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명: 비스듬히 떨어지는 풍경 – 재난, 가족
2022.09.23 ▶ 2022.11.20
2022.09.23 ▶ 2022.11.20
홍순명
흔한 믿음, 익숙한 오해 아크릴과 유채, 260x162cm, 2020
홍순명
흔한 믿음, 익숙한 오해 아크릴과 유채, 182x227cm, 2021
홍순명
풍경-아이러니 II 캔버스에 유채, 152x232cm, 2022
홍순명
빙산 캔버스에 유채, 162x130cm, 2022
홍순명
전시전경
홍순명
전시전경
홍순명
전시전경
기획 의도 및 전시 주제
▪ 보는 방식을 바꾸면 모든 것이 바뀐다
사비나미술관(관장 이명옥)은 홍순명의 《비스듬히 떨어지는 풍경 – 재난, 가족》전을 개최한다. 이번 개인전에서는 “부분과 전체”라는 명제를 20년 동안 탐구해온 ‘사이드스케이프(Sidescape)’의 주제의식의 심화, 확장을 시도하며 작품의 메시지에 집중할 수 있는 대규모 연작들을 선보인다.
‘사이드스케이프’는 중심과 주변의 고정된 역학 관계를 전복시킬 수 있는 지점을 모색하는 홍순명 특유의 독창적 미학 개념이다. 전체와 부분, 중심과 주변의 관계는 인간과 자연, 지배와 피지배, 주류와 비주류, 다수와 소수, 중앙과 지역, 서양과 동양, 문명과 미개, 전경과 배경, 외부와 내부 등 대립항(對立項)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홍순명의 ‘사이드(side)’적 시각은 중심과 주변의 구분을 통해 형성된 이분법적 대립 논리, 양자택일적 사고, 위계(位階)와 차별의 경계를 해체하고 중심의 관점이 아닌 주변의 관점에서 대상을 바라보고 새롭게 인식하는 시각혁명을 뜻한다. 중심을 열망하거나 중심으로의 진입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중심 권력에 의문을 제기하고 대항하는 방식으로 주변부의 정체성을 확립한다. 비유하자면 전혀 눈길을 끌지 못한 단역에 불과한 존재(변두리, 지역, 가장자리)를 선택해 주역으로 만드는 전략이다. 즉 ‘사이드스케이프‘ 개념의 핵심은 다양한 가치 존중 담론과 통합적 시각이다.
홍순명 작가는, 본 전시의 의미에 대해 “Side(비켜난 풍경)라는 단어의 의미를 발전시키려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인간의 이성, 인식, 체력, 습관, 합리적 사고 등을 기준으로 인간의 몸과 정신이 보편적으로 수용 가능한 범위를 넘어서는 모든 것들을 side에 포함시켰다.”라고 설명한다.
작은 캔버스들이 재조합되어 만들어진 거대한 재난 풍경은 인간 인식의 절대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사유의 문을 열어준다. 화면을 작게 분할하는 의미는 대상이 가진 고유한 특성이나 이야기를 제거하고 색과 붓터치 등 순수한 회화적 감각만으로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있다.
또한, 본 전시에는 역사적 변환기가 가족 간의 갈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미학적으로 탐색한 <흔한 믿음, 익숙한 오해> 연작들도 소개된다. 인생에 대한 철학적 사색과 통찰을 통해 어머니와 아들 (작가) 간의 갈등이 단순한 세대 간의 갈등이 아니라 역사관, 세계관의 갈등으로 확대되는 지점도 모색한다. 작가는 본 전시를 통해 회화적 감각을 실험하고 풍경 미학을 새롭게 정립하는 길을 제시한다.
전시 구성 및 주요 전시 작품 소개
▪ 2층 - <풍경 – 아이러니>
2층 전시실에는 대상에 대한 주체의 개입을 배제하고 보도사진을 활용, ‘사이드’적 시선으로 바라본 재난 풍경 연작이 소개된다. 규모가 최대 1,080cm에 달하는 거대한 재난 풍경 연작들은 60, 50cm 사이즈의 130~180개 캔버스로 분할되었다가 재조합된 이미지로 사비나미술관 전시장 조건을 고려해 제작됐다. 태풍, 화산, 폭발과 같은 재난 풍경을 작품 소재로 선택해 초대형 화면에 표현한 배경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화면이 너무 작으면 회화적 느낌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작가의 예술관이 반영됐다. 다음은 압도적인 크기와 엄청난 힘, 바로 숭고의 체험이라고 부르는, 공포가 기쁨으로 전환되는 강력하면서도 모호한 복합감정을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다. 즉 숭고의 양면성인 불쾌와 쾌, 고통과 환희, 부정과 긍정 등이 공존하는 양가적 감정을 극대화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
홍순명의 작업에 영향을 미친 숭고 개념은 현대 미학 이론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카시우스 롱기누스는 “진정한 숭고미는 내적인 힘이 작용하여 우리의 영혼을 고양시키고 황홀감을 낳게 하는 것”, 영국의 문필가이자 정치가인 에드먼드 버크는 “무시무시한 모든 것이나 무시무시한 대상과 관련된 것, 또는 공포와 유사한 방식으로 작용하는 어떤 것이든지 숭고의 원천”이라고 정의했다.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미와 숭고는 매우 상반되는 본성을 가진 관념들로서, 미는 감미롭고 긍정적인 쾌이고, 숭고는 오직 불쾌를 통해서만 가능한 부정적인 쾌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해 감상자에게 강력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포스트 모던 숭고 미학을 정의했다.
작가는 가뭄으로 인한 대형 산불, 홍수와 같은 실제 벌어진 국내외 재난 사건의 이미지를 차용한 작품 외에도, 작가의 기억 속에 죽음의 공포와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곳으로 남은 바다 풍경을 선보인다.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으로서의 재난에서, 각자가 바라보는 거대하고 광활한 자연 풍경 그 자체로서의 아름다움을 끌어내, 이질적인 것들의 공존과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홍순명 작가는 ”미의 예찬과 재난의 고통이라는 상반된 상황이 공존하는 불편한 풍경은 오히려 나의 미학적 호기심을 한껏 자극했고 Sidescape라는 명제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 계기가 되었다”라고 밝히며, 인간의 시선이 닿지 않는 것들, 이해 범위를 넘어선 것들을 ‘사이드스케이프’로 재정의하고 있다.
▪ 3층 - <흔한 믿음, 익숙한 오해> 연작
3층 전시실에는 역사적 변환기가 가족 간의 갈등에 미친 영향과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미학적으로 탐색한 <흔한 믿음, 익숙한 오해> 연작들이 소개된다. 작가는 성장 과정이 다르고 삶의 가치가 전혀 다른 가족 내 세대 간의 입장 차이로 벌어지는 대립과 갈등, 단절의 현상과 원인에 주목한다. 한 세대가 처한 시대적 상황과 그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사건이 결합되어 세대를 구별 짓는 특성들이 드러나는 현상을 가족사진에서 가져온 인물들과 급격한 사회변동, 문화변동기의 한국적 사건들을 조합해 탐구한다.
홍순명이 개발한 독창적인 회화기법으로 완성된 연작에는 각기 다른 대상과 시간대의 이미지가 공존한다. 작가는 어머니의 앨범에서 발견한 어머니 혹은 가족의 이미지를 선택해 캔버스 위에 빛바랜 흑백 사진 같은 느낌을 주는 최초의 화면을 그린다. 그런 다음 그림 위에 1932년부터 1985년 사이에 한국에서 벌어졌던 어머니와 아들 세대를 상징하는 사건들, 예를 들면 6.25 전쟁 같은 사건들의 이미지를 화면에 실루엣으로 비추고 그 형태 그대로 마스킹 테이프를 붙인다. 테이프가 붙은 화면 위에다 작가의 사진이나 그가 겪었던 사건 등의 이미지를 색을 사용해 그려 넣고 테이프를 제거하면, 최종적으로 화면에는 흑백과 컬러의 혼재, 사건들의 분할, 기억 속에 각인된 상처의 흉터 자국 같은 느낌을 주는 낯선 이미지가 나타난다.
중층적, 복합적 이미지는 작가의 시선으로 재해석된 것으로 시간적, 물리적 연결성을 배제한 채, 각기 다른 역할과 위치에 있는 가족 구성원 간에 벌어진 재난과도 같은 충돌과 혼란 상황을 암시한다. 모호하고 혼재된 화면은 가족 내 세대갈등의 요인을 다층성과 다의성 속에서 파악해야 하며 단순한 세대 간의 갈등이 아니라 역사관, 세계관의 갈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인식과 진정한 소통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흔한 믿음, 익숙한 오해> 작업은 어머니와 나의 관계를 위주로 하는 나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다. 대한민국의 너무 빠른 변화의 부작용으로 생긴 세대 간의 갈등은 사실 우리 가족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1932년생이신 어머니를 근대화의 상징으로, 1959년생인 나를 현대화의 상징으로 두고 그 사이에 벌어진 대한민국의 많은 사건들을 접목시켜 작업을 했다. 모두가 진지하게 노력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서로 너무 다른 가치관으로 인해 누더기처럼 되어버린 상황을 연출해 보았다. 살풀이를 하는 듯 진행한 작업과정에서 인텔리이시고 유머러스하신 어머니의 몰랐던 많은 것들을 알게 된 뜻밖의 수확도 있었지만 결국은 불편한 풍경화 혹은 자화상이 되어 버렸고 이는 여전히 ‘비켜가는 풍경, Sidescape’가 되어 버렸다.”
-홍순명 「비스듬히 떨어지는 풍경」 (2022) 작업 노트 중
▪ 4층 - <빙산> 연작
<빙산> 연작을 통해 작가가 주목한 풍경은 거대한 빙산이 아니라 얼음층에서 쪼개져 나온 작은 얼음덩어리, 즉 빙산의 ‘사이드스케이프’다. 바다 위에 흐트러져 있는 빙산 조각들의 풍경부터, 빛의 투과와 반사로 어두운 배경 안에 반짝이는 얼음알갱이, 위에서 아래로 물감이 흘러내린 듯 평면 위에 녹아내린 흔적만 남은 얼음 조각 등을 다양한 형태와 색으로 구현했다.
작가는 한순간 존재하다가 쉽게 사라져 가는 작은 것들에 대한 연민과 무력한 존재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얼음 조각에 감정 이입하여 표현했다. 거대한 우주의 순환 법칙에 따라서 사라지는 얼음덩어리는 세상의 모든 것들은 소멸할 수밖에 없다는 존재의 슬픔을 상징한다. 얼음덩어리는 생성과 소멸의 회화적 표상이자 홍순명 작가가 추구하는 ‘사이드스케이프’ 미학의 결정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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