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untitled 2channel animation(HD), 000705, 2010
홍남기
untitled 2channel animation(HD), 000705, 2010
홍남기
untitled digital drawing on paper, 70x95cm, 2010
홍남기
untitled digital drawing on paper, 95x70cm, 2010
홍남기
untitled oil on canvas, 105x85cm, 2010
사건은 그 후 어떻게 되었나?
김노암(상상마당 전시감독)
근래 대중문화의 키워드 중 하나는 미드(미국 드라마)이다. 또 미드들 가운데 왕좌는 과학수사대(CSI)인데, 그 과학수사대의 오프닝 씬은 언제나 어떤 ‘사건’으로 시작한다. 최고의 두뇌와 분석과 해석의 기술이 동원되어 그 사건을 둘러싼 의미를 재구성한다. 홍남기의 이번 전시는 화이트큐브에서 만나는 현대미술판 CSI인 셈이다. 물론 이것은 한편의 은유다. 우리는 홍남기의작업을 이해하기 위해 ‘사건’을 둘러싼 사유의 모험 또는 문화를 검토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사건’은 전통적인 서구형이상학에서는 주목받지 못했다. 순간적으로 명멸하는 사건은 보편적이며 영원한 것을 추구하는 정신에서는 수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50년대 이후 후기 구조주의는 덧없으나 의미를 생성하는 사건에 주목하였다. 후기구조주의에 이르러 시간과 공간의 의미 또한 재규정된다. 시간은 자연과학주의의 물리적 시간과 사건(의미)의 시간으로 나누어 이해된다. 여기서 시간과 공간(장소)은 더 이상 단선적이지 않다. 무수한 시간들과 공간들이 교차하고 재배열되면서 무한한 사건들을 낳고 또 그 만큼의 의미를 생성한다. 오늘날 다원적 예술 또는 열린 예술의 시대는 이러한 패러다임의 흐름과 합류한다. 하나의 사건은 곧 무한한 수의 잠재적 사건을 증언한다. 현대예술이 언어를 중심 테마로 삼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러니 이번 전시의 키워드인 ‘Kooowang!’은 나름의 알리바이가 있다.
작가의 이번 작업은 끝없이 변하는 순간순간의 사건들 중 하나를 임의로 선정하여 포착한다.
그것은 초월적이지도 또 합리적인 동의도 구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가 무언가 어떤 모험에 몰입했거나 느꼈다는 것을 말하려 한다. 그러나 그 또한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작가의 의도나 배려는 단지 작가에 해당하는 문제일 뿐이다. 어느 누구도 크게 고려하지 않는다. 영향 받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변화된 시선, 문화가 의미심장한 사건이다. 의미는 관객에게 열려있고 능동적 해석자들의 시선이 교차 한다.
사건은 이미지들로 구성될 수 있다. 이번 전시처럼 디오라마의 형식도 가능하다. 물론 디오라마를 구성하는 사물과 이미지들은 결코 사건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는다. 무언가 결핍되었거나 과잉된 해석과 오류로 뒤범벅되곤 한다. 소위 일반화된 스토리의 재현일 뿐이다. 그러나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주목해야 할 것은 그러한 오류에도 불구하고 디오라마가 전하고자 한 메세지는 항상 전달된다는 것이다. 디오라마의 관객은 수동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디오라마의 은유는 공간의 문제를 떠올린다. 평자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의 미적효과중 하나가 시간보다 공간을 전면화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야기의 생성과 관련된 시간보다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 즉 공간이 문제화된다. 사건이 벌어진 시간은 과학수사대의 그것처럼 마치 지금 그 사건이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처럼 전경화된다. 시각이미지들의 배열은 사건의 공간화를 의미한다. 우리는 시각화되고 공간화 된 사건을 경험하고 음미한다. 과장하자면 현대미술은 점차 시간의 문제에서 공간 또는 장소의 문제로 이동한다고 말할 수 있다. 사건은 그 후 어떻게 되었나? 사건은 물론 의미는 재구성된다. 우리가 만일 한 작가 또는 한 작품의 일생을 다루는 이야기를 생각한다면 그것 역시 사건들로 구성된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야기는 사건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사건의 연쇄와 관계에 따라서 지각 가능한 시간이 구성된다. 이야기와 사건과 시간성은 동시적이며 공존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사건의 문제는 시선의 문제를 끌어낸다. 무수한 사건들 중 의미로 고착된 사건은 반드시 시선(응시)를 통해서이다. 시선의 교차에 의해 비로소 사건은 잠재적 상태에서 현실이 된다. 존 버거에 따르면 시선은 언제나 상호적이다. 내가 무언가를 본다는 것은 그 무언가 시선의 대상도 나를 본다는 것을 뜻한다. 시선은 동시적이고 존재론적이다. 따라서 시선은 필연적으로 있음(존재)의 문제와 만난다. 바라봄과 사건과 의미는 존재론적 자리(위상)가 같다. 동시에 생성되고 소멸된다. 시선들은 무한한 경로를 지닌 스펙터클한 세계의 여행자처럼 사건과 의미 사이를 여행한다.
하나의 사건이나 의미에서 다른 사건이나 의미로 이동할 때 우리는 미디어를 사용한다. 미디어는 태생적으로 사건의 탄생과 변화와 소멸의 과정을 기록하고 재현하는 장치다. 우리는 무의식중에 미디어의 숙명을 이해하고 경험한다. 그것이 뉴미디어든 올드미디어든 중요한 것은 사건과 의미의 매개체로서 미디어를 바라보는 것이다. 미디어는 우리의 아주 오래전 사소한 습관조차 기억한다. 그 일을 떠올리는 것은 하나의 의미 있는 사건일 수 있다.
현대미술에서 사건이란 형식논리의 인과율과는 하등 상관없다. 홍남기의 공간화되고 개작된 영상이미지들 또한 그렇다. 홍남기는 수십 년의 시간과 장소의 간극을 넘어 리히텐슈타인의‘Kooowang!’을 하나의 사건으로 재구성한다. 시간과 공간의 심연을 가로질러 ‘Kooowang!’은 새로운 사건으로 컬러풀하게 재구성된다. 익숙한 영상들이 분해되고 파편화된 채 운동한다. 작가의 시선을 따라서 3차원의 공간을 회전하고 전진하고 후퇴한다. 영화의 한 장면, 특히 인상적인장면들을 가져오고 하나의 사건의 과정으로 재연한다. 작가의 영상들은 3차원 영상제작과정을 위한 교재처럼 그래픽의 구조를 차용하고 동시에 재현한다.
전시는 마치 미드 CSI의 영상들처럼 현실의 죽음 보다 더 화려하게 채색된 죽음들과 정교한 사건의 상황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하다. 그 결핍된 무엇의 주위를 작가의 시선을 따라서 모색하고 배회한다. 결핍된 것은 분명 어떤 결정적 증거나 증언을 포함한다. 그것은 작가의 작업이 목표로 삼은 것이자 욕망한 것이다. 재구성된 결핍 또는 욕망이 한 사회의 것이든 아니면 작가 개인의 것이든 홍남기의 작업은 사건의 장
소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하고 시각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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