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 곰리
커패시터 2008, 종이에 카본, 카제인 28x19cm
양아치
20세기를 근근이 포즈를 써 유지 2011, 혼합매체 108x158cm
허수영
잔디 05 2018, 캔버스에 유채 217x171cm
정현
무제 2014, 종이에 색연필 54.5x40cm
송현숙
7획 뒤에 인물 2013 캔버스에 템페라 150x170cm
정상화
무제 A 1982, 캔버스에 아크릴릭, 나무에 콜라주 65x50cm
이이남
아사천에 매화꽃이 피었네 2013, 영상, 55” LED TV 8’ 50”
김현식
Who Likes K Colors? 2016, 에폭시 레진에 아크릴릭, 나무 프레임 40.5x21.5x7cm x5
줄리안 오피
나의 침실 창문 밖 풍경 2007, 반복 재생 컴퓨터 애니메이션, LCD 스크린 24.8x30.5x4.2cm
백남준
로봇 (라디오 맨, 요셉 보이스) 1987, 혼합매체, 194x75x55cm
이우성
대청댐 Daecheong Dam 2017, 캔버스 위에 아크릴릭 과슈, 젯소 Acrylic gouache, gesso on canvas, 65x50cm (x3)
2020년, 첫 숨을 들이쉬며 이 문장을 떠올린다. ‘미래는 지금이다. ’ 백남준(1932-2006, 서울)은 어제에 살며 오늘의 시간을 끌어 썼다. 조지 오웰(1903-1950, 인도)에게 건넨 새해 인사에서 그랬듯, 그는 줄곧 낙천적 태도로 내일을 내다봤다. 우리는 2000년이라는 상징적 연대를 얼마 전 마주했다. 설렘과 두려움이 뒤섞인 가운데 수많은 시도와 변화를 겪었다. 미술은 울타리를 넓히고 관습을 허물었다. 무한하게 확장된 반경에 비례하여 판단의 기준도 다양화했다. 이제 21.2세기의 장을 넘긴다. 이번 전시는 학고재 소장품을 선보이는 자리다. 백남준을 화두로 하여 국내외 작가의 작품들을 다양하게 소개한다.
백남준의 〈로봇 (라디오 맨, 요셉 보이스)〉(1987)이 전시의 시작을 연다. 그의 오랜 벗 요셉 보이스(1921-1986, 독일)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 제작한 작품이다. 보이스가 즐겨 쓰던 펠트 모자가 상징적이다. 로봇의 상단 모니터는 〈굿모닝 미스터 오웰〉(1984), 하단 모니터는 〈바이 바이 키플링〉(1986)을 재생한다. 백남준이 ‘우주 오페라 3부작 ’이라고 부른 연작 중 두 점이다. 조지 오웰이 예견한 디스토피아에 천진한 안녕을 고하고, 동양과 서양은 화합할 수 없다던 러디어드 키플링(1865-1936, 인도)에게 위성 연결한 세계로 회답한다. 세기 말의 로봇이 오늘을 응시한다.
1F 수행하다
단색화 거장 정상화(b. 1932, 경상북도 영덕)의 화면을 본다. 검은색 〈무제 A〉(1982)는 물감을 뜯어내고 메우는 반복 행위를 통해 구성한 추상 회화다. 화면은 무분별한 감정의 분출을 허락하지 않는다. 철저한 계산과 수행적 행위로, 가득 찬 동시에 비어 있는 한국의 여백을 구현한다. 밝은 하늘빛 〈무제〉(1987)는 기존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종이 콜라주 기법을 도입한 수작이다. 몰입의 과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반복의 미학은 동시대 작가 김현식(b. 1965, 경상남도 산청)의 화면에서 또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 김현식은 에폭시 레진 표면을 촘촘히 긋는 과정을 반복한다. 색선이 위아래로 교차하며 수많은 층계를 이룬다.
안토니 곰리(b. 1950, 영국)는 자신의 몸을 직접 캐스팅한 인물상으로 조각의 지평을 넓힌 작가다. 신체를 주물로 뜨는 과정을 정신 수련에 비유한다. 〈커패시터〉(2008)는 2001년부터 제작한 동명의 조각에 대한 드로잉이다. 원작은 스스로의 몸을 본뜬 틀에 수천 개의 금속 막대를 이어 붙인 조각이다. 수없이 뻗은 막대의 반경이 신체와 자아의 확장을 암시한다. 곰리에게 몸이란 기억을 보관하고 변형하는 장소다. 육체를 정신을 담은 그릇으로 바라보는 태도에서 동양 철학에 대한 관심이 드러난다. 조각가 정현(b. 1956, 인천)도 인간 내면을 주시한다. 침목, 석탄 등 산업폐기물을 활용해 인체를 표현한다. 형태를 추상화하고 물질성을 강조하여 상징적 의미를 담는다. 이번 전시에서는 조각의 모체인 드로잉 두 점을 선보인다.
B1F 오늘을 보다
전시의 길목에서 양아치(b. 1970, 부산)의 〈20세기를 근근이 포즈를 써 유지〉(2011)를 만난다. 스탠드 마이크에 금박지와 전구를 붙여 만든 오브제다. 같은 해 제작한 동명의 연작을 구 상업은행 대구지점 금고에서 선보인 바 있다. 작품명은 이상(1910-1937, 서울)이 일본에 머물던 시절 김기림(1908-미상, 함경북도 성진)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다. 지난 세기의 시인은 자신이 ‘19세기의 엄숙한 도덕성의 피'를 지녀 완전한 20세기 사람이 될 수 없다고 한탄했다. 양아치의 오브제는 동시대 물질주의에 대한 담론을 제시한다. 발언자 없는 발언대가 어색한 자세로 버티고 서 있다. 금박 포장지의 값싼 화려함과 전구가 뿜는 인공 빛이 양 극단에 매달려 위태한 중심을 잡는다.
이이남(b. 1969, 전라남도 담양)의 영상 회화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다. 고전 이미지 위에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움직임을 더한다. 〈아사천에 매화꽃이 피었네〉(2013)는 아사 천 화폭 위에 매화가 피어나는 모습을 재현한 작품이다. 중국 명대의 화가 왕시창(미상-BC131)의 그림을 재구성한 〈왕시창의 산수도〉(2013)도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화면이 계절 변화에 따라 생동한다. 줄리안 오피(b. 1958, 영국)의 〈나의 침실 창문 밖 풍경〉(2007)은 해가 뜨고 지는 풍경을 담은 애니메이션 영상이다. 하루의 시간이 빠르게 흐르고, 끊임없는 매일이 반복된다. 특유의 간결한 실루엣이 돋보인다. 감정을 배제하고 표현을 단순화하여, 보는 이가 스스로를 투영할 여지를 마련한다. 허수영(b. 1984, 서울)은 오늘의 시간을 축적한다. 변화하는 풍경의 모습을 한 화면에 중첩해 그린 연작이 대표적이다. 전시에서는 〈잔디 05〉(2018)와 〈무제 04〉(2018)을 선보인다. 사실적으로 묘사한 풍경화가 겹겹이 쌓여 추상으로 변모한다.
B2F 성찰하다
재독작가 송현숙(b. 1952, 전라남도 담양)은 한국의 토속적 이미지를 화면에 담는다. 전통 가옥의 귀퉁이, 장독대 등이 소재가 된다. 한국의 귀얄 붓으로 단숨에 그은 정갈한 획이 특징이다. 서예를 닮은 붓질이다. 1972년 독일에 보조 간호사로 파견된 후 오랜 세월 타향에서의 삶을 살았다. 작업의 소재와 표현에서 고향에 대한 애상이 눈에 띄게 묻어난다. 삼베, 명주와 같은 한국 천의 재질을 탁월하게 표현하기 위하여 템페라를 고수한다. 〈7획 뒤에 인물〉(2013)은 하얀 베일 뒤에 숨은 여인의 모습을 그린 회화다. 여인이 내디딘 걸음 끝에 흰 고무신이 나란히 놓였다. 기억은 고요한 추상이 되어 화면 위에 안착한다. 근원으로 회귀해 본연의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노력이다.
전시의 막바지에서 백남준의 〈TV 부처〉(1974/89)를 마주한다. 백남준의 자화상 같은 작품이다. 1974년도에는 독일 쾰른 시립미술관 에서 직접 법의를 입고 TV 앞에 앉는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백남준은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서 이 작업을 착안했다. 동굴에 갇힌 사람은 벽에 비친 세상의 그림자를 진리로 믿고 산다. 지혜의 상징인 부처가 모니터 속 자신의 환영을 응시한다. 실시간으로 녹화한 형상이 모니터에 송출된다. 가까이 다가서면 우리의 모습도 화면에 함께 떠오른다. 미디어 매체가 범람하는 문명 시대, 진실에 대한 성찰을 고무한다.
21세기의 두 번째 장을 덮은 우리는 다시 앞을 본다. 예술가는 새로운 화면으로 또 다른 시대를 항해할 것이다. 어제를 되새기고 오늘을 직시하며 저마다 다른 내일을 향해 도약할 테다. 방식은 다양하다. 지난 2012년, 안토니 곰리가 강연에서 존 케이지(1912-1992, 미국)의 말을 인용했다. “우리는 어떤 목표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니다. 이미 목표 지점에 도달해, 그 목표와 함께 변화하고 있다. 예술에 목적이 있다면 우리가 이 사실을 깨닫도록 하는 일이다. ” 내일의 풍경을 상상해 본다. 의심의 여지없이 그 한 편에 오늘의 예술이 자리할 것이다. 낯선 날을 향하여 숨을 내쉰다. 미래는 분명 지금이다.
1932년 서울출생
1932년 출생
1965년 경남 산청출생
1950년 영국출생
1956년 인천출생
1969년 전라남도 담양출생
1958년 영국 런던출생
1983년 서울출생
1952년 전남 담양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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