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아트랩대전 : 7월의 작가 박종욱
2020.07.07 ▶ 2020.07.29
2020.07.07 ▶ 2020.07.29
전시 포스터
이상하고 아름다운 수집의 세계
이슬비・미술평론가
전시장에 들어서면 마치 17세기 유럽 절대왕정의 밀실에서 볼법한 괴이한 수집품의 세계를 마주하게 된다. 박종욱은 지난해부터 자신의 취미인 수집을 작업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에는 007가방에 의미 있는 물건들을 수집했고, 최근에는 곤충을 박제해 수집한다. 일부 곤충 표본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인체 페인팅과 곤충 표본이 결합된 상태이거나 새의 형상을 띤 조형물로 작가의 손을 거쳐 새 생명을 얻었다. 복도에서 관람객을 맞이한 입체작품 <코랄(Coral)> 역시 작가가 수집한 진귀한 물건 중의 하나로 연출되었다.
전시 제목인 ‘Con Kammer’가 말하듯 전시장은 그 자체로 작가의 기억, 경험, 감각이 통제된 방을 의미한다. 수집의 대상은 예리한 도구에 고정된 채 경첩이 달린 견고한 캐비닛 유리 액자 속에 진열된다. 나비, 새 등은 날개가 있지만 날 수 없고 잠자리는 때로 날개만 따로 떼어지는 수난을 겪는다. 사실 이 작업은 자전적 경험에서 출발하는 데 작가는 전직 장교 출신인 아버지의 강압적 분위기와 엄격한 통제 속에서 자랐다. 하지만 개인의 경험, 취향을 반영하는 자족적인 작업에 그치지 않는다. 작가가 경험한 군대문화는 단순한 개인적 경험이 아니라 분단국가인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보편적 기제로 작용한다. 상명하복식의 권위주의 문화는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조직문화의 시스템적 요인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다.
첫 개인전에서 선보인 <무뇌 레이싱>연작(2018)은 무한 경쟁 사회에서 현대인이 느끼는 압박감,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체념과 자조가 섞인 현실 인식으로 담아냈다. 이번 작업에서 박종욱은 경쟁 관계에 몰두하기보다 수집 본능을 통해 자신만의 탑을 견고하게 구축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러한 행위는 만들어진 프레임을 거부하는 당돌함이 아니라 화해의 제스처에 가깝다. 캐비닛을 직접 제작하고 수집품을 진열하면서 그는 아버지를 수백 번, 수천 번 다시 만났을 것이고, 그것은 아버지와의 관계 사이에 남은 해묵은 감정을 해소하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수집의 대상에는 제약이 따로 없다. 모든 사물과 경험, 기억 등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열렬한 수집의 대상이 된다. 수집은 삶에서 부족함을 충족하려는 욕망 실현의 형태로, 캐비닛 안에 앞으로 어떤 물건을 채울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반면 박종욱의 작업은 수집하는 대상에 집중한 것이 아니라 수집이라는 행위를 다각적으로 탐구한 모의수집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수집된 곤충은 대부분 OHP 필름에 전사된 이미지다. 그의 작업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캐비닛 액자의 역할이다. 작가는 캐비닛이야말로 인생의 희로애락을 반영한 공간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억압된 상태에서 자유를 갈망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울타리를 벗어나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도 존재한다. 통제된 공간이 주는 묘한 안정감이 있는 것이다. 이처럼 작가는 캐비닛 밖의 세상을 꿈꾸면서도 틀 안에 안주하고 싶은 인간의 양면적인 감정에 주목한다.
수집된 대상을 들여다보면 그 자체로 변종에 가까운데, 한결같이 이상한 외양을 가진다. 일그러진 아름다움, 우아한 비틀림, 죽음과 재생의 경험, 과잉과 바니타스 정신이 그의 작품에 구현되어 있다. 이같은 상황은 완벽주의를 지향하는 통제자가 제어할 수 없는, 빗나간 상태를 암시한다. 훗날 나비와 새가 자유를 꿈꾸며 세상을 향한 날갯짓을 계속해 캐비닛 속에 고정 도구만 남아 있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예술은 세상을 향한 예술가의 발언으로서 동시대와 가장 전위적인 방식 혹은 시대착오적인 방식으로 접속한다. 몇 년 전부터 미니멀라이프가 유행하면서 과거 수집품은 처분 대상 1호가 되었다. 매달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음원, 영화, 방송 프로그램, 책 등의 미디어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어 자신만의 컬렉션은 이제 큰 의미가 없어졌다. 사람들은 마음에 드는 물건이 생겨도 더 이상 모으지 않는다. 그리고 가볍게 떠날 수 있는 노마드 족을 꿈꾼다.
과거 수집가가 불멸의 수집품을 남겼다면 현대인들은 불멸을 하나의 개념이 아닌 경험으로 변형시키고 즉각적인 소비의 대상으로 만든다. 최근 많은 사람들이 핫플레이스를 순회하거나 특정 행위를 하고 인증샷을 공유하며 순간을 불멸의 경험으로 만든다. 그러고 보면 수집의 대상이 우표, 곤충 표본, 음악 CD에서 단지 SNS상의 하트나 좋아요, 팔로워 등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뿐인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삶의 가치 척도는 자본이며, 사람들은 화폐를 얼마나 많이 수집하느냐에 강박을 보인다. 그런 점에서 인간은 수집하는 동물임이 틀림없다. 수집 본능은 본질적으로 우리의 실존과 맞닿아 있다.
다시 전시장으로 돌아가보자. 공간은 의외로 반은 채워져 있고 반은 비워진 상태다. 작가가 수집에 대한 강박증을 드러내고자 했다면 전시장 벽면 또는 천장까지 수집품으로 도배했을 것이다. 빈 벽면은 언젠가 정복해야 할 미지의 영역을 암시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비워진 여백 그 자체로 공허함을 웅변한다. 수집품을 가치있게 만드는 것은 ‘쓸모’가 아니라 ‘의미’에 있다. 그 쓸모없음을 의미 있게 만드는 수집이란 행위는 궁극적으로 ‘나’를 증명하는 일이다. 그런데 과연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일까. 타인이 알아주지 않으면 사라지는 허상을 좇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현대인의 고뇌에 관한 탐구는 끝없는 도전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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