 원근법의 불일치성은 그가 의도한 심리 추리극을 한층 급박하게 전환시킨다. 구도상 이러한 설명방식은 주제를 향한 일종의 변죽이다. 중세기 종교화의 상징과 알레고리가 난무하는 형식상의 유사성과는 별도로 주제의 주체와 대상에 대한 작가의 의도는 사뭇 상이하게 보인다. 표면적으로는 성경에 근거한 인간의 ‘죄’에 대한 종교적 관점을 제시하고 그에 대한 자숙의 메시지를 담았고, 그 이면엔 다양한 미술사조를 분석하고 이를 류노아 방식으로 풀어 재조립 시켜 완성한 그리기의 즐거움이 담겨있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를 뒤돌아보게 하는 금욕적인 주제는 확실히 신선하다. 간과하기 쉬운 인간 욕망에 대한 탐구가 종교적인 측면에서 출발된 전시를 보는 것이 흔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류노아가 선택한 주제는 인간윤리에 근거한다. 이것은 사회 안에서 관계가 아닌 개개인의 양심과 도덕에 기준하며, 그래서 작품 안의 주체는 그림을 그린 자신이 되기도 하고 그것을 관람하는 관객도 되기도 한다. 자신을 다잡고 흘러 넘치는 물질의 세계에서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자기자신뿐이리라. 그림 안에 묘사되는 광기와 야만의 현장은 시간의 개념이 적용되지 않는 류노아 머리 속의 ‘디스토피아’ 이며 삶을 통해 습득된 마음속 두려움의 잔상일 것이다. 하지만 작품 속에 ‘혼란의 모습’을 실현시킨 류노아가 진정 추구하는 세계는 욕망에 허우적대는 인간상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리기를 통해 진리의 청명함을 좆는 예술 본연의 모습일 것이다.
1984년 출생
송영규: I am nowhere
갤러리 그림손
2024.10.30 ~ 2024.11.25
김지혜 : SOMEWHERE 어디에나 있는, 어디에도 없는
갤러리 도스
2024.11.20 ~ 2024.11.26
Rolling Eyes: Proposals for Media Façade 눈 홉뜨기: 미디어 파사드를 위한 제안들
대안공간 루프
2024.11.13 ~ 2024.11.26
선과 색의 시선 Perspective of Lines and Colors
필갤러리
2024.10.10 ~ 2024.11.27
제15회 畵歌 《플롯: 풀과 벌의 이야기 Plot: The Story of Wild Grasses and Bees》
한원미술관
2024.08.29 ~ 2024.11.29
오종 개인전 《white》
페리지갤러리
2024.10.11 ~ 2024.11.30
여세동보 與世同寶: 세상 함께 보배 삼아
간송미술관
2024.09.03 ~ 2024.12.01
2024 광주비엔날레 기념특별전 《시천여민 侍天與民》
광주시립미술관
2024.09.06 ~ 2024.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