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포스터
정명조
Play-Ground
정명조
Play-Ground
정명조
Play-Ground
정명조
Play-Ground
아트사이드 갤러리는 2020년 10월 22일부터 12월 6일까지 《Play-Ground》을 개최한다. 정명조(1970- )는 ‘얼굴을 보이지 않는 여인’을 통해 여성과 아름다움의 문제를 조명한다. 일관된 작업으로 국내외에서 꾸준한 호평을 받은 작가는 2013년 《The paradox of beauty》 이후 7년 만에 더욱 깊어진 시선으로 아트사이드 갤러리를 찾아온다.
작가는 극사실주의(Hyperrealism) 기법을 사용해 한복 입은 여인의 뒷모습을 정밀하게 그려낸다. 섬세한 터치로 완성된 한복은 눈앞에 놓인 것처럼 정교하다. 바로크 시대의 화려한 복식을 떠올리게 하는 집요함이 관객을 사로잡는다. 누군가에게는 디테일에 따른 전통의 아름다움을, 누군가에게는 아름다움의 유지에 부과된 통증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익명의 모습을 통해 관객에게 다양한 해석을 내맡기는 것이 작가의 의도라고 할 수 있다. 작품 속 여인은 어떠한 말도, 사연도 보여주지 않는다. 뒤돌아 침묵하는 대상을 보며 관객은 각자 나름의 이야기를 상상한다. 이는 SNS를 통해 익명의 사람들과 소통하는 요즘의 세태를 닮았다. ‘Follow’라는 행위를 통해 연결되는 시스템 안에서는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기 어렵다. SNS의 피드(feed) 속에는 상대방이 공유한 포장된 아름다움만이 존재할 뿐이다. 모든 현실감이 지워진 사진에서는 상처와 고뇌, 슬픔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SNS는 서로의 마음이 확인되지 않는 일종의 놀이터(playground)가 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다채로운 배경들이 돋보인다. 사군자, 문인화 등 축제처럼 보이는 듯한 배경 앞에서 여인들은 적극적으로 놀이에 공모한다. 그들은 관객이 어떤 이야기든 던져주기를 바라며 진심을 숨기고 있다. 작품의 서사는 이들 사이의 자유로운 놀이를 통해 완성된다.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작가의 작품이 마치 사진처럼 보이는 것 역시도 그러한 이유일 것이다.
‘진짜와 가짜, 아름다움의 놀이터’
깊어진 주제의식으로 7년 만의 개인전을 갖는 정명조의 신작
정명조 작가는 극사실주의 기법을 통해 아름다움의 역설을 제기해왔다. 그동안 작가가 사용한 제목인 ‘The Paradox of Beauty’는 이를 잘 드러낸다. 정명조의 작품에는 언제나 한복을 입은 여인의 뒷모습이 그려진다. 섬세하게 표현된 의복과 장신구는 마치 사진인 것처럼 정교하다. 그러나 사진 같은 작품을 완성하고자 하는 것이 정명조의 목표는 아니다.
작가가 그리고자 하는 것은 ‘아름다움’ 자체에 대한 것, 보다 정확히 하자면 아름다움이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혹은 받아들여지는가)를 문제삼고자 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대상은 화려한 한복을 입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대상의 신분을 추측할 수 있지만, 정확한 상황은 상상에 맡길 수밖에 없다. 아름다움에 부과되는 상황은 관객의 상상으로만 남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정명조는 내밀한 영역을 의도적으로 숨김으로써 아름다움의 역설을 드러내고자 한다.
《Play-Ground》,
아름다움의 역설이 자유롭게 노니는 놀이-터
이번 전시의 제목인 ‘Play-Ground’는 ‘놀이-터’로 번역할 수 있다. 작가는 아름다움의 가치가 내포하는 역설적 의미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사실은 그것이 일종의 자유로운 ‘놀이’임을 드러내고자 한다. 이전의 작품에서는 결코 돌아보지 않는 여인의 뒷모습만이 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는 돌아볼 듯 말 듯한 기묘한 동세, 그리고 문인화와 일월오봉도 위에서 노니는 듯한 모습을 통해 그들 역시도 아름다움이라는 놀이에 공모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가채는 무겁고 장신구는 불편하지만 그러한 아름다움을 연출하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여인 스스로이다.
관객 역시 아름다움이라는 놀이에 매혹되어 끝없이 그에 대한 의미를 묻는다. 흑색으로 가려진 상황은 상상하면 할수록 미궁에 빠져드는 듯하다. 확실한 것은 오직 ‘아름답다’는 사실 하나 뿐이기 때문이다. 이번 신작에서는 사실적인 묘사와 질감 표현이 더욱 두드러진다. 가까이서 보지 않으면 사진으로 오인할 수도 있는 정교함을 통해 작가는 보는 이로 하여금 아름다움의 의미를 계속해서 되묻게 한다. 아름다움은 보는 이가 느끼는 주관적 영역이기도 하므로, 관객 역시 그 놀이 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때문이다.
“Follow me, Follow back”
눈에 보이는 것이 더 중요한 세상에서
이는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를 통해 타인의 일상을 관음하는 현대인과 닮았다. “Follow me, Follow back”은 흔히 국내에서 “선팔맞팔”(먼저 상대방이 자신의 계정을 팔로우하면 자신도 해주겠다는 의미)와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SNS는 일상을 잠식한지 오래다. 사람들은 실시간으로 피드(feed)를 탐색하며 타인의 삶을 관찰한다. 업로드 된 사진에는 대상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다양한 소품과 배경이 등장하지만, 그 내용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곳에서 드러나는 것은 포장된 ‘아름다운 나’이며, 보이는 사람과 보는 사람은 팔로우라는 익명의 관계로 연결된다. 언뜻 보기에는 친구로 표시되지만 사실 둘은 아무런 관계도 아니다. 서로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지 관심조차 갖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보이는 사진’이지, ‘보이지 않는 생각’이 아니기 때문이다. 행복해 보이는 사진 뒤에 어떤 감정과 상황이 있는지 팔로워는 전혀 알 수 없다.
진짜와 가짜가 뒤섞인 현대 사회의 아름다움
모두가 공모하고 있는 아름다움의 ‘Play-Ground’
정명조의 작품 역시 그러하다. 다채로운 배경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이는 대상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어떤 장치처럼 여겨진다. 멀리서 보면 사진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림에 가까워진다는 것 역시 아이러니하다. SNS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사진 역시 가까이 다가갈수록 ‘사실적인’ 아름다움을 잃기 때문이다. 이는 아주 적은 수의 작품만 제작할 정도로 품이 드는 작가의 작업 방식 자체와도 닮았다. 고도의 인내심과 집중력을 요구하는 이 시간을 관람객은 알 수 없다. 모든 과정은 결과물 뒤에 숨어버리기 때문이다. 어쩌면 작가는 작업 방식 자체로 현대 사회의 기묘한 아름다움, 아름다움이라는 가치에 내재하는 역설을 지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디테일하게 포착해낸 한복의 정교함은 만져질 듯 사실적이다. 그렇다고 해도 회화에 불과한 캔버스 앞, 이곳에 가해자나 피해자는 없다. 모두가 공모하는 아름다움의 ‘놀이-터(Play-Ground)’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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