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호
ⓒ 이명호_Island_[drənæda] #1 종이에 잉크_104×104cm_2020
이명호
ⓒ 이명호_Nothing But #2 종이에 잉크_104×104cm_2018
이명호
ⓒ 이명호_Tree #18_1_1 종이에 잉크_67.6×297.6cm_2020
이명호
ⓒ 이명호_Tree #18_1_2 종이에 잉크_67.6×297.6cm_2020
역대 긴 장마와 무더위 그리고 코로나 19로 모두에게 쉽지 않았던 지난 여름!
고은사진미술관은 긍정의 마음으로 인내하고 새로운 가을 문턱에 들어서며, 이명호 사진전 «[드러내다]/[drənæna]»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사진가 이명호는 작가의 숙명적 자세인 끊임없는 사유의 성찰과 기록, 그리고 사진창작의 지속적인 확장을 통해 본인의 정체성을 국내외적으로 꾸준히 자리매김하고 있는 중견사진가입니다.
본 전시는 ‘드러내다’(나타나게 하다)와 ‘들어내다’(사라지게 하다)의 상반된 개념과 형식을 이미지화하는 사진적 행위들로 구성되며, 작가와 관람객이 상호 소통을 통해 사진의 예술적 가치와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공감의 장이 될 것입니다. 이명호 작가의 전시 구성은 <캔버스-효과(canvas-effect) : 카메라-효과(camera-effect)> 맥락으로 분류되는 세가지 계열인, <재현(re-presence)>, <재연(re-produce)>,< 사이 혹은 너머(between or beyond)> 개념과 형식으로 이루어집니다. 고은사진미술관 기획전 «[드러내다]»는 본 전시를 위해 특별히 부산에서 촬영하고 완성한 이명호 사진가의 새로운 신작들도 함께 선보입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현대사진의 주요 특징인 표현의 다양성은 물론, 피사체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성실한 응대에 대한 시간의 기록인 이명호 사진가의 대표작을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고은사진미술관에서 아름답게 발현될 진심의 기록들을 함께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국내 지방 최초의 사진전문미술관인 고은사진미술관은 한국사진 발전을 위해 새로운 발자취를 만들어가고 있으며, 고은사진미술관에 보내주시는 지속적인 관심과 성원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 고은사진미술관 관장 이재구
이명호의 ‘사진-행위 프로젝트’
1.
세상에는 수많은 예술의 정의가 있다. 아마 같은 제목으로 가장 많이 나온 책 중 하나가 ‘예술은 무엇일까’일 것이다. 작가는 물론, 이론가, 일반인 대부분 저마다의 예술정의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다’라는 고전적 정의로부터, ‘예술은 충격을 선사하는 것이다’, 또는 ‘예술은 사기다’와 같은 공격적 정의도 있을 것이다. 이들 모두는 각자의 방식으로 그러한 예술정의를 실천하고 향유할 것이다. 특히 작가 입장에서는 예술정의가 이른바 작업지향일 것이고 예술 활동의 궁극적인 성취동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 장르에도 역시 사진에 대한 이런저런 정의가 있어 왔다. 다양한 정의와 해석, 그에 따른 개성 있는 사진술(寫眞術)이 창안되고 수많은 유형과 형식의 사진들이 세상에 등장했다. 이는 현재진행형이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기존의 많은 정의들을 아우르는 상위의, 공감 가능한 특정 정의가 존재한다고 단언하기는 쉽지 않다. 다양한 정의와 실천이 나란히 공존할 따름이다. 이른바 선언적(選言的), 가언적(假言的) 방식으로 존재할 따름이다. 사진작업의 다양한 지향과 소통가치를 존중하는 작업과 감상, 해석, 평가의 종다양성(種多樣性)이 있을 뿐이다.
이명호는 자신의 작업을 ‘사진-행위 프로젝트’라 명명한다. 특유의 작업 개념인 ‘사진-행위 프로젝트’를 ‘사진-행위 프로젝트’, ‘예술-행위 프로젝트’, ‘철학-행위 프로젝트’로 나누고 이들을 개념적으로, 유기적으로 상호 교차, 순환하며 작업으로 이행하는 독특한 미학적 얼개를 취하고 있다. 이른바 비선형적(非線型的) 작업 개념 틀로, 각 프로젝트들이 ‘사진-행위 프로젝트’라 칭하는 ‘전체’의 프로젝트 틀 속에서 새로운 방식을 창출하기도 하고 작업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상조(相助)하며 진화하는 이명호 특유의 작업 개념 틀로 이해된다.
이명호는 흔히 선행 프로젝트를 전기(前期)적인 양상으로 상정하고 현행 프로젝트를 후기(後期)적 개념으로 반복하거나 이어받는, 이를테면 단선적(單線的) 개념으로 작업을 진행하기보다는 다원적(多元的)인 태도로 상호 교차하며 창조적으로 발전시켜 나간다. 따라서 각각의 프로젝트는 서로 대립하거나 충돌하는 양상이나 개념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다만 서로의 작업 개념을 인정하며 이를 확장하거나 증폭하는 양상으로 이어나갈 뿐이다.
이명호의 이른바 ‘-행위 프로젝트’가 관심을 두는 영역은 ‘재현(再現)’과 ‘재연(再演)’의 방식과 가치로부터 관객과의 적극적인 ‘소통’의 방식에 이르기까지 폭넓고 다양하며 유연하다. 그를 일약 스타 반열에 올린, 대중에 잘 알려진 〈나무(Tree)〉 시리즈라든가, 사막의 지평선에 바다의 수평선을 만드는 〈신기루(Mirage)〉 시리즈로부터 이들을 확장한 작업, 특히 최근 들어서는 적극적으로 관객과 만나려는 보다 실험적인 작업충동을 보이고 있다.
사진기(사진술)의 기본 원리와 물리적 프로세스를 설치 형식으로 풀어낸 파격적인 작업을 연속적으로 선보이거나 관객 참여형 현장 작업들도 함께 선보이고 있다. 이는 사진 프로세스나 그동안 접해온 관람객의 반응과 경험을 중심으로 다양한 수용자 계층의 목소리를 효과적으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인다. 나아가 그들이 사진 문화와 활동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열린 사진 문화에로의 통로를 마련하는 등 대중과 보다 적극적으로 소통하려는 의지로 이해된다.
2.
이명호는 2000년대 초반, 네덜란드의 사진전문지 foam(Fotografiemuseum Amsterdam 발행)에 작품이 소개되면서 국제 사진계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2007년 갤러리팩토리에서의 개인전과 같은 해에 열린 동강사진축제에서의 특별전, 《영월 그리기》(동강사진박물관) 등을 통해 국내 미술계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른바 화려하게 미술계에 데뷔했다. 이후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동안 이명호가 국내외 미술계에서 거둔 사진적 성과와 성가(聲價)는 괄목할 만한 것이었다.
이명호는 그의 작업 지향이 그러하듯 결과보다는 과정을 상대적으로 중요시 한다. 작업 현장에서의 진행 과정도 중시하지만, 일상에서의 평소 생각과 자연 속 사소한 것들에 대한 사물시선, 전통문화유산과 그 가치 등에 대한 생각을 꾸준하게 이어나가는 사색과 사유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관념이란 사물을 보고 생각한 결과’이며, ‘사물을 통해 사유하는 과정이 자신의 사진이자 작업의 궁극적 의미’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사물시선과 사유 과정은 그가 예술대상으로 삼고 있는 핵심 요소이자 지향에 다름 아니다.
이명호가 나무가 지닌 형상이나 나무의 미적 특질을 우선 고려하기보다는 나무라는 사물 자체에 대한 사유 과정과 그것을 담아내기 위한 행위를 작업의 시작이자 궁극으로 생각하는 이유다. 대형 캔버스를 매단 구조체를 나무 뒤에 설치하고 촬영을 한 것도 객관적인 사물로서 나무를 보려한 것이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동원된 사막에서의 작업도 객관적인 현상으로서 신기루를 제시하고 확인하려 한 것이었다. 객관적인 사물은 언제나 의식의 밖에 있는 법이다. 이명호에게 있어 자연 그대로의 나무, 풀, 돌, 신기루 등과 같은 사물이나 현상들은 사유와 탐구의 주요 대상이었다. 그들을 사유하고 호명(呼名)함에 있어 수반되는, 지불해야 하는 이런저런 수고와 기회비용을 마다할 수 없었던 이유다.
이명호는 나무라는 사물의 존재 차원과 사막의 신기루라는 자연 현상을 대형 캔버스를 활용한 개성 넘치는 연출과 해석으로 세상에 선보였다. 세상을, 사물을, 피사체를 기성과 다르게 바라보려는, 담아내려는 의지와 시선으로 주목을 받았다. 독특한 사진 방식과 사물에 자신의 해석과 생각을 입혀 가고 더해 가는 특유의 사진 과정은 카메라를 통해 사진을 찍기 보다는, 자신의 철학에 맞는 사진 방식을 실천하는 사람으로 우뚝 자리매김하게 했다.
식물, 나무, 돌, 들, 바다, 하늘 등과 같은 사물과 자연의 본질, 이에 대한 자신의 지적 사유와 실천의 변증법적 길항 내지는 인과관계를 ‘예술-행위’와 ‘철학-행위’ 등으로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기술에 지나치게 많은 시선을 주거나 자신의 사진 방식이 맞고 틀림을 따지지도 않는다. 그저 자연의 방식을, 자신의 호흡을 존중하고 따를 뿐이다.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모름지기 작가의 작업은 증명관계에 의해 참, 거짓을 따지고 구분하는 수학적 명제와는 달리, 논리적으로도 앞서고 경험적으로도 앞서는 비수학적 충동이자 결과인 것이다. 이명호의 사진작업 역시 관성화된 사진술과 관념화된 사물에 대한 시선과 인식작용을 낯설게 만드는 과정이자 반성적인 태도에 다름 아니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다가오는 이런저런 나무를 오랜 시간 사유하며 완벽하게 포착한 느린 호흡, 기성과 다른 깊이와 넓이로 빚어낸 여백과 공백이 만들어낸 모호함, 다른 시선, 다른 작업 과정은 이명호의 사진세계, 재현세계를 더욱 깊은 심연으로 이끈다. 지나친 후보정, 컴퓨터에 의존한 사진술, 고도로 진화한 카메라 등으로부터 비롯한 쨍한, 자극적인 사진이 넘쳐나는 요즘이다. 워낙 과작(寡作)이기도 하고 작업의 과정이나 성격 자체가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특성을 지니고 있음을 감안할 때, 이명호의 사진은 어쩌면 비사진적, 비사회적이다. 그야말로 프로젝트 성격이 강한 작품이다. 해묵은 ‘재현’ 문제에 대한 고집이 두드러진 것도 이러한 특징의 반증일 수 있다. 어쩌면 유행 지난, 이른바 ‘제외된 미학’에 대한 관심이기도 하다. 빛의 시대를 견디는 이명호식 주술(呪術)이다.
3.
주지하다시피 재현과 재연, 표현 등 대상을 묘사하는 방식을 일컫는 말이 ‘표상(表象)’이다. 즉 표상은 외적(外的)인 것, 물리적이고 광학(光學)적인 것, 눈에 비친 것을 담아낸 것, 떠낸 것이다. 보는 이가 그것의 원상(原象)을 알거나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끔 작가가 본 것을 다시 관객에게 공감 가능한 방식으로 선사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빛이 사물을 타고 눈에 비친 것을 충실하게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표상, 이른바 ‘재현’이다. 이를테면 쿠르베의 경우가 이에 속할 것이다.
반면 ‘비표상(非表象)’은 눈보다는 ‘정신’에 관계하는 것으로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과 이해, 감정세계가 사물에 다가가서 만들어진 무엇을 말한다. 작가의 개인적 세계와 사유가 사물에 투영되어서 만들어진 어떤 다른 것을 일컫는다. 현대미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세잔의 작업이 그러했다. 정리하자면 표상이란 대상을 객관적으로, 주관적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객관적인 요소가 강조되면 그것은 객관적 재현이 될 것이며, 주관적인 부분에 무게를 둔다면 그것은 표현적 재현이 될 것이다. 반면 비표상이란 작가의 마음, 기억 등이 사물에 투영된 ‘임의’의 결과물로, 그 원상을 알기가 쉽지 않은, 이를테면 추상적인 결과물을 의도한다고 하겠다.
앞서 말했듯 이명호는 재현과 재연의 문제에 주목하며 작업을 시작했다. 그것은 현재까지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이명호식 사진실천이자 사진행위다. 다만 물리적인, 광학적인 방식으로 또 하나의 원본을 남기려 했다기보다는 자신에게 다가온 타자로서의 사물, 피사체를 재현과 재연, 또는 재생에 대한 나름의 사진 형식으로 담아내며 기성적 가치와 이해를 반성적으로 돌아본다. 역설적이게도 이명호의 작업은 재현이라는 표상행위에 대한 비표상적 접근이자 사진 과정에 대한 독특한 해석이 가미된 매력적인 결과를 선보인다.
재현을 향한 역설적, 연역적, 미학적 접근이자 지성적 해석이라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이명호의 재현은 자연주의적 태도에 의한 재현이라기보다는 자연주의적 태도와 극사실적 재현 사이에 위치한다고 볼 수 있는, 이른바 ‘주지주의(主知主義)적 재현’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즉 피사체인 사물을 물리적으로, 광학적으로 담아내기보다는 일단 사물을 자신에게 귀속시킨 후 다시 재차 사물로 재귀속시키는 경우라 하겠다.
캔버스를 활용한 이와 같은 이명호 특유의, 이를테면 ‘트레이드마크’화된 다양한 재현 방식은 밝은 방, 어두운 방 등과 같은 카메라의 구조적 작동 원리를 경험하게 하는 설치작업과 사물의 상이 맺히는 과정이나 방식을 미장센으로 풀어낸 실험적 설치작업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이는 기존의 재현 방식과는 사뭇 다른 이명호의 사진에 대한 사유와 인식능력, 상상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나아가 사진술, 즉 카메라워크가 가진 매력과 태생적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드러내는 행위이기도 하다.
화가들이 대상이나 사물을 재현함에 있어 대상을 담아내고 현실화할 장소, 현실화한 결과로서 캔버스를 채택했다면, 이명호는 캔버스, 프레임이라는 공간과 구조를 피사체로서의 ‘사물성(Thingness)’을 강조하고 효과적으로 담아내기 위한 보조적인 장치로 활용했다. 때론 잠상(潛像)의 시선을 의도한 〈신기루〉 시리즈나 잔상(殘像)과 허상(虛像)의 시선을 강조한 〈어떤 것도 아닌 그러나(Nothing But)〉 시리즈처럼 캔버스와 프레임 그 자체를 작업의 중심 화두로 채택하기도 한다.
이명호에게 있어 캔버스는 표면이 아닌, 캔버스라는 네모난 평면 공간을 통해 대상으로서 사물이 구체화, 구조화되는 장치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 〈신기루〉 시리즈나 〈어떤 것도 아닌 그러나〉 시리즈 등에서는 캔버스의 표면과 프레임 그것이 중심 역할을 하기도 한다. 물리적, 물질적 구조로서는 회화의 방식과 닮았으나 작가의 이런저런 행위의 결과가 현실화되는 것이 아니라, 캔버스에 드러나지 않은 이미지, 사물의 존재가 정신적으로 투영되는 표면이자 심리적 장(場)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즉 사진기 그리고 구체적 피사체로서의 사물을 벗어난 탈이미지, 탈형상화 작업을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2018년, 부산 다대포 해변에 텅 빈 캔버스를 심고 상당 시간을 그대로 놓아둔 작업이 그 중 하나다. 눈, 비, 해풍, 육풍, 염분, 파도, 햇빛 등에 의해 마르고 젖기를 반복하며 묵묵히 자연 요소를 받아들인 캔버스의 찌든 표면, 마치 감광막에 응착된 듯 자리한 천연(天然)의 결상(結像), 혹은 잠상 등이 그것이다. 자연의 얼레짓, 자연의 이른바 ‘스스로 그러함’을 통한 재현, 나아가 자연과 인공과의 새로운 소통 개념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관심을 두고 있는 입체, 설치작업인, 〈작명 안(못) 한(Not Title(d))〉 시리즈는 일견 마치 누에고치가 실을 토해 만든 입방체, 프레임 같은 느낌을 준다. 프레임과 프레임 사이를 일일이 사람의 손으로 엮은, 수천 번의 수고를 들여 자아낸 직육면체의 공간, 캔버스의 변형으로 보이는 중층적, 다층적 표면 등은 사진을 가능하게 한 수많은 빛의 간섭과 교차, 사진술의 기본을 생각하게 한다. 상이 포착되고 맺히는 과정을 아날로그적으로 풀어내고 돌아보는 관객 참여형 작업으로, 사진의 재현 방식과 가치에 대한 해석과 풀이로 이해된다.
이명호는 사물에 주목하고 그것을 강조했던 기존 작업으로부터 보다 적극적이고 실험적인 재현, 입체, 설치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작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사진행위로 자연스런 결상 과정을 강조하는 등 과정 자체가 오롯이 작업으로 남는 작업이다. 나아가 전시나 작품에 초점을 맞춘 공간을 계획하기보다는 관객을 위한 전시, 관객과 함께하는 프로젝트 등을 선보이는 등 새로운 의미공간을 예비한다. 관람객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해 작품과 관객 사이의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서의 전시와 작업, 이들의 역할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다.
4.
이명호의 ‘사진-행위 프로젝트’는 작가 자신이 어릴 적부터 그려온 애정 어린 사물시선과 세상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캔버스와 사물을 통해 드러낸 독자적 세계다. 이명호는 지난 20여 년 동안 이들의 상호 관계가 이루어지는 여러 절차와 과정, 형식들을 선보여 왔다. 재현의 문제를 탐구하는 지적 토대를 마련하는 과정이었다. 탐색을 거듭하며 축적된 경험과 미진한 부분은 또 다른 실험과 탐색으로 극복하며 부침을 거듭했다. 이러한 실험과 탐색과 행위의 여정을 이명호는 ‘사진-행위 프로젝트’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풀, 나무, 신기루, 들, 꽃, 햇빛, 바람, 눈, 비, 바다, 사람 등으로 요약되는 자연 요소는 이명호 작업의 주요 모티프다. 그의 작업을 간단히 둘러보자. ‘재현(Tree 연작)’, ‘재연(Mirage 연작)’, 실체라기보다는 자연의 숨결과 흔적을 담아낸 ‘사이 혹은 너머(Nothing But 연작)’의 ‘현실’, ‘비(非)현실’, ‘간(間)현실 혹은 초(超)현실’ 등에 대한 질문과 관객과 함께하는 문답, 예술적 표현 장치 행위와 과정인 ‘무제 혹은 미제’, 육면체의 공간을 활용한 ‘밝은 방’, ‘어두운 방’, 선(線)을 그어 면(面)을 만들 듯 실로 직조된 캔버스 사이로 투영, 투사된 자신을 비추어 보거나, 실과 실 사이를 비집으며 피고 지는 꽃의 개사 과정을 강조한 〈작명 안(못) 한〉 등이 그것이다.
모두 이명호식 역동구조다. 그 안에 재현(재연)이라는 인식론적 틀과 해석학적 요소를 끌어들임으로써 시각언어와 해석이라는 양자 사이의, 작가와 사물들의 상호 의존 관계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이명호의 조형언어는 예술작품의 지위를 획득한다. 이명호에게 있어 캔버스와 나무 등은 상호 의존적인 관계인 것이다. 문자언어가 아닌, 사진언어, 조형언어, 시각언어 등 비문자언어 등을 통한 재현적 인식이 이명호의 눈과 사진행위를 통해 진화해 왔다. 사진행위에 중심을 두고 진행하는 프로젝트라는 의미에서 이명호의 ‘사진-행위 프로젝트’는 적절한 작업 명제로 보인다.
사진행위의 기능에 충실한, 수고를 마다 않는 이명호는 ‘사진-행위’, ‘예술-행위’, ‘철학-행위’ 프로젝트 등을 통해 사진언어의 확장, 증폭을 경험한다. 재현에 대한 사진적 의미 해석을 제안하고 또 의미를 해석하는 새로운 사진행위, 사진술 내지는 사진언어의 창발자라 하겠다. 사진기술, 사진예술적인 측면으로부터 사진행위적인 측면 사이에서 작동하는 사진술의 의미 지평과 층위 넓히기라 하겠다. 이명호는 기존 사진언어의 세밀함, 은밀하고 비밀스런 기능과 공간 구조를 역동적인 공개 구조로 치환하고 있다.
사진언어학적 요소들과 구조, 사진언어와 물리적 구조, 사진 해석과 행위의 상호 의존 관계, 상호 의존적, 상호 교환적 요소를 실험하고 탐색하는 행위이자 과정이다. 정해진 틀에 따라 진행하는 순차적인 작업이라기보다는 사진 순서를 귀납적, 연역적으로 넘나들며 미장센을 연출하고 담아내는 이명호식 사진행위의 순환을 보인다. 이명호는 자신의 작업을 크게 일컫는 ‘사진-행위 프로젝트’를 통해 지난 2003년 이후 지금까지 총 3개의 프로젝트에 걸쳐 12개의 시리즈를 선보여 왔다. 이 중 ‘재현(再現, re-presence)-현실(現實)’ 작업은 이명호를 일약 국내외 사진계는 물론 미술계의 스타 반열에 올린 초기 작업으로 현재까지 모두 7개의 시리즈로 구성되어 있다.
‘재현-현실’ 작업은 작가 이명호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나무〉 시리즈(2003)를 시작으로, 크기나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작은 산 속의 풀 등을 담은 〈하찮은 것(Petty Thing)〉 시리즈(2019) 등으로 이어졌다. 〈나무〉 시리즈는, 주지하다시피, 나무라는 살아 있는 자연물 뒤에 물리적으로 캔버스가 장착된 구조체를 세운 작업이다. 나무 뒤에 흰색의 커다란 면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천이라는 것, 캔버스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도록, 알 수 있게 담아냈다. 또한 이명호는 나무의 그림자, 사각 캔버스 외곽의 주름, 뒷면의 프레임 그림자, 계절 느낌 등 배경과 시공의 디테일을 존중했으며 전체 크기를 상대적으로 가늠할 수 있는 요소-사람, 한강다리, 전선, 풍선 등의 개입을 용인했다.
2012년부터 제작된 〈나무...(Tree...)〉 시리즈는 기존 세로형의 캔버스와 화면 중심에서 가로형의 캔버스와 화면이 등장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화면 속에 나무들이 여럿 등장하기도 하는데, 그 중 하나의 나무를 떠내거나, 한 그루의 나무에 가지가 하나 이상인 나무들도 대상으로 했다. 특히 2015년 작업인 ‘나무... #8(Tree... #8)’의 경우, 화면 속 모든 나무를 캔버스로 떠낸 집단풍경으로, 파노라마 형식의 화면에 마치 연필로 그린 듯, 바람 소리가 들리는 듯 생생한 현장감이 묻어난다. 부감(俯瞰)으로 동그랗게 펼친 듯 담아낸 ‘나무...... #1(Tree...... #1)’(2018), 바닥에 놓인 돌을 담은 ‘돌...... #6(Stone...... #6)’(2018) 등 역시 배경에 이명호 사진 특유의 흰색 캔버스를 두고 있다. 초기 자연물, 특히 나무라는 사물에 대한 시선과 관심을 예의 반영하고 있으며 대지의 수평적인 요소와 나무의 수직적인 요소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또한 사각형의 캔버스 형태가 화면, 프레임과 동어반복적인 특성을 보이는 한편, 나무의 유기적 느낌과 대조를 이루면서 조형적으로도 안정과 균형을 보인다.
‘재현-현실’ 작업에는 서울의 ‘남대문’(2013), 수원의 ‘서장대’(2014), 파리의 ‘개선문’(미정) 프로젝트 등 국내외 문화재를 같은 방식으로 담아낸 〈유산(Heritage)〉 시리즈, 익산의 왕궁리 폐사지 유적을 배경으로 하여 같은 개념, 다른 형식으로 표현한 ‘유산_[드러내다] #1(Heritage_[drənæda] #1)’(2020) 등도 포함되어 있다.
다음으로 이어진 작업은 ‘재연(再演, re-produce)-비현실(非現實)’이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이른바 〈신기루(Mirage)〉 시리즈를 중심으로 ‘재연’ 형식을 탐색했다. 사구(砂丘) 사이의 부드러운 라인과 능선, 즉 지평선을 따라 적게는 하나의 스폿, 많게는 3개의 부분에 수백 명의 현지인들이 거대한 캔버스 천을 붙잡고 서 있거나 누워 있는 표정을 담았다. 대부분 울트라 파노라마 형식의 화면이다. 진짜 사막의 장대함에 가짜 바다의 신비함을 효과적으로 녹여낸 수작(秀作)으로 평가된다. 9대의 대형 버스에 나뉘어 사막으로 이동한 현지 주민들과 함께 만들어낸 프로젝트로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사건이다.
2010년 성곡미술관 《내일의 작가 수상전》을 통해 소개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던 고비사막에서의 ‘신기루 #1(Mirage #1)’(2009)과 아라비아사막에서의 ‘신기루 #2(Mirage #2)’(2010)는 잉크젯 프린트 방식의 초대형 작품으로, 특히 모래의 알갱이가 살아 있는 듯한 질감이 압권이다. 툰드라에서의 ‘신기루 #3(Tundra #3)’(2011), 실크로드에서의 ‘신기루 #4(Mirage #4)’(2012), 파타고니아에서의 ‘신기루 #5(Mirage #5)’(2013) 등도 이 당시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인체를 닮은 듯한 사막의 표정은 정교하게 주조(主調)되어 묘한 신비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명호는 사막의 전체적인 인상과 스케일, 전경과 원경의 섬세한 디테일 차이와 거리감 등을 통해 비현실로서의 재연, 신기루의 느낌을 강조했다. 사막의 생태를 효과적으로 삼투한 거친 입자와 부드러운 라인의 조화는 마치 사막에서 직접 눈으로 보고 있는 듯한 생생한 느낌을 준다. 캔버스를 활용하여 사막의 지평선을 마치 바다의 수평선 같은 신기루 효과로 치환해낸 역작들이다.
이후 이명호의 작업은 ‘사이(間, Between) 혹은 너머(超, Beyond)-간현실(間現實) 혹은 초현실(超現實)’로 이어졌다. 〈어떤 것도 아닌 그러나〉 시리즈 등이 그것이다. 다대포 해변 등에 캔버스 구조물을 세워 자연의 자연스런 표정이자 기록을 온몸으로 받아낸 캔버스 표면의 표정과 질감을 있는 그대로 존중한 인상적인 파노라마 형식의 작업이다. 화면 한 구석에 앉아 있는 갈매기의 표정과의 대비가 흥미롭다. 적막과 고요만이 남은 바닷가에서 홀로 수 시간을 지켜낸, 파도와 해풍을 마다하지 않은 캔버스의 뚝심과 작가의 인내가 가슴에 와 닿는 작업이다. 부여의 정림사지 등에서 이루어진 〈어떤 것도 아닌 그러나_[드러내다](Nothing But_[drənæda])〉 시리즈 등도 형식은 다르나 같은 개념의 작업이다.
이명호는 ‘적용(適用) 혹은 응용(應用), 이용(利用) 혹은 활용(活用)’과 ‘무제(無題, Un-Title) 혹은 미제(未題, No-Title), 부제(不題, None-Title) 혹은 비제(非題, Non-Title)’을 묶어서 ‘&’로 명명했다. 역시 현재도 진행 중인 이 작업은 2018년에 대구 ‘자갈마당아트스페이스’에서 선보인 ‘작명 안(못) 한_자갈마당 #1(Not Title(d)_Jagalmadang #1)’, ‘작명 안(못) 한_자갈마당 #2(Not Title(d)_Jagalmadang #2’ 등 현재까지 10개의 프로젝트로 구성되어 있다. 자갈마당 전시 당시 출품작은 식물(덩굴장미), 흙, 실, 앵글 등을 사용하여 설치한 파격적인 작업이었다. 살아 있는 덩굴장미는 앵글로 제작한 직육면체의 프레임 속에서 자신의 생육 과정을 가감 없이 선보인다. 이리저리 사선으로 교차해서 엮은 수천 개의 실들은 흡사 성긴 마대로 직조한 캔버스의 표정과 질감을 보인다. 관객은 육면체 내부의 텅 빈 구조 속에서 꽃이 피고 지는, 그러면서 꿋꿋하게 자라나는 덩굴장미의 자연스런 표정을 본다. 시든 꽃들은 얽히고설킨 실과 실 사이에 박힌 채 마치 사진 속 정지된 이미지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다. 꽃들은 시들어버린 그 자리에서 사진처럼 존재를 남기고 덩굴장미는 실과 실의 틈을 따라 실시간 움직이는 과정을 보인 작업이다.
〈작명 안(못) 한〉 시리즈는 ‘무제 혹은 미제, 부제 혹은 비제’ 부문에 속해 있는 작업이다. 이 중 자하미술관에서 선보인 ‘작명 안(못) 한 #1(Not Title(d) #1)’(2019)은 수많은 실들이 사선으로 교차하며 엮여 있는 사각형의 프레임을 마주한 관객이 뒤에서 비추는 조명에 의해 자신의 그림자를 보게 되는 작업이다. 캔버스와도 같은 효과를 보이는 중층적으로 직조된 면, 혹은 그물망(網)에 물리적으로 울퉁불퉁하게 침투, 투사, 투영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는 작업이다. 《[드러내다]》전에서 최초로 소개하는 새로운 형식의 작업을 제외하면 가장 근래에 선보인 실험적 형식이라 하겠다.
5.
전 과정에서 이명호가 주목한 것은 재현의 방식이었다. 관객은 사진 속 피사체인 나무를 바라보다가 불현듯 캔버스의 뒤, 사물과 캔버스 사이를 궁금해 한다. 나무는 캔버스의 표면이 아닌 캔버스와 물리적 거리, 이를테면 심도(深度)를 두고 위치한다. 캔버스에 비친 그림자와 나무와 캔버스 사이에 대기의 흐름, 캔버스를 지지하고 있는 프레임의 그림자 등이 개입한다. 나무가 안료가 아닌 사물로 도드라진다. 칠해지거나 그려진, 캔버스에 얹힌 나무가 아닌 캔버스 앞에 놓여 있는 사물 존재로서의 나무를 경험한다. 작가의 말처럼 이명호는 작업 내내 이런저런 방식과 형식으로 ‘사진의 찍기와 회화의 그리기에 얽힌 재현의 담론을 환기’하려 한 것이다.
〈나무〉 작업 등을 통해 이명호가 실험한 ‘재현’이라는 개념은 이명호 자신의 평소 작업 지향과 정서를 반영하고 있으며 작업 방식과 과정은 이에 대한 예술적 언표(言表)라 할 수 있다. 특히 그의 캔버스는 어릴 적 창호지를 발라 놓은 문과 창의 역할과 중첩된다고 볼 수 있다. 창호지 창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고 절기(節氣)의 정서와 사물을 인지했던, 꽃잎 등을 창호지와 창호지 사이에 넣어두고 오래도록 햇빛과 달빛을 통해 받아들인 우리의 전통 생활미감이 그것이다. 한국인의 전통미감이 표상보다는 비표상에 가깝다고 할 때, 이명호의 미감과 작업은 다분히 비표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재현의 문제이지만, 비표상적 미감을 통한 재현이라는 역설적 성격을 띤다고 하겠다.
〈나무〉와 〈신기루〉 작업에서는 각각 남성적, 여성적 힘과 기운을 읽을 수 있다. 나무라는 수직의 축이 대지의 수평선과 직각으로 버틴다면, 사막은 수평적으로 따라준다. 유기적으로 나란히 지면의 호흡을 존중하며 넘실거린다. 숨 쉰다. 화면의 생김새도 가로로 기다란 파노라마 형식이 주류를 이룬다. 어느 인상주의 화가가 흰색 물감 튜브에서 물감을 사막의 모래 위에 바로 짜놓은 듯 사막이라는 대자연 위에 볼록하고 제법 나이브하게 또 지평선과 나란하게 비행접시 같은 형태로 얹어 놓았다. 자연에 물리적으로 개입했음을, 재연을 위한 인위적 연출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무명의 대지에 생활한 기운을 투여하고, 비슷비슷한 그저 통칭해서 나무라 불리는 각각의 나무를 호출해서 저마다의 이름을 부여한, 이명호의 특별한 호명행위이기도 하다.
〈나무〉 연작이 실재하는 바깥 세계를 특유의 방식으로 표상한 것이라면, 〈신기루〉 시리즈와 같은 작업은 오랜 시간 그리워했던 사막이라는 실재 세계를 직접 몸으로 맞닥뜨려서 받은 인상과 자극으로부터 비롯한 것이다. 오감으로 획득한 감흥과 영감을 캔버스라는 물질을 통해 환상적인 신기루로 고안, 창출해 낸, 비표상적, 독자적 세계인 것이다. 사막의 지평선을 통해 바다의 수평선을 그리워하는 그야말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캔버스는 오아시스일 수도 있고 일렁이는 파도 속 또 다른 환영과 판타지를 경험하고 의심케 하는 예술의 기능과도 닮았다.
‘재현-현실’이나 ‘재연-비현실’ 프로젝트는 나무나 풀, 돌, 사막 등과 같이 물리적으로 실재하는 사물, 장소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표상의 세계, 즉 바깥 세계와 작가의 개인적 경험구조와 기억구조 등이 복합적으로 작동하며 탄생한 것이다. 이명호는 재현과 재연, 현실과 비현실을 말하지만, 사실 우리들의 마음의 세계, 정신세계에서 비롯하는 비표상적 세계를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경통(鏡筒) 속 대안렌즈와 대물렌즈의 길항처럼 표상의 방식과 비표상의 방식을 적절하게 조율, 안배하며 밀고 당긴 과정을 통해 융합해 낸 독특한 표상세계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명호는 환영과 스펙터클과는 또 다른 영역의 독자적 세계를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표상은 바깥 세계에 대한 조망이다. 비표상은 바깥 세계가 마음으로 향하고 마음에 귀속되는 것으로 바깥 세계와는 다른, 또 다른 세계다. 대부분의 작가가 그러하듯 이명호는 이 둘을 적절하게 조율하며 융합, 혼융하고 있는 것이다. 전술했듯이 이명호식 표상, 즉 재현과 재연의 세계는 표상을 중심으로 하되 비표상적인 정서를 적절하게 안배, 조율, 주조하여 현실화한 매력적인 과정의 결과물이다. 서로 다른 지각지향과 창작충동을 가진 이 둘의 밀고 당김을 통해 낯선 경험을 창출하기도 하고 세상과 사물에 대한 인식의 선험적 근거를 밝혀보려는 태도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예술의 오랜 목적이기도 하고 예술가의 건강한 성취동기이기도 하다.
배가된 성취동기를 바탕으로 이명호는 자신의 작업을 매개, 수행하는 카메라 바디의 공간, 은밀한 공간인 밀실을 공개하기도 했다. 2017년 사비나미술관에서 선보인 《까만 방, 하얀 방 그리고 그 사이 혹은 그 너머(Camera Obscura, Camera Lucida and The Between or The Beyond)》 전시에서 선보인 것으로 어두운 방, 밝은 방 등이 그것이다. 현실(재현)과 비현실(재연), 간현실(사이) 또는 초현실(너머) 등을 축으로 이어지고 있는 작가의 ‘사진-행위 프로젝트’를 거쳐 ‘예술-행위 프로젝트’ 단계에서의 작업 개념을 중간 정리한 전시였다. 재현으로부터 시작하여 작업 개념의 입체적 구현으로 이어진 증폭된 인식을 보였다. 표상으로부터 행위와 과정으로의 이행이다. 자신의 ‘사진-행위’와 기본 사진술에 대한 재접근을 통해 비판적 접점을 모색하려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이렇듯 이명호의 ‘사진-행위’는 나름의 분명한 비판적 어법과 반성적 어휘를 가지고 있다.
〈방〉과 같은 설치작업은 표상에 대한 거부라기보다는 이명호의 확장된 관심으로 이해된다. 카메라를 통한 사진의 표상 과정을 도해하듯 입체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사진의 기본적인 어법과 구조, 사진술에 대한 신비감을 일종의 과정태로 보여주는 것이다. 기본을 놓치지 않으려는 이명호의 이러한 관심과 입체적, 설치적 풀이는 말이나 인화된 결과물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는 행동을 통해 전하는 것으로 일종의 비표현행위이자 다분히 반표상적인 성격을 보인다고 하겠다.
2019년 자하미술관에서 선보인 《무제 혹은 미제(Un-Title or No-Title)》는 캔버스에서 행해지는 회화술과 카메라에서 이루어지는 물리적 프로세스를 심리적으로 비교, 경험하게 했다. 이러한 이명호의 제시는 일정한 지적 축적물로 존재하며 예술의 개념과 역할 등 이른바 기본과 정의에 대해 재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전시는 이명호의 ‘사진-행위 프로젝트’가 ‘예술-행위 프로젝트’와 ‘철학-행위 프로젝트’를 거쳐 다시 ‘사진-행위 프로젝트’로 순환하듯 귀결하는 전시로 평가를 할 수 있겠다.
6.
이명호는 예술에 있어서의 재현, 재연 등의 문제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사진-행위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예술-행위’, ‘철학-행위’로 작업을 이어가며 회화와 사진 영역에서의 재현, 재연 등에 대한 담론과 가능한 실천을 적극적으로 탐했다. 앞서 말한 ‘카메라 옵스큐라(어두운 방)’와 ‘카메라 루시다(밝은 방)’을 ‘까만 방’과 ‘하얀 방’으로 발전시키면서, ‘결상’과 ‘잠상’을 ‘캔버스’와 ‘카메라’를 통해 비교하며 회화와 사진에서의 재현과 재연을 실험하기도 했다. 예술에 있어 재현의 문제를 규명하려는 이명호의 애지적(愛智的) 관심(Philosophical Interest)이 빛났다. 주지하다시피 예술은 과학도 아니고 수학도 아니다. 예술의 실체를 규명하고 어떠한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그것을 향한 지적 호기심과 노력의 과정이 보다 중요하고 필요할 뿐이다. 그것이 미학의 목적이기도 하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사진이란 무엇인가? 등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과정’이 중요한 것임을 이명호는 알고 있음이다.
이명호의 작업, ‘사진-행위 프로젝트’는 ‘사진’이란 무엇인가?, ‘예술’이란 무엇인가? 등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자 실천적 성찰이다. 이명호식 정의와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것이 이명호 프로젝트이며 궁극의 목적이다. 따라서 그의 작업, ‘사진-행위’는 미완(未完)이며 간단 없이 이어질 ‘과정’인 것이다. 스스로 작업의 ‘정반합’을 반복하며 자기성찰과 기본의 틀을 확인하고 확장하며 이어질 것이다. 그가 지치지 않고 타협하지 않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이유다.
어쩌면 이명호는 그의 ‘사진-행위 프로젝트’를 통해 사진의 전통적인 기능과 역할보다는 정신적인 가치를 강조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명호가 꾸준하게 이어오고 있는 ‘재현’, ‘재연’, ‘사이-너머’ 등의 작업은 표상으로부터 시작하지만, 결국 그가 찾아낸 것은 자신과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들의 정신적인 가치이며 그의 작업은 이를 발견하고 추체험하여 확인하려는 과정, 즉 비표상에 기반한 ‘재현행위’임을 확인하는 과정일 수도 있겠다.
‘재현’, ‘재연’, ‘사이-너머’ 등과 같이 표상의 체계를 이어나가려는 일련의 작업, 행위는 최근 들어 선보이고 있는 〈어떤 것도 아닌 그러나〉 시리즈, 특히 절대주의 회화를 연상케 하는 작업이라든가, 텅 빈 캔버스를 뻘에 세워두는, 이를테면 반표상적 체계를 통해 그 가능성을 역설적으로 확인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이 다대포에서의 작업은 사진이 되어가는, 재현 과정을 과정태로서 담으려 한 것이다. 재현과 재연을 모티프로 이어온 그의 작업을 표상적 해석항에 의존해서 이해하기보다는 비표상, 반표상에 기반한 실천적, 의미론적 차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이유다.
7.
이명호의 작업은 사물에 대한 논리적, 관념적 접근의 결과라기보다는 경험적 접근의 결과라 하겠다. 논리적으로 접근한 결과가 관념이고 사물의 형상이라면, 경험적으로 접근한 것은 사물 그 자체라는 것을 알고 있음이다. 피사체, 사물에 경험적으로 접근하고 재현의 방식을 실험하고 그 과정과 경험의 결과를 정리하면서 사물을 발견하려 하는 것이다. 이명호의 작업을 마주함에 있어 관객 자신의 심층에 잠재적으로 자리하고 있는 개인적 경험과 작가 자신의 비표상적 미감과 비표상적 재현, 표상을 이해할 필요가 있으며 바로 이 부분에서 이명호 사진이 상징적, 미적 의의를 획득한다고 할 수 있겠다.
예술가들은 대상에 경험적으로 접근한다. 그를 통해 연관성을 찾고 또 거기에 이런저런 연관성을 더하고 빼기를 반복하면서 작업이라는 과정과 작품이라는 결과물에 다다른다. 이명호에게 있어 사진이란 더 이상 관행적 사진이 아닌, 그러나 사진과 연관되어 있는 그 무엇이며 사진과 대상(피사체), 사진과 관객(수용자) 사이의 관계 변화라는 관점을 집요하게 탐색해 나가는 지적 성찰의 과정인 것이다.
《[드러내다]》전은 이명호의 사물에 대한 경험적 접근과 이해를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그의 과정적 작업 지평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열린 성격의 전시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사진-행위 프로젝트’란 무엇일까? 등과 관련한 이명호의 사유와 고민을 보다 가깝게 접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매력적인 기회다.
■ 박천남(전시 만들며 글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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