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목: 나를 품은 살갗

2021.10.05 ▶ 2021.10.17

류가헌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106-4 (청운동, 청운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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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ㅣ 2021년 10월 05일 화요일 06:00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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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품은 살갗

  • Press Release

    버드나무 가득했던 수렁을 톱과 쇠스랑으로 일궈 논을 만드시는 여름날의 아버지, 그 논에서 쌀을 수확해 가을볕에 말리는 아버지, 낡은 지게로 땔나무를 지어 날라 장작불을 지피는 한 겨울의 아버지...

    강원도 화천 깊은 산골짜기 집에서 일곱 식구의 가장으로 살아가는 ‘아버지’는, 그러나 아버지이기 이전에 시를 쓰는 시인이었고 감춰진 역사의 진상규명을 위해 싸우다 영어의 몸이 된 투쟁가였다.

    다섯 살 아이였을 때는 영문도 모른 채 가족과 친척, 수많은 마을 사람들이 죽어간 제주 4.3의 피해자였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한라산 자락으로 군경과 토벌대를 피해 피난 갔던 유년의 기억은, 청년이 되고 한 가정의 가장이 되고 이제 산골의 늙은 촌부가 된 ‘아버지’를 끝내 따라다녔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버지이면서 농부로, 또 시인으로, 투쟁가로 쉼 없이 여러 면면의 자신을 담금질하며 살아간다.

    아들이 그 아버지를 사진으로 기록했다.
    “아버지와 나 사이는 내가 열일곱 살이 된 어느 날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늙고 처진 아버지의 살갗을 보고 울컥하던 순간, 관계의 변화를 직감했다. 그 감정을 이해하고 싶어서 카메라를 들었다. 아버지의 삶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2010년부터 카메라 렌즈를 사이에 두고 시선이 늘 아버지를 향했다. 연민에서 시작된 일이었지만, 아버지로서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 한 남자로 바라보고자 애썼다. 산골에서의 일상부터 제주에서의 4.3진상규명운동과 평화통일운동가로서의 모습까지를 10년 여 동안 쫓으며 사진에 담았다.

    아들 김일목이 제주 4.3의 피해자인 아버지의 일상을 담담히 기록한 <나를 품은 살갗>은, 2020년 사진가들이 주는 사진상인 ‘온빛다큐멘터리’ 신진사진가상을 수상했다. 아버지를 객관적으로 기록함과 동시에 이미 사라져버린 지난 역사를 비주얼스토리로 시각화했다는 점에서 평단으로 참여한 국내 굴지의 다큐멘터리사진가들로부터 높은 평을 받았다.

    톺아보면, 제주 4.3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럴 수 있게 되자, 다양한 시선과 형식으로 사진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한 개인인 아버지의 삶을 통해 제주 4.3이라는 큰 역사를 이야기하는 김일목의 <나를 품은 살갗>은, 오래도록 조용히, 다큐멘터리사진가로서 꿈을 키워온 청년이 우리에게 준 예기치 못한 선물이다. 전시는 10월 5일부터 17일까지, 류가헌에서 열린다.

    ■ 류가헌



    2010년부터 아버지 사진을 찍었다.

    12년간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같이, 때론 떨어져 생활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삶의 무한 반복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서 보이고 느껴지는 감정의 변화는 아버지라는 존재를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하였다. 아버지이자 한 가정의 가장이기 앞서, 거칠고 폭력적인 시대를 살아온 한 개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버지는 1944년 제주도 하귀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이 되던 해인 1948년, 제주에는 4·3항쟁이 일어났다. 수많은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빨갱이란 이유로, 남로당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산으로 올라갔다는 이유로, 중산간에 살았다는 이유로, 최소 제주도민의 1/10, 3만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다섯 살 아버지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한라산 자락으로 군경과 토벌대를 피해 피난 갔던 일을 기억한다고 했다. 이후 제주에서 기초 공부를 마치고 서울에서 학업을 이어갔다. 1977년 ‘10장의 역사연구’ 장시를 발표했고, 그로 인해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의 긴급조치9호로 징역3년을 살았다.(2018년, 42년이 지나 아버지는 무죄판결을 받았다.)
    출소 후 일본으로 가 사회사상사, 비교문화를 공부했다. 일본 체류 중 소설가 김석범(4·3항쟁을 소재로 한 책 ‘까마귀의 죽음’, ‘화산도’의 작가), 강창일 등을 만나게 되고 제주4·3진상규명운동을 위한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아버지는 한국으로 돌아와 아라리(AALRI-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연구소를 만드셨고, 1988년~1991년 사이 ‘제주민중항쟁1.2.3’을 엮어냈다. 이 일로 인해 국가보안법위반 이적표현물 제작 등의 혐의로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대전형무소에서 실형만기 출소했다.
    1998년에는 온 가족과 함께 강원도 화천에 새로운 삶의 터전을 잡았다. 아주 오래 전 화전민들과 가난한 농민들이 살았던 화천 골짜기에는 억새와 버드나무, 누에를 치기 위해 심었던 뽕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었다. 논인지 늪인지 분간조차 하기 어려운 700평 땅에서 아버지는 버드나무를 잘라냈고, 톱과 쇠스랑으로 논을 일구었다. 그 논에서 우리 일곱 식구가 일 년 먹을 쌀을 얻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성장하는 모습에 대견해했다. 나는 아버지를 우러르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버지가 늙어, 쇠약해지는 모습에 마음이 늘 편치 않았다. 이러한 이중적인 모습을 카메라로 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람은 누구나 세월이 지나면 늙고, 병들고, 쇠약해져 죽는다. 이러한 자연적인 현상을 알면서도 적어도 나의 아버지는 늙지도, 쇠약해지지도, 설령 죽지도 않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그런 생각들이 <나를 품은 살갗> 작업을 시작하게 했을 것이다.
    아버지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연민의 감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란 존재를 단지 연민이란 감정으로만 마주하기는 싫었다. 나의 시선이 연민을 벗어나지 못할수록 아버지란 존재는 더욱 나약해지고 표면적으로 보이는 늙고 쇠약한 모습만 연상될 뿐이었다. 사진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릴 적 나의 기억 속 당당했던 아버지를 오늘로 귀환시키는 일이었다. 오늘의 아버지가 아닌 과거의 아버지를 불러 세워 허리와 어깨를 펴게 했고 풍성한 머리칼과 굵은 팔뚝을 되살리려 애를 썼다. 객관과 주관의 혼돈 속에서 나는 한 남자이자 내 아버지의 평범하고 때론 강렬했던 그런 모습을 담고 싶었다. 아니 그런 시선이고 싶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대면의 시간은 객관적인 시선이 아닌 부자의 시선에 더 가까웠고, 그것은 떨쳐 버릴 수 없는 묘한 연민의 감정, 혹은 서로를 경계하는 수컷의 동물적인 감정인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를 아버지가 아닌, ‘가족적인’ 감정을 배제한 채, 한 사람으로서, 한 남자로서 바라보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했다. 분명한 것은 연민의 감정, 그것을 부정하고 싶은 나의 감정 또한 내가 바라보고 있는 아버지의 존재란 것이다.

    어린 시절 제주4·3항쟁을 겪었던 아버지, 훗날 제주4·3항쟁진상규명을 위해 애쓰셨던 아버지, 거친 국가폭력에 피해자가 되었던 아버지, 그럼에도 말과 글을 멈추지 않았던 나의 아버지. 말과 글은 당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었고 당신 삶의 가치였다. 버드나무 가득했던 수렁논을 톱과 쇠스랑으로 일구며 700평의 논에서 벼를 수확해 말리는 아버지, 낡아빠진 지게로 땔나무를 지어 나르는 아버지, 한겨울 장작불을 지피고 대자연의 기운에 몸과 마음으로 위안을 찾아가는 나의 아버지.

    그 살갗 속에 내가 있었다.

    ■ 김일목

    전시제목김일목: 나를 품은 살갗

    전시기간2021.10.05(화) - 2021.10.17(일)

    참여작가 김일목

    초대일시2021년 10월 05일 화요일 06:00pm

    관람시간11:00am - 06:00pm

    휴관일월요일 휴관

    장르사진

    관람료무료

    장소류가헌 Ryugaheon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106-4 (청운동, 청운주택) )

    연락처02-720-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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