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미 개인전: 모르는 계절 (no one knows)
2020.06.10 ▶ 2020.06.23
2020.06.10 ▶ 2020.06.23
박상미
equanimity scene 01 장지에 수묵채색_120×60cm_2020
박상미
equanimity scene-같은 공간 장지에 수묵채색_91×117cm_2020
박상미
scene-그들의 정원 장지에 수묵채색_91×117cm_2020
박상미
그녀의 정원 장지에 수묵채색_137×169cm_2020
박상미
누운달 장지에 채색_122×163cm_2020
박상미
同色-연결된 관계 장지에 수묵채색_51×75cm_2020
박상미
모르는 계절I 장지에 수묵채색_137×169cm_2020
박상미
부유하는 관계-보라색 방 장지에 채색_137×104cm_2020
박상미
庭園-흐르는 계절01 장지에 수묵채색_53×53cm_2020
박상미
한번의 계절 장지에 수묵채색_137×169cm_2020
박상미의 작품은 기존의 자연에 대한 사유를 근간으로 이 시대에 형성된 공간에서의 자연을 언급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각 개인의 역사에 기반 된 상황과 감정을 일상 속 장면에 개입하여 식물로 대변된 평면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박상미 작업의 출발선은 기억 속에 남아있는 장면. 외할머니의 정원에서 시작된다.
모르는 계절
어릴 적 나의 외할머니는 다재다능하신 멋진 분이셨다. 바느질, 정원 가꾸기, 요리 등 뛰어난 실력과 재주를 가지고 계셨던 나의 외할머니. 그 중에서도 그녀의 정원은 길을 가던 사람들이 발길을 멈출 정도로 멋지고 우아한 모습을 뽐냈다. 도시외곽 외할머니 댁에는 각 계절을 알아챌 수 있는 갖가지 식물과 꽃들이 가득 넘쳐났고, 그녀의 정원에서는 이름 모를 잡풀 하나 까지도 훌륭한 면모의 식물로 탈바꿈 했다. 그녀는 계절에 따라 꽃씨를 뿌리고 나무를 가꾸며 대부분의 시간을 정원에서 보내곤 하셨는데, 그 모습은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일상 이었고, 행복한 기운이 온 정원을 메워 싸고 있는 기분이었다. 나의 어린 시절, 그 공간으로 비춰들었던 한 낮의 밝고 따사로운 햇살을 잊을 수가 없다. 5월이면 빨간 장미넝쿨이 온 화단과 담장을 뒤덮었고, 정원 곳곳에는 이런 저런 꽃들이 향기와 자태를 자랑했다. 그곳엔 어김없이 새들의 소리와 함께 나비들이 날아들었고, 그들의 움직임은 정원에 생명력을 더하고 미소를 더했다. 온통 초록을 담은 여름을 지나 가을은 정원을 아름답게 물들였고, 겨울이 되면 무채색의 정원 또한 훌륭했던 그곳에서 나의 외할머니는 다가올 봄을 준비하며 설레곤 하셨다.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외할머니 댁에서 보내던 나는 어느덧 성인이 되었고, 그동안 나의 외할머니는 병환 중에 계셨다. 계절이 지날수록 돌보지 못하는 정원에 대한 걱정도 그녀와 함께, 그리고 식물들과 함께 시들어갔다. 그렇게 할머니는 어느 내 생일날 아침에 하늘로 가셨다. 그녀의 부재와 함께 수년 동안 방치 되었던 그녀의 정원. 그곳에는 더 이상 새와 나비들의 구성진 몸짓은 없다. 이제 그녀의 정원은 나의 화폭에서 기억되고 있다. 외할머니와 함께 멀리 가버린 색과 소리, 냄새 그리고 움직임. 다시는 재현될 수 없는 그 모습을 생생하게 떠올리며 계절을 맞이한다.
나는 그녀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지금 내가 알고 있고 할 줄 아는 것들은 대부분 그 시절 그녀에게 배운 것들이다. 외할머니는 바르고 밝으셨으며, 매우 긍정적인 분 이셨다. 적어도 나에게 그러하셨다. 그런 외할머니를 닮아있는 그녀의 아름다운 정원. 그렇게 나는 세상을 아름답게 보았다. 정원의 식물들과 꽃들, 새와 나비, 그리고 그 냄새와 공기가 나와 우리와 공존하고 있었다. 그 공간은 장면이 된 채로 나는 내가 위치한 어딘가에서 내 방식의 정원을 만들고 장면을 만든다. 어쩌면 그 장면은 힘든 계절을 살아내는 나에게 보내는 가련한 시선일지도 모른다. 영원할 줄 알았던 것들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갖추어지지 않은 어른이 되어있었다. 기억 한 켠에 자리하고 있는 어릴 적 외할머니의 정원에 관한 기억들은 나의 시선이 거치는 곳곳에서 또 다른 장면이 된다. 도시 식물, 식물성, 장면_scene, seat
유한한 관계에 대한 물음들. 당연하게 곁에 있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기도 하고, 예상치 못했던 사람이 나타나기도 하고, 기대하지 않았지만 늘 존재해있는 사람이 있다. 그 속에서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관계가 흐트러져 깨지고 상처받는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관계가 형성되고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모습. 어쩌면 나는 깊은 관계를 기대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사각의 틀 속에 갇혀있는 관계성은 형형색색으로 만개한 모습의 조화(造花)를 통해 드러난다. 어느 순간 만들어져 타의에 의해 연결되어진 모습들. 같은 색끼리 진열되어진 장면들. 그러나 그들의 연결점은 끊어져 있다. 지속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상처는 나로부터 파생되는 '관계'인 '선'으로 연결되고 또 단절된다. 만개한 모습으로 고운 색을 드러내고 있는 조화들은 동색끼리 묶여져 나란히 진열되어 있다. 인공의 색을 지닌 그것들은 빛깔로 인식되지 않고 하나의 덩어리가 되었다. 각양각색의 다름이 존재하지만 동색으로 동색인 듯이 어우러져 살아가야만 하는 현재를 보고 있었다. 내 어릴 적 언제나 곁에 계실 것 만 같았던 외할머니의 부재는 관계의 유한성에 대해 생각하게 하였고, 살아가면서 그것은 죽음뿐만이 아니라 우연적 요소에 의한 인간관계의 발생과 지속성에 있어서도 그러했다. 의도하지 않은 결과들은 무엇 하나 분명한 이유를 수반하지 않은 채로 그렇게 휘어간다. 그리고 반복된다.
계절에 따라서 모습을 달리했던 외할머니의 정원. 그렇게 계절과 함께 시간이 흘러갔다. 그리고 영원할 것만 같았던 존재와 관계들은 영원할 수 없었다. 외할머니가 그러했고 나의 어머니가 그러했듯이 나는 준비가 되지 않은 채로 계절을 겪어내고 있다. 그래서 알 수 없는 나의 계절과 누군가의 계절은 당황스럽고 먹먹하다. 세상에 없는 계절을 붙잡으려는 것은 아닐까. 한정된 계절 속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 박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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