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웅주: 왜곡됨 속에 변하지 않는 진리 Crumpled Stripe
2020.10.07 ▶ 2020.11.25
2020.10.07 ▶ 2020.11.25
서웅주
Crumpled six stripes(red) 47cmx47cm, oil on canvas, 2020
서웅주
Crumpled achromatic stripes 72.5cmx60.6cm, oil on canvas, 2020
서웅주
Crumpled regular stripes 20-1 100cmx72.7cm, oil on canvas, 2020
사진과 그림 사이 혹은 그 너머, 실물이 되고 싶은 이미지
고충환(Kho, Chung-Hwan 미술평론)
1. 제스퍼 존스는 캔버스에 성조기를 그렸다. 천에 프린트된 성조기와 똑같았다(제스퍼 존스의 작품 중엔 과녁도 있다). 그리고 앤디 워홀은 판재에 실크스크린을 올려 브릴로 상자를 만들었다. 슈퍼에서 팔고 있는 브릴로 상자와 똑같았다. 이미 존재하는 레디메이드 그대로 다시 제작한 것이니 재 제작된 레디메이드다. 예술작품이 기성품과 똑같은 것이 되었고, 이로써 예술을 일상과 구별하게 해주는 근거가 사라져버렸다. 예술이 일상이 된 것이다. 그 다음으로 남은 것은 일상과 다를 바 없는 예술, 일상 그대로 다시 제작한 예술이 아니라, 아예 일상 자체가 예술을 대체하는 것 밖에 없다. 그래서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가 나온다. 비록 레디메이드가 재 제작된 레디메이드에 선행하는 것이지만, 논리적인 추이만 놓고 본다면 마르셀 뒤샹이 시대를 앞서간 면이 있다. 그리고 뒤샹은 문맥이 예술을 결정한다고 했다. 소변기가 미술관이라는 제도적 문맥 속에 편입됨으로써 비로소 예술작품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제도적 속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미니멀리즘의 즉자적 오브제가 있고 연극성이 있다(마이클 프리드). 연극적 상황의 유무가 오브제와 즉자적 오브제를 구별시켜준다(그러므로 예술을 결정한다). 사실을 말하자면 문맥이 예술을 결정한다는 것도, 연극적 상황이 예술을 결정한다는 것도 알고 보면 하나같이 예술이 일상이 된 이후, 예술이 일상과 다를 바 없는 것이 된 이후의 일이다. 그래서 아서 단토는 예술의 종말을 선언할 수가 있었다.
2. 정색을 하고 보자면(크기를 한정하고 그림임을 규정하는 프레임을 무시하고 보자면, 그래서 그림 자체에 집중하자면), 서웅주의 그림(?)은 그림인지 사진인지 구겨진 종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아마도 줄무늬를 찍은, 코팅마감 처리된, 구겨진 사진으로 보는 것이 첫인상에 가장 가깝다. 그런데 정작 알고 보면 그건 다만 그렇게 보일 뿐인 그림이다. 사진처럼 보이는 그림이다. 여기서 그림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자. 구겨진 사진은 사진과는 다르다. 오브제다. 한 장의 사진은 사진이면서 동시에 오브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진이 함축하고 있는 오브제적인 성질은 구겨진 사진에서 더 잘 드러나 보인다. 여기서 다시, 작가의 그림은 사실은 다만 사진처럼 보일 뿐인 그림이라는 사실로 되돌아가 보자. 그의 그림은 그림이다(환영에도 불구하고). 동어반복이다. 당신이 보는 것이 보는 것이다, 라는 프랭크 스텔라의 말에서와 같은 동어반복이다. 즉물성이다. 당신이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캔버스고, 틀이고, 그 위에 별 의미 없이 그어놓은 선일 뿐이다. 이러한 사실의 인식으로 작가의 그림을 보면, 작가의 그림은 다만 그림이다. 구겨진 종이일 뿐이다. 사실은 구겨진 종이처럼 보이는 그림일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실제로는 어떤 최소한의 구김조차도 없는 편평한 캔버스일 뿐이다. 이 지극한 평면성의 인식이, 사실은 환영 뒤에 숨겨놓은 평면성의 뒤늦은 알아차림이 클레멘테 그린버그를 재소환하게 만든다. 여기서 다시, 사진처럼 보인다는 것은 환영이다. 그러므로 환영은 다만 철저하게 표면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리고 평면(성)은 그 표면 뒤에 은폐되어져 있다. 그래서 처음엔 표면에 있는 환영이 보이고, 그리고 뒤늦게 평면(성)이 보인다(인식된다). 감각현상이 먼저 오고, 실재의 인식이 뒤늦게 온다. 감각이 인식을 부르는 것인 만큼, 감각이 없으면 인식도 없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감각이 보는 것과 인식이 보는 것(알아보는 것)이 서로 다르다. 이 불일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마치 사진처럼 보이는 작가의 그림은 어쩜 바로 이 물음에서, 바로 이 지점에서 비로소 진정 시작되는(아님 새로 시작되는) 어떤 것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3. 아서 단토가 예술의 종말을 선언한 것은 어쩜 재현에 근거한(혹은 대한) 것이다(사실은 모더니즘패러다임의 종말을 선언한 것이지만). 그러므로 예술의 종말은 다름 아닌 재현의 종말일 수 있다. 엄밀하게는 재현의 종말이 아니다. 재현의 한정된 용법을 열어 재현을 재설정한 것이다. 이제 재현은 수단이 되었고, 도구가 되었고, 과정이 되었고, 소재가 되었고, 사건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 이상 어떠한 원본도 전제하지 않는, 그 자체 자족적인 무언가가 되었다. 여기서 원본과 재현과의 전통적인 관계는 뒤집어진다. 이제 재현이 오히려 스스로를 실현하기 위해 원본을 참고하고 소환하고 사용한다. 그렇게 원본과 재현과의 관계가 재설정된다. 마치 사진처럼 보이는 서웅주의 그림은 그러므로 어쩜 그림을 넘어, 사진을 넘어, 심지어 실물(아님 사물)마저 넘어선 어떤 지점, 표면과 이면이 서로 배반하고, 환영과 실재가 서로 속이고, 감각과 인식이 서로 어긋나는 어떤 지점, 그리고 그렇게 원본과 재현과의 관계가 재설정되는 어떤 지점, 그러므로 어쩜 감각을 도구로 인식론적인 문제로 넘어가는(혹은 사실은 감각을 가장해 정작 인식론적인 문제가 물어지는) 어떤 지점을 예시해놓고 있다. 재현적인 너무나 재현적인 그림으로 재현 이후의 회화를, 재현에 기생하면서 재현을 넘어선 회화를 예시해주고 있다.
서웅주 작가노트
일상생활에서 수많은 인식과 그것을 판단하는 사고과정을 반복합니다.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벌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개인의 선입견이나 편견의 영향 하에서 변질되거나 곡해로 이어 질 수 있습니다. 특히, 시각 영역에서의 이미지에 대한 판단은 개인의 경험적 혹은 선험적 지식에 의해 주도되는 경향을 갖기 때문에 그 해석은 편차를 보이며 경우에 따라 본질을 왜곡하는데 이를 수 있어 위험성을 내포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작품은 이러한 심리적 판단에 집중하여 기초적인 조형언어를 통해 회화적 환영을 구축하고자 합니다.
작품의 일차적 목표로 두는 것은 평면의 캔버스 화면이 구겨져 보이도록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키는데 있습니다. 일정한 굵기의 세로 줄무늬가 화면 전체를 채우고 있으며, 비록 구겨져서 일그러진 모양을 하고 있지만 그 본래의 모습이 수직의 규칙적인 줄무늬였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상충되는 성질의 수직의 줄무늬와 구김살은 유기적인 결합을 통해 상호보완적 관계를 형성하며 각각의 단색 줄무늬는 구겨짐의 굴곡을 따라 수없이 많은 색의 스펙트럼을 구성하게 됩니다. 특히, 검정색의 수직선들은 반사광을 표현하기에 유리한 조건을 갖는데 무(無)의 공간으로써 배경의 의미와 더불어 줄무늬 색과 배경색의 혼동을 야기함으로써 이차적 목표인 심리적 판단과정에서의 선입견을 꼬집기도 합니다. 여기서 수직의 줄무늬는 구겨짐의 굴곡을 보여주는 효과적인 장치로서 선택된 소재인 동시에 중력에 의한 보편적인 진리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진실에 대한 왜곡을 직설적으로 표현합니다. 즉, 절대적 가치에 대한 도전을 통해 그 가치의 당위성을 역설하는 것입니다.
작품은 애초에 구겨진 채로 제작된 점을 환기할 때 회화적 환영을 인지하게 됩니다. 또, 유화물감으로 정교하게 재현된 이미지는 본연의 물성에서 벗어난 가장을 통해 재차 회화적 환영을 불러일으킵니다. 회화적 환영은 결국 허상에 불과하지만 본질을 파악하는 단초는 언제나 이미지에서 출발한다는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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