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이정은: 가까이 오래
2021.12.08 ▶ 2021.12.28
2021.12.08 ▶ 2021.12.28
전시 포스터
노숙자
개양귀비 81×130cm 장지에 채색 2006
이정은
CEO의 서가 100x270cm, 장지에 채색, 2021
노숙자
목단 60.5×72.5cm 장지에 채색 2017
노숙자
연산홍 130×81cm 장지에채색 2018
노숙자
채송화 22×36.5cm 장지에 채색 2018
이정은
소식2 72.5x50cm, 장지에 채색, 2021
이정은
소식1 72.5x50cm, 장지에 채색, 2021
이화익갤러리에서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노숙자, 이정은 2인전을 마련하였다.
다양한 꽃을 그리는 노숙자 작가와 일상의 풍경을 담백하게 그려내는 이정은 작가는 모녀지간이다.
엄마와 딸의 관계이기도 하지만 두 작가 모두 서울예고와 서울대학교 미대를 졸업한 선후배 관계이기도 하다. 모녀가 함께하는 이번 전시는 2005년 첫 2인전 이후 16년 만에 개최되는 전시이다.
노숙자 작가는 “꽃의 화가”로 알려져 있을 만큼, 평생 화폭에 꽃을 그리는 작업에 헌신해왔다.
양귀비, 라벤더, 수국 등 우리에게 익숙한 꽃부터 이름 모를 생소한 야생화까지 노숙자의 화폭에서 조화롭고 생생하게 재현된다.
노숙자 작가는 실제 대상을 직접 보고 관찰하여 그리는 사생의 방식을 따르고 있다. 쉽게 볼 수 없는 귀한 야생화를 구해다 심기도 하고, 여러 종류의 꽃씨를 뿌려 키워서 꽃을 피워내기도 하는 노숙자 작가의 정원은 또 다른 화폭이다. 꽃을 키우는 정성을 바탕으로 오랫동안 사랑과 애정으로 관찰한 꽃이기에 노숙자 작가가 그려낸 꽃은 단순한 재현이라기 보단, 고유한 개성과 정체성을 유지한 생명력 있는 개체로 다가오게 된다.
이정은 작가는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상의 모습, 그 속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변화들을 차분하면서도 담백하게 그려내는 작업을 보여주고 있다.
키우는 반려동물, 자신이 좋아하는 오브제, 작업실에 놓은 화초 등 이정은 작가의 주변에 늘 함께 있고 위안을 주는 존재들은 자연스럽게 그림의 주제가 된다.
특히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본인의 서재 혹은 주변 지인들의 서재의 모습을 조선시대 회화의 한 형태인 책가도의 형식을 빌려 그려진 ‘’서재‘ 시리즈 작품은 동양화의 전통 기법을 계승하고 있지만 현대적인 미감이 돋보인다.
거대한 사회적 담론이 아닌 솔직하고 담백한 본인의 이야기를 담담히 풀어내는 이정은 작가의 작품은 부드럽고 소박하지만 결코 연약하지 않은 힘이 느껴진다.
알맞은 농도의 아교포수와 물감을 겹겹이 올리고 또 올리는 수행과도 같은 과정들을 반복하면서 완성되는 성실함이 작품에 녹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정은 작가가 그리는 꽃은 늘 화병에 꽂아진 모습이다.
작품 속 화병은 어머니 노숙자 작가가 대만 여행길에 사다 준 중국 도자기 화집에 나오는 화병이다.
이정은 작가는 그림을 처음 배웠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어머니께 막상 그림을 배운 기억은 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어머니이자 선배인 노숙자 작가의 ‘가르침’이라는 형태는 학교와 화실에서의 교육처럼 행해지는 것이 아닌 슬쩍 건네는 화집, 꾸준히 붓을 잡고 그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딸이자 후배인 이정은 작가에게 전해지고 있다.
가까이에서 오랫동안 서로에게 보이지 않는 영향을 주고받으며 쌓여온 시간들은 엄마, 딸, 주부, 아내, 선생님 등 다양한 역할을 해내야하는 삶 속에서도 작가의 모습을 잃지 않고 꾸준하고 성실하게 붓질을 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 중 하나였을 것이다. 어머니에게서 딸에게로, 먼저 붓을 들었던 선배에게서 후배에게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전시장에서 확인 할 수 있다.
노숙자, 이정은 작가의 2인전 “가까이 오래”는 12월 08일부터 28일까지 21일간 이화익갤러리에서 진행된다.
<이정은 작가노트>
그림을 처음 배웠던 시절, 엄마와 나는 내 그림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누지 않았다. 학교와 화실에서의 배움에 본인의 가르침을 구태여 더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그림 이외의 모든 것은 엄마에게 배웠는데도, 막상 그림은 배운 기억이 없다. 시간이 한참 흐르고 주어진 시간을 온전히 나 혼자 쓸 수 없는 환경이 되었다. 그러자 긴 세월 곁에서 보아온, 그림을 가르친 적 없는 엄마의 영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그림의 소재를 가까운 곳에서 찾는 것이다. 엄마가 마당에 씨앗을 뿌리고 꽃을 가꾸며 시시각각 변하는 계절의 흐름 속에서 작품의 대상을 골랐던 것처럼, 나도 일상에서 마주하는 고양이나 계절 과일, 최근에 읽은 책, 선물 받은 장식품 등을 바라보게 된다.
두 번째는 오래 보고 천천히 그리는 것이다. 군락을 이룬 계절의 꽃을 화폭에 담고 싶은 때를 놓치지 않고 사생을 떠나거나 챙 넓은 모자를 쓰고 마당에 머무는 모습을 자주 보아왔다. 대상을 지긋이 관찰하며 오래도록 그리는 과정의 재미를 나도 알고 있다.
세 번째는 생활인으로 충실한 것이다. 주어진 역할 속에서 작업 시간에 대한 갈증을 항상 느낀다. 하지만 그림 그릴 시간을 확보하면서도 엄마, 딸, 주부, 선생님 등의 모든 역할에 부족함이 없었던 모습을 생각하면, 외동을 둔 엄마로서나 파트타임 강사로서의 내 상황을 핑계 대기가 어렵다.
마지막으로, 최근에는 평생의 위안이자 즐거움인 그림이라는 벗을 언젠가는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 그 유한한 시간을 새삼 느끼게 되니 지금의 붓질이 애틋하고 소중하다.
유난히 힘들었던 2021년을 마무리하며 엄마와 나의 작업실 벽면에 차곡차곡 쌓인 그림을 한 공간에 펼쳐 봤다. 식물과 교감하며 자연에서 위로받던 엄마의 시간과 사물에 담긴 기억과 뜻을 되새긴 나의 시간을 들여다보니 우리는 좀 다르지만, 또 꽤 닮은 것 같았다.
— 2021년 11월, 이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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