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과 음악, 여민락(與民樂)
2021.09.03 ▶ 2021.10.09
2021.09.03 ▶ 2021.10.09
전시 포스터
세종대왕은 조선왕조 사상 경복궁 근정전에서 즉위식을 치른 첫 인물이다. 즉위식은 그의 등장부터 위대한 국가의 의례와 힘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한 국왕이자 현명한 학자들을 불러 모아 학문을 중흥시키고, 좋은 정치를 펴기 위한 방도를 강구한 인물이었다. 타고난 개인적인 성향과 함께 학문으로 갈고닦은 품성 그리고 바른 인식을 기반으로 한국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정치가이자 발명가였다. 조선이 건국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국가 기반을 만들어가던 시기였기에 많은 제도들이 필요했던 것도 세종시대가 빛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세종대왕의 모든 업적은 애민(愛民)에 근거한 것이며, 그 애민사상의 결집체가 바로 '여민락(與民樂)'이다. 왕이 정치를 잘하면 음악을 연주하든 사냥을 하든 백성에게는 모두가 즐겁고 좋은 일로 생각되고 그렇게 말한다는 맹자의 가르침이 바로 여민락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맹자는 음악을 예로 들었을까? 그것은 음악이 조화로운 것이므로 정치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여민락이란, 백성과 더불어 즐기는 음악이란 뜻에서부터 →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다' → '백성을 위해 정치를 잘하여 좋은 여론을 듣는다'라는 의미로 확장되는 것이다. 이는 나와 타자와의 관계 안에서 상대방을 인지하고 상대방을 배려하고 함께한다는 사회적 규약인 의(義)와 예(禮)가 함축된 개념이기도 하다. 한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는 동시대인으로 당대의 생각과 말, 몸짓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의 신체와 정신 모두를 통과한 예술은 따라서 작가가 존재했던 시대의 모습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팬데믹의 상황을 겪은 이후의 미술은 결코 이전과는 같을 수 없으며, 같아서도 안 된다. 경험, 기억, 희망, 슬픔과 같은 것을 상실한 예술작품은 허상일 따름이다. 현대 작가들이 '세종대왕과 음악'이라는 커다란 주제 아래 제작한 미술작품은 위대한 왕의 이상을 실존하게 하는 행위이다. 봉건시대에 '민'을 생각하였던 왕, 그의 정치적 이념이 현대에 평화, 공생, 공유, 복지, 평등 등으로 해석할 수 있는 이유는 그 기반에'애민'이 있기 때문이다. 세종대왕과 음악, 그것은 유구한 좋은 세상을 꿈꾸는 일에 대한 성찰이며, 우리 모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만나는 일이다.
김기라는 옛사람들의 욕망, 즉 행복의 상황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옛 기물은 물질일 뿐이다. 하지만 당대인들에게 물질은 그들이 소유할 수 있는 만큼의 것들을 상징하는 것이어서 곧 신분제를 드러낸다. 민화는 그러한 욕망의 빼곡한 기록서로서 작가는 기물들을 마치 민속박물관처럼 전시하고 이를 CCTV를 통해 「기물별곡」으로 이름 짓는다. 이상의 세계를 일컫는 '별곡'이 일상의 물건들로 구성되어 '별곡'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야말로 욕망하던 모든 것이 그 자리에 있으니 별곡의 상황이 된다. 개개인의 욕망과 행복에 대한 기록을 프레젠테이션함으로써 즐거운 삶을 고찰한다.
김혜경은 '여민락'을 '백성과 즐긴다'라는 뜻으로 해석하였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 고급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도 즐거워할 수 있는 다양한 이미지를 채집하여 미디어로 담았다. 그의 미디어 파사드는 거친 벽에서 시시각각 화려한 형상으로 빛나는 오래된 건물과 꽃과 같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 등장한다.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대중적인 작업을 꿈꾼다"는 작가의 말은 예술을 위한 예술을 넘어선 장식이라거나 기쁨을 주는 것과 같은 기능에 충실한 예술의 당위성을 말하는 것 같다. 모두와 함께한다는 것은 아름다움이나 예술에 대한 편견을 벗어던지고 고운 것들에 눈길을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김효진은 여민락 음원을 기반으로 세종이 창제한 한글을 자신의 신체 일부로 가시화한 작업을 보여주었다. 무용을 전공한 작가는 자신의 동작과 미디어 작업을 결합하여 왔다. 이번 작품에서는 춤을 기본으로 하되 '균형'을 보여준다. 발의 움직임으로 무엇인가를 표현할 때, 그것은 균형에 의해 가능하다. 음악의 속도, 길이, 호흡을 표현하는 화면의 개수 변화는 힘의 분배이자 균형의 과정을 보여준다. 작가의 작업은 「여민락」이라는 음악에서 시작하여 그것의 과거 의미 그리고 오늘날의 변화를 추정하는 과정의 기록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속도의 변화는 시대 생각의 변화, 몸의 변화일 것이라고 관객이 은연중 느끼게 된다고 해도 그른 것은 아닐 것이다.
배달래는 세종대왕의 모든 행위가 연민, 즉 사랑에 있었음을 알린다. '여민락' 음악을 들으며 그의 마음이 되어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이 퍼포먼스는 영상으로 기록되어 작가 스스로 붓이 되어 커다란 화면에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보여준다. 예술가 스스로 도구가 되는 그 접신과 같은 과정을 가시화한 것이다. 바닥에 깔려진 천은 작가의 몸으로 그려낸 그림이 된다. 커다란 천은 두 겹이어서 작가는 이것을 바느질로 꿰매어 하나로 이어 붙였다. 과거와 현재, 임금과 백성, 현실과 가상 등 모든 것들이 봉합되고 어우러지는 그 지점을 작가의 행위로 만들어낸 것이다. '여민락' 음원이 작가를 움직이게 함으로써, 관객은 가시화한 여민락을 만나는 것이다.
석철주는 한국의 산하를 주유하였으나 일상으로 인해 그러지 못하게 되었을 때, 「신몽유도원도」 연작을 제작하였다. 그리하여 그려나간 산수가 아니라 지워지는 산수로 존재하게 된다. 이번 전시에 새로 보인 2020년, 2021년의 「신몽유도원도」는'꿈을 찾아가는' 상황을 강조한다. 아날로그 시대에 태어나고 성장하고 살아간 작가가 디지털시대의 도래를 경험하였을 뿐만 아니라 팬데믹을 거치며 더욱 가속화한 디지털의 위용을 느끼며 디지털의 픽셀로 재현된 '몽유도원'을 제시한다. 꿈은 꾸어야 이루어진다는데 '몽유도원'이야말로 진정 행복한 장소를 향한 꿈이자 찾아나가는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행위임을 말하는 것이다.
심철웅은 애민, 나아가 여민의 '민'이란 과연 무엇일까에 대한 사유를 펼친다. 과거 봉건사회에서 정치의 대상에 백성은 없었다는 현실에 대한 인식이 작동했던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민의 실체성에 대한 접근은 세상은 무엇으로 구성되는가, 가치란 무엇인가, 평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동반한다. 그것을 일컬어 자각이라 한다면 음가가 화면에서 떠오르거나 반짝일 때마다 개개인의 소중한 삶에 대해 응시하게 될 것이다. 사실 여민락을 통해 우리가 알고자 하는 것이 진실이라면, 과거의 용납하기 어려운 진실도 현재를 위한 거름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과정을 진지하게 고찰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임을 작품 앞에서 느끼게 된다.
이귀영의 여민락에 대한 해석은 동시대성이란 무엇인가란 질문과도 닿아 있다. 그는 특정 계층만이 아닌 모두와 함께 하는 것, 그것은 단절이 아닌 상태를 의미한다고 본다. '여민락'은 그런 일상을 담은 과거의 일상이자 현재의 일상 그리고 시시각각 다가오는 미래의 즐거움을 의미한다. 그래서 시공을 넘나들며 모두가 함께 즐기는 상황을 연출한다. 여민락이 가진 음악적 특징인 조화롭고 웅장함을 궁궐의 위상과 연계시킨다. 세종 대왕이 즉위한 경복궁의 정문 광화문을 자유로이 오가는 현대인들과 과거의 자연이 공존한 공간을 분절시키고 삽입시킴으로써 시간과 공간을 희석한다. 누구나 어느 시간이나 경험할 수 있는 그 장소성은 공존의 의미로 해석될 것이다.
이예승은 세종대왕이 하나의 음악을 속도와 길이를 달리하여 작곡하고 또 「용비어천가」라는 동일한 가사를 악곡에 붙였지만 유독 '치화평'이나 '취풍형'과 달리 '여민락'만 한문으로 가사를 붙임으로써 위정자들이 꾸준히 즐겨 그 뜻을 새기게 한 것에 주목하였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여 기술도 변화하고 예술에 사용하는 테크놀로지도 급격히 진화하고 있다. 그러한 변화 속에서도 예술을 즐기는 것, 함께하는 그 의미를 지켜내는 작업을 보여준다. 증강현실은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게 하며 화면의 이미지와 스마트폰을 꺼내 든 관객의 행위를 결합시킨다. 참여함으로써 즐길 수 있는 인터렉티브한 상황을 도출함으로써 '여민락'의 의미를 해석해 본다.
정직성이 선택한 자개 그림은 진정한 '민'의 의미를 캐묻는 지점에 우리를 세운다. 세종대왕이 생각한 애민은 그가 다스리는 나라의 사람들이 신분이 낮다고 심하게 수탈당하지 않고 적절한 세금을 부과 받게 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것이 평등이라면 누구나 아름다움을 누리고 볼 수 있는 세상도 꿈꾸었을 것이다. 정직성의 자개 그림이 부귀영화를 말하는 데 사용되지 않고 바람, 물, 꽃들을 보여주는 것은 자연의 노래를 담아 상위의 한정된 계급들의 욕망구조에서 자유로운 양상으로 위치시키는 것이다. 또한 누구나 전시장에 들어올 수 있는 오늘날 예술을 통해 평등함을 실천하는 것이기도 하다.
정현은 침목으로 사람 형상을 만들었다. 기차의 속도, 열, 무게를 감내하며 비, 바람, 눈, 햇볕과 홍수와 가뭄에도 그 자리를 지킨 침목은 마치 보통의 인간, 민의 그것과 닮아 있다. 인고하는 삶을 통해 얻어진 단단함과 육중함은 침목의 미덕이다. 역사 속에서 우리가 인내하여 찾아낸 지금의 평등, 평화는 혼자가 아닌 여러 사람이 함께 함으로써 가능하였음을, 공생을 통해 가능함을 이 형상들은 보여준다. 역사 아래 약자 같던 침목이 고정된 평행선에서 벗어나 우뚝 솟아 사람의 형상을 취하는 상황은 기적과도 같은 반전이다. 다소 거칠어 보이는 그의 인체 형상 앞에서 가쁜 숨을 들이쉰 나의 모습을 투사하는 것이 지금의 사람들만은 아닐 것이다. ■ 조은정
1974년 충청남도 보령출생
1969년 마산출생
1976년 서울출생
1956년 인천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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