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포스터
정재철
실크로드 프로젝트 기록-카슈가르(중국) 사진_2005
정재철
광장 2010,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7분 18초
정재철
블루오션 프로젝트-크라켄 부분 2021년 재설치, 혼합재료, 가변크기
정재철
한여름 1 2018,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6분 10초
정재철
제주일화도 2019, 장지에 채색, 150×210cm
2021년 아르코미술관 기획초대전은 작가 정재철(1959 – 2020)의 작고 1주기전으로 마련한다. 《정재철: 사랑과 평화》전은 장소를 이동하며 수행했던 참여 형식의 프로젝트를 살펴보며, 현장작업의 결과물로 ‘기록과 수집’된 작업을 재구성하여 작가가 지향했던 예술적 실천을 따라가 본다.
정재철은 1988년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이후 조각매체를 다루는 작가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이후 1995년 당시 출강하던 대학교에서의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 교류 워크숍의 계기를 통해 해외 레지던시에 참여했으며, 이는 작가의 미술언어를 성찰하는 결정적 시기였다. 작가는 한국 미술계가 겪은 세계화라는 변화 동력과 함께 2000년대부터 여행과 이동을 통한 개념적이고 수행중심의 미술언어로의 전환을 모색했다.
이번 전시는 2000년 이후를 작업에 대한 태도와 방법론적인 변화의 전환점으로 보고, 현장 작업 〈실크로드 프로젝트〉(2004 – 2011), 〈블루오션 프로젝트〉(2013 – 2020)를 통해 작가 정재철의 태도와 사유의 변천, 사회적인 문제를 향한 작가의 성찰을 보여준다.
제1전시실은 사진, 영상, 루트맵, 여행일지 등 기록매체를 중심으로 〈실크로드 프로젝트〉(2004 – 2011)를 재맥락화한다. 정재철에게 여행이라는 이동과 길 떠남은 곧 삶의 방식과 예술적 실천이었다. 근대 이전에 유라시아를 관통하는 교역 경로였던 실크로드를 따라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실행했던 정재철은 국가의 경계를 넘으며, 길 위에서 폐현수막을 나누어주고 뜨거운 태양 아래 그늘을 만들었다. 그리고 우연한 만남, 교류, 사건과 상황을 만들고 기록하였다. 이렇게 걷기라는 반복된 순간들로 이루어진 경로들은 루트맵이라는 지도형식으로 기록되었으며, 이는 작가가 장소를 이동하고 길을 만드는 과정을 담는 수행의 경로였다. 지도 바깥에 존재하는 장소와 그 장소에 존재하는 사람들과 형성했던 교류와 네트워크 안에서 작가는 보다 유연하게 지역의 고유성과 문화를 수용하는 혼성적 형태를 지향했다.
이동함에 따라 장소의 상실이 발생하고 그렇기에 현장성을 담는 기록과 수집은 작가에게 있어 필연적인 방법이었다. 현장의 기록과 수집은 프로젝트가 거듭할수록 변주되어 사실의 기록과 편집된 기록 사이에 존재한다. 정재철의 기록과 수집물에 내재한 이러한 간극은 장소의 직접성의 잔여, 파편, 혹은 흔적에 가깝다. 따라서 이번 전시에서 재구성되는 실크로드 현장 프로젝트는 기록물에 남겨진 부재의 감각을 연결시킨다. 이동과 여행이 제한된 오늘날, 〈실크로드 프로젝트〉에 담긴 현장성, 이동의 장면은 현재와 과거에 먼 시간의 거리를 기입하며 부재의 정서를 떠오르게 한다. 〈실크로드 프로젝트〉에서 드러나는 이동, 이주의 움직임은 작가노트에 하나씩 지워간 달력, 과거로부터 온 편지와 우편엽서, 그리고 정재철의 기록의 파편을 이어 붙이는 백종관의 영상으로 이어진다.
제2전시실은 ‘사물의 물질성에서 발굴한 순환적 가치와 생기’라는 작가의 태도를 보여준다. 정재철이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에서는 조각에 대한 조형적 관심과 동시에 사물 자체에 내재한 힘과 생기에 대한 인식, 나아가 생태에 대한 사유를 엿볼 수 있다. 해류를 통한 쓰레기들의 이주를 드러내는 〈블루오션 프로젝트〉(2013 – 2020)는 인류의 공유지인 해양의 오염을 물질적 증거물로 포착해내고, 인류에게 간섭하고 사건을 촉진시키는 비인간 사물들의 연결망을 보여준다. 작가는 불에 탄 플라스틱과 바위 표면, 해류를 통해 인접 국가에서 흘러온 쓰레기를 부유사물로 명명하고 수집하였다. 이와 같은 행위는 세계에 활동하고 간섭하는 행위자로 참여하는 생태계 네트워크, 그리고 경계를 넘어 연결된 공유지에 대한 인식과 같다. 〈실크로드 프로젝트〉에서 이동하는 주체가 만남과 교류를 수행하며 주체의 바깥을 향했다면, 〈블루오션 프로젝트〉의 비인간 사물의 순환과 상생하는 힘에 대한 존중은 공유지라는 경계 너머로 작동하는 공동선을 향해있다.
전시의 제목인 ‘사랑과 평화’는 〈실크로드 프로젝트〉의 마지막 여행지였던 영국 런던의 팔리아먼트 광장(Parliament Square) 반전 시위캠프의 천막 위에 적은 문구다. 작가의 작업에서 빈번하게 발견되는 사랑, 그리고 평화는 사회 참여적 프로젝트를 통해 지향했던 공동의 지평을 드러낸다. 《정재철: 사랑과 평화》는 수행하는 몸으로 경계 이동을 실천했던 작가의 태도와 공유지에 대한 문제의식에 기반하여 순환하는 사물에 드러나는 그의 생태에 대한 사유를 좇는다. 인류의 공유지인 행성의 위기감, 그리고 전지구화의 다른 국면이 펼쳐지는 현재는 적대와 혐오의 정서와 보수화되는 정치와 같은 새로운 경계의 등장을 마주하고 있다. 브뤼노 라투르가 말했듯, 연대 실종과 환경파괴와 같은 ‘글로벌화-마이너스’의 현실 안에서 정재철의 실천과 사유는 새로운 경계 짓기와 기준을 마주한 지금에 무엇을 향할 것인가라는 방향을 제안할 것이다.
1959년 전남 순천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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