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준
은희, 나이지리아에서 온 윌프레드 그리고 한국에서 태어난 자녀들 서울, 2021, 피그먼트 프린트, 138x178cm
최원준
카메룬에서 온 크리스와 살로메 그리고 한국에서 태어난 자녀들 일산, 2021, 피그먼트 프린트, 91x75cm
최원준
카메룬에서 온 올리비아의 점심식사 파주, 2021, 피그먼트 프린트, 55x140cm
최원준
하이라이프 파주, 2021, 피그먼트 프린트, 55x146cm
최원준
미국에서 온 데븐 스몰 동두천, 2021, 피그먼트 프린트, 138x178cm
최원준
엘림교회 파주, 2022, 피그먼트 프린트, 120x115cm
최원준
보산동 아프리카 타운과 마약판매상이 감옥에서 그린 보산동 아프리카타운 지도 2022, 피그먼트 프린트, 55x185cm
최원준
나이지리아에서 온 존 동두천, 2022, 피그먼트 프린트, 55x73cm
최원준
나이지리아에서 온 치도제 동두천, 2021, 피그먼트 프린트, 55x73cm
최원준
가나에서 온 밀러 파주, 2021, 피그먼트 프린트, 55x73cm
최원준 : 캐피탈 블랙, 아프로-아시아의 미래
최원준은 정치, 이데올로기 등 사회구조의 변경이 어떠한 방식으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장소와 그들의 정체성에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고민하며 작업하고 있다. 작업 활동 초반,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냉전 이데올로기와 근현대사의 숨겨진 맥락들을 사진, 영상, 아카이브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드러내던 작가는 2013년부터 아프리카와 동아시아의 관계에 대한 연구와 작업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아프리카와 동아시아, 두 지역은 그 지리적 거리만큼이나 심리적 거리감이 있어 연결 짓기가 쉽지 않다. 지배-피지배 관계를 구성했던 서구 열강과 아프리카, 혹은 동아시아는 선의의 관계만을 형성한 것은 아니었지만 외려 그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교류가 많은 편이다. 이에 반해 각각 대상화되었던 두 지역은 과거 피식민지의 역사, 이로 인해 불가피하게 후행되는 냉전 이데올로기 하의 민족 통합의 과제, 군부 독재의 등장 등 연쇄 고리로 얽혀있는 복잡다단한 역사적 과정을 공유하고 있음에도, 여러모로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과거에도 관계가 전무한 것은 아니었으며, 최근에는 교통과 통신, 미디어의 발달로 공식적인 국가 간의 관계 외에도 다양한 사적 관계 맺음이 늘어나고 있다.
아프리카와 동아시아 사이 내재한 관계의 구조들
최원준은 아프리카와 동아시아에 대한 외교, 정치, 문화적 관계를 탐구하며 국제정세의 거대 흐름 속에서 그간 주목되지 않았던 보이지 않던 관계의 구조들을 미시적 관점에서 드러낸다. 그 시작점, 〈만수대 마스터 클래스〉(2013- )에서 최원준은 북한의 만수대 해외개발사그룹(Mansudae Overseas Project Group of Companies, MOP)이 1974년 에티오피아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아프리카 약 18개국에 수많은 동상, 기념비, 정부건축물 등을 건설한 대 아프리카 활동을 추적한다. 그는 3년간 아프리카 8개국 12개 도시를 방문해 북한 주체사상의 흔적이 담긴 기념비와 건축물을 미학적 관점에서 촬영하고 언론인, 종교인, 전직 군인 등과 인터뷰를 진행한 후, 프로젝트를 사진, 아카이브 설치, 다큐멘터리 장편영화와 3채널 영상 설치로 완성했다. 이 작업에서 MOP의 활동이 유엔(UN) 연례 상정안에 투표권을 가진 신생 아프리카 독립국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남북한 외교 전쟁에 기인한 것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나의 리상국〉(2018)에서 작가는 실존 인물 모니카 마시아스의 삶의 서사를 다루면서, 국가 간 관계보다 아프리카와 동아시아의 정치, 이데올로기 등 사회구조의 변경에 영향을 받은 개인의 정체성 변화에 보다 더 집중했다. 마시아스는 적도기니의 초대 대통령이자 독재자였던 프란스시코 마시아스의 딸로, 혼잡한 본국의 정세를 피하고자 여섯 살에 북한으로 보내져 김일성 주석의 수양딸로 15년간 엘리트 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녀의 복잡한 정체성(아프리카인이자, 북한인이며, 현재는 유럽거주)은 20세기 냉전 이데올로기와 아프리카의 잔혹한 근현대사, 그리고 남북 분단의 산물이었다. 작가는 마시아스를 실제로 초대해 렉처 퍼포먼스와 다큐멘터리 연극을 만들고 이를 기록하여 3채널 영상 설치로 선보였다.
2019년에 작가는 콩고 루붐바시 비엔날레의 커미션을 받아 콩고의 중국광산에서 일하는 콩고 노동자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카탕가의 소년들〉(2019)을 연출했다. 2000년경부터 중국 기업들은 공격적으로 아프리카 대륙에 진출해 광산을 설립하고 광물을 수입하고 있는데, 이 흐름은 아프리카의 생활환경과 노동환경에 큰 영향을 미치며 아프리카인들의 삶의 지평을 바꾸고 있다. 작가는 카탕가 소년들의 일상과 꿈에 초점을 맞추어 추적하면서 변해가고 있는 콩고의 삶의 구조와 풍경을 자연스럽게 담아냈다. 이렇듯, 최원준은 아프리카와 동아시아 간 보이지 않는 관계의 구조들을 국가적 차원과 개인적 차원을 오가며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해왔다.
아프리카 이주노동자 타운 : 동두천, 파주, 송탄
《캐피탈 블랙》에서 작가는 한국에 거주하는 아프리카인들의 삶과 문화에 집중한다. 전시 제목은 ‘자본, 수도, 중요한, 훌륭한’ 등을 의미하는 ‘Capital’과 ‘흑인, 검은’을 의미하는 ‘Black’을 합성하여 작가가 만든 신조어로, 자본주의가 형성한 중요한 흐름으로서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흑인, 아프리카인의 삶과 맥락을 살펴보겠다는 작가의 의지를 담고 있다. 한자의 ‘검을 현’(玄)이 ‘오묘하다, 신묘하다, 빛나다’라는 의미를 내재하듯, 검은색에는 다양한 색이 포함되어있고 색상학적으로도 이 색들이 겹치면 다시 오묘한 검은 색이 된다. 마찬가지로 쉽게 통칭되는 ‘흑인’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유럽인들만이 아니라 아프리카 이주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맥락을 가진 이들 이 포함된다. 그 오묘한 개개인의 삶을 조명해 들여다보는 것은 초국가적 네트워크가 가능한 이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따라서 이번 최원준의 개인전 <캐피탈 블랙>은 우리가 읽어내야 하는 중요한 흐름으로서 블랙이라는 미명 하에 숨겨진 다양함을 들춰내려는 시도이자 그들과 우리의 관계성을 살펴보려는 시도다.
추상적으로 멀게만 느껴지던 아프리카는 국제적인 자본주의 흐름 하에 성큼 한국사회 곁으로 다가왔다. ‘이주’는 여러 학자들이 언급하듯, 아프리카의 역사나 사회를 이해하는 데 주요한 키워드로 작동해왔다. 이는 16세기 이후 대서양 노예무역을 위해 강제로 이주당한 아프리카인의 대이동에서 시작되었지만, 식민주의 시대가 공식적으로 종료된 이후로는 개개인의 적극적인 의지로 전 세계로 확장되고 있다. 1980년대 이후 경제적 침체-저임금, 고물가-와 정치적 혼란이 아프리카 전 대륙을 휩쓸었고, 일자리를 찾지 못한 수많은 아프리카인들은 전 세계 각국에 대한 정보들을 얻어 아프리카대륙을 벗어나는 노동 이주를 결행 하고 있다. 한국 역시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깊은 인상을 형성하면서 하나의 주요한 이주 희망지로 자리 잡았다.
1990년대 초반부터 아프리카인들이 노동을 위해 한국으로 이주하기 시작했고,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현상이 한국 냉전 이데올로기의 흐름 안에 있던 동두천, 파주, 송탄 지역의 풍경에 영향을 주어 변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지역들은 이주를 꿈꾸는 아프리카인들에게 적합한 몇 가지 조건들을 갖추고 있었다. 과거 주한미군 기지와 기지촌이 위치했던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국에서 예외적으로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해왔고, 2004년 8월 이후로는 한미 양국이 용산기지와 미2사단을 평택으로 이전하기로 합의한 ‘2004년 용산기지 이전 협정’ 등에 따라 공동화되고 있었다. 또한 인근에는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다양한 가게와 공장들이 자리하고 있어 노동 접근성이 좋았다. 이에 과거 한국 체류 기간이 길었던 미군들의 가족이 머물던 부동산에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고, 이산 형태로 살아가는 지역에서와는 달리 동두천, 파주, 송탄의 미군기지였던 지역에는 곧 아프리카 타운이 형성되었다. 동두천의 나이지리아 국적 이보(Igbo)인 타운, 파주의 가나인 타운, 그리고 송탄(평택)의 카메룬인 타운이 대표적이다. 해당 지역들은 이러한 흐름에 따라 ‘기지촌’으로 인식되던 과거에 더 이상 머무르지 않고, 아프리카인들이 대규모로 거주하는 지역으로 점차 변모하고 있으며, 따라서 ‘서로 다른 문화권의 융합’이라는 과제를 누구보다 먼저 안게 되었다.
최원준은 2020년부터 이러한 변화 양상에 주목하여 위 지역들에 거주하는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들의 삶과 문화를 연구하고 기록하고 있다. 2021년 더 레퍼런스에서 선보인 개인전 《High Life》에서는 식민지 시절 가나에서 태동해 서아프리카에서 가장 인기 있는 댄스 음악 장르로 자리 잡은 하이라이프(Highlife)를 메타포로 삼아 한국에 거주하는 흑인들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나 유럽인들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개개인의 삶에 집중해 실제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들이 어떤 삶을 살면서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소개했다.
공동체, 노동, 그리고 문화 – 가족사진
<캐피탈 블랙>에서 작가는 아프리카 이주노동자 커뮤니티에 한 발 더 다가간 작업들을 선보인다. 보다 정확한 분석을 위해 전시의 세 축을 ‘공동체’, ‘노동’, ‘문화’로 구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주한 아프리카 노동자들이 구성하게 되는 공동체에는 다양한 관계들이 존재한다.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들 스스로가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아프리카 커뮤니티 내부에서 형성하는 관계, 한국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속하게 되는 이주노동자-한국인 간의 관계, 1세대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어린 시절 한국으로 이주하거나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2세대가 구성하는 관계 등이 다양한 층위로 쌓이며 복합적인 공동체들을 구성해낸다.
최원준은 공동체에 대한 첫 번째 이야기로 가족사진의 형식을 꺼내 든다. 가족은 공동체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로, 특히 이주노동자에게는 이주 1세대와 이주 2세대의 갈등과 화합이 공존하는 장이기도 하다. 전형적인 가족사진의 형식을 전유하거나 조금씩 비틀면서, 작가는 가족 내의 이야기를 공동체적 차원으로 끌어낸다.
작가는 이주노동자 가족의 집, 동네 등 이들이 거주하며 살아가는 공간을 배경으로 가족의 초상을 담아낸다. 그는 사진의 ‘기록적’ 특성을 살리기 위해 전시에 선보이는 대부분의 작업에서 의상이나 배경을 특별히 연출하지 않았다고 소회한다. 〈카메룬에서 온 크리스와 살로메 그리고 한국에서 태어난 자녀들, 일산〉(2021)은 이들이 살아가고 있는 일산의 공원에서 촬영했다. 한국의 근현대사가 응축되었다고 볼 수 있는 아파트의 외관을 배경으로 촬영한 작업에서 자연스레 이들이 살아가고 있는 장소성이 드러난다. 또한 전통 의상을 입고 있는 부모 세대와 캐주얼 의상을 입고 전통 모자 등을 착용한 2세대의 복식 대비를 통해 이주노동자 1세대와 2세대의 다른 문화 향유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한편, 가족생활의 중심지라고 볼 수 있는 거실에서 촬영된 〈나이지리아에서 온이구웨 (왕) 찰스와 호프 그리고 한국에서 태어난 자녀들, 동두천〉(2020)의 배경은 이주노동자 가족의 다양한 내러티브를 드러낸다. 이 작업에서 가족 구성원 모두가 전통 의상을 입고 있지만, 그 배경에는 한국의 전형적인 졸업 사진 형식으로 기록한 2세대의 초상들이 장식적으로 걸려있고, 국적을 초월하는 다양한 아이콘의 인형들이 2세대의 삶의 전유물로 존재한다. 그 옆에 아카이브로 제시된 과거 나이지리아에서 촬영한 가족사진 〈찰스와 호프 그리고 지밀, 아남브라, 나이지리아〉(2022)와 비교해본다면, 이들의 삶이 얼마나 변모하고 있는가를 살펴볼 수 있다.
〈나이지리아에서 온 엠마와 넬슨 그리고 한국에서 태어난 자녀들, 동두천〉(2021), 〈나이지리아에서 로렌스와 은고지 그리고 한국에서 태어난 자녀들, 동두천〉(2021), 〈나이지리아에서 온 제니퍼와 존 그리고 한국에서 태어난 자녀들, 동두천〉(2021)에서는 가족과 지역성이 결합한다. 이 시리즈에서 작가는 과거 동두천에 체류하던 미군들이 기념사진을 찍던 한 사진관을 임대하고 아프리카 이주노동자 가족을 초대해 촬영한다. 변화하는 역사의 흐름을 증명이라도 하듯, 미군 기념사진의 배경이 되던 한국과 미국의 관계를 상징하던 깃발은 이면의 레이어로 후방에 존재하게 되며, 한국 풍경을 그려낸 회화 앞에는 이 지역에서 살아가는 아프리카 이주노동자 가족이 새로운 주체로 서게 된다. “원하는 의상을 입고 가족사진을 찍자”는 작가의 권유에 어떤 가족은 본인들이 직접 한복을 준비하고 착장한 채로, 또 다른 가족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실히 드러내는 전통 의복을 착장한 채로 카메라 앞에 섰다.
작가는 아프리카 이주노동자가 이루고 있는 다문화 가정의 모습도 기록하는데, 다른 나라들과 비교했을 때 한국에서는 편견 탓일지, 흑인-한국인 다문화 가정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나이지리아에서 온 윌프레드와 은희 그리고 한국에서 태어난 자녀들, 서울〉(2021), 〈가나에서 온 레건과 선미 그리고 한국에서 태어난 아들, 서울〉(2021)에서 작가는 예외적으로 의상을 참여자들과 논의했다. 앞으로 다가올 다문화 사회에서 ‘한국인’은 어떤 방식으로 규정될 것인가라는 질문을 서로 상기하기 위해 한복을 착용하기로 했고, 참여자 대부분이 한복에 익숙하지 않았지만, 누구보다도 한복을 잘 소화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동시에 사진 전반에서 느껴지는 화목함은 국적과 경계가 가족이라는 공동체 형성에 있어서 중요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공동체 - 유대와 결속
‘이주’는 집단 내의 유대와 결속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새로운 환경에 거주해야 하는 이주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유지하는 집단을 형성해 활동한다. 특히 나이지리아계 이보(Igbo)족의 대다수가 거주하는 동두천 보산동의 경우, 이들이 하나의 전체 공동체(이보 유니언)를 형성하고 각기 다른 스테이트 출신 이주민들이 이모 스테이트 공동체, 아남브라 스테이트 공동체와 같이 교민회에 가까운 다른 공동체를 구성할 정도로 이들 공동체는 다분히 세분화되어있다. 최원준이 기록한 〈이모 스테이트 공동체 여성회원들〉(2022)은 이러한 양상을 잘 보여준다.
한국이라는 본국과는 전혀 다른 지역에서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만나 개인의 문제와 커뮤니티 공동의 과제를 함께 풀어나가는 다수 집단의 존재는 특히 성인이 된 후 이주해 정체성 변화가 쉽지 않은 이주노동자 1세대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1세대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문화를 유지하고 향유하는 데는, 사실 한국에서의 고단한 노동 조건 역시 한몫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주간근무와 야간근무를 격주로 진행하고 주말에는 교민회 행사에 참여하며 여가를 보낸다. 바쁜 생활환경 속에서 이들이 한국 문화를 접할 기회는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1세대 이주노동자들의 경우 한국 문화나 음식에도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는 이주 공동체 구성에 큰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많은 디아스포라 상황에서 교회의 역할은 일반적으로 중요하지만, 특히, 나이지리아의 경우 전 국민의 50% 이상, 가나의 경우 70% 이상이 기독교인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그 영향력은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파주 지역에 위치한 ‘엘림교회’는 2004년 설립되어 아프리카 이주 노동자들의 구심점으로 작동해왔다. 특히, 엘림교회 선교사는 일찍이 이주노동자 1세대의 성향을 파악하여 나이지리아, 가나 출신의 목사를 초빙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 교회는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들의 요구에 발맞추어 변화하면서 이들이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화합을 돕고 있다. 최원준은 “오늘은 한국, 내일은 세계”라는 교회의 비전을 배경으로, 아프리카 이주노동자와 선교사, 목사의 모습을 기록함으로써 함께하는 공동체와 연대의 모습을 제시한다.
노동의 풍경
작가는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들 이주의 근원이 된 ‘노동’의 풍경 또한 기록한다. 사실, 이주 자체를 위해서는 일정한 전문성이나 이주 비용을 충당할 자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대륙 밖으로 이주할 수 있는 아프리카인들은 대부분은 전문직 노동자들이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요구하는 인력은 생산직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 대다수는 생산직 노동자로 입국하게 된다. 경기도 인근에 있는 다양한 공장에서 노동하는 이들의 모습을 기록함으로써 작가는 자본주의의 흐름이 만들어낸 변화하는 한국의 노동 구조를 드러낸다. 한국의 경제, 산업 구조가 바뀌면서 노동력이 비게 된 자리엔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의 생산 구조를 떠받치며 자리하고 있다. 이제는 한국 사회에도 없어서는 안 될 이주노동자들은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꿈꾸며 일한다. 사진속에서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들에게 노동은 고되지만 아름다운 결과를 약속하는 신성한 행위로 존재한다. 실제 노동자들이 일하는 공간을 배경으로 촬영한 〈나이지리아에서 온 발렌타인, 남양주〉(2022), 〈가나에서 온 밀러, 파주〉(2022) 등에서 아프리카 노동자들의 긍정적 표정과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최원준은 그간 전반적인 작업 활동에 있어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사회과학적으로 주제에 접근해 도큐멘팅하는 자세를 취해왔지만,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작업을 진행하면서부터 이러한 방향성을 일정부분 유지하면서도 이들과 함께 작업하는 공동체 기반 작업 역시 이어가고 있다. 실제 작가는 지역에 기반 한 아프리카 이주 공동체를 보다 더 잘 이해하고 연구하기 위해 2020년 동두천 보산동으로 이주하기도 했다. 이후 아프리카 이주 공동체를 긴밀하게 도우며 지속해서 교류하며 작업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카메룬에서 온 올리비아의 점심식사, 파주〉(2021)와 〈하이라이프, 파주〉(2021)에서는 아프리카 이주노동자 공동체와의 지속적인 관계 맺음 속에서 객관적 관계를 유지하던 작가와 이주노동자들의 거리감이 한층 좁혀진 것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작가는 본국에서 예술인으로 활동하던 아프리카노동자들을 찾아내 이들을 작업 과정에 초대함으로써 이들과 창작활동을 함께하기도 한다. 현재는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는 예술가들을 한국 관객에게 소개하며 한국과 아프리카 두 문화를 연결하는 이 노력은 2021년 나이지리아 가수 오시나치와의 첫 협업에서 시작되었다. 2021년 개인전 《High Life》에서 선보인 뮤직비디오 〈Made in Korea〉(2021)에서는 아프리카 이주노동자의 일과를 조명하면서, 한국과 아프리카 사회의 공존과 화합에 대한 희망을 제시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신작 뮤직비디오 〈No pain No gain〉(2022)은 초국가적 이주노동자의 삶의 애환을 다룬다. 오시나치뿐만 아니라 다양한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들이 실제 일을 하는 장면을 기록한 영상 푸티지들은 백화점 명품관의 파사드 풍경과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전태일 열사상 등의 영상 푸티지와 결합하면서, 노동자들의 꿈과 처우 사이를 오간다. 이 뮤직비디오에서 드러나는 노동은 신성하다. 노력 이후 따르는 정직한 결과에 대한 믿음과 소망을 노래한다.
삶과 죽음의 사이의 문화 - 저의 장례식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최원준은 지금까지 아프리카 이주노동자 공동체와 관계하면서 사망자 두 명의 사후 처리와 시신의 본국 송환업무를 도왔다. 그는 이 경험이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들의 삶과 문화 전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생로병사와 같은 삶의 과정들은 예기치 않게 불가피하게 찾아온다. 생과 사의 자연스러운 순환 속에,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들은 관혼상제와 관련된 통과의례 파티, 혹은 문화 의식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지속하고 있다. 〈파티들, 동두천〉(2022)에서 최원준은 나이지리아 이주노동자 이보족의 다양한 파티의 단면들을 추출해 5면화로 구성한다. 서아프리카에서 일반적인 축하를 기원하기 위해 돈을 하늘에 뿌리고 얼굴에 붙이는 풍습이 그가 기록한 생일파티, 유아 세례식(헌아식) 등에서 그대로 재현된다. 여기서 이주노동자 1세대의 삶과 생활 방식을 엿볼 수 있는데, 한국 문화에 적응도가 높은 2세대와 달리 1세대는 자신들의 문화와 정체성을 유지하고 향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다.
한편, 작가는 ‘이주 2세대’에 대한 대화의 포문을 역시 마련한다. 앞서 언급했듯,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 한국에 이주했거나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십 대로 성장하면서 이제 한국과 아프리카의 관계는 다음 단계를 맞은 셈이다. 다양한 개개인의 조건에 따라 한국 국적을 취득한 경우와 아닌 경우가 공존하지만, 어느 경우이건 생활·문화적으로 2세대 대부분은 한국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하고 한국의 문화를 자신이 향유하는 주요 문화로 인식한다.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익숙지 않은 1세대와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 경우도 많고, 따라서 갈등은 단연 존재할 수밖에 없다. 〈지밀과 에디, 동두천〉(2021), 〈세자매, 파주〉(2021)에서 작가는 1세대와 달라진 2세대의 삶을 기록한다. 부모의 국적에 상관없이 이들은 더 이상 한국 사회와 분리되지 않고, 그 일원으로 살아간다. 한국인들과 한국어로 이야기하고 함께 학교에 다니고 같은 대중문화를 경험하며 시간을 공유한다. ‘다름’을 이유로 갈등이 형성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공동 생활권을 구성하는 상태에서 발생하는 갈등이며, 1세대가 한국 사회에서 분리된 채로 경험했던 갈등과는 사뭇 다르다. 따라서 한국 사회는 이 아이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냐는 질문을 목도하게 된다.
최원준은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들의 문화를 반영한 공동의 행위로써 우리가 알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하는 사이 떠나간 개개인을 포함한 이주노동자 전체의 삶을 기리기로 한다. 이를 위해 파주의 가나인 래퍼 나이팅게일, 문경의 나이지리아인 가수 찰스, 서울의 래퍼 라직 그리고 프로듀서 이로운을 초대해 뮤직비디오 〈저의 장례식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2022)를 완성한다. 아프리카와 한국 문화는 공통적으로 의례를 통해 죽음의 슬픔을 축제로 승화시킨다. 작가는 이 문화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모두가 함께 모두를 기리는 한풀이의 장을 마련한다. 뮤직비디오를 통해, 삶도, 죽음도 축제가 된다. 작가는 다양한 모양으로 관을 제작해 고인을 기리는 가나의 장례 방식에 착안해 이주노동자를 상징하는 구두 모양으로 관을 만들었다. 아프리카인뿐만 아니라 한국인과 다양한 피부색을 지닌 다국적 노동자들이 모여 모두가 동료로서 이 관을 함께 들고,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들의 발이 닿는 곳들을 돌아다니며 위로한다. 비자를 연장하지 못해 도망 다녀야 했던 1세대 이주노동자의 삶과 새로운 세대로서 이 땅을 살아가야 하는 이주 2세대의 삶이 교차한다. 이 영상에서 작가는 적외선 카메라를 사용해 이주 2세대의 모습을 기록한 영상 푸티지를 포함시키는데, 풍경은 붉은 색으로 변하지만, 정체성을 반영하는 피부색은 변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가 이주 2세대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이기를 바라는 작가의 바람이 담겼다. 그가 만들어낸 장례식은 이주의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위한 의식이 되며, 이주노동자의 맞이하는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질문이 담긴다.
최원준은 아프리카-동아시아 간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중요한 흐름으로서, 동두천, 파주, 송탄 지역을 중심으로 존재하는 한국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들의 생활과 문화에 세심히 접근하면서 보이지 않던 관계의 구조들을 드러낸다. 이러한 그의 연구와 작업 활동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는, 그가 이 관계를 통해 미래를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점차 더 많은 다국적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의 생산직 노동시장으로 유입되고 있으며, 따라서 동두천, 파주, 송탄 지역의 현재 모습은 앞으로 한국 전역에 다가올 미래의 모습을 가늠케 한다. 미래의 모두가 함께 잘 살기 위해서는, 이들이 이주하게 된 배경과 상황을 연구하고 서로 이해의 발판을 마련하는 준비 과정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최원준은 창작작업의 출발점인 사진을 사용함에 있어서 과거에는 휴머니즘적인 메시지를 담기보다는 사회과학적으로 주제에 접근해 도큐멘팅하는 태도를 지녀 왔다. 주요 작업 방향은 자연스레 아카이브 구성으로 이어졌고,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가 「아카이브 열병(Archive Fever)」(1995)에서 “아카이브는 닫히지 않는다. 그것은 미래에서 열린다.” 고 지적했듯, 그는 존재했던 기록과 존재하지 않던 아카이브를 스스로 형성해 가며 자신만의 과거-현재-미래의 역사 쓰기를 이어왔다.
이번 전시가 흥미로운 점은 작가가 이 방향성을 유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이를 스스로 전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이주노동자 공동체를 아주 객관적으로 기록하는 한편, 작가는 이들과 함께 작업을 생산하기도 한다. 그간 소외되어 왔던 수많은 미시 담론들, 역사적 사실들과 대화하며 미래를 형성해가던 최원준은 이제 대화의 대상에 현재를 살아가는 다른 사람을 포함하기 시작했다. 이 지점에서 작가는 예술가를 넘어 학자이자 운동가로 변모하고 있다. 그가 새로이 다른 공동체를 구성하며 만들어 낼 미래가 기대되는 이유다.
■ 문선아 스페이스 아프로아시아 디렉터
캐피탈 블랙
현재 한국은 저출산으로 인한 노동력 부족으로 과거보다 더 많은 외국인 노동자를 필요로 하고 있다. 한국에 외국인 노동자들은 19세기부터 존재하여 왔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생산직 인력난이 가시화되면서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규모로 국내에 유입되기 시작하였다. 한국의 아프리카인들은 대부분 단순 기술직으로 취업을 하기 위해 한국에 입국하는데 이들이 취업하는 업종은 섬유, 가구, 플라스틱 등 다양한 제조업 종이다. 한국의 아프리카 이주민 중 다수를 차지하는 서아프리카인들은 약 15여년 전부터 자신들의 공동체를 형성하기 시작하였고, 현재는 동두천 나이지리아 국적의 이보인 타운, 파주의 가나인 타운, 그리고 송탄(평택)의 카메룬인 타운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들의 커뮤니티는 자국 교민회를 중심으로 구성되며 이들 타운에 있는 아프리카 교회를 중심으로도 구성된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의 대표적인 아프리카 타운들이 미군부대가 현재 주둔하거나 과거 주둔했던 기지촌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들이 미군부대 지역으로 유입된 현상은 미국의 한반도 군비 정책의 변화가 만든 현상으로 해석될 수 있다. 특히 동두천과 파주의 경우 미군 군무원과 가족들을 상대하던 부동산 월세 시장이 미군의 감소와 함께 무너지자 자연스레 값싼 월세를 찾던 아프리카인들이 모여들게 되었다. 또한 동두천, 파주와 그리고 평택(송탄)은 모두 지역에 제조업 공장지대가 형성되어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 아프리카인들에게 매력적인 곳이 되었다. 이 중에서도 동두천의 아프리카공동체는 미군부대 캠프 케이시와 매우 가까운 거리에 많은 아프리카인들이 거주하면서 사실상 이곳은 이제 기지촌과 아프리카 타운 두 곳으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동두천 거주 아프리카인들 중 90%는 나이지리아 국적의 이보(Igbo) 부족인들이며 (나이지리아인은 크게 욜로바, 이보, 하우사, 풀라니 부족으로 구성) 나머지 10%는 남아공, 에디오피아, 라이베리아, 카메룬인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두천의 이보족 향우회들은 10여 년 전부터 투표를 통해 나이지리아 각 지역을 대표하는 회장단들을 선출하고 향우회를 만들어 매달 정기적인 모임을 한다. 이들은 전통을 중시하여 아프리카 전통방식대로 매달 여러 행사를 진행한다. 이렇게 이들은 동두천에서 자신들의 문화를 견고히 하며 공동체의 결속을 다진다. 이런 동두천 이보족의 문화는 파주, 송탄의 아프리카 공동체에서도 비슷하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이들의 강한 결속 문화는 이들을 한국 문화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만들며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이들의 이주는 세계 경제의 불균형과 한국의 노동력 감소로 인한 이유들로 설명이 되지만 이들의 문화적 고립의 이유는 좀 더 복잡하다. 심지어 한국의 많은 아프리카인들은 한국의 문화, 음식에도 관심이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한국에 대해 무관심한 아프리카인들의 이런 태도는 초국가적 노동자들의 삶의 단면이기도 하다. 주간 근무와 야간 근무를 격주로 하는 대부분의 아프리카 노동자들은 주말에는 자신들 교민회 행사에 참여하며 여가를 보낸다. 이들에게 한국의 문화는 알아야 할 이유도 딱히 없지만 접할 기회 또한 쉽게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들의 한국 문화에 대한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들의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이해해야 하는 이유는 멀지 않은 미래에 한국 노동 시장의 일정 부분을 아프리카인들이 차지하는 시점이 올 것이며, 그때가 한국 사회가 다문화 사회로의 진입 시점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낯선 아프리카인들의 사진을 외국인 노동자가 아닌 민중의 초상으로 그리고 있다. 또한 이들과의 문화적 협업으로 탄생한 음악과 뮤직비디오는 이들이 현재 처해있는 문화적 고립을 타파하기 위한 도구이자 한국인들에게 문화를 소개하고자 하는 이들과 나의 제스처이다.
■ 최원준 작가
1979년 서울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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