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포스터
차가운 질문과 의미의 흔적
강용석x최원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대중들은 이미지를 필요로 하고 있다. 시선이 사색을 대신하는 것이다.”
– 아나톨 드 몽지 Anatole de Monzie
2019년 말부터 시작된 “코로나-19”로 다시 예측불허의 시간이다. 변화되는 일상의 패턴에 익숙해질 법도 한데 여전히 우리는 이 상황이 낯설다. 일상의 재편은 단순히 일상을 바꾸고 조정하는 문제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믿는 가치와 습관 나아가 인식의 차원으로 확장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직접 겪어보지 못한 역사적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일까? 물론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일반적으로는 이미지, 특히 사진 혹은 관련된 텍스트와 설명을 통해 간접적으로 이해하고 해석한다. 한국 현대사 속 잊혀지고 가려진 현실을 사진은 어떻게 기억하고 드러내고 있을까? 강용석과 최원준의 작업은 이러한 근본적인 질문에 각자의 방식으로 대답하고 있다. 엄연한 또 한편으로는 막연한 이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보고 있는지, 어떻게 볼 수 있는지, 어떻게 보도록 만들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한국전쟁과 분단상황, 분단체제 안에서의 문제인식, 사회적 정치적 변화에 대한 사진적 반응, 구조화된 시각체제. 통시와 공시를 아우르는 형식과 내용의 축. 우리는 강용석과 최원준의 작업에서 이러한 다층적인 요소들을 발견한다. 이 불편하고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어떻게 그들만의 스타일로 풀어내고 있는지를 확인하면서. 강용석과 최원준의 작업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한국전쟁과 분단상황이라는 거시적인 주제를 제외하면 불편한 것을 대하는 방식에서 그 키워드를 찾을 수 있다. 이들은 분노하거나 외면하지 않는다. 단지 냉철하게 질문을 던질 뿐이다. 이 글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하나의 응답으로 이번 《시차적응-프로젝트》 전시에 포함된 작품들을 대상으로 한 것임을 미리 밝혀둔다.
강용석은 동두천의 미군부대를 흑백으로 담아낸 대학 졸업전을 시작으로 한국전쟁 이후 분단상황과 그 흔적에 대해 집요하게 천착해왔다. 이 주제에 대한 관심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강용석의 초기작 〈동두천 기념사진〉은 동두천 미군부대 인근 작은 시골마을의 술집에서 한국 여성 접대부와 미군을 함께 촬영한 초상사진이다. 술집 내에서 사진을 촬영해주는 전문 사진사의 역할로 시작된 이 작업은 단순한 기념사진을 넘어 한국현대사의 질곡을 나타내는 하나의 상징적인 표상이 되었다. 기록을 위해 본격적으로 작업을 했으나, 다른 사진사와 마찬가지로 이들이 기념으로 간직할 사진을 찍었기 때문에 강용석의 다른 작업들과 달리 이 시리즈는 모두 컬러사진들로 구성되었다. 컬러사진이라는 형식은 동두천의 풍경과 그 안에서 흐르는 독특하고 기묘한 분위기를 드러내는 데 매우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뿐만 아니라 근사하고 그럴 듯한 배경으로 애정 어린(겉으로나마) 두 사람 사이를 보여주는 기념사진이 아니라 한국과 미국의 관계처럼 기묘하게 비틀어진 두 인물의 관계를 절묘하게 포착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흥미롭다. 물론 사진사를 응시하며 여유로운 미소를 짓거나 행복한 표정으로 서로를 응시하는 커플도 있지만, 그들의 포즈나 태도는 다소 연극적인 데가 있다. 그 외 대부분의 사진에서 그들의 사이는 어색하고 불편하게 보인다. 정돈되지 않은 테이블 위의 주전자와 술잔, 그리고 재떨이만큼이나 어정쩡한 손의 위치나 멍한 시선, 불편한 표정은 이것이 이들의 만남과 빛나는 미래를 약속하는 기념사진이 아니라 지독한 현실과 어정쩡한 앞날을 예견하는 것처럼 보인다. 미군들에게는 그저 한 순간의 지나가는 놀이 같은 이 사진이 한국 접대부 여성들에게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강용석은 이 지점을 놓치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이후의 시리즈들에서도 각기 다른 형식으로 표출된다. 수십년 동안 미 공군의 폭격훈련장으로 이용되어오다 마침내 황폐한 땅으로 남은 매향리의 흔적을 담아낸 〈매향리 풍경〉은 그 뜨겁고 고단한 삶과 힘겨운 투쟁의 시간을 담담하고 냉정한 시선으로 포착한다. 심플한 정방형의 프레임 구성과 강용석이 강조한 “사진의 중조 톤”은 그의 사진적 태도가 어떻게 형식화되는지를 보여준다. 그의 사진에서 엄청난 포탄의 잔해들과 폭격의 흔적들 그리고 폐허가 된 삶의 현장은 전혀 극적이지 않다. 오히려 간결할 뿐 아니라 얄미울 정도로 적확하다. 대자연의 풍경 속에 마치 하나의 오브제로 놓여진 것처럼 조용한 이 사진들은 들여다보고 집중하면 할수록 이러한 냉전논리 속 현장의 흔적과 증거를 드러낸다. 그에게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상황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냉철하게 고찰하는 행위인 것이다.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고 특정 인물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碑는 그 자체로 하나의 상징이자 관례가 된다. 〈한국전쟁 기념비〉는 분단상황에 대한 강용석의 문제의식이 형식적 실험을 넘어 의미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체제 유지를 위한 이데올로기”로 작동하는 기념비가 냉전이 완화된 시대에 어떠한 의미로 기록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 작업은 한국전쟁에 대한 공동체적 기억과 동시에 지워진 흔적을 하나의 프레임에 담아낸다. 전쟁의 승리(라고 주장하고 싶은 믿음)와 숭고한 희생을 상징하는 이러한 기념비는 끊임없는 가상의 적을 생산해내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현실을 긍정하고 안주하게 만든다. 그러나 강용석의 사진에서 기념비는 기념사진의 배경이나 쉬어가는 혹은 지나쳐가는 공간의 일부로 위치한다. 마치 우리 기억 속에 먼 과거처럼 잊혀진 전쟁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강용석은 이렇게 기념비를 개인의 시점과 일상에 접목시킴으로써 이러한 이데올로기에 냉소적으로 반응한다. 지나간 시간의 기념비는 하나의 조직된 의미체계라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반공신화의 위계를 분열시키면서.
최원준은 특정한 공간과 장소를 지속적으로 기록하면서 한국의 사회적, 정치적 문제를 첨예하게 시각화해왔다. 최원준이 분단상황과 미군과의 관계, 그리고 북한문제 등을 집중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이래, 이러한 의외의 혹은 관심 밖의 장소와 구조에 대한 시선은 지나온 역사의 응축된 시간까지 포괄하면서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왔다. 벙커와 비밀아지트 그리고 방호벽과 방어선을 통해 가시화되지 않은 체제와 위장된 구조를 보여준 〈언더쿨드 Undercooled〉 시리즈는 리얼리스트로서의 최원준이 모든 것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고 확인하고자 한 하나의 시도로 읽을 수 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작품 ‘은평구 뉴타운 #1 구파발’은 냉전시대에 구축된 수도권 주변의 군사시설이 뉴타운(이 얼마나 헛된 희망과 꿈을 보여주는 단어인가? 흥미롭게도 그렇게 건설된 뉴타운은 다시 재개발이라는 시작점으로 돌아가면서 끊임없는 자본주의 욕망의 굴레를 보여준다) 건설로 인해 허물어지는 과정을 포착한다. 파헤쳐진 흙더미와 그 사이로 보이는 비밀스런 입구, 반복과 순환을 떠올리게 하는 아이콘으로서의 숫자 8 그리고 그 너머로 보이는 차가운 벽과 날카로운 컬러의 가림막이 기묘한 조화를 이루는 아파트 건설현장은 새로운 차원의 의미를 제시한다. 이제 이 모든 징후 너머에서 가리키고 있는 표식을, 그 배후에 숨겨진 기억과 복잡하게 얽혀있는 이념의 논리를 찾아봐야 하지 않겠냐고 말하면서. 냉혹하리만치 자로 잰 듯 정확하게 정돈된 프레임과 파사드는 시각적 무의식을 드러내는 하나의 장면으로 작동한다.
도시 내 군사시설에 대한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타운 하우스 Town House〉는 국내에 주둔했던 미군부대에 대한 기록이다. 냉전의 가장 직접적인 산물인 미군부대는 한국전쟁이 ‘민족상잔의 비극’을 넘어서는 국제 좌우 대립의 전장이자 냉전체제 구축의 결정적인 계기였음을 표상한다. 그러나 장소에 대한 정보가 없다고 가정하면 최원준의 사진에서 미군부대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황무지처럼 곳곳에 자라난 풀이 방치되어온 역사의 시간을 은유할 뿐이다. 최원준 스스로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이 작업에서는 “사실상 미군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역사와 개인의 기억 사이 어디쯤에 존재하는 이 텅 빈 공간이다. 최원준이 파주와 의정부 그리고 동두천의 캠프들을 계절별로, 때로는 동일한 시점에서 1년 전후를 기록한 이유도 이러한 시공간의 여백을 확인하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그는 의미 있는 장소를 찾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그 장소 안에서, 장소의 흔적을 통해 이 역설적인 의미를 발견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시공간의 경험을 통해 구체화된 장소를 가지고 시각적 서사의 가능성을 확장한다. 이는 그의 사진에 대상을 철저하게 응시하고 직시하는 힘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제도권의 내부와 구조에 대한 관심에서 다층적인 장소의 패러다임으로 이동하면서 이러한 기록은 지워진 표식의 흔적을 통해 공백의 다음 장을 읽게 만든다. 〈말소된 흔적 Traces of Erasures〉은 미군들이 부대를 떠나면서 건물에 남아 있는 텍스트를 페인트로 지운 흔적을 촬영한 것이다. 미군의 의도와 상관 없이 이 지워진 흔적들은 오히려 볼 수 없었던 것을 다시 그려낸다. 최원준은 본래 있었던 텍스트가 지워지고 그 위로 새로운 글자가 덧씌워지는 장면을 우리 앞에 불러온다. 상상력을 자극하던 텅 빈 공간은 지워지고 다시 쓰여지는 역사로 대체된다. 신작 ‘무명’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이름 없음이라는 이름. 부재의 현존. 거대서사에서 지워진 무명용사를 떠올리게 하는 이 작업과 함께 이번 전시에는 소개되는 또 다른 신작은 미군부대 기지촌의 클럽과 악명 높은 동두천 성병관리소 ‘몽키하우스’ 내부를 촬영한 사진들로 대상과 대비되는 컬러와 빛의 섬세한 조합이 인상적이다. 낡아빠진 간판과 주변에 어울리지 않는 거창한 클럽의 이름은 잔혹하고 추악한 인권유린의 현장과 마찬가지로 일상화된 전쟁의 잔해를 우리에게 확인시킨다. 하나의 날카로운 증거로서, 하나의 절실한 증언으로서.
세상의 많은 이미지가 그렇듯 사진이 담고 있는 바를 언어로 풀어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보이는 것을 있는 그대로 믿을 수 없는 시절에 이렇게 냉철하고도 잘 짜인 작품들과 마주하고 대화할 수 있(었)다는 것은 더 없이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각기 다른 밀도를 가지고 있지만 이 두 작가의 일관된 문제의식은 한국현대사에 대한 사진적 기억과 태도를 떠올리게 해주었다. 앞서 밝힌 것처럼 이 글은 그것에 대한 일종의 화답이다. 강용석과 최원준은 해방이 다시금 분단으로 이어진 이 시대를 어떠한 방식으로 드러냈는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또 한편으로 교차되는 이들 각각의 궤적을 이러한 질문에 비춰보는 것은 이들 작업의 맥락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이번 전시가 갖는 의미가 있다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새로운 가치는 이러한 폐허와 파국의 순간 속에서 피어난다. ■ 이미정(고은사진미술관 선임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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