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포스터
양정욱
‘구름에서’ 시리즈 혼합재료, 가변크기, 2021
양정욱
인상 혼합재료, 1000×1000×1500(h)㎝, 2021, 부분
양정욱
모르는 마을 혼합재료, 가변크기, 2021, 부분
양정욱
모르는 마을 혼합재료, 가변크기, 2021
양정욱
가져가는 약도 혼합재료, 가변크기, 2021
양정욱
구름에서: 미술관 혼합재료, 가변크기, 2021
양정욱
‘구름에서’ 시리즈 혼합재료, 가변크기, 2021
양정욱
일주일동안 혼합재료, 가변크기, 2021
양정욱
가져갈 수 없는 약도 혼합재료, 가변크기, 2021
[전시 리뷰]
“이만~큼, 그정~도, 저~기쯤!”
“거시기…있잖아 그거”
뭔 말이지? 무슨 생각이니? … 알쏭달쏭 삶의 온갖 ‘고구마’는 다 모였다
OCI미술관 양정욱 개인전 《Maybe it’s like that
화가와 조각가와 사진가. 세 친구가 놀러 갔다. 사진가가 찍은 셀카 속에, 사과 깎는 조각가와, 그 사과를 씹으며 약도를 그리는 화가가 보인다.
“화가가 ‘그린’ 약도와 조각가가 ‘깎은’ 과일, 그리고 사진가가 ‘찍은’ 셀카라…” “창작 중인 거야, 아닌 거야?” “서명만 박으면 어떻게 작품으로 우겨볼 법도 한데?” “‘3인 협동 작업’이네 그럼?”
칼로 그은 듯 딱 떨어져 나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아니, 무언가 설명하려 들면 대개 그러하다. 풀수록 애매한 건 또 왜 그리 많은지. 그렇게 이해와 오해의 덧없는 각축을 견디며 살아간다. 처지와 상황과 생각을 조각하는 작가 양정욱도 예외는 아니다. 애초 말로 풀면 더 이상해서 조각으로 이야기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쉽게 통하지 않는 간단한 이야기, 경계가 불분명한 생각의 생김새, 알쏭달쏭 삶의 온갖 ‘고구마’가 다 모인 전시가 열려 절로 사이다를 찾게 한다. 종로구 OCI미술관(관장 이지현)에서 10월 28일 막을 올린 양정욱 개인전 《Maybe it’s like that》.
도입부에서부터 메인 로비를 가득 채우는 육중한 덩어리와 과감한 직선, 광활한 곡선, 돌돌대는 모터 소리가 관객을 압도한다. 검은 철판 위에 한 아름이 넘는 통통한 돌덩이(?) 둘이 ‘사람 인(人)’자로 포개어져 빙글빙글 돈다. 수많은 작은 알갱이와 요철로 뒤덮인 하얀 표면엔 군데군데 숫자가 쓰인 표식이 박혀 있다. 자전하는 모양새를 보고 있자니, 구글 어스(Google Earth)에서 지구 대신 다른 위성을 두어 바라보는 듯하다. 표면의 요철은 일종의 지형지물의 분포에 대응한다. 지도에 표시하듯 이런저런 택(Tag)을 붙였다. 말하자면 큼직한 입체 조각 약도나 지도인 셈. 돌고 돌아, 같은 부분을 만나도 각자 다르게 바라본다.
조각 너머로 지름 2.4m의 검은 고리가 크게 원을 그리며 우뚝 서고, 그보다 더 긴 나무 막대 세 개가 고리를 관통해 허공에 매달렸다. 무게추가 돌아감에 따라 막대는 사방으로 허우적댄다. 끄트머리에선 간헐적으로 빛이 점멸한다. 무언가 불을 켜고 찾아 헤매는 이미지를 움직임에 투영한다. 서로 닿을 듯 닿지 않고 절묘한 엇갈림을 반복하는 소통의 수고(?)도 느껴진다.
희고 육중한 덩어리, 공중에 늘어진 검은 전선 줄기, 휘고 낡고 벗겨지고 노끈이 둘둘 감긴 나무 막대, 그들을 두루 묶는 크고 강렬한 원, 금속을 덮은 텁텁한 도장 면, 그리고 배경의 흰 벽 중간 어름에 문득 박힌 주먹만 한 돌멩이 둘.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이 모든 요소가 마치 한 장의 그림처럼 얽혀 단번에 시야를 채운다. 곁에 걸린, 골판지에 쓱쓱 그린 조그마한 드로잉 작업이 화면 바깥으로 튀어나온 것처럼. 입체작업임에도 어쩐지 평면과 이질감이 없다. 양정욱의 조형은, 익히 알려진 질료적 측면을 똑 떼어도, 형태와 색채 역시 명백한 실체가 있음을 확인한다.
글 쓰는 작가. 이야기가 중요한 작가. 생각하는 생각을 하는 작가. 작업이 전부가 아닌 작가. 사는 게 작업인 작가. 양정욱은 유형의 작업을 전시장에 내보이는 전형적 작가일 뿐만 아니라 생활 퍼포머이고 문필가이며, 또한 이들 활동을 조직하고 운용하며 장기 유지하는 경영자이기도 하다. 이 자영업자가 이번 개인전을 빌어 들려줄 삶 이야기는, 아마 그럴 법한 애매한 것들, 전시 제목 《Maybe it’s like that》 딱 그것이다.
“양정욱?!” 하면 으레 떠올릴 기존의 조형 메커니즘이, 주어진 형태나 색상, 덩어리를 살리면서 변화를 줄 크고 작은 보조 요소들이 하나 둘 모이고 덧붙고 서로를 꿰뚫고 옭아매며 점차 한 덩어리로 진화하는 연방제의 형상이었다면, 이번 작업들은 들어갈 데 더 들어가고, 나올 데 더 나왔다. 오밀조밀 섬세하면서 두툼하다. 외양은 더 단일하고, 설계는 더 치밀하며, 움직임은 더 긴밀하다. 한 마디로 ‘보다 계획적’이다.
기술 발전과 처우 개선(?)이 누적 퇴적을 거듭해 이제, 조형을 좀 더 다스릴 자신이 생겼다.
우선 어지간한 덩어리들은 뱃속에 내장 대신 소형 모터-손바닥 안에 쏙 감출 만한-를 품었다. 이에 힘입어 전에 없던 앙증맞고 슬림한 모양새, 둥둥 떠 있고 찰싹 붙고 대롱대롱 매달린 형상을 선보인다. 또한 작은 반경은 빠르게 돌고 멈추기 좋다. 축을 잡아 주는 틀과 다양한 모터를 조합해 보다 복합적인 움직임을 달성한다.
아이패드, 모델링 앱, 3D 프린터는 이 작은 모터와 더불어 시너지를 발한다. ‘떠올리는 크기와 모양에 가장 가까운 것’을, 거기에 ‘모터까지 더부살이 가능한 평수’로 구하느라 늘 분주했으나, 이제 뜻대로 직접 빚는다. 조형 결정권에서 과반 이상 의석을 가져온 셈이다.
기껏해야 작은 구슬이나 철사 정도였던 표면 기물들은 이제, 단서의 냄새를 잔뜩 풍기는 작고 다양한 구체적 사물로 확장한다. 덩어리 곳곳에 이미 인물이나 동물의 자태까지 엿보인다.
이들을 배후 삼아, 좀 더 애매하고 미묘하고 간지럽고 어중간한 이야기로 작업 반경을 확장한다. 이전의 조형이 큼직한 상황 덩어리나 제법 선명한 처지를 다뤘다면, 이제 그 언저리에 낀 이야기의 안개를 건들기 시작한 것. 그의 말을 빌리자면, 한 손 가득 감싸 쥐고 찍어 휘갈기던 굵직한 ‘분필’ 대신, 0.3mm 짜리 ‘하이테크-C’를 집었다. 반면 그만큼, 삐져나온 가닥, 불거진 마감은, 자칫하면 티 나고 까닥하면 들통나기 십상이다. 조형적 통제권을 쥔 대가를 치르는 셈이다.
이 모든 진일보를 총동원한 ‘2021년형 설명’은 더 와닿을까? 몇 개의 나무토막이 가늘고 긴 검정 탄소 막대로, 거리를 두고 얼기설기 엮여 공중에 떠 있다. 곡선을 그리며 주변을 궤도처럼 겉도는 플라스틱 재질의 막대는 마치, 핵심을 꿰뚫지 못하고 이곳저곳 괜히 기웃대는-그럼에도 행여나 보탬이 될까 싶어 대범히 버리지도 못하는- 앙상한 힌트를 연상케 한다. 그림인지 글씨인지 무언가 휘갈긴, 급히 뜯어다 쓴 판지 조각이 사방에 달려 버둥거린다. “이만~큼, 그정~도, 저~기쯤” 영락없이 손짓 발짓 몸짓까지 다 끌어다 설명에 열중하는 모양새이다. 올곧지 못한 기둥, 비뚜름한 회전축, 직선인 듯 곡선인 듯 너울대는 실올. 둔각과 예각은 뒤섞이고, 무거운 가운데 가냘프게 움직인다. 거듭된 몸짓은 점차 내용을, 뒤섞인 소리는 차츰 간절함을 잃고 흐려져 어느새, 듣는 이의 눈과 귀에는 그저 메아리처럼 지분거린다. 이 느슨함, 애매함 그리고 엇갈림. 생각의 생김새란 Maybe it's like that, 아마 그럴 것 같다.
양정욱의 작업을 한 문장으로 무리하게 축약하면 ‘보편적 특별’에 시선을 주는 일이다. 작가 포함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 내는 것 중 하나는, 통할 듯 통하지 않는, 그래서 ‘인간인가? 반도체인가?’싶은, 서로 간의 인상 깊은 답답함이다. 미술가로서,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동시대를 사는 사회인으로서 포착한 이 ‘보편적 특별’을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다.
11월 27일(토) 15:00 OCI미술관 전시장에서 열리는 '작가와의 대화' 행사를 통해 양정욱 작가와 직접 정담을 나눌 수 있다. 행사 참석 및 전시 관람 무료. 전시 기간 12월 18일(토)까지. 예약/문의 OCI미술관(종로구 우정국로 45-14 / ocimuseum.org / 02-734-0440).
[전시 INTRO]
“아니요, 살짝 더 치고요. 다소 가벼운 느낌이면 좋겠어요. 아시죠?”
“아~니요- 단정하면서 비스듬하게. 아니, 컬이 좀 자연~스럽게요.”
“아뇨아뇨! 원? 장? 님? 그게 아니래도요?”
“석~석~” 빈 가위 두어 번 괜히 쥐락펴락, 착잡한 얼굴로 입맛을 다신다. 감 잡은 척 끄덕끄덕, 어색한 미소를 찍어 바르며 억지로 손을 놀리는 원장과 손님의 실랑이에 미용실은 오늘도 떠들썩하다.
설명할수록 설명이 더 고플 때가 있다. 대개 어렵고 복잡한 용건도 아니다. 그런데 말이 오갈수록 생각 틈새가 서로 점차 벌어져 견우직녀처럼 만날 줄을 모른다. 힐끗 살피니 고개를 갸우뚱, 안색만 봐도 머릿속에 무럭무럭 부푸는 물음표가 훤하다. 도통 감 못 잡고 허우적대는 상대를 붙들고 거듭 다그치다 ‘앎’과 ‘전달’은 다름에 통탄한다. ‘거시기’, ‘whatchamacallit(있잖아 그거)’ 괜히 있는 말이 아니네 싶다. 약도 하나, 헤어스타일 하나에도 이리 야단법석인데, 깨달음이나 진리와 같은 좀 더 그럴싸한 종목은 오죽할까? 염화미소拈花微笑, 이심전심以心傳心은 절간의 ‘거시기’이다. 묵비권 사수하며 부처핸섬, 줄기차게 꽃만 흔들어대던 부처님은 “여차하면 나만 ‘설명충’ 된다”라는 사실을 진작 깨달았던 것이다.
김영기 (OCI미술관 선임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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