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앙
손 The Hand 2021, 오일, 폴리우레탄페인트, 에폭시 레진, 우레탄 레진, PVC, 스테인레스 스틸, 황동 파이프, 호두나무, 왁스, 53x80x22cm
최수앙
언폴디드 10G Unfolded 10G 2021, 기름을 먹인 종이에 유채, 스테인레스 스틸, 무반사 유리 Oil on oiled paper, stainless steel, non-reflecting glass, 115x88x30cm
최수앙
조각가들 2021 오일, 아크릴릭, 폴리 우레탄 페인트, 에폭시 레진, 폴리 우레탄 레진, PVC, 스테인레스 스틸, 강철, 합판 가변설치
최수앙
프래그먼츠 1 Fragments 1 2021, 아르쉬지(紙)에 수채 Watercolor on Arches paper, 38x55.5cm
최수앙
언폴디드 1G Unfolded 1G 2020, 기름을 먹인 종이에 유채, 왁스, 스테인레스 스틸, 무반사 유리 Oil on oiled paper, wax, stainless steel, non-reflecting glass, 109x88x30cm
최수앙
언폴디드 1W Unfolded 1W 2021,기름을 먹인 종이에 유채, 스테인레스 스틸, 무반사 유리 Oil on oiled paper, stainless steel, non-reflecting glass, 79x59x15cm
최수앙
설치전경
최수앙
설치전경
태도가 만드는 모양
작가 최수앙은 조각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그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심리 상태가 투영된 인체 조각을 해왔다. 사실적으로 인간의 신체를 보여주면서 도 부분을 과장하거나 생략하기도 하고, 때로는 형태를 무너뜨리면서 추상적인 이미지가 한 작품에서 공존하도록 만들었다. 그가 만든 신체들은 때로는 대면하고 싶지 않은 인간의 연약한 상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사회의 한 단면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타인과 사회에 대한 작가의 응축된 감정으로 점철된 최수앙의 조각은 관객들에게 여러 모습으로 이리저리 부딪히며 강렬하게 전달되었다. 실제 몸과 너무나 닮아 있으면서도 낯선 조합으로 쉽게 지워질 수 없는 인상을 가진 작업들은 꽤 오랜 시간 작가도, 그리고 작업을 바라보는 관객도 놓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서로에게 각인된 몸은 작가의 의도대로 관객과 만났고 그것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어있음을 확인하곤 했다. 나 역시도 몸이 품고 있는 징후들을 통해 작가와 그리고 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세계와 만나곤 했다.
그런데 너무도 분명했던 형태와 인상이, 집요하게 무언가를 꾹꾹 담아 만들어왔던 꽉 차 있던 몸들이 언제부터인가 그를 옭아매기 시작한 것일까? 어느 순간 몸의 형태는 부분에서부터 서서히 지워지기 시작했다. 2018년의 〈무제〉연작에서 인물 두상의 하관 부분만 남기고 형태가 뭉개져 있거나(도1), 〈자화상〉(도2), 〈무제_캐스팅의 흔적〉(도3), 〈무제_링 아웃〉(도4)에서는 마치 온전한 자신의 몸을 머리와 팔부터 뭉개며 지우는 것처럼 보였는데, 결국은 ‘온전한’ 형태로부터 벗어나려는 작가의 몸부림이었던 것 같기도 했다. 혹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거리를 두고자 하는 절박한 징후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제_스트레치 오버〉(2018)(도5)에서의 몸은 다리의 일부만 남기고 전부 짓이겨져 언 듯 봐서는 신체임을 알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어쩌면 작가가 20여 년 조각가로서 보내온 시간 동안 집요한 손의 움직임으로 탄생한 몸들이 역설적이게도 눈에 보이지 않는 벗어날 수 없는 막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작가는 미처 인지하기도 전에 몇 걸음 앞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던 자신의 손을 향해 멈추라고 외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짓이겨 없애도 몸은 사라지지 않았고, 결국 그에게 남겨진 것은 지칠 대로 지쳐 탈진한 두 손이었다. 항상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물질을 만지고 힘을 가하던 그의 손은 그제서야 잠시 멈출 수 있었다. 가속도가 붙은 손의 열을 식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었다.
최수앙은 관성에 이끌려 움직이던 지친 손을 쉬게 하며 그 부지런했던 움직임을 가능케 했던 자신의 몸을 찬찬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외부에 대상을 향해 조율되어 거침없이 움직여왔던 팔과 손의 근육들은 작은 동작에도 큰 신호를 보냈고,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행위들에 대한 내부의 협조는 더디기만 했다. 이제 그에게 무엇을 전달하기 위한 대상은 사라졌다. 그는 습관처럼 해왔던 행위들을 하나씩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각가라면 진리처럼 여겨왔던 미술해부학을 다시 살펴보며 실제와는 다른 인체 근육들을 하나씩 찾아 나가면서 잘 맞춰진 듯 보이는 근육의 자리들을 조금씩 비틀어 틈을 만들기 시작했다. 무엇을 어긋나게 만들기 위해서는 원래의 위치를 분명하게 아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렇게 〈조각가들〉(2021)이 나오게 된다. 이 작품은 작업이 놓여있지 않고 여러 겹 그 과정의 흔적만 남은 빈 작업대를 둘러싸고 있는 인체해부학 모형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모형들은 구분을 위해 다양한 색으로 칠해진 근육들로 구성되어 있고 ‘조각가들’로서 무언가를 만드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대상은 보이지 않지만, 대상을 만들었던 축적된 시간만을 암시하는 작업대는 그의 반복적인 습관이 만들어내는 흔적이자 조각적 태도이기도 했다. 물질을 붙여나가 형상을 만들어 왔던 과거의 작업과정과는 달리 물질을 바르고 갈고 다시 바르며 쌓아가지만, 가시적인 형체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두께가 형성되었다. 그렇게 형상 없는 흔적을 만들거나 왜곡된 근육들을 차곡차곡 붙여 나가고 색을 칠하는 단순한 작업 과정을 통해 꽉 조여진 긴장과 빠져나가지 못할 것만 같던 과거 몸에서 서서히 벗어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작가는 몸에 남아 있는 조각적 습성을 통해 고집스럽게도 무의미해 보이는 행위를 끊임없이 반복했다. 그리고 그 반복된 리듬이 그를 지탱해주면서 어디론가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을 만들어 주었다. 〈조각가들〉은 어떻게 보면 과거의 최수앙을 붙들고 있던 것으로부터 거리를 두게 만든 전환점인 것이다.
〈조각가들〉에서 최수앙은 완벽한 전환이나 그로 인한 해방감을 전적으로 누리지 못했지만, 그것을 시작으로 조각가의 태도와 조각의 본질에 대해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서 평면과 입체를 넘나드는 일련의 작업을 하게 된다. 종이에 오일을 먹여서 두께를 만들고 그 위에 마치 도형의 전개도처럼 그려진 〈언폴디드〉(2021) 연작은 평면이지만 앞뒤 구분이 없어 제3의 입체를 상상하게 만든다. 종이에 오일을 바르고 말리는 행위를 반복하면서 생기는 투명도는 종이가 가진 질감과 구조를 보여주는 동시에 시간과 발린 정도에 따라 다른 두께를 형성하게 된다. 무의미해 보이는 작가의 반복적인 과정은 종이이기 이전에 물질임을 더 부각시킨다. 그리고 그 위에 그려진 선과 면, 면을 칠한 색들을 따라 상상의 종이접기를 하다 보면, 색이 발린 면 자체가 환영이 아닌 독립적인 사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는 작품이 벽면에 걸리는 것이 아닌 앞면과 뒷면을 모두 볼 수 있도록 계획한 작가의 의도에 맞닿아 있다. 또 다른 평면 작업인 〈프래그먼츠〉(2021) 연작은 〈조각가들〉에서 뼈대 위에 붙어 있던 여러 색으로 채색된 근육들과 달리 그 형태를 연상케는 하지만 파편처럼 개별 형태들이 중첩되기도 하고 떨어져 있음을 종이에 수채화로 표현한다. 이 드로잉은 제목이 암시하듯 개별 형태들이 자신의 영역을 지키며 단순히 물과 물감이 만난 흔적임을 스스럼없이 얘기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들은 하나의 특정한 형태로 보기를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양과 색이 이끄는 대로 개별적인 개체 자체로써 온전하게 볼 수 있는 자유를 주고 있다. 평면이지만 입체적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프래그먼츠〉 연작과 더불어 〈손〉(2021)은 〈조각가들〉을 넘어 새로운 기류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조각가들〉에서와 달리 과감하게 생략되어 단순화된 근육으로 만들어진 이 작업은 단지 반복적 행위의 과정으로서만이 아닌, 조각으로써 기존과는 다른 의미를 만들고 있었고 아직 진행 중인 최수앙의 미래 조각에 한층 가까이 다가섰다.
작가가 다루는 물질과 형태를 과거 감정의 서사를 위한 통로가 아닌 여전히 익숙한 조각의 방법론 안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최수앙은 각 작업에서 물질과 그것이 결합하여 만들어지는 형태와 색채, 그리고 그것을 만드는 행위 자체에 주목했다. 그는 어찌 보면 답답하리만큼 고집스럽게 단순하고 반복적 행위의 루틴을 고수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대상에 어떤 의미를 만들고 감정을 부여하기보다는 작업이기 위한 각각의 요소들이 그 자체로써 온전할 수 있는지를 실험하고, 끊임없이 의미를 찾고 읽어내려고 하는 관성을 거스르고자 한 것이다. 사실 조각의 과정과 태도는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지만, 시선을 돌려 거리를 조절하면서 과거 작품들에서 집요하게 전달하고 투사하고자 했던 감정의 무게를 한층 덜어내었다. 작가는 작업의 긴 여정 안에서 어느 방향으로 갈지 모르는 불안한 현재를 맞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지난한 과정의 흔적을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이제 그 흔적들부터 최수앙이 만들어 낼 새로운 모양의 조각을 마음껏 상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 맹지영 | 독립큐레이터, WESS 공동운영자
1975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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