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포스터
양정욱
서서 일하는 사람들 #22 2022, 나무, 모터, 전구, 실, 복합재료, 250(h)x180x180cm
양정욱
서서 일하는 사람들 #22 세부
양정욱
서서 일하는 사람들 #22 세부
양정욱
전시전경
양정욱
기억하려는 사람의 그림 #5 2022, 나무, 건물 외벽재에 스크래치, 목탄, 125x125cm
양정욱
우리는 그 대각선에 대해 설명했다 #s2 2022, 합성수지, 목재, 47(h)x17.5x18cm
말없이, 정성껏
서서 일하는 사람. 이 사람은 앉을 수 없다. 앉을 마음의 여유가 없다. 그는 성실하게 주위를 돌아보고 끊임없이 좌우를 확인하며 규칙적으로 종을 울린다. 높다란 망루의 빛은 바쁜 마음처럼 꺼지지 않고, 어깨 아래에 사방으로 뻗은 팔들은 접혔다 펴졌다 하며 시종일관 움직인다. 몸통에는 열심히 돌아가는 태엽과 끈들과 곳곳에 놓인 기물들이 엮이며 서로를 독려한다. 말이 없는 이 사람은 이렇게 착실하게 주변을 살피고 있다.
삶의 구석구석을 바라보며 상상을 이어가고 이를 작품으로 풀어내는 작가 양정욱은 이야기꾼이다. 그는 자신의 머리 속에서 끝없이 나오는 이야기들을 빠르게 그린 드로잉으로, 움직이는 조각들로, 자신의 음성으로, 글로 사람들에게 들려주었다. 수필의 한 구절 같은 제목을 가진 그의 전시들은 작품들 사이를 떠도는 작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부지런히 움직이는 저 조각처럼 말없이 정성껏 작업한 작품들을 들고 나왔다. 아무 말 하지 않는 그의 이번 전시를 채우는 것은 무엇일까?
아무런 말도 않는 이번 전시에서 침묵의 행간을 채우는 것은 작가의 새로운 드로잉들이다. 움직이는 조각, <서서 일하는 사람들>의 아늑한 빛을 받으며 벽에 걸린 <기억하려는 사람의 그림>연작은 조용히 침잠하고 있다. 그가 평소 빠르게 그려내던 다양한 형태들은 합판을 덮은 건물용 외벽재에 시간을 들여 새겨졌다. 외벽재 특유의 거친 표면을 철솔과 목탄 등으로 여러 번 긁고 손으로 문질러 완성한 드로잉들은 다음 이야기를 향해 빠르게 달려나가는 듯했던 이전의 드로잉과는 다르게 작품 하나하나의 속을 깊이 보여준다. 긁어낸 힘과 횟수, 도구의 종류를 달리하며 미세하게 음양이 표현된 드로잉들은 작가가 작업한 시간만큼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시간을 들여 천천히 보게 만든다.
이처럼 드로잉들이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을 잡고 있을 때, 작가는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저 저 멀리 바쁘게 움직이는 조각이 사방을 부지런히 밝히고, 아슬아슬한 좌대 위에서 두 팔로 균형을 잡고 있는 작은 덩어리 조각들이 공간을 채울 뿐이다. 그럼에도 이 작품들 사이에는 그들의 관계가 만드는 어떤 이야기가 공기처럼 흐른다. 시간을 들여 정성껏 채워진 하나하나의 작품들은 서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그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의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그렇게 말이 없는 작품의 시간은 천천히 흐르며 아무도 하지 않는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양정욱 작가는 언제나 그런 이야기를 해왔다. 사람들의 이야기. 한 사람이 어느 순간을 살아가는 이야기. 그 순간에 일어나는 모든 사소한 일과 그 사람이 느끼는 모든 감정과 각각의 사람들이 만나 펼쳐지는 그런 이야기. 그가 들려줬던 이야기는 나름의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였고 그는 항상 정성을 다해 그것을 보여줬다. 그러다 문득 말이 없어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그 삶의 이야기들이 아늑한 빛처럼 가슴에 잔잔히 스며드는 작품을 만들었다. 때로 그 어떤 말보다 힘이 되는 것이 있다. 따뜻한 눈빛, 작은 행동, 함께 하는 짧은 시간. 이번에 양정욱 작가가 ‘아무런 말도 않고’ 바쁘게 움직이며 준비한 이번 전시에는 조용히 곁을 지키는 다정한 마음이 흐르고 있다.
전희정(갤러리 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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