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포스터
김태호의 인(仁), 추상화의 거장들과 동행하다!
안현정(미술 평론가)
인공위성에서 본 듯 다양한 요철의 화면들이 모여드는가 하면, 탁 트인 자연을 화폭에 옮겨온 듯 확장되는 마법을 부린다. 평면과 입체를 넘나드는 묘한 색감들은 계획과 무계획의 조화 속에서 수평과 수직을 반복하며 삶의 변주곡을 만든다. 인간의 다양한 감성들을 모두 담은 듯한 진정성 넘치는 화면 속에서 우리는 삶의 희로애락과 만난다. 감각적이면서 깊은 다층의 변주를 보여주는 작품의 주인공은 바로 박서보(1931~), 하종현(1935~), 정상화(1931~) 같은 단색화 거장의 계보를 잇는 김태호(1948~) 작가다. 한국 미술계에서 ‘단색화’라는 언어가 주는 힘은 양가성을 갖는다. 서구 모노크롬과 다른 우리만의 호흡과 명상적 수행을 담기에 적합한 단어일 수 있으나, 한국 추상의 거장들이 투쟁과 운동을 통해 이어온 ‘한국 추상의 맥락’에는 자유를 향한 갈망이 내재하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 추상의 계보를 잇는 김태호의 교량적 역할은 17세에 운명처럼 만난 박서보 선생과의 만남에서, 대학시절부터 오늘에까지 인연을 쌓아온 하종현 선생과의 만남에서 한국미술계를 국제적인 맥락으로 ‘동행’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홍익대 졸업직후인 1973년 제22회 국전(國展) 비구상부문에서 문화공보부장관상을 받을 만큼 뛰어난 시대감각을 지닌 김태호 작가는 1977년 개인전을 시작으로 동경과 로스엔젤레스 등 수많은 개인전을 거치면서 ’82년 ‘공간판화대상전’에서 대상, ’84년에는 제3회 ‘미술기자상’, 2003년 고향인 부산에서 제2회 ‘부일미술대상’(부산일보사 주최) 수상과 부산시립미술관에서의 개인전을 가진 바 있다. 초기작 스프레이 형상 시리즈와 과도기의 종이 시리즈를 거쳐 95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내재율(Internal Rhythm) 시리즈는 캔버스에 그려진 격자무늬의 수직과 수평의 ‘어진 사유(仁의 미학)’을 바탕으로 삼아 캔버스를 20회 이상의 색을 90도로 돌려가며 올리는 행위성의 완성체다. 수직 수평을 이룬 물감의 계획성은 특수제작 된 칼로 깎이면서도 전혀 흔들림이 없다. 초기부터 발견된 인간형상은 결국 인간이 지켜내야 할 가장 의롭고 완전한 동행의 상태 ‘인(人)+이(二)=인(仁)’ 속에서 뛰는 생동감을 지켜내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내재율이 머금은 철학이자 생명을 머금은 내적이면서도 외적인 리듬이다. 매일 쉬지 않고 노동처럼 임하는 성실함의 자세에서, 매 주말 스승을 찾고 제자를 챙기는 그 따스한 마음에서 동행의 내재율을 배운다. 7월 22일에서 9월 26일까지 두 달간 파주 끼스튜디오(대표 이광기)에서 펼쳐낼 ‘내가 본(本) 김태호, 동행’ 전시에서 이 모든 스토리텔링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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