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목을
고요-꽁치 oil on wood , 46x22cm, 2002, 개인소장
이목을
고요-도덕 oil on wood , 60x32.5cm, 개인소장
이목을
室vanity831 oil on wood , 246x123cm, 2008, 개인소장
이목을
室1022 oil on wood, 123x37.5cm , 2010, 개인소장
이목을
복숭아 oil on wood , 75.5x28cm , 2003, 개인소장
이목을
상사화 oil on wood , 37x81cm, 2002, 개인소장
이목을
vanity901 oil on wood , 123.5x245cm , 2009, 개인소장
<평론>
空, 이목을의 예술세계- 김성은 (미술평론)
까치 한 마리/미루나무 높은 가지 끝에 앉아/새파랗게 얼어붙은 겨울하늘을/엿보고 있다. 은산철벽(銀山鐵壁)./어떻게 깨뜨리고 오를 것인가./문 열어라, 하늘아./바위도 벼락맞아 깨진 틈새에서만/난초 꽃대궁을 밀어 올린다/문 열어라, 하늘아.
시인 오세영은 시집 '문 열어라 하늘아'(서정시학)에 수록한 '은산철벽'에서 자신을 높은 미루나무 가지 위에서 하늘을 향해 호령하는 한 마리 까치로 비유했다. 木乙. 화가 이목을은 자신을 나무에 앉아 있는 새, 목을(木乙)이라 했다.
어느 날 화가가 소낙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날 창 밖을 보다가 만난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던 새. 그 새 한 마리는 화가의 붓을 나무 화폭 위로 이끌었다. 살아온 날들만큼 동그랗게 두른 나이테와 뽀얗던 살덩어리가 세월의 두께만큼 익어간 나무, 그리고 장인의 투박한 손길로 만져졌을 나무에서 작가는 자연과 인간의 인연을 느끼고 공력(功力)을 느낀다. 나무 화폭. 그 위에 작가가 펼쳐내는 세계는 결코 나무를 누르지 않아야 한다. 나무가 작가를 밀어내도 안 될 것이다. 작가는 '살포시 올려놓아야 한다'고 표현했다. 이목을의 오브제들은 그래서 작가가 '살포시 올려놓은' 것들이다. 한 마리 새가 나뭇가지 위에 앉을 때 결코 나뭇가지는 새를 밀쳐내지 않는다. 살포시 올려놓을 뿐이다. 이목을은 나뭇가지 위에 앉은 한 마리 새인 것이다. 그는 화폭이 된 나무가 열리기를 갈구하고 욕망한다. 그리고 결국 고통을 겪은 바위의 틈새만이 꽃대궁을 밀어 올리듯 나무는 그의 오브제들을 받아들인다. 이목을의 작품을 보고 느끼는 대단한 사실감은 이렇게 올려놓은 오브제, 작가와 하나가 된 자연과 인간의 공력의 결정체인 나무로 인해 더욱 증폭시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정물(靜物). 정지하여 움직이지 아니하는 무정물(無情物)이 정물이며 정물화는 그러므로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일상의 사물들이 주제가 되는 그림이다.
정물화에서 눈길을 주게 되는 실제와 닮은 대상물은 실상 화가들에 의하여 새로이 생명을 얻는다. 세상을 창조하듯 화가는 화폭 위에 오브제를 재구성한다. 그 순간 화가는 조물주가 된다. 이목을은 정물화를 주로 그린다. 그의 작품은 정물화, 그것도 누구나 접해보았을 한 소재들이 주가 된다. 극사실적인 요소와 설치작업적인 면을 보여주기도 하고 초현실주의적인 느낌도 드는가 하면 웅장한 빛과 엄숙한 그림자의 바로크 미술도, 몬드리안의 간결한 신 조형주의도 떠올리게 한다. 반갑고 익숙하다. 그러나 그것뿐이었다면 그의 작품의 가치가 덜해졌을 것이다. 그가 반복하는 반복의 어법은 같은 소재를 계속 새로이 재생산한다. 인생도 자연도, 그리고 예술도 반복이며 돌고 돈다. 그 가운데에서 새로운 바람을 느끼고 맞이한다. 어제의 태양이 오늘의 그것이 아니며 겨울에 죽었던 나뭇가지에서는 새순이 움튼다. 의미 없이 맞이하고 또 지나버린다면 그 인생은 자연은, 그리고 예술은 얼마나 허망할 것인가. 이와 같이 이목을이 맞이하는 화폭이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같은 사과만을 올려놓는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작품은 작가 자신에게 먼저 버림받을 것이다. 허나, 작가는 오늘도 그가 만나는 사과가 반가우면서도 황홀하게 생소하다.
우리는 이목을에게 속았다. 그가 그린 사과는 가짜임에도 지극히 실제적이다. 그는 착시와 트릭으로 허구를 생산했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다. 진실로 예술은 실제로 활용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들게 하는 것. 포르노와 예술의 중요한 차이점의 하나는 전자는 범하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고 후자는 감상하고 싶은 것이다. 사과 그림을 보고 손을 뻗어 먹고 싶은 욕구를 일으킨다면 서글프게도 그 그림은 잘 그린 기술 좋은 그림일 뿐일 게다. 싸구려와 고급의 차이는 여기에 있다. 이목을의 사과는 먹고 싶은 사과가 아닌 보고 싶고 그대로 두고 싶은 사과가 되는 것이다. 그림에 긴장감 있게 드리우는 그림자와 이로 인하여 더욱 부각되며 베일 듯이 빛나는 빛. 그것은 그림에 사실감을 더하는 요소임과 동시에 사실이 아니다라고 외치는 것이다.
서양미술은 끊임없이 빛을 탐구해 왔다. 빛의 효과를 배제하고 그림의 사실성을 논하기는 어렵다. 이목을의 작품은 빛을 담아냄으로써 사실성을 부여 받았다. 또한 거기에 더하여 그림자가 깊고 어둡게 드리우는 것은 강한 실재성을 느끼게 하지만 또한 그림의 그림자가 그렇듯 이 세상은 본질의 세계가 만들어 놓은 그림자임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색(色)은 마음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일 뿐 아무 것도 아닌 공(空)이다. 허상이며 그림자다. 그러나 또한 색을 드러나게 하는 것도 공이며 이목을의 작품은 허상과 그림자로 색(色)을, 비움을 통하여 가득 차있음을 공(空)으로 부각시킨다. 가득 차서 넘치고 넘쳐 떨어져 나오기도 하는가 하면 텅 빈 공간, 그리고 그림자와 빛. 무엇이 있기에 무엇이 있다,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신선하다.
空. 새들은 어디로 날아가는 걸까. 우리가 짐작은 하지만 가보지 않은 곳, 그곳으로 그들은 날아간다. 우리가 짐작은 하지만 알지 못하는 곳, 이목을의 작품이 구획해 놓은 사각의 공간들은 우리가 가지 못하고 가지 않으며 알지 못하는 곳들이다. 가득 차기만을 바라고 바둥거리는 삶은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기를 두려워한다. 깨진 바위의 틈새에서만 난초 꽃대궁을 밀어올리는 경이로움을, 비어 있음에서 차오르는 것을, 차오른 것이 허망할 것을, 그러나 그 허망함 속에서 움트는 기운을 그는 빚어내고 있다. 空은 영원함이다.
補色. 색이 있어 공이 드러나고 공이 있어 색이 발현되듯 보색의 관계는 상극의 색채가 만나 생동감을 만들어낸다. 강렬한 시각 작용을 통하여 정신적인 감응을 유도한다. 진실로 그의 색채는 붉은 색이 녹색의 선명한 대비로 인하여 더욱 붉고 녹색은 붉은 색이 있어 그 빛이 현란하다. 이러한 현란한 색채는 실재감을 두드러지게 하면서도 사실이 아닌 무엇이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피력하고 있지 않는가.
문 열어라, 하늘아. 아무리 외쳐도 열릴 때가 아니면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이목을은 알고 있다. 그는 나무를, 화폭을 응시하며 기다린다. 때가 되면 나무가, 화폭이 그를 받아 들이는 기운을 보낸다. 그가 살포시 올려놓는 오브제. 나뭇가지에 올라 앉아 세상을 내려다보던 한 마리 새가 훌쩍 떠나듯 나무 위에, 화폭에 그는 그의 오브제를 올려 놓고 떠난다. 떠난 것이 남는 것이다. 남는 것은 또한 떠나는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보는 보색과 빛과 그림자, 차고 비움, 모든 것들은 무어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오묘함으로 밖에 설명할 수 없다.
서양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경이롭게도 사실감이 넘치는 정물화들, 바로크 미술에서 보는 빛의 효과와 어두움의 엄숙하고도 장엄함, 몬드리안의 신조형주의, 설치작업과 개념미술, 동양화와 서양화의 혼재를 특징으로 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요소에 아닌 게 아니라 우리가 너무나도 흔히 보았던 사과라든가, 대추 등을 소재로 하는 정물화 혹은 동양화에서 볼 수 있는 요소들. 그의 그림에는 분명히 어디선가 보았던 익숙함이 있다. 이 익숙함은 식상함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게 사실이다.
어디선가 본 듯한 작풍의 한계를 어떻게 깨뜨리고 어떻게 오를 것인가. 은산절벽의 새파랗게 얼어붙은 겨울하늘을 엿보는 한 마리 새처럼 비어있음을 채움으로, 채움을 비어있음으로 그 철학을 적셔내기에는 고독한 정진이 있어야 할 터이다. 수행의 반복과 정진의 결정체를 맺혀내는 작업의 결과만이 독특한 예술세계를 펼쳐낼 수 있을 것이다. 이목을의 세계에서 꿈틀거리는 자아와 세계관은 바로 이 色의 세계가 절제되고 정제되어 만들어내는 空의 공간이며 얼마든지, 언제든지 때가 되면 깨뜨리고 오를 氣가 생동하는 空의 세계는 작가 자신에게뿐만 아니라 감상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그러나 익숙했던, 알고 보면 단순하지만 오묘한 진리와 철학의 세계를 열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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