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원
도자기 Ceramic Ink, Oil Color, and Soil on Paper, 82x62cm, 2019
이상원
도자기 Ceramic Ink, Oil Color, and Soil on Paper, 82x62cm, 2019
이상원
도자기 Ceramic Ink, Oil Color, and Soil on Paper, 82x62cm, 2019
이상원
도자기 Ceramic Ink, Oil Color, and Soil on Paper, 82x62cm, 2019
이상원
도자기 Ceramic Ink, Oil Color, and Soil on Paper, 82x62cm, 2019
이상원
책 Book Ink, Oil Color, and Soil on Paper, 126x82cm, 2019
이상원
맷돌 Millstone Ink, Oil Color, and Soil on Paper, 165x126cm, 2020
흙, 그 어눌하고 다정한 - 흙에 대한 예술가의 찬가
이번 전시는 이상원 화백의 최근작(2019년~2020년)을 발표하는 전시이다. 2019년에서 2020년 상반기까지 제작된 작품 중 엄선한 50여 점의 작품이다. 이상원 화백은 2018년도부터 ‘흙’을 주제로 작업을 시도하였고 첫 번째 전시로 ‘歸土귀토’라는 제목의 전시를 발표한 바 있다.(2019년) 80대 중반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치열하게 창작의 여정을 걷고 있다. 이번 신작전은 흙으로 만들어진 도기, 맷돌, 고서적 등을 대상으로 그려진 작품들로 이루어져있다. 이 소재들은 마치 고고학자가 발굴현장에서 지금 막 캐 낸 것처럼 흙으로 뒤덮여있다. 물론 그림으로 연출된 장면이다.
재료의 일부로 사용된 황토의 붉은 색감과 부드러운 질감은 따뜻하고 깊은 정서를 자아낸다. 도자기의 형태는 어딘가 모르게 엉성하여 유머러스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상원 화백의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묵직하고 강렬한 기운은 여전하다. 이상원 화백은 특별한 형태를 가지고 있지 않은 흙을 표현하기 위해 특정한 오브제를 빌어 표현하였다. 소재가 된 이 사물들은 꽤 오래된 것들이고 그림으로는 더 오래된 것처럼 표현되었다. 이것은 작가가 흙에 내재한 장구한 시간의 흔적을 드러내기 위해 시도한 방법이다.
전시는 1부와 2부로 나뉘어 진행된다. 1부에서는 도자기와 맷돌 등 대작(100호)이 전시되며, 2부에서는 도자기, 오래된 책, 남루한 신발 등을 소재로 한 비교적 작은 작품(25호, 50호)들이 전시 될 예정이다. 특히 이번 신작전의 도자기 작품들에는 단순한 형태를 잊게 만들만큼 풍부한 색감이 표현되었다. 유화물감과 흙과 물을 운용하여 풍요로운 회화적 움직임이 발산된다. ‘흙작업’을 시작한 2018년부터 추상적인 형상을 선보였던 이상원 화백은 이번 신작에서도 형태를 완전히 없애지는 않았으나 추상적인 유희와 자유로운 시도에서 한 발 더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흙’은 인간이 발을 디디고 살아가는 터전이자 근원이며 생명이 사라질 때 돌아가는 곳이다. 이번 전시는 엄청난 존재론적 함의를 담고 있으면서도 다양한 형태로 늘 우리 곁에 함께 있는 흙에 대한 한 예술가의 찬가라고 할 수 있다.
형태에서 색감으로, 구상에서 추상으로
이번 신작은 이상원 화백이 지금까지 진행 해왔던 연작들 중 가장 단순한 형태의 작품이라고 말 할 수 있다. 극사실주의 화가로서 복잡한 전경(그물, 마대, 눈밭위에 어지럽게 밟힌 타이어자국)과 주름과 백발이 세세하게 표현된 노년의 인물을 표현해 왔던 작가는 그의 작품에 커다란 변화를 시도하였다. 작가가 팔순을 넘긴 고령이라는 점이 이러한 변화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설명할 수도 있으나 예술가로서 대상을 바라보고 표현하는 관점의 변화가 조형적 변화로 드러난 것이라고 하는 것이 더욱 타당할 것이다.
그것은 주제로 삼은 ‘흙’과도 관련이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흙은 모두가 느끼듯이 단순하면서도 묵직하고 변함없으며 많은 것들을 아우른다. 화려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러한 흙에 대한 예찬과도 같은 작품들을 위해 작가도 기교와 묘사, 대상을 집요하게 드러내는 표현을 뒤로 한 것이다.
묘사와 형태의 설명이 사라지고 남은 자리에는 색감과 붓터치의 자연스러운 감각이 차지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상원 화백이 그린 그림을 굳이 도자기 또는 맷돌이라고 인식할 필요 없이 회화적인 표현을 즐길 수 있다. 거기에는 흙의 사용으로 인한 부드럽고 보송한 질감이 더해진다. 회화의 본질이라 일컫는 색과 형상, 질감의 유희가 있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작품에는 묵직하고도 따뜻한 정감이 함께 한다.
흙에 대한 대단히 많은 사유와 의미부여가 있을 수 있으나, 화가는 그림을 통해 시공간적인 느낌으로 전달하게 된다. 순간의 ‘보는 행위’를 통해 중층의 의미와 감성을 전달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압축된 이미지를 통해 강렬하게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이상원 화백은 지금까지 절절함이 느껴지는 그간의 소재들을 채택하고 그것을 집요하게 표현해왔는지도 모른다. 이제 이상원 화백은 좀 더 근원에 다가가고자 하며, 근원의 매개체로 흙을 선택했다. 그것에 대한 정감과 사랑을 표현하고자 마치 이야기를 마치고 침묵하듯, 묘사를 내려놓고 추상적인 화면을 구사하게 되었다. 치열하게 질주해 본 사람이 끝자락에 이르러 진정으로 이완하고 가볍게 유희할 수 있게 된 것과 같이 이번 신작은 회화 예술에 대한 노화가의 자연스러운 변화가 아닐까.
이상원, 독자적이며 독창적인 한국의 화가
이상원 화백은 1935년에 강원도 춘천 유포리에서 태어났다. 샘밭이라고도 불리는 유포리는 소양강댐을 근거리에 두고 나지막한 산비탈에 자리한 곳이다. 지금도 과수원과 축사가 있는 시골마을이다. 일제 강점시기 소박한 농촌마을에서 유년기를 보낸 이상원은 농사 이외에 다른 생업을 상상할 수 없는 환경에서 화가의 꿈을 키우면서 자라났다. 농업학교 재학시절 한국전쟁을 맞이하여 친형과 나란히 학도병으로 참전하기도 하였다. 그때의 경험이 반세기가 훨씬 지나도록 그가 작업하는 작품의 이미지와 정서를 지배하는 밑바탕이 되었다.
청년시절에는 혈혈단신으로 서울로 이주하여 영화간판과 상업초상화를 그리는 상업미술가로 활동하였다. 청년 이상원은 상업초상화를 그리는 일에서 누구보다 성공가도를 달렸다. 30대 중반인 1970년에 안중근의사의 단지(斷指)된 손이 표현된 영정초상화를 제작하게 되었다. 현재 안중근의사 기념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 그림은 문교부 공인 안중근의사 영정 초상화로 선정됐고 안의사 기념관에서 오랜 기간 전시되기도 하였다.
이상원은 상업초상화가로 활동하던 시기에도 독학으로 전통 수묵화를 연마하였고, 70년대 중반에 이르러 주문에 의한 초상화 제작을 물리치고 자신만의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국전에도 응모하였지만 심사위원들의 논쟁을 야기한 <시간과 공간 속으로>라는 작품은 입선에 그치고, 78년 새롭게 시작된 민간 공모전인 1회 중앙미술대전과 동아미술제에서 특선과 동아미술상으로 영예를 거머쥐게 되었다. 공식적인 화가로의 데뷔는 공모전을 통해서였지만 이후 수많은 작품을 제작하고 거의 50세가 다 되어 첫 번째 개인전을 열게 되었다.
이상원의 작품은 향토적이면서도 극사실주의 화풍이었고 질곡으로 점철된 한국 현대사를 묵묵히 짊어진 민초들의 삶을 반영하는 감성을 드러냈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해외 미술관의 초대전으로 블라디보스톡 소재 연해주주립미술관, 국립 중국미술관, 생 루이 살페트리에 성당, 상하이미술관 등지에서 전시하게 되었다. 1999년에 생존 작가로는 최초로 국립 러시안뮤지움에서 초대전을 개최하게 되었다. 잇따른 해외 미술관 초대전이 한국 언론에 소개되면서 이상원 화백은 ‘입지전적 독학 화가’로 불리게 되었다. 특히 90년대 후반에 발표되기 시작한 <동해인 연작, 1997~>은 한국의 어부, 농부 등 거친 일터에서 일생을 살아온 평범하고 남루한 인물을 그린 작품으로 국내 및 해외 관람객들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되었다.
이상원 화백의 여정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묵묵히 고집스럽게 만들어 온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원 화백은 해외 전시가 한창이었던 2000년에 고향인 춘천으로 귀향했다. 자신이 태어났던 유포리보다 더 깊은 산속 마을에 컨테이너 작업실을 마련하여 현재까지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다. 그가 그려왔던 수많은 사라져가는 풍경과 사람들처럼 노년을 맞이하여서도 예술의 혼을 쏟아 부으며 끊임없이 작업하고 있다
1935년 강원도 춘천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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