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화선
팔월의 일요일들-3 도자, 19.5x31x18cm, 2022
양화선
가보지 않은 풍경-17 도자, 25x23x20cm, 2021
양화선
팔월의 일요일들-7 도자, 9x44x19cm, 2022
갤러리 담에서는 6월에 조각가 양화선의 < 8월의 일요일>이란 주제로 전시를 기획하였다.
양화선은 기존의 브론즈라는 빛나고 견고한 재료를 사용해서 작업을 해왔으나 이번에는 흙으로 부조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흙이 주는 부드러운 물성이 나이든 칠 십대 중반의 작가에게 따스함과 위로를 주고 있음을 작업에서 느낄 수 있다. 도자작업이 주는 가마안에서의 유약의 변화와 터짐등이 작가의 나이에는 자연스레 포용하면서 즐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평상시에 책을 즐겨보는 작가는 파트릭 모디아노의 <팔월의 일요일들>이라는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서 이번 전시제목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양화선 작가는 홍익대학교에서 조각을 전공하였으며 이번 전시에는 신작 20여점이 선보일 예정이다.
■ 갤러리 담
작가의 글
2020년에 도자 작업을 시작했다. 1986년에 테라코타로 첫 번째 개인전을 열었으니, 흙으로 시작하여 30여 년 만에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셈이다. 그동안 작업의 내용에 따라서 재료를 달리했지만, 대부분은 브론즈로 작품을 제작했다. 브론즈는 용접을 통해 섬세한 표현이 가능하다. 그러나 점토로 빚은 원형이 주물공장에서의 복잡한 과정을 거치며 본연의 형태를 잃어 가는 것, 그리고 원하는 대로 채색을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도자 작업을 하는 동안 나는 오롯이 혼자만의 공간에 머물며 작품을 완성해 나간다. 50x50x70cm는 내가 사용하고 있는 가마의 최대 면적이다. 점토를 준비하고 형상을 빚기 전에, 먼저 가마의 면적과 곧 만들게 될 작품의 크기를 맞추어 본다. 흙을 주무르는 손끝에서 강인함과 섬세함을 동시에 발견한다. 작품의 건조와 소성을 마치고 가마의 문을 열 때마다, 불안과 기대, 실망과 환희가 공존한다. 색채는 변화무쌍하며 자유롭다. 다채로운 형태의 정신적 부침을 겪는 과정은 도자 작업이 안겨주는 커다란 기쁨이며 기대감이다.
2022년 5월
양화선
평론: 8월의 일요일-나는 푸른 그늘 아래로 간다
세계 위에
지붕과 풍경들 위에
내 몸을 풀어놓고 싶구나
나의 꿈속에서는 쥐를 쫓는
불타는 욕망과 함께
-파블로 네루다, <고양이의 꿈>
햇살을 가득 머금은 고양이가 지붕 위에서 녹촌리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삼십 여년의 봄과 겨울을 견뎌낸 나무는 작업실 벽과 지붕을 따라 고양이에게로 손을 뻗는다. 술래를 찾다 미로 같은 골목에서 길을 잃은 소녀는 연원을 알 수 없는 푸른 바다를 만나고 태초의 바람을 찾아 이정표 없는 길을 따라 낯선 목적지를 여행한다. 그곳은 피안의 세계. 하얀 햇살로 살을 데우는 둑 위에 지중해처럼 앉아 있는 고양이가 있는 곳. 결코 다다를 수 없는 과거가 고대 도시처럼 펼쳐진 세계. 하지만 결코 오지 않을 미래.
작품 속에는 보드라운 햇살, 비밀을 숨긴 친근한 바다, 푸른색을 머금은 잎과 나무, 그리고 머물다 떠나는 모든 것처럼, 꿈과 인간의 관계처럼 이들 사이를 스쳐 지나는 바람이 있다.
양화선은 1986년 첫 번째 개인전에서 선보인 테라코타 이후 30여 년 동안 브론즈, 건축모형재료, 유리조각, 에폭시 등 현대 문화의 산물로 쓰이는 재료들을 혼합하여 풍경조각(landscape sculpture)이라는 장르를 독보적으로 발전시켜왔다. 그리고 최근 다시 흙으로 돌아왔다. 인생의 비유처럼 흙에서 다시 흙으로 돌아온 셈이다.
조각의 많은 형식은 돌, 철, 나무, 스테인레스스틸 등 재료의 속성에서 만들어지고 그것으로 인해 여타 예술 형식과 차이를 갖는다. 그 차별성이 조각을 조각답게 하는 것도 있지만(가령 양감, 질감, 기념비성, 매스 등) 또한 이러한 재료적 특성으로 인해 형식이 제약되기도 한다. 그래서 전통적인 재료를 다루는 조각가들은 대부분 강도 높은 육체노동자가 되어야한다. 작가 역시 첫 개인전 이후 오랜 시간 브론즈로 풍경 조각을 해왔다. 세월이 흐르니 강도 높은 브론즈는 자연스럽게 부드러운 흙의 유연성으로 변하게 되었다. 흙을 빚고, 긴 시간 천천히 건조시키고, 색을 칠하고, 굽고(작품이 가마에서 익어가는 시간은 작가에게 더할 나위 없는 묘한 설렘과 기대감의 시간이다) 열을 식히는 일련의 창작 과정은 기존 조각에서는 가져보지 못한 가슴 뛰는 경험이다. 마치 품 안에 편안히 안기는 아이처럼 작업은 침착하고 조용하게 전개되지만 형태와 색채의 자유로움과 다채로움은 조각과 회화라는 장르를 넘나드는 희열이 있다.
최근작들은 자연(풍경)묘사는 어렴풋하고 인물은 어눌하다. 어리눅은 형상, 색상표로 포착되지 않는 색채는 작품이 생명과 흐름, 바람 같은 유동적인 것들에 기대어 있기 때문이다. 무릇 생명의 모습은 포착할 수 없음이다. 너와 나의 경계가 겹쳐 있음이고 대상과 마음이 포개져 있음이다. 풍경조각은 이제 나무와 인물의 형체가 명확한 바깥보다 흐리멍덩한 속살과 맥박으로 표현된 내면의 풍경으로 다가온다. 인간의 마음이 점액질이듯 풍경은 이제 마음이다. 새로운 풍경조각으로 나아가는 셈이다.
하늘 바다 햇살 나무 바람으로 우주 공간을 포괄하고 시간을 은유하는 것은 자연 영역만이 아니라 정신의 움직임 즉, 자기 초월의 영역을 나타내는 것이리라. 삶의 덧없음 vanité과 세상이 비어 있음vacuité을 아는 노년의 작가가 건네는 실존과 자유의 풍경은 아닐까.
-정형탁(예술학, 독립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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