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순열
玄玄 2021-18 2021_Acrylic Colorpencil on Canvas_162 x 112cm
양순열
玄玄 유희 45_2021_Acrylic on Canvas_116 x 91cm
양순열
대모신 Mother Ottogi 2021_Resin Ottchil_45cm
회화, 조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드는 작가 양순열의 개인전 <玄玄>이 서촌 인디프레스 갤러리에서 열립니다. 양순열 작가는 가나화랑, 학고재 등에서 다수의 초대전을 개최하였고 뉴욕과 유럽 국가들에서도 개인전을 가졌으며 현재 학고재 갤러리의 전속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번 개인전에서 양순열 작가는 과감하게 검은색을 구사하여 우주적이라 할만한 공간감을 연출하고 그 공간에서 조화롭고 유기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소우주적 존재들을 추상적인 조형언어로써 표현한 대작 4점(194x259cm)을 포함한 평면 20여 점과 모든 존재를 잉태한, 혹은 품고 있는 대모신(大母神)- 오똑이< MOTHER EARTH, OTTOGI >를 형상화한 대형작품(높이 230cm) 1점과 함께 입체작품 4점을 출품하였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양순열 작가는 동양적 화엄의 세계와도 같은 확장된 범우주적 모성의 회복을 통해 시대가 처한 위기를 극복하고 인간과 사물 그리고 자연 사이의 영적 교감의 가능성을 탐색하여 어둠의 현실에서 꿈과 사랑의 세계로 인도하는 전령사 같은 작품들을 보여주는데 화면구성은 지극히 단순하고 절제된 형식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 인디프레스
양순열 작가의 <玄玄>에 관하여
<플랫랜드>를 읽다가 화가들이야말로 2차원 평면에 갇힌 소설 속의 사각형 주인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플랫랜드>는 지적 능력을 가진 2차원 평면 세계의 사각형이 3차원 공간을 경험하면서 공간과 차원을 새롭게 인식해 나간다는 수학 소설입니다.
1884년에 출간된 이 책이 지금까지도 전세계에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존재의 다양한 기하학적 차원들뿐만 아니라 그 안에 가득 차 있는 정치-경제-사회의 모순들도 함께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화가들에게 2차원 평면은 숙명과도 같습니다. 모든 그림이 존재하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그곳에는 두 가지 표면이 있습니다. 종이나 캔버스 같은 ‘물질적 표면’과, 그 위에 그려진 ‘회화적 표면’이 그것입니다. 르네상스부터 인상파까지 근대 화가들의 가장 큰 임무는 인간의 시각경험을 충실히 재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원근법과 명암법을 통해 2차원 평면을 마치 3차원 현실 공간처럼 재현하는 환영주의(illusionism)는 근대 미술의 가장 큰 특징이 되었습니다. 반면에 20세기 초의 입체주의부터 추상미술까지 현대 미술의 관심은 순수하고 자율적인 미학적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 3차원적 재현은 회화의 본질을 흐리는 눈속임으로 간주되었고, 환영주의는 부정되고 파괴되었습니다. 회화는 다시 점선면과 색채로 이루어진 2차원 플랫랜드, 평면의 세계로 되돌아갔습니다.
3차원에서 더 고차원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왜 다시 2차원 평면의 세계로 돌아갔을까요. 명백한 퇴보가 아닐까요. 우리는 토머스 쿤이 말한 ‘패러다임‘이나, 동일한 차원 혹은 다양한 차원에서 사물들이 ‘연결합(連結合)’되는 현상을 빌어서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생물 종의 진화를 진보라고 평가하기 힘들 듯이, 철학이나 과학의 발전도 패러다임의 변화일 뿐이며 진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쿤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게 보면 재현에서 추상으로의 변화나, 반대로 3차원에서 2차원 평면으로의 회귀를 단선적인 진보나 퇴화의 관점으로 볼 수 없습니다. 평면은 공간과 맞닿아 있고, 공간이 없다면 평면을 인식조차 하지 못할 것입니다. 설계도면이 건축물이 되고, 오선지 위의 음표가 장엄한 교향곡으로 울려 퍼지듯이 각각의 차원들은 인드라망(The Net of Indra)의 구슬처럼 서로 연결합 되어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제페토나 메타버스도 결국은 2차원 평면 모니터에 구현된 4차원의 착시라고 할 수 있고, 리사 랜들이 <숨겨진 우주>에서 그 가능성을 확인한 5차원도 2차원 평면에 구현된 3차원적 환영으로만 증명할 수 있습니다.
현대물리학의 가장 위대한 발견은 우주가 끊임없이 팽창하고 있다는 단순한 사실입니다. 그 속에서 시간과 공간은 서로 굴절되고 접합하며 영원히 새로운 사물과 차원을 형성해 나갈 뿐 입니다. 그렇기에 고정불변의 독립된 자아나 사물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주는 그 자체가 하나로 연결된 거대한 생명공동체이며 인간은 자연의 극히 작은 일부일 뿐입니다. 이 발견으로 인해 그동안 신비주의나 미신으로 폄하되었던 종교와 예술의 영역, 특히 동양의 종교와 철학이 새롭게 조명되기도 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예술적 상상력과 과학적 이성이 연결합 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우주적 종교’를 통각 했노라고 말합니다. 이 위대한 물리학자가 고백한 궁극의 체험은 화엄경에서 깨달음의 마지막 경지로 남겨둔 ‘不可思議’와 같을지도 모릅니다. 결코 깨달을 수 없음을 깨달으려는 것처럼, 양순열 작가도 2차원 평면에 결코 그릴 수 없는 것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영원히 풀지 못할 숙제를 손에 쥐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의 <玄玄> 작업은 항상 이 점을 일깨웁니다. 이런 점에서 저에게 리사 랜들과 양순열은 마치 같은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그들은 끝없이 펼쳐진 우주를 향해 의식의 전부를 열어놓고 있는 허블망원경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주뿐만 아니라 인간도 不可思議한 존재로, 영원히 풀리질 않을 신비로 남아 있을 겁니다.
■ 윤재갑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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