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은: 낯선 도시에 도착했을 때는 계절이 바뀌고 있었다
2021.06.02 ▶ 2021.06.13
2021.06.02 ▶ 2021.06.13
김지은
그녀는 빗방울의 여정을 생각했다 광목에 먹, 금박, 자수_70x84cm_2021
김지은
그녀는 정처없이 말없이 돌아다녔다 삼베에 먹, 금박, 자수_44x50.5cm_2021
김지은
낯선 도시에 도착했을 때는 계절이 변하고 있었다 먹, 금박, 자수, 면_100x142cm_2021
김지은
이건 내 스웨터가 아니에요 광목에 먹, 분채, 자수_70x84cm_2021
김지은
지금 이 자리에 혼합패브릭 콜라쥬, 자수, 먹, 삼베_72x86cm_2020
아름답고 창취(蒼翠)한 계절, 서촌의 팔레드서울에서 6월의 시작을 알리는 전시로 김지은 작가의 개인전이 진행된다. 작가는 개인전을 준비하는 기간에 맞은 팬데믹(코로나 사태)으로 인한 경험과 과거 기억을 결합시켜 작품을 완성했다. 평온한 일상이 사라져 버리고, 침체와 혼란이 넘쳐나는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지 기대를 해 본다.
김지은의 열한 번 째 개인전 <낯선 도시에 도착했을 때는 계절이 바뀌고 있었다>가 2021년 6월 2일부터 13일까지 팔레드서울에서 열린다. 개인의 내면과 긴밀하게 마주하며, 산책과 독서의 과정에서 마주친 다양한 심상과 텍스트를 수집하고, 과감한 이미지로 이를 객관화 시키는 작업을 선보여 오던 작가가 2년간 준비한 신작을 선보이는 전시이다.
2017년 < Certain Uncertainties of Life >부터 2019년 <그건 모두 마음속에 있지>에 이르기까지의 전시가 타인과의 관계 안에서 상처와 치유를 이야기했다면, 2021년 전시<낯선 도시에 도착했을 때는 계절이 바뀌고 있었다>는 작가 자신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코로나19로 세계가 잠시 멈춘 듯한 순간, 작가는 5년 전 일본에서의 기억을 떠올린다. 스스로 낯선 공간에 자신을 고립시키고, ‘그 누구도 아닌(anonymous)’ 거주자로 다섯 달 가량 지냈다. 그는 이 시간 동안 걷고, 읽고, 쓰기를 반복하며 고통과, 두려움, 외로움의 자리를, 생생한 삶의 감각과 용기, 희망이 채우는 과정을 경험한다. 그리고 그때야 비로소 자신과 만날 수 있었다. 이번 전시를 위한 작품들의 주요 모티프가 되는 줌파 라히리(Jhumpa Lahiri)의 단편 소설 <변화> 역시 이때 만났다. 소설 <변화>의 여주인공은 변하고 싶은 이유를 찾기 위해 낯선 도시로 떠나고 그곳에서 아끼던 스웨터를 잃어버렸다가 되찾는 에피소드를 경험한다. 작가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스웨터를 변화하는 자아의 메타포로 여긴다. 이후 팬데믹으로 인해 ‘어쩔 수 없는’ 고립 생활을 경험하면서, 작가는 다시 그때의 경험과 감각을 되살린다.
김지은의 작품은 배접한 한지나 광목, 마 실크 위에 여러 번 채색하고, 수집한 텍스트, 패브릭, 나뭇가지, 실 등을 화면에 중첩하여 표현한다. 이번 전시 작품에서는 주로 나뭇잎, 빗방울, 스웨터, 화분이나 식물 등의 줌파 라히리(Jhumpa Lahiri)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간결한 이미지를 전면에 배치한다. 나뭇가지로 새기듯 써 나가는 텍스트와, 화폭 또는 패브릭 안팎으로 실과 바늘을 교차시키는 바느질의 수행성은, 치유의 힘을 주는 중요한 작업 요소이다. 작가는 전체 혹은 부분에 다양한 색감과 질감을 지닌 실을 물감 삼아 한 땀 한 땀 바느질 해 나간다. 선이 되기도, 면이 되기도 하는 바늘땀들은 일면, 표면에 생채기를 내지만, 흐릿한 형태를 드러내기도, 천 조각들을 엮어 연결시키기도 하고, 화폭에 붙여 온전하게 작품이 기능하게 한다. 이렇듯 작가는 각기 다른 작업 요소들을 겹겹이 쌓아 작품을 완성시킨다.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던 여인, 번역가가 있었다.”로 시작하는 <변화>의 주인공처럼, 낯선 공간에서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던 작가는 집과 작업실과 같은 익숙한 공간에서도, 거의 매일 산책하는 집 앞 공원에서도, 언제 어디서든 자신이 원할 때마다 ‘다른 사람’이 될 수 있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미 다른 사람이 되었으므로. 그리고 보이지 않았던 마음을 지극히 정확하고 수려하게 표현해 내는 번역가가 되었으므로. 고립의 시간은 이렇듯 한 사람을 거쳐 새롭게 정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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