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은님: 마리타가 만든 정원 Marita’s Garten
2022.06.02 ▶ 2022.06.26
2022.06.02 ▶ 2022.06.26
전시 포스터
노은님
흰 점들과 노는 날 2004, Mixed media on paper, 71.5 x 101.5 cm
노은님
초록 나무들 사이에서 1987, Mixed media on paper, 71.5 x 101.5 cm
노은님
빨간 구름 1987, Mixed media on paper, 71.5 x 101.5 cm
노은님
많은 색들 1991, Mixed media on paper, 71.5 x 101.5 cm
노은님
무제 1986, Mixed media on paper, 101.5 x 71.5 cm
노은님
마리타가 만든 정원(Marita_s Garten) 2002, Acrylic on canvas, 40 x 47.1 cm
노은님
마리타가 만든 정원(Marita_s Garten) 1999, Acrylic on canvas, 40 x 49.8 cm
노은님
내 짐은 내 날개다(meine flugel sind meine last) 1986, 한지, 돌, Overall dimensions variable
가나아트는 단순하지만 원초적인 자연의 힘으로 가득한 작업을 일생에 걸쳐 지속해 온 생명의 화가, 노은님(Ro Eunnim, 1946~)의 개인전인 《마리타가 만든 정원(Marita’s Garten)》을 선보인다. 그는 한국 작가로서는 최초로 국립 함부르크 조형예술대학의 정교수로 임용되어 20여 년간 독일 미술 교육에 기여한 한편, 바우하우스, 베를린 세계 문화의 집, 베를린 도큐멘타, 국제 평화 비엔날레, 제5회 국제 종이 비엔날레 등 유수의 전시에 초대된 바 있다. 또한 2019년 11월에는 비독일 출생의 작가로서는 유일하게 독일 미헬슈타트의 시립미술관에 그를 기리는 영구 전시관이 개관하였는데, 이를 통해서도 그가 독일 미술계에 남긴 확실한 족적을 확인할 수 있다. 가나아트는 2019년부터 매년 각기 다른 주제와 시기로 분류한 작품을 선보이는 개인전을 개최함으로써 그의 방대한 작업 세계의 일부나마 가시화하려는 노력을 이어오고 있다. 이번 개인전에서는 1980년대에서 1990년대에 작업한 색면추상 회화에 집중하여 그가 화폭에 펼쳐낸 풍요로운 색의 향연을 소개하고자 한다.
노은님은 한지에 그린 아크릴화, 설치미술, 퍼포먼스, 테라코타 조각, 심지어는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에 이르기까지 매체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장르의 작업을 선보여 왔는데, 그중에서도 1970년대에서부터 1980년대에 그는 자연을 구성하는 힘에 대한 심도 있는 질문을 담고 있는 퍼포먼스 작업을 선보였다. 노은님의 예술에 대한 생각과 작업 과정을 기록한 바바라 쿠젠베르그(Barbara Kusenberg)의 다큐멘터리 영화, <내 짐은 내 날개다(Meine Flügel sind meine Last)>(1989) 속에서 작가는 흙으로써 형상을 빚어내는 창조주로서, 그리고 자연의 신비를 밝히고자 하는 예술가로서 스스로를 정의한다. 실제로 작가는 함부르크의 한 공원에서 나뭇가지와 종이로 만든 나뭇잎을 실제의 나무에 매단다든가, 합판으로 만든 강아지를 끌고 산책을 가는 등의 퍼포먼스를 함으로써 예술과 자연의 경계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그 경계를 넘나드는 예술가로서 행위했다. 또한 쿠젠베르그의 영화 속에서 그는 퍼포머들에게 비늘, 나뭇잎, 날개 등을 붙여 물고기-인간, 나무-인간, 새-인간으로 변모시키는 인간과 자연의 결합을 시도하는 퍼포먼스를 통해 인간 또한 자연의 일부라는 인식을 내비친 바 있다. 이와 같은 퍼포먼스들은 노은님의 작업의 근간이 ‘자연’에 있으며 이를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어떻게 풀어낼지에 대해 그가 고뇌해왔음을 보여준다. 1980-90년대의 색면추상 회화 역시 이러한 고민을 평면 위에 풀어낸 것이라는 점에서 동일선상에 놓인다.
노은님은 자연을 구성하는 물질에 대한 작가만의 해석을 색채를 통해 시각적으로 화면에 구현했다. 세상 만물은 물, 불, 흙, 공기의 4원소로 구성되어 있다는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이 주창한 4원소론이 각기 파란색, 빨간색, 밤색, 검정 또는 흰색으로 그의 회화에 나타난다. 특히 1980년대에서 1990년대의 색면추상 회화에는 작가의 4원소론에 대한 관심과 색의 사용에 대한 고민의 흔적을 여실히 찾아볼 수 있다. 자연에 살고 있는 다양한 생명체를 자유로운 선으로 그려낸 그의 구상 회화와는 달리, 추상 회화는 눈 또는 발과 같이 생명체의 존재에 대한 파편적인 단서들만이 드러난다는 점과 폭발적인 원색의 사용이 그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셀 수 없이 많은 총천연의 색을 담고 있는 자연과도 같이 그는 화면 위에 다채로운 색을 풀어내면서도 그것들이 충돌하지 않고 조화되도록 하는 절묘한 색에 대한 감각을 보여준다. 이처럼 각각의 색을 통해 그것이 표상하는 자연의 4원소를 표현해낸 그의 회화는 생명과 자연에 대한 일종의 찬사와도 같다.
이번 전시의 제목인 《마리타가 만든 정원》은 그가 현재 살고 있는 미헬슈타트의 고성을 알게 된 계기이자 그가 미헬슈타트에 거주한 뒤 제작한 작품으로 구성된 1999년 개인전의 제목이기도 하다. 우연한 기회에 함께 그룹전에 참가했던 작가인 한스 시버딩(Hans Sieverding, 1937-2019)의 부인인 마리타가 여는 가든 파티에 초대를 받았던 노은님은 그녀가 꾸며놓은 아름다운 정원과 미헬슈타트의 자연에 반하여 그곳에 정착하기를 결심했다고 한다. 추운 북독 지역의 함부르크 작업실을 떠나 따뜻하고 온화한 기후의 남독 지역의 미헬슈타트 작업실로 옮겨온 이후, 그의 작업은 말 그대로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와 그곳에서의 생에 대한 기쁨으로 넘쳐난다. 특히 눈부신 남독의 햇살은 그로 하여금 다채로운 자연의 색을 더욱 자유롭게 사용하는 데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 개인전은 이처럼 그의 작업에 큰 전환기를 맞이하는 계기가 된 미헬슈타트로의 이주를 전후로 한 시기의 작품세계를 조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마리타가 만든 정원》이라는 전시의 제목과도 같이 이번 개인전은 노은님이 화폭에 가꾼 그만의 정원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또한 그가 마리타의 정원에 감명을 받아 노은님만의 정원을 꾸민 것과 같이, 전시장을 찾은 이들이 각기 자신만의 정원을 마음에 품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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